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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1. 2006년 1월호

[머릿말] 광복 60년 우리들의 성취

지난 10년은「2보 전진」을 위한「1보 후퇴」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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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月刊朝鮮은 1995년 1월호 별책부록 「피·땀·눈물로 쓴 해방 50년 우리 시대의 내용증명」이란 제목으로 광복 50년을 조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흘렀습니다.
 
  2005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우리는 내부의 갈등에 묶여 「광복 60년」을 정리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月刊朝鮮 2006년 1월호 별책부록 「2006년 한국의 실력」은 지난 10년(1995~2005년)을 점검하고, 광복 50년의 토대 위에 10년간 쌓아 올린 성취를 정리했습니다.
 
  혹자는 지난 10년 동안 『전쟁을 빼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국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허리띠를 조였습니다. 신용불량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금융기관들이 인가취소·합병·해산으로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1997년 말 2103개에 이르던 금융기관 중 859개가 정리됐습니다. 금융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공적자금이 167조8000억원이나 투입됐습니다. 그 돈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신문 사회면엔 자살과 실업자 이야기가 넘쳐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로 하루 평균 32명(2004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995년 당시 실업률은 2.1%(43만 명)로 사실상의 완전고용 상태였습니다. 1998년 실업자가 149만 명으로 치솟아 실업률이 7.0%에 달했습니다. 그나마 직장을 구한 이들도 임시직이었습니다. 2001년 26.8%였던 非정규직 비중이 2005년에는 548만 명으로 전체 임금 근로자의 36.6%를 차지했습니다.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들의 세금 부담은 늘어만 갔습니다. 조세부담률과 사회보장기여금부담률을 더한 국민부담률은 1995년 19.4% 수준에서 2004년 24.6%로 늘었습니다.
 
  그러나 슬픔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해 4강 진출의 神話를 일궈 냈습니다. 외환위기로 내리막길을 걷던 수출도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살기 위해 수출에 매달렸습니다. 1995년에 1000억 달러 수출 시대를 돌파한 뒤 9년 만인 2004년에 수출이 2000억 달러를 넘었고, 2005년에는 285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
 
  2005년에 이룩한 수출 2850억 달러, 수입 2600억 달러의 무역규모(5450억 달러)는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38개국의 2004년 무역규모(5136억 달러)와 비슷한 규모입니다. 아프리카 53개국의 2004년 무역규모 4435억 달러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또한 반도체·휴대전화·LCD를 우리 기술로 만들어 세계시장을 제패했습니다. 이른바 「3종의 神器」는 이제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韓流 열풍이 거셌습니다. 배용준·장동건·이병헌·권상우·박용하·최지우(배우), 비·보아·신화·강타·베이비복스(가수) 등이 아시아의 스타로 등극했습니다. 그들의 인기와 함께 한국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연세大 황상민 교수는 지난 10년의 세월을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붕괴, 해체시키면서 자신의 본질과 토대를 바꾸는 형질전환의 시기」로 규정했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시기였다는 얘기입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 「수직적 정치구조에서 수평적 정치구조」, 「공급자 중심 시장에서 소비자 중심 시장」으로 체질을 개선했습니다. 살기 위해 택했던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제 우리의 日常이 됐습니다.
 
  IMF 외환위기라는 붕괴와 해체의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이룩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외환위기와 대량실업, 株價폭락의 와중에 한국영화 「쉬리」의 600만 관객 동원이나 세계 최고의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이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이자 믿음이었습니다.
 
  외환위기는 권위주의적 정치를 몰락시키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사회로의 전환을 촉진시켰습니다. IT·BT 분야에서 이룬 업적은 한국사회를 質的으로 전환시켰습니다. 한국은 이제 汎用 제품을 생산하는 低價 수출국이 아닙니다.
 
  영욕이 점철된 지난 10년을 뒤돌아보며,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을 갖게 됩니다. 1950년대 낙동강 전선을 死守했던 병사들과 1970년대 섬유·가발공단 女工의 눈물을 넘어 이제는 「글로벌 트렌드」 속의 韓流를 보게 된 것입니다.
 
  광복 70년을 맞게 되는 2015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밀려 퇴보할지, 아니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안착할지 흥미롭습니다. 변화의 주체는 독자 여러분입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시기를 10년간 겪었으니 이제 전진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지난 10년이 그래왔듯 우리는 또다시 변화할 것입니다.●
 
  2005년 12월 月刊朝鮮 김태완·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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