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 중의 하나인 서초구는 가로 세로를 종단 횡단하는 데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미니 도시다. 아니 도시랄 것도 없다. 서울의 복판에 자리 잡은 ‘커뮤니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시가 서울시다. 그런데 서울에 위치한 25개의 자치구 중 서초구는 행정구역 면적을 비롯하여 공원면적, 1인당 독서량, PC 보유대수가 1위다. 전국 동 단위 중 예금액이 가장 많은 곳이 서초동(예금자산 규모 4조원)이요,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전국 최고의 구(463만원)이며, 월평균 300만원 이상인 노인 고소득자가 가장 많은 곳이니, ‘서울 중의 서울’인 셈이다.
필자는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갔다. 그날 임동혁씨의 달콤한 피아노 연주,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는 성시연씨의 지휘도 일품이었지만, 공연이 열리기 전 예술의전당 앞 분수대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의 느긋한 표정이 마음 깊은 곳에 압핀처럼 들어와 박혔다.
‘서초구’라는 커뮤니티가 부러운 것은 이 도시의 富(부)의 수준이나 원스톱 행정 시스템, 복지체계가 아니었다. 우면산과 청계산이라는 녹음이 제공하는 싱그러운 공기, ‘되살아난 하천의 상징’이 된 양재천의 물길이 제공하는 여유로움, 서리풀공원과 한강으로 상징되는 녹색 공간…. 그렇다. 서초구의 가장 큰 자랑은 예금량이나 평균소득, PC 보유대수의 랭킹이 아니라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주민 행복지수 1위라는 점일 것이다.
그동안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는 여유보다는 속도를, 환경보호보다는 도시개발 건설을 더 절실한 과제로 여겼다.
이제 1인당 소득 2만 달러 고비에서 우리는 그동안의 질풍노도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개발과 환경의 조화, ‘빨리빨리’ 문화와 ‘느림의 미학’의 공존, 배달겨레의 고유 문화와 외국 문화와의 융·복합,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들이 어울려 살며 인간다운 가치를 높여 가는 커뮤니티의 건설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月刊朝鮮이 이번 달 별책부록의 주제로 하고 많은 지자체 중 서초구를 택한 이유는 이 작은 커뮤니티가 힘들고 어려운 과제에 도전장을 내밀고 국내 어느 곳보다 먼저 인프라 구축에 나서 작지만 빛나는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2009년 5·6월호)는 이번 미국發(발) 경제위기가 지나고 나면 국가 단위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두바이처럼 國富(국부)펀드와 私兵(사병)으로 무장한 중세시대 도시국가와 같은 하나의 지정학적 단위로 움직이는 지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 전세계에는 뭉칫돈(Capital)들이 투자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다. 기업(Corporation)들은 매력적인 시장이나 고객이 눈에 띄는 곳이면 어디로든 진출한다. 지구촌 시대의 소비자(Consumer)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품이라면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것이든 따지지 않는다. 또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발달로 국경을 초월한 업무가 가능해져 자본과 기업의 글로벌 이동을 부추기고 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는 오늘날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자본(Capital), 기업(Coporation), 소비자(Consumer),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4C로 정의 했다.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무한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지역 단위로 4C의 흡인을 위한 총체적인 경쟁력이 중요한 과제다.
과거에는 중앙정부의 우산 아래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공공서비스의 생산과 공급에 주력했던 지방정부들은 이제 독자적인 힘으로 지역 경쟁력의 확보, 지역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 지역사회의 산업 발전을 위해 외국의 지방정부·글로벌 기업과의 접촉과 협상을 통해 4C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현재 서초구 관내에서는 연간 6조원의 세금이 걷히고, 삼성그룹, 현대-기아자동차의 본사와 LG전자의 R&D 캠퍼스 등 대한민국 빅 3 기업의 本山(본산)이 클러스터(cluster·群落)를 이루고 있다. 혹자는 이 회사들이 들어서 있는 양재IC~반포IC 사이를 ‘21세기의 곡창지대’라 부른다.
원스톱 행정 서비스, 녹색 주거환경, 영어 인프라, 기업하기 편리한 시스템을 앞세워 4C 유치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주민 복지에 앞장서고 있는 커뮤니티. 이것이 매력 넘치는 ‘글로벌 서초’의 참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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