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요리라 하더라도 가벼운 보졸레 누보 같은 레드 와인이 어울릴 수 있으며, 옅은 색깔의 육류에 화이트 와인이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다. 圖式에 얽매이지 않는 취향이 중요하다
와인을 마실 때는 대부분의 경우 다른 음식과 함께 한다. 와인을 정말 좋아하는 애호가들은 마실 와인부터 먼저 결정한 뒤 그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찾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메인 요리를 정해놓고 그 음식에 맞는 와인을 고르게 된다. 와인과 음식을 함께 할 경우 어떤 음식은 와인을 맛있게 만들고, 또다른 음식은 와인의 맛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이는 와인이 갖고 있는 酸(산)이나 타닌, 당도, 향기 같은 여러 요소가 음식의 종류와 때론 상승작용을 하기도 하고, 때론 부딪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음식에 어떤 와인이 어울릴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은 생선엔 화이트 와인, 육류는 레드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는 오랫동안 쌓여온 식생활 습관에 의해 경험적으로 밝혀진 상식이기도 하며, 근래 들어서는 음식 성분의 다양한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화이트 와인이 음식의 맛에 영향을 끼치는 주요 요소는 신맛을 내는 酸이다. 생선 요리의 경우 화이트 와인이 갖고 있는 酸의 상큼한 맛이 생선의 향을 좋게 한다. 생선회를 먹을 때 음식점에서 레몬 즙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레드 와인의 경우는 화이트와 달리 떫은 맛을 내는 타닌 성분이 음식 맛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타닌 성분이 육류 지방질의 중화를 도와 맛을 돋우는 작용을 한다.
와인의 香(향)이 음식의 맛을 돋우기도 한다. 香의 强度(강도)가 진한 와인은 와인의 다른 특성을 압도해버리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와인은 향이 강한 음식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프랑스 남부 론 지방 와인의 포도 향은 과일과 맞고, 알자스 지방의 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의 매운 향은 매운 음식에 제격이다.
와인의 糖度(당도)도 음식을 고를 때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드라이한 와인은 단 음식과 함께 마시면 시큼한 맛이 부각돼 와인의 맛을 저해한다. 때문에 단 음식에는 糖度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단맛이 강한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좋다.
음식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특정 음식과 와인과의 관계를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샐러드를 먹을 땐 되도록 와인을 피하되, 샐러드가 에피타이저라면 가벼운 화이트나 샴페인이 어울린다. 이어서 나오는 메인 요리가 붉은 색의 쇠고기 스테이크나 양고기라면 드라이한 레드 와인이 잘 어울린다. 카베르네 소비뇽, 피노 누아 품종의 와인이 권할 만하다
생선 요리는 거의 대부분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 생선 요리라 하더라도 레드 와인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포도 맛이 강하고 타닌이 적은 보졸레나 캘리포니아産 피노 누아라면 등푸른 생선류와 연어, 참치 요리의 맛을 충분히 돋워준다.
歐美(구미)의 특정 음식 중에는 마치 빵과 버터의 관계처럼 특정한 와인과 궁합을 이루는 것도 많다. 굴 요리와 샤블리 와인, 물에 데친 연어와 샤르도네, 파스타와 진판델, 초콜릿과 캘리포니아産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러나 개인마다 취향과 입맛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圖式(도식)에 의해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게 와인 음식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생선과 육류에 관계없이 요리가 담백하다면 가볍고 상큼한 화이트, 양념이 강하고 짙은 요리라면 무거운 느낌의 레드 와인이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만 기억해두면 자신의 취향대로 와인을 골라도 무리가 없다. 예컨대 생선 요리라 하더라도 가벼운 맛을 내는 보졸레 누보같은 레드 와인이 어울릴 수 있으며, 옅은 색깔의 육류에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 음식에는 어떤 와인이 어울릴까. 각 나라의 음식은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맵고 짠 음식은 소주같은 毒酒(독주)나 얼음과 같이 차가운 맥주와 잘 어울릴 뿐, 우리 음식엔 어울리는 와인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의 저명한 미식가 로빈 가르(Robin Garr)는 『동양의 매운 음식들은 와인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쪽이다. 그러나 진한 양념을 사용해 맵거나 국물이 많은 음식이 아니라면 매운 음식에도 얼마든지 어울릴 수 있다.
대표적인 한국 음식인 불고기와 갈비찜의 경우 양념을 많이 사용하고 특히 마늘이 들어가기 때문에 타닌이 많고 풍미있는 생테밀리옹이나 포메롤 같은 레드 와인이 좋다. 반면 양념을 상대적으로 덜 사용하고 부드러운 육질의 안심구이는 부드럽고 섬세한 레드가 좋다. 보르도産 샤토급의 고급 와인이 잘 어울린다. 마늘, 고추, 파같은 양념과 함께 하는 삼겹살은 코트 드 프로방스나 샤토 네프 뒤 파프와 같이 타닌이 적당한 와인이 어울린다.
생선 구이는 신맛과 떫은 맛이 적당히 있는 샤블리나 몽라쉐 같은 화이트가 좋으며, 생선회는 드라이하거나 다소 단맛이 나는 화이트가 좋다.
글쓴이 : 崔惠貞 Feel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