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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1. 2009년 4월호

대덕에 사는 외국인들을 만나 보니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도와줘”

이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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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박사는 350여 명. 카이스트, 충북대 등 대덕특구 내 6개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을 포함하면, 1000여 명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대덕특구에 입주해 있는 외국기업의 사업환경 조성, 외국인 생활여건 개선,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등 외국인 연구자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이하 대덕특구지원본부) 홍보전략팀 서준석 팀장은 “지난 3년간 외국인 진료병원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2만명 규모의 외국인 주거단지를 조성했다”며 “올해 외국인학교를 추가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덕특구지원본부는 외국인 연구자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NGO 단체인 SEM(Scientists and Engineers Members, International: 회장 姜景仁)과 함께 매주 목요일 외국인 연구자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무료로 열고 있다. 지난 3월 3일 대전시 대덕특구에 있는 한국어 교실에서 세 명의 외국인 연구자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대덕특구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법에 대해 들어봤다.
 
 
  국가핵융합연구소 미국인
  알란 잉글랜드(Alan C.England)
 
  “아토산이 뭔지 아세요?”
 
  미국인 알란 잉글랜드(77) 씨는 필자를 만나자 마자, 한국어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SEM에서 한국어 수업을 꾸준히 들은 덕분에 몇 마디 한국어가 가능했다. 그에게 “아토산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아! 토요이릉 사누로 가자(아! 토요일은 산으로 가자)”란다.
 
  잉글랜드 씨는 도보여행 마니아다. 그는 “대전은 도보여행을 하기에 아주 좋은 도시”라며 “이것이 대전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라고 했다.
 
  한국에서 생활한 지 올해로 10년 째인 잉글랜드 씨는 현재 대덕특구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미국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 덕분이다. 그는 미국의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1995년까지 약 35년간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곳에서 현재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南宮垣(남궁원·66)씨를 만났다. 잉글랜드 씨의 이야기다.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남궁원씨에게 물리학을 가르쳤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만나러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남궁원씨는 제게 ‘한국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어요. 한국을 잘 몰랐지만, 남 박사 등 한국인 연구원들의 실력이 뛰어나 함께 일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10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10년이나 생활한 걸 보면 한국이 마음에 들었나 보죠?
 
  “물론이죠. 특히 대전이 좋습니다. 대전 사람들은, 항상 저를 도와주려고 합니다.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면 누군가는 꼭 나타나 길을 안내해주곤 합니다.”
 
  그는 대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이스(nice)’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대전의 자연환경이 외국인 연구자들을 잡아 끄는 매력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잉글랜드 씨는 “대전은 도시가 크지만 시끄럽지 않고 공원이 많아서 연구에 집중하기 좋다”며 “미국에 있는 대학 동료들에게 대전으로 오라고 설득하는 중”이라며 웃었다.
 
  -한국 과학자들의 가장 큰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실성입니다. 저는 미국뿐만 아니라 독일,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주말이나 저녁 때는 연구소 전체가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한국 과학자들은 낮 밤,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합니다. 대전에 와서 한국 과학자들을 보면서 정말 감동 받았어요. ‘저런 자세 덕분에 이 나라가 단숨에 경제발전을 이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자력연구소의 중국인
  쑨 안(孫安 Xun an)
 
  쑨안(孫安·40) 씨는 중국 간쑤성(甘肅省)의 란저우(蘭州)대학을 졸업하고, 2005년 9월부터 대덕특구에 있는 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이전까지는 한국에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낯선 한국 생활이지만 함께 살고 있는 부인과 한 살배기 딸이 큰 힘이 된다. 미국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2002년부터 3년간 연구원으로 일했던 그는 인터뷰 내내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쑨안 씨의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그의 대답 역시, 앞서 만난 알란 잉글랜드 씨와 동일했다. 그는 ‘한국인의 성실성’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처음 대덕특구에 왔을 때가 저녁이었어요. 그런데 연구원 건물들이 하나같이 불이 켜져 있더군요. 중국이나 미국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에 퇴근을 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이 집에 가기 싫어서 연구실에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며칠 생활해 보니, 밤까지 연구하는 게 몸에 배어 있더군요. 한국 사람들, 정말 성실하고 일을 많이 합니다.”
 
  미국인인 알란 잉글랜드 씨와 함께 2년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그이지만, 그가 구사할 수 있는 한국어는 다섯 문장뿐이라고 한다. 쑨안 씨는 “연구원 활동이 너무 바빠서 제대로 복습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당황스러운 일도 많았다”고 했다.
 
  “잉글랜드 씨는 서양인 얼굴을 하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인 얼굴입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제게 와서 ‘어디어디가 어디예요?’라고 물어봐요. 그때마다 ‘쏘리. 항구거 멀라여(한국어 몰라요)’라고 답합니다. 빨리 한국어를 배워야죠.”
 
  쑨안 씨는 원자력연구소 내에서 ‘양성자 가속기 개발’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고 있다. 복합재료나 신소재 등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양성자 가속기는 생명공학기술, 우주기술, 신소재 개발분야 등에 활용된다.
 
  그는 여러 국가의 연구원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점이 대덕특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쑨안 씨는 “우리나라 사람(중국 사람)들끼리만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연구 목적이 한정된다”면서 “대덕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함께 연구를 하면 우리 연구의 목적과 범위가 확장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충남대 박사과정 재학생 방글라데시인
  쿠루쉐드 알람(Khurshed Alam)
 
  쿠루쉐드 알람(35) 씨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사제랄대학(shahjelal univercity)을 졸업했다. 그는 지난 2007년 8월부터 원자력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충남대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을 함께 밟고 있다. 원자력연구소에서는 발전소를 세울 때 배관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수재료의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알람 씨는 대학 재학 시절 한국인 친구를 한 명 만났다. 알람 씨는 그와 어울려 다니면서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한국인 친구에게 들은 얘기 가운데,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관한 내용이 그를 사로잡았다. 알람 씨는 필자에게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알고 있느냐”고 물으며, 들뜬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리비아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들이는 공사에 처음 일본이 참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요. 같은 회교국인 말레이시아가 도전했다 실패했습니다. 물론 서방의 여러 회사들도 포기했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의 동아건설이 대수로 건설에 참여했고, 마침내 성공했어요. 리비아는 사람들이 일하기에 지옥 같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더운 지방 사람들이 아닌 한국인이 高(고)난도 공사를 성공시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자’고 결심했어요.”
 
  알람 씨는 “한국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방법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지식, 일하는 자세와 방법을 조그만 것까지 배워서 고국인 방글라데시로 가져갈 생각이다. 자신이 배운 것을 가지고, 자신의 고국이 발전하는데 돕는 게 삶의 목표라고 한다.
 
  그에게 “한국이 발전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예상 외의 답변이 나왔다.
 
  “저는 한국 발전의 원동력은 ‘한국 아줌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특히 대전 아줌마들의 팬입니다. 시장에서 만나는 한국 아줌마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며 고생을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걸 보고 감동 받았어요. 이들은 언제나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요. 이들이 지난 수십 년간 희생하며 가정을 잘 지켰기 때문에, 한국 남자들이 리비아 같은 나라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한국에 김치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알람 씨지만, 한국 생활에서 어려운 점도 많다. 2주 전에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두 딸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딸들이 아직 어리지만 조금 더 자라면 국제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대덕은 좋은 곳이지만,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국제학교가 적어요. 학비도 비쌉니다. 주위에 있는 다른 외국인 학부모들도 자녀교육 때문에 걱정이 많아요. 대덕은 좋지만, 아이들 교육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덕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덕특구와 한국 정부가 이 점에 좀 더 신경을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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