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鄭鎭煥 중앙大 와인과정 주임 교수
TV 드라마에서 가족들이 모여 앉아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2년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隔世之感(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와인이 무슨 대단한 사치품인 것처럼 인식되어 IMF 때 가장 먼저 소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와인이 다시 관심을 끄는 것은 와인이 가진 역사성과 그 내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와인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기록이나 유적으로만 살펴봐도 와인의 역사는 6000~8000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기원전 6000년쯤 과일과 포도를 압착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다마스커스에서 발견됐고, 기원전 4000년쯤에 와인을 담는 항아리와 관련한 유물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기원전 3500년쯤에는 포도를 따서 재배하는 벽화와 제조법이 새겨진 이집트 유물이 발견돼 인류가 오래 전부터 와인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서에도 와인과 관련한 기록이 무려 165차례에 걸쳐 나올 만큼 그 역사가 길다.
와인은 로마의 제국 확장, 특히 시저의 정복전쟁 때 로마 병사들에게 전쟁에서의 사기 진작과 낯선 땅에서의 물갈이로 인한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록으로 미뤄 이때부터 음식 문화의 한 부분으로 등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사원과 귀족 중심으로 포도원을 소유하게 되고, 이때부터 오늘날의 와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중 1152년에 영국의 헨리 2세가 프랑스의 아키텐느(Aquitaine)의 엘레노아 공주와 결혼하면서 지참금으로 받은 보르도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국력신장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이 되었다. 그 뒤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경영에 가톨릭이 선구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포도 재배 지역은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으며,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세계 50여 개국에서 와인을 생산하게 됐다.
1868년경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필록세라(Phylloxera·포도나무 뿌리 진딧물)의 영향으로 全세계 와인 생산량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품종 개량과 고급화를 이루면서 오늘날의 와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모든 포도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재 지구상에는 8500종 정도의 포도 종류가 있으나 이중에서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양조용 포도는 200종 정도에 불과하다. 양조용 포도는 식용 포도에 비해 알갱이가 작고 촘촘하며, 껍질이 더 두껍다. 무엇보다 당도가 높으며, 당분을 알콜과 탄산가스로 분해시킬 수 있는 천연 효모(Wild Yeast)의 양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까만 껍질의 캠벨이라는 포도나 거봉이라는 포도는 모두 식용 포도로서 양조에는 적합지 않다.
이러한 장구한 역사를 가진 와인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서구 문명의 중요한 한 부분이면서, 음식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생활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리고 와인은 발효식품이고 완전식품이며 살아 있는 음식이다.
와인은 포도 껍질 속의 천연 효모가 포도당을 알콜과 탄산가스로 분해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분해가 제대로 이뤄지면 잔류 당분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달착지근한 적포도주는 발효 도중에 설탕과 무수아황산염을 필요량 이상으로 넣어 발효를 중단시킨 것이기 때문에 칼로리가 높고 몸 안에서 분해될 때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게 된다. 백포도주의 경우 늦게 수확하거나 포도의 농축을 통해 제조되기 때문에 단 와인이 있을 수 있다.
와인은 천연 당이 분해된 천연 알콜과 과즙 그리고 무기질인 철분, 칼슘, 칼륨 등이 잘 조화된 강알칼리성 식품으로서 소화 흡수가 잘 되고, 이뇨 작용의 효과가 있으며 병당 104칼로리의 열량밖에 안 들어 있는 완전 식품이다. 또한 코르크마개를 통해 호흡을 하여 우리 몸에 들어갈 때까지 살아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