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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년 11월호

[르포]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곳

金南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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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만 매립지 위에 들어 선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고속주행시험장.
  경기도 화성시 장덕동에 있는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종합기술연구소)는 꼭꼭 숨어 있는 요새 같았다. 여러 번 길을 헤맨 끝에 겨우 남양연구소를 발견했다. 연구소 정문에서 약 2㎞ 떨어진 국도 변에 안내 표지가 없었다면, 갈림길 저편에 남양연구소가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연구소 이름이 남양인 것은 연구소 자리가 서해 남양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985년 남양만이 매립된 후, 현대자동차가 약 347만㎡(약 105만평)의 부지를 매입해서 연구소를 만들었다. 처음 연구소 삽을 뜬 건 1986년 12월. 이 때부터 주행시험장 및 부대시설 공사를 시작으로, 1993년 총 연장 70㎞의 시험로와 70종의 노면을 갖춘 종합주행시험장을 완공하고, 2003년 현대차 울산연구소와 기아차 소하리연구소를 통합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처음 현대자동차 본사에 남양연구소 취재를 요청했을 때, 현대차는 난색을 표했다. 최근 현대차의 기술을 빼내려는 경쟁국과 경쟁업체들 때문에 연구소 보안에 극히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 취재 의뢰를 한 끝에 “연구소의 주요 연구시설에는 접근을 하지 않고, 사진을 찍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서야 방문을 허락 받았다.
 
  남양연구소 정문에서부터 보안이 삼엄했다. 보안 요원이 필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와 휴대용 USB를 검은색 보안 테이프로 밀봉하고 나서야 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엄격한 보안 검사와 달리 연구소는 마치 대학교 캠퍼스를 연상케 했다. 언덕 하나 없이 쭉 뻗은 도로들 사이로 노송과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 연구소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넓은 부지 면적 덕분에, 연구소 건물이 미국 캠퍼스처럼 옆으로 길게 누워 있었다. 양복 대신 캐주얼 차림의 연구원들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다.
 
 
  통근버스 150대 운행
 
  연구소 행정동 1층에 있는 회의실에서 최재호 현대자동차 과장에게 연구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보안 때문에, 취재를 위해 들어올 수 있는 건물은 이곳밖에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연구소의 규모부터 설명했다.
 
  “전체 347만㎡(약 105만평) 부지 위에 각종 연구소 건평만 49만㎡(약 16만평)입니다. 1985년 남양만 매립이 끝나고, 회사가 부지를 구입하려고 했는데 정부에서 허가를 안 내줬습니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무슨 자동차 연구소가 330만㎡(100만평)나 필요하냐’며 ‘혹시 재벌회사가 부동산 투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고 합니다. 대개 ‘연구소’라는 건, 건물 몇 개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시 현대차 경영진은 회사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매립지 330만㎡를 정부로부터 불하 받았습니다. 그때 이 연구소 부지를 얻지 못했다면, 지금 현대·기아차는 이 정도 규모의 연구소를 만들기 어려웠겠죠. 연구소를 둘러볼 때마다, 선배 경영진들의 혜안에 감탄하곤 합니다.”
 
  ―연구소에는 어떤 시설들이 있습니까.
 
  “자동차를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연구 시설이 있습니다. 설계센터, 디자인 센터, 파워트레인(엔진과 트랜스미션) 센터, 풍동시험장, 충돌시험장, 주행시험장 등이 있습니다. 특히 남양연구소에 있는 주행 시험장은 165만㎡(약 55만평)부지에 4.5㎞의 고속주회로와 34개의 노면을 갖춘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합니다.”
 
  현대·기아 남양연구소에는 현재 약 8000명의 디자이너, 엔지니어를 포함한 고급인력들이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남양연구소에서는 각종 신차 디자인, 설계 및 평가 등 신차 개발에 필요한 모든 연구 개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 디자인이 점점 중요해지는 추세에 맞춰, 남양연구소에서만 자동차 디자인 인력 500명이 근무하고 있다. 최재호 과장은 “남양연구소에서는 친환경 자동차, 지능형 자동차 같은 미래 신기술 개발에 필요한 모든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차량을 이용해 연구소 전체를 둘러봤다. 연구동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주행시험장에서 각종 노면주행과 고속주행은 해볼 수 있다”는 말에 아쉬움이 한결 덜했다. 연구소 곳곳에 버스 정류장이 설치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연구소 부지가 워낙 넓어, 걸어서 이동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출퇴근을 어떻게 하는지 물으니 “통근 버스를 150대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150대라면 서울의 대형 버스 회사보다 많은 숫자였다.
 
  각 연구센터 가운데 직경 8.4m의 초대형 프로펠러가 시속 200㎞의 바람을 불어대는 풍동시험장의 내부가 궁금했다. 축구장 크기의 풍동시험장은 약 450억원을 투자해 만든 최신 연구 설비다. 지난 1999년 풍동시험장이 세워지기 전까지 현대차는 하루 500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가며 외국의 연구시설을 빌려 실험을 했다고 한다.
 
 
  고속주행로
 
주행시험장에서 노면주행 테스트를 하고 있다.

  건물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니, 널찍한 도로가 나왔다. 주행시험장이었다. 주행시험장에서는 선회능력, 조정안전성, ARS 시험, 수밀 시험, 먼지터널 시험, 비포장 시험 등 자동차 주행과 관련된 대부분의 시험이 이뤄진다. 우리가 탄 차는 먼저 조정안정시험에 들어갔다. 조정안정시험로는 출시 직전 차량들이 핸들을 좌우로 급격히 꺾으며 주행할 때, 차량의 기울기와 미끄럼 등을 시험하는 곳이다. 장애물을 일정 간격으로 두고, 그 사이 구간을 통과하기 때문에 좌우로 심하게 몸이 쏠렸다.
 
  조정안전시험로는 차량 앞뒤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가려놓은 차량이 여러 대 있었다. 최 과장은 “저런 차량들이 곧 출시될 신차”라고 했다. 이런 차량의 앞뒤 번호판에는 ‘품확차량’이라고 적혀 있었다. 품확은 ‘품질확보’의 줄임말이다.
 
  조정안전시험로를 빠져 나와 전 세계의 모형로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국내의 도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도로가 그대로 재현돼 있다. 전 세계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현대·기아차로서는 각 국가들의 주요 도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차량을 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 차는 영국 런던의 도로 위를 달렸다. 모형로 한쪽에는 무인 자동차가 시험을 하는 울퉁불퉁한 도로가 눈에 띄었다. 최 과장에 따르면, 이는 일명 ‘벨지언 도로’라고 하며, 과거 유럽의 마차와 차가 함께 다니는 도로다. 이 도로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고 올록볼록한 요철이 많아, 자동차에 무리가 많이 간다. 아직도 유럽 곳곳에는 ‘벨지언 도로’가 다수 있어, 유럽에 수출하는 자동차는 ‘벨지언 도로’의 주행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어 4.5㎞ 길이의 고속주행로에 들어섰다. 5차로의 고속주행로는 최대 250㎞까지 주행시험을 할 수 있다. 최 과장은 “점심 시간이라 우리만 주행로에 있어 속도 내기가 좋다”며 고속주행로에서 액설러레이터를 밟았다. 직선코스 끝 무렵에는 속도계의 눈금이 약 190㎞까지 올라갔다. 직선코스가 끝나는 곳에 커브코스가 있었다.
 
  시속 190㎞로 커브를 돌자, 차가 비스듬히 기울어지면서 필자의 몸이 아래쪽으로 쏠렸다. 마치 하늘 위를 살짝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고속주행로에서 커브코스가 기울어져 있는 건, 200㎞ 이상 주행할 때 차량이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반시설 부족
 
기아자동차 화성 공장 ‘오피러스’ 조립 라인 모습.

  남양연구소 취재를 끝내고 최재호 과장에게 “남양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를 물어봤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병원, 학교 등의 기반시설이 부족한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남양연구소에 일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서울이나 수원 등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병원이나 학교 등의 기반시설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구소 인력이 8000명이 넘는 걸 감안하면, 지자체들이 적극적으로 이런 기반시설을 유치하거나 만들어서, 우리 연구원들이 지역에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연구원들도 편하고,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경기도에는 현대·기아 남양연구소 외에 르노삼성자동차 기흥 중앙연구소가 입주해 있다.
 
  이 연구소는 남양연구소의 규모에 비할 수는 없지만, 약 15만㎡(5만평)의 부지에 모두 9개의 연구동이 있다. 이 연구소는 모두 1300명의 인력이 자동차 디자인에서부터 완성차량의 충돌실험까지 모든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연구소는 최근 신형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어, 기자 등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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