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孫珍鎬 서울 와인 스쿨 교육팀장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의 와인 산지를 舊세계라고 부른다면, 투자와 기술에 승부수를 두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칠레, 남아공 등을 총칭해 新세계라고 부른다. 대개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세계 와인 시장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들 신흥 와인 생산국들은 수출 위주의 대량생산, 현대적 설비, 공격적 마케팅을 내세우며 빠르게 舊세계를 추격하고 있다. 프랑스로 대표되는 舊세계 와인과 구별되는 新세계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품종 와인(Varietal Wine)」이라는 점이다. 한 종류의 포도 품종으로 한 포도주를 만들며, 그 품종 이름을 그대로 라벨에 명시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병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시원스럽게 알려준다. 반대로 프랑스 와인의 경우 샤토뇌프 뒤 파프(Chateauneuf-du-Pape)가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라벨만 보아서는 소비자들이 알 길이 없다. 이 와인 한 병에는 무려 열세 가지의 포도 품종이 혼합되어 있을 수 있다.
◈ 미국
미국의 포도재배 역사에 관해서는, 서기 1000년경의 전설적인 바이킹 탐험가 라이프 에릭슨(Leif Ericsson)의 기록이 최초로 보여진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500년 전에 이 에릭슨이라는 사람은 새로운 대륙에 널려 있는 포도 넝쿨들을 보고는 『포도가 곳곳에 널려 있다』라며 놀랐다고 한다.
200여년 전에 멕시코를 통해 들어온 프란체스코 선교사들은 미국에 본격적인 유럽식 포도재배의 전통을 심어 주었으며, 19세기 중반 고급 유럽 품종의 도입은 미국 포도주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그후 1919년부터 1933년 사이의 금주령 등 많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오늘의 튼튼한 토대를 갖게 되었다.
와인 산업으로서의 미국 포도주 역사는, 20세기 중반 무렵부터 시작했다고 본다. 특히 최근 30년 사이에 미국의 와인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며, 품질이 뛰어난 캘리포니아 와인은 이미 舊세계(유럽대륙)의 그랑크뤼(Grand cru)들과 경쟁을 할 정도로 성장했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캘리포니아 와인의 등장은 세계 와인산업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으며, 이후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소위 신세계 와인 산업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 호주
포도 품종 고유의 향기가 살아 있는 신선하면서도 부드러운 포도주, 향과 맛의 감각이 돋보이며, 甁入(병입)한 그 상태에서 바로 마셔도 지장 없는 포도주, 현대인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포도주가 바로 호주 와인의 이미지이다. 700여명의 생산자들이 연간 600만병을 생산하며 이 중의 4분의 1은 수출한다. 호주 와인의 역사는 1788년 총독으로 부임한 필립이 자기 정원에 포도나무를 심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덥고 일조량이 풍부한 호주에서는 북반구의 나라들과는 달리 선선한 골짜기나 고도가 높은 곳을 선택해 포도를 재배한다. 호주 와인의 특징 역시 품종 와인이며,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을 매년 큰 변동없이 생산하고 있다. 헌터 밸리(Hunter Valley)가 있는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 지방과 빅토리아 지방의 와인이 유명하며, 펜폴드(Penfolds)社의 그란지 에르미타쥬(Grange Hermitage)처럼 10년 이상의 숙성을 요하는 풀 바디 와인도 생산한다.
◈ 칠레
남반구 위도 32~36도 사이에 위치한 칠레는 포도가 완숙하기에 충분한 양의 일조량과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고, 선선한 태평양의 바닷바람은 병충해 예방효과와 더불어 선선한 기후를 좋아하는 품종에겐 더없는 조건이다. 이런 천혜의 여건을 갖춘 칠레는 1850년대 프랑스의 고급 포도 품종을 받아들이면서도 열악한 정부 지원과 국내 소비의 악조건 속에서 힘들게 와인을 생산해 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와인 등 고급와인의 가격이 오르자,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미국, 영국, 프랑스 와인 자본에 의해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으며, 미국, 호주에 이어 최근 그 뛰어난 품질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로 만든 오크통 숙성 와인은 색깔, 향, 맛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콘차이 토로(Conchay Toro), 산타 리타(Santa Rita) 등의 대표적 생산자를 꼽을 수 있다.
이들 3개국 외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중국, 일본, 레바논, 터키, 이스라엘, 북아프리카 등 세계 50여개국에서 지형과 토양, 기후, 품종에 따라 다양한 와인을 제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