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孫珍鎬 서울 와인 스쿨 교육팀장
와인의 빈티지가 중요한 이유는 각 포도주별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르고, 포도의 발육과 숙성을 좌우하는 그 해의 기후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와인점에서 와인을 고르다 불어, 영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쓰여진 라벨을 보며 난감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까다로운 술로 알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와인 병에 붙은 이 라벨의 난해함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의 외국어 실력을 탓할 필요는 없다. 외국어에 아무리 능통한 사람이라도 와인에 관한 초보자라면 그 앞에서 땀흘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와인의 라벨은 와인의 이력서다. 이 와인이 언제(생산 연도), 어디서 태어났고(생산지), 부모님이 누구고(생산자), 뼈대 있는 가문의 자손인지 아닌지(등급), 힘은 센지(알콜 도수), 키는 몇인지(용량), 혈액형은 무엇인지(포도 품종) 등 모든 정보가 라벨에 나타나 있다. 이 때문에 서구의 와인 생산국가들은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주기 위하여 관련 규정을 만들고 이를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라벨을 읽기 위해서는 빈티지와 와인 생산국의 등급 규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빈티지(생산 연도)불어로는 밀레짐(Millesime)이라고 하고 영어로는 빈티지(Vintage)라고 한다. 이 생산 연도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각 포도주별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와인은 포도 품종과 제조 방법에 따라 그 보존기간이 다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같은 품종으로 만든 포도주는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으나, 가메(Gamay)로 만든 포도주는 그렇지 못하다. 또한 양조법상으로 볼 때도, 오랜 시간 껍질과 함께 담가서 충분한 바디(Body)를 형성한 와인이나 오크통 속에서 충분히 배양 과정을 거친 와인과 그렇지 못한 와인과는 그 보관기간이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무조건 오래되었다고 좋은 것이 아니니 최적의 숙성 시기에 마셔야 한다. 갓 숙성돼 신선하고 상큼한 맛으로 마시는 와인이 있고, 장기간 세월의 관록이 밴 묵직하고 그윽한 맛을 즐겨야 하는 와인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생산 연도가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포도의 발육과 숙성을 좌우하는 그 해의 기후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해, 아주 좋은 해, 예외적인 해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각 빈티지의 특성을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포도의 발육과 성숙기에 충분한 일조량과 강우량 즉, 적절한 시기의 적당한 강우량과 충분한 일조량은 좋은 빈티지의 필요조건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좋은 해에도 결점이 나타날 수 있으며, 흔히 좋지 않은 해의 와인이라도 훌륭한 맛을 간직하고 있는 포도주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나쁜 빈티지 와인」이라는 것은 없고, 단지 「개성과 특성이 다른 빈티지 와인」이 있을 뿐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등급(Classification)AOC급 와인 중에서 다시 품질이 월등히 뛰어난 최상급의 포도주들은 몇 개의 등급 순위 안에서 분류해 일반 품질의 와인과 구별하고 있다. 그중 중요한 몇 개를 살펴보면, 단연 「1855년 메독 등급」을 꼽지 않을 수 없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프랑스 포도주를 선전하며 소비자들에게 한 선택의 기준을 주기 위해 제정된 것인데,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변동만 있었을 뿐 변하지 않고 그 위세를 과시하며 군림하고 있다. 모두 61개의 포도주가 5개 등급으로 평가되어 있다.
반면, 「생테밀리옹 등급」은 메독 등급보다는 훨씬 유연해서 매 10년마다 재평가를 받기 때문에 훨씬 믿을 만하며, 각 포도원의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품질을 향상한다는 본래의 의도와도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재평가는 1996년에 이루어졌으며, 모두 68개의 포도주가 2개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들 중 샤토 슈발 블랑과 샤토 오존이 가장 높은 「특1급 A」로 판정받았다.
먼저 설명한 두 개의 보르도 지방의 순위등급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 부르고뉴 지방의 순위등급이다. 부르고뉴 지방은 오래된 포도 재배 전통만큼이나 까다롭고 미세한 분류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햇볕을 잘 받는 위치와 고도에 자리잡은 포도밭이 일급과 특급 포도밭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밭은 이랑별로 그 주인이 다른 경우가 많이 있으므로, 부르고뉴 와인을 고를 때는 주인이 누구인지를 반드시 확인하고 구입해야 한다. 1m 간격을 둔 한 이랑 사이로 전혀 다른 두 개의 포도주가 나올 수 있는 곳이 바로 부르고뉴 지방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정보가 라벨에 나와 있으나, 때로는 상업상의 이유로 불필요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소비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 화려한 라벨 디자인이나 현란한 미사여구, 예쁘고 특이한 병 모양의 유혹을 물리치고 선택한 와인에 기쁨과 만족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