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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년 4월호

[인터뷰] AIDS 치료제 개발에 도전장 낸 孫鐘贊 박사

“오기를 가지고 한 우물을 깊게 파라”

崔善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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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鐘贊
⊙ 1952년 출생.
⊙ 서강대 화학과, 同 대학원 유기화학 석·박사.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後 과정.
⊙ 국방과학연구소 유기합성 선임연구원, 한국화학연구소(現 한국화학연구원) 유기 제2부 4실
    책임연구원 역임.
⊙ 現 한국화학연구원 생명의약연구부 화학물질생산연구팀 책임연구원.
⊙ 저서: 논문 26편, 특허 16건.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매달린지 10여 년, 마침내 결실을 맺은 손종찬 박사.
  지난해 여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책임연구원인 孫鐘贊(손종찬) 박사가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 미국 대형 제약회사인 길리어드社(Gilead Sciences)에 거액의 로열티를 받고 기술이전을 한 것. 10여 년 동안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판 끝에 맺은 결실로 우리나라 과학계의 위상을 드높인 값진 성취였다.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실에서 만난 손종찬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가 자꾸 기사화되는 게 부담스럽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신약과 후보물질의 개념을 혼동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성공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첫 단추를 뀄을 뿐입니다. 외국의 유명 제약회사들은 세 번에 걸친 임상시험 중 거의 마지막 단계쯤 가야 신약 성공에 대한 언급을 합니다. 그 전에는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후보물질이란 말 그대로 신약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과정을 통과했다는 뜻이지, 이게 곧바로 약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임상시험과 미국 FDA 승인까지는 5년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는데, 그동안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손 박사에게 “길리어드 정도 되는 세계적인 회사에서 이 후보물질의 최종 연구에 5억원 이상을 투자해 2년간 지원했고, 거액의 로열티를 주고 구입했다면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묻자 그는 “워낙 좋은 약을 만들기로 유명한 회사이기 때문에 그런 믿음은 있다”고 말했다.
 
  한국화학연구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후보물질 개발로 길리어드사가 화학연구원 측에 지급한 로열티는 1차 기술료 10억원을 포함한 정액기술료 85억원, 여기에 2028년까지 ‘러닝 로열티’로 불리는 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를 별도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신약이 개발될 경우 현재 예상되는 러닝 로열티는 15년간 매년 300억원 규모다.
 
 
  포기할 시점에 만난 행운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과 그의 인연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강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국방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87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박사後(후) 과정을 떠났다.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현재 인류가 가진 기술로는 병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은 젊은 화학자인 그의 관심을 끌었고,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위한 후보물질 연구를 한 번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도교수의 조언을 듣고 연구 분야를 결정했다.
 
  본격적인 연구를 한 것은 한국으로 돌아와 화학연구원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였다. 10년 이상을 한 가지 연구만 붙들고 있는 동안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성과를 우선으로 하는 평가시스템은 큰 스트레스였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이 있었지만 연구 기간이 길어지면서 끊겼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연구 결과에 절망한 그는 마침내 연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연구기관에서, 아무 성과도 없이 무작정 연구에만 매달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컸다.
 
  손 박사는 상업적인 가치는 없지만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벨기에로 갔다. 논문을 평가 받기 위해 찾은 벨기에의 한 연구소에서 그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사업성이 충분하니, 적당한 회사를 연결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소개 받은 곳이 미국의 길리어드였다.
 
  “제 연구를 검토해 본 길리어드 쪽에서 후속 연구를 지원해줄 테니 계속 진행하라며 공동연구를 제안했어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 연구를 진행했고, 2년 후에 후보물질을 찾아낸 겁니다.”
 
孫박사가 찾아낸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은 미국의 길리어드 社에 기술이전되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열렸던 기술이전 성과 발표회 장면.

 
  신약 연구는 조급해서는 안 돼
 
  지난 2년, 그는 길리어드와 공동연구를 진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보여주었다. 영문으로 씌어 있는 종이에는 항목별로 번호가 빽빽하게 매겨져 있었다.
 
  “다시 연구를 시작하게 됐을 때, 길리어드에서 이걸 보내 왔어요. 후보물질이 되려면 이 항목들을 다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고 시작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걸 다 통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간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그대로 폐기처분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물질로 다시 시작하는 거죠. 500~600개까지는 숫자를 세면서 연구를 했는데 그 뒤부터는 안 셌어요. 한 1000개는 넘었을 겁니다. 그렇게 숱한 실험을 거쳐 겨우 하나를 찾아낸 것이죠. 이 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고, 실제 진행하고 있는 테스트는 위의 몇 가지 항목뿐이에요. 그러니 길리어드가 아니었으면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조차 가지고 있질 않으니까요.”
 
  게다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길리어드에서는 한 번도 그의 연구를 채근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화학실험은 본질적으로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성과 내기 위해서는 한 우물을 파야
 
  소탈한 성품의 그는 넥타이를 매는 것도 싫어하고, 책임연구원이라고 폼 잡고 앉아 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늘 작업복 차림으로 연구실을 지키고, 결과를 체크한다. 요즘도 그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연구실에서 똑같은 연구를 진행한다. 어떤 연구인지 묻자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후속 연구”라며 “그래서 과학은 끝이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기술이전이 목표였는데, 우여곡절 끝에 목표를 이루고 나니 더 큰 꿈이 생겼다”면서 “우리가 신약개발 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며 후배 연구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 우물을 파는 게 중요해요. 깊이 파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값진 성과를 거두게 될 겁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도 많고, 연구환경도 좋고, 시스템도 잘 갖춰진 곳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일하는 외국 연구원들’입니다. 그들과 비교하며 우리에게 없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개발에 임한다면 우리도 신약 개발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과학계 전체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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