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昌敏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 1964년 서울 출생.
⊙ 용문고·연세대 철학과 졸업.
⊙ 조선일보사 뉴미디어연구소 전략기획팀장·한겨레신문사 미디어기획팀장·<싸이버저널> 편집인·
딴지일보 편집장 역임.
⊙ 現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 이사.
⊙ 1964년 서울 출생.
⊙ 용문고·연세대 철학과 졸업.
⊙ 조선일보사 뉴미디어연구소 전략기획팀장·한겨레신문사 미디어기획팀장·<싸이버저널> 편집인·
딴지일보 편집장 역임.
⊙ 現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 이사.
- 한 기술자가 컴퓨터 가상공간에 구현된 가상 자동차에 앉아 문제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다. 입체 영상과 촉감 구현 기술을 이용하면 가상 자동차에 앉아 승차감을 확인할 수도 있다. 최근 가상현실 기술이 생산 현장의 제품 설계에서 소비자 품평에까지 폭넓게 도입되고 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유비씨는 수십 년째 그래왔듯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20세기 후반까지는 담배 끊는 사람을 독한 놈이라고 불렀으나, 21세기부터 전 세계적으로 몰아친 금연 열풍은 거꾸로 담배 안 끊는 유비씨 같은 사람을 독한 놈으로 바꾸어 버렸다.
담배를 물고 ‘종이 조선일보’를 펼쳤다. 둘 다 유비씨의 화장실 필수품이다.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던 해 조선일보는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했지만, 유비씨 같은 신문지 세대 독자들을 위해 가정용 윤전기를 보급했다. 값이 비싼 잉크와 용지를 매달 지국에서 배달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신문은 잉크 냄새 맡으며 손가락으로 넘겨보는 게 제 맛”이라며 ‘퀄리티 페이퍼’에 인이 박인 조선일보 올드 보이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화장실에서 담배와 신문을 즐기며 볼일을 본 유비씨에게는 또 하나의 볼일이 있다. 변기에 설치된 ‘쾌변 모니터링’이다. 여기에는 유비씨의 배설물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전날 먹고 마신 음식과 성분, 과다 섭취되거나 보충해야 할 영양소, 배변 시간과 변비 여부 등 습관에 대한 통계, ‘담배를 끊고 신문을 보지 말고 배변에만 집중하라’는 메시지, ‘쾌변 모니터링의 경고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살면 평균수명이 줄어든다’는 경고가 뜬다. 유비씨는 언제나 그렇듯이 감히 주인에게 경고를 보내는 기계에 대고 “내 인생은 내 맘대로 산다, 자꾸 그러면 전원 뽑는다?”라고 조롱하며 화장실을 나와 신문을 마저 보기 위해 다시 침대로 향했다.
◈ ‘매트릭스 침대’
침대엔 ‘쾌면 모니터링’이 설치되어 있다. 수면시간과 패턴, 숙면 여부, 자면서 흘린 침과 땀, 눈곱, 비듬, 각질, 털 등 분비물과 분실물에 대한 분석, 잠자는 동안 자세가 어떻게 변화했으며 이것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심지어 자는 동안 꾼 꿈까지도 동영상으로 재생해 볼 수 있다.
설치 초기에는 너무나 신기해 반복해서 틀어보고 저장도 했지만 ‘야동’이 그렇듯 결국 그 꿈이 그 꿈인 개꿈인지라 요즘은 심드렁하다. 다만 가끔씩 기존과는 다른 꿈 패턴, 예를 들면 전혀 등장하지 않던 새로운, 혹은 미지의 인물이라든가 배경, 스토리를 꿨다고 하면 들여다보곤 한다. 쾌면 모니터링 역시 잠자리 분석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조언을 하지만 유비씨는 “제 딴 놈이 날 알면 얼마나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마누라 말도 안 듣는 내게 감히?”라며 무시한다. 20세기 후반 모 침대회사가 슬로건으로 내세웠듯이 과연 ‘침대는 과학’이 되었다. 이름하여 매트리스를 뛰어 넘는 매트릭스(matrix) 침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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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유비쿼터스 체험공간 ‘U-하우스’ 전경. |
고양이 밥그릇에 달린 ‘냥이 모니터’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여준다.
“어제처럼 사료를 많이 주면 안 돼요. 2030년 2월 28일 현재 전국의 조선단모종 고양이 3만2584마리 중에서 유비님의 ‘쿼터스’가 비만도 상위 20%입니다.”
애타게 호소하지만 유비씨는 “이거 왜이래? 난 살찐 고양이가 좋아. 비만 고양이 전용 모니터 어디 파는데 없나?”라고 툴툴대며 사료를 듬뿍 담아준다.
고양이 밥을 주었으니 사람 밥을 챙길 차례. 유비씨는 옆집에 사는 아내에게 아침밥을 얻어먹으러 간다. 30대 후반에 이혼한 유비씨는 친구들이 차려준 자신의 환갑 와인 파티에서 평생을 찾아 헤매던 40대의 ‘임자’를 만나 재혼했다. 신혼 1년 간 신접살림은 같이 차렸지만 20세기 초반의 ‘부부 각방 쓰기’에서 한 단계 진화한 ‘부부 각집 살기’ 추세에 발맞춰 유비씨 부부도 4년 전부터 붙어있는 집을 얻어 ‘半獨半婚(반독반혼)’ 생활을 즐기고 있다. 결혼은 했지만 혼자 살기에, 또 평균수명이 100살을 넘는 세상이고 최근 건강검진 결과 신체나이 44세로 나왔지만 유비씨는 스스로를 ‘21세기 독거노인’이라고 부른다.
아침밥을 챙겨먹은 유비씨는 친구들과의 ‘가짜 생일 기념’ 라운딩을 위해 차에 올랐다. 유비씨의 차는 2002년식 은색 사브 컨버터블이다. 말이 좋아 ‘클래식카’, 혹은 ‘빈티지카’지 실은 28년 된 고물차다. 하지만 정성을 들여 관리해 주행거리계가 한 바퀴를 돈 지금껏 잘 달리고 잘 선다. 다만 휘발유 차량은 자동차 경주에서만 쓰이기 때문에 이 차도 연료를 전기로 바꿨고, 비상용으로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물이 되면서 나오는 전기를 이용하는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했다. 최근에는 동물과 식물에서 추출한 생물연료도 시판되고 있지만 유비씨는 왠지 자기 차가 ‘狂車病(광차병)’에라도 걸릴 것 같아 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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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유-헬스(u-health) 전시·체험관’의 원격화상진료 시연 모습. |
◈ 골프장 가는 길
2030년의 차들은 기계라기보다는 달리는 컴퓨터에 가깝다. 20세기 후반부터 발전해온 위성 내비게이션 기술과 2010년부터 상용화된 ‘차량 간 멀티홉 통신기술’(VMC·차량 간 충돌예방 기술)이 결합해 운전자가 목적지를 정해주면 차는 자동운행된다. 유비씨도 피곤하거나 술을 먹었을 때는 자동운행장치를 켜고 차에서 졸거나 쉬지만, 골프장 가는 길처럼 운전하는 맛이 나는 날에는 직접 운전대를 잡기도 한다. 몇몇 운전자는 주행정보가 낱낱이 파악되어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동운행을 거부하고 있다. 유비씨는 겨우내 덮여 있던 소프트 톱을 열고 히터를 켠 후, 수동운행 차량 전용인 1차로에 올랐다.
수동운행을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면 반은 자동운행인 셈이다. 유비씨는 자신의 내비게이션의 애칭인 ‘내비뇬’을 불렀다.
“적벽 CC까지 얼마나 걸리지?”
“현재속도와 교통상황을 종합하면 1시간27분 소요 예정입니다.”
“그럼 몇 시에 도착하는데?”
“현재시각 오전 9시18분, 도착예정은 오전 10시45분입니다.”
“관우, 장비, 갈량이 차는 언제 도착해?”
“관우님은 11시45분, 장비님은 11시57분, 갈량님은 11시39분 도착 예정입니다.”
오늘 내기 골프는 따놓은 당상, 유비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12시30분 티 오프이니 놈들은 도착해서 허겁지겁 옷 갈아입고 밥 먹느라 몸도 제대로 못 풀고 연습 그린에서 퍼팅 연습도 못할 게 뻔했다.
‘내비뇬’이 끊임없이 재잘댄다.
“적벽 CC 주변 10km 이내에 유비님이 좋아하실 만한 식당이 세 곳 있습니다. 지난번에 맛있다고 별 다섯 개 만점을 주신 중국집 적벽장, 가보시진 않았지만 미슐렝 가이드 별 두 개짜리 호로관 생고기, 그리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나 점심은 클럽하우스에서 먹을 거야.”
“성게 미역국 미리 주문해 놓을까요?”
“아니, 친구 놈들이랑 같이 먹을 거야. 근데 너 오늘이 내 ‘가짜 생일’인 거 알고 있는 거냐? 미역국을 시킬 생각을 다 하다니.”
“그 골프장에서는 항상 성게 미역국을 드셨습니다.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아주, 얘가 농담을 다 하네?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했더니, 돈이 좋긴 좋군.”
◈ 실시간 첨단 정보 쏟아내는 골프 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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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사이트 세컨드 라이프에서 활동하는 사용장의 분신(아바타)들이 댄스클럽에 모여 춤을 추고 있다. |
연습 그린에 도착한 유비씨는 허리춤에 찬 국산 골프 도우미 ‘KJ 초이스’를 켰다. KJ 초이스 디스플레이에 바로 메시지가 떴다.
“디지털 스팀프 미터로 측정한 결과, 오늘 그린 스피드는 24년 전인 제프 오길비가 우승했던 2006년 미국 뉴욕주 윈지드 풋 골프 클럽에서 열린 US 오픈 때와 같은 12입니다.”
유비씨는 得意滿面(득의만면)했다. 악명 높은 미국 조지아州(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의 유리알을 능가하는 얼음판 그린에 대비해 유비씨는 1991년 마스터스 우승자인 이안 우스남이 농담으로 얘기한 ‘당구대에서의 퍼팅 연습’을 실제로 며칠 동안 했기 때문이다.
“유비 님의 현재까지 연습 퍼팅 55회 중 6피트 이내 성공률 35%, 10피트 이내 성공률….”
“<퍼팅 바이블>의 저자인 데이비드 펠츠의 17인치 룰에 입각해 분석했을 때….”
KJ 초이스는 연습을 하는 동안 쉴새 없이 데이터와 분석결과를 보여줬지만 유비씨는 “일단 공이나 구멍에 넣고 나서 생각하자”며 홀에 공을 떨어뜨리는 데만 집중했다.
라운딩 중엔 유비씨만 바쁜 게 아니다. KJ 초이스와 친구들이 갖고 온 엇비슷한 성능의 미제 ‘虎林(호림) 마스터스’, 국산 ‘파이널 킹’도 정신 없었다. KJ 초이스는 잔디 밑에 깔린 수많은 센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코스의 파, 지형, 거리, 지면상태, 벙커, 해저드, OB, 경사, 바람, 잔디의 종류와 길이, 역결과 순결 여부, 브레이크 등에 대한 정밀한 정보와 공략방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각 클럽과 공에 내장된 센서와 칩을 통해 분석한 유비씨 스윙에 대한 분석, 구질, 캐리와 런, 스핀, 입사각, 반사각, 탄도, 헤드 스피드, 볼 스피드 등 입체적인 정보를 쏟아냈다.
한편 전동 카트에 설치된 ‘오초아 캐디’ 시스템은 유비씨와 동반자의 골프 도우미에 연동되어 스코어 계산 및 내기 금액 정산, 해당 코스에서 라운딩한 골퍼 전체의 스코어 및 경기내용과의 비교까지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심지어 적벽 CC에서 라운딩할 동안 유비씨 드라이버 샷이 10년 전과 비교해 어떠한 변화가 있으며, 전 세계 66세 남자 골퍼 평균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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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테크노파크에서 열린 지능형 무인자동차발표회에서 선보여진 무인자동차 조종 모습. |
◈ 스크린으로 변신한 자동차 앞창
‘적벽대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귀가 길에 오른 유비씨는 차를 자동운행 모드로 설정하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3차원 홀로그램 폰 ‘스타 킹 택’으로 아내를 호출했다. 아내는 마침 샤워 중이어서 알몸을 보이기 싫다며 유비씨가 가장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은 아바타를 통해 영상통화를 허락했다.
“나 오늘, 한국사에 대첩 하나 추가했어! 유비 노인의 적벽대첩.”
“농담 그만하고 나이 값 좀 하세요.”
“농담이라니? 나 오늘 상금왕에, 롱기에, 니어에, 메달까지 4관왕을 달성했어. 속고만 살았나?”
“진짠지 아닌지, 내가 적벽 CC에 접속해서 라운딩 동영상 확인해 볼게요. 캐디 언니한테 치근덕거리기만 했어봐.”
통화가 끝난 뒤, 유비씨는 자동차 앞창 전면을 이용한 화면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자신이 태어난 해와 같은 1964년에 제작한 흑백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를 틀었다. 매년 생일 즈음에 이 영화를 보며 낄낄거리다 잠이 들어 <몽유도원도>에서 노니는 꿈을 꾸는 게 그의 반복되는 낙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유비씨는 몽유도원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未堂(미당)이 자기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그랬나, 9할이었다 그랬나? 이거야 원 나도 디지털 치매가 온 건가? 나를 키운 건 뭐였을까? 바람인가 바람기인가? 에라 모르겠다. 날 키운 건 그냥 8과2분의 1할이 바람기였다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