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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에 대한 한국의 카드는?

‘트럼프 2.0’ 쓰나미 극복할 가장 확실한 카드는 ‘反中 전선’ 적극 동참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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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新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 제외될 수도

⊙ 트럼프의 푸틴 짝사랑은 ‘對中 전선’ 구축 위한 것
⊙ 젤렌스키 맹비난한 트럼프의 모습은 ‘미치광이 전략’의 본보기
⊙ 스탠퍼드대 ‘불확실 지수’ 미국 500, 중국 750, 한국 900
⊙ ‘생존 제일주의’ 일본, 미국의 ‘GDP 대비 국방비 3%’ 요구 수용할 것
⊙ 한미일 삼각안보 체제가 한국의 불투명한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돼”(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자)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2월 2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2.0’ 시대의 ‘미치광이 외교’를 보여 줬다. 사진=AFP/연합뉴스
  “1970년대 초 ‘닉슨 쇼크’가 진도(震度) 5 지진이었다면, 2025년 트럼프 2.0은 진도 7이라고 보면 된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와 대화 중 나온 얘기다.
 
  1971년 닉슨 미국 대통령은 달러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꾼다. 금(金)에 달러 가치를 연동(連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시장에 맡기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다. 이듬해 2월, 닉슨은 그 유명한 베이징(北京) 비밀 방문에 나선다. 그 바람에 경제·안보 쓰나미가 전 세계를 강타한다.
 
  한국인 대부분은 ‘닉슨 쇼크’라고 하면 베이징을 방문한 닉슨이 마오쩌둥(毛澤東)과 악수를 나누는 장면부터 떠올릴 듯하다. 이 악수는 미국의 자유 베트남 포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닉슨 쇼크=달러 금 연동 탈피’로 이해한다. ‘닉슨 쇼크=안보 구도 변화’로 보는 나라는 한국, 중국과 인도차이나 국가들 정도다. 일본은 ‘닉슨 쇼크’의 의미를 변동환율제로의 전환 8할, 미중협상 2할 정도로 본다.
 
  1970년대 한국은 국제경제 영향권 밖에 있는 개발도상국이었다. 달러 변동환율제에 따른 경제적 타격이 선진국만큼 크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닉슨 쇼크’는 무엇보다 닉슨의 중공 방문과 그로 인한 안보 구도의 변화를 의미했다. 특히 닉슨은 마오쩌둥과 손을 잡은 뒤 자유 베트남을 버린다. 북베트남과 평화조약을 맺은 뒤 곧바로 미군 철수를 단행하고 1973년 1월 자유 베트남에서 손을 뗀 것은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미국이 20여 년간 개입해 싸웠던 나라도 버리는 판에 한국에 어떤 쓰나미가 밀려들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시절 유년기를 보낸 필자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온 국민이 자유 베트남의 운명에 관심을 기울였고, ‘자주국방’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구호가 전국에서 울려 퍼졌다. 흔히 ‘독재 체제’라고 비난받는 10월유신은 ‘닉슨 쇼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닉슨 쇼크’보다 100배 강한 쓰나미
 
1972년 2월 21일 마오쩌둥과 만나 악수하는 닉슨 미국 대통령. 닉슨의 중공 방문은 동아시아에 큰 충격을 줬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필자와 얘기를 나눈 일본인 친구는 1970년대 외교안보 차원의 ‘닉슨 쇼크’를 진도 5 정도의 지진으로 평가했다. 간이천막 정도를 무너뜨릴 세기다. ‘트럼프2.0’ 시대의 진도 7은 어느 정도일까?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진도가 1씩 올라갈 때마다 파워는 10배가 된다. 즉 ‘트럼프 2.0’ 시대의 충격은 ‘닉슨 쇼크’에 비해 100배 강하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지나친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닥쳐오고 있는 충격은 54년 전 ‘국가 존망(存亡)’을 걱정해야 했던 ‘닉슨 쇼크’의 기억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엄청한 충격이라는 사실이다. 안보만이 아닌, 경제·군사·외교 전반에 걸치는 ‘토털 체인지’를 강요하는 충격이다.
 
  ‘닉슨 쇼크’는 경제 면에서는 유럽 등 선진국, 외교·군사·안보 면에서는 인도차이나·중국·한국 등 동아시아에 변화를 주는 데 그쳤다. 글로벌 시대 ‘트럼프 2.0’의 충격은 다르다. 모든 나라가 긴밀히 연결된 상태에서 경제는 물론 외교·군사·안보 모두 워싱턴발(發) 쓰나미를 피하기 어렵다. 쓰나미의 높이와 폭은 물론 밀려드는 속도도 엄청나다.
 
  2월 28일 전 세계가 생생하게 목격한 트럼프와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의 회담은 ‘트럼프 2.0’ 시대 워싱턴발 쓰나미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우크라이나는 국토가 한국의 6배나 되는 큰 나라다.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된 우크라이나 국기는 푸른 하늘과 황금빛 곡창 지대를 상징한다. 인구는 4000만 명으로 한국보다 조금 적지만 국토 면적이나 부존자원(賦存資源)으로 보면 만만치 않은 나라다. 그러나 트럼프 앞에 선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모습은 너무도 처참하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얘기지만, 강대국 눈에는 강대국과 나머지 나라로 이분(二分)될 뿐이다. 우크라이나도 강대국 미국 입장에서 보면 ‘고양이 앞의 쥐’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에게 정면으로 대들었다. 이유도 있고 정당성도 갖고 있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근본은 힘이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자마자 트럼프에게 백기(白旗) 투항했다. 곧바로 반성문을 보내고 희토류(稀土類)도 바치면서 트럼프 눈에 들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트럼프의 멘토 닉슨
 
  세계는 트럼프의 협박 외교에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 맞서 정면으로 대들 나라는 단 한 나라도 없다. 애초 농담처럼 들리던 파나마 운하 운영권은 이미 미국으로 넘어갔다. 황당하게 들리던 그린란드 영유권(領有權) 문제도 곧 결정 날 것이다.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이란 말은 ‘트럼프 2.0’ 시대를 보여 주는 말 중 하나다. 베트남 전쟁 당시 닉슨이 구사한 외교안보 전략으로, ‘언행(言行) 불규칙’과 ‘불확실성’이 주요 요소다. 핵폭탄까지 쓸 것이란 소문과 함께, 닉슨이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 세계가 불안해 했다. 결국 약자(弱者)는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었고, 일단 나서면 닉슨의 생각에 맞춰야만 했다.
 
  트럼프는 40대이던 1987년부터 닉슨과 만났었다. 젊은 뉴욕 부동산업자와 전직 대통령의 개인적 관계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닉슨은 이미 30여 년 전에 트럼프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했다고 한다. 닉슨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롤모델로 삼는 인물이 트럼프다.
 

  ‘미치광이 전략’도 마찬가지다. 외교·안보·경제 문제를 ‘딜(deal)’로 여기는 트럼프는 닉슨 식 ‘미치광이 전략’의 계승자다. 트럼프와 김정은과의 협상 과정을 보면 트럼프에 비해 오히려 김정은이 더 예측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 전쟁의 최종 승자는 호찌민의 북베트남이었다. 결과로만 보면 베트남에서 닉슨의 ‘미치광이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도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란 보장은 없다. 문제는 ‘미치광이 전략’이 시행되는 동안 벌어질 피해다. 전쟁 중 베트남이 그러했듯이, ‘미치광이 전략’의 대상이 될 상대나 나라는 엄청난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젤렌스키를 맹렬히 비난한 트럼프의 모습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미치광이 전략’의 본보기다.
 
 
  한국, ‘불확실 지수’ 세계 최고
 
  농담 같은 진담이지만 ‘트럼프 2.0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확실한 단어는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는 말이 있다. 불확실성은 미치광이 전략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트럼프 2.0=미치광이 전략=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얘기다.
 
  미국 스탠퍼드대 닉 블룸(Nick Bloom) 교수 팀이 거의 매달 발표하는 경제 지표로 ‘불확실 지수(Uncer- tainty Index)’라는 게 있다. 미국과 세계 주요 미디어에 실린 경제 관련 정보를 기초로 각국 경제의 불확실성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상대적 비교 지수로, 수치가 올라갈수록 미래가 어둡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당시 장기 베스트셀러였던 존 K. 갤브레이스 교수의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를 기억할 것이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20세기 초 유럽에 만연했던 불확실성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로 시작한다. 닉 블룸 교수의 ‘불확실 지수’는 갤브레이스의 생각에 근거해서 ‘확실한 미래’를 돕기 위한 경제 길라잡이라 볼 수 있다.
 
  지난 1월, 이 ‘불확실 지수’ 관련 뉴스가 글로벌 브레이킹 뉴스로 전 세계에 타전됐다. 2024년 12월의 ‘글로벌 불확실 지수’가 460으로 1990년 이후 가장 높다는 뉴스였다. 뉴스의 핵심은 이 지수가 2020년 팬데믹 당시 지수 450보다 더 높다는 데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기도 전에 터져 나온 뉴스로, 신년 초 증권가의 빅뉴스로 처리됐다.
 
 
  미국인만을 위한 ‘아메리칸 드림’
 
2월 7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이시바 일본 총리에게 ‘GDP 대비 국방비 3%’를 요구했다. 사진=AP/뉴시스
  스탠퍼드대는 각국의 불확실 지수도 함께 발표한다. 불확실성의 주범인 트럼프의 미국부터 보자. 2025년 1월 불확실 지수는 320이다. 1990년 조사 이래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최고 기록은 팬데믹 때인 2021년의 500이었다. ‘트럼프 2.0’ 시대를 맞은 미국이 불확실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팬데믹 당시와 비교하면 높지 않다는 얘기다.
 
  같은 시기 중국을 보자. 2025년 초 불확실 지수가 750이다. 팬데믹 당시의 900보다 낮지만, 글로벌 평균이나 미국보다는 훨씬 높다.
 
  한국은 어떨까? 2025년 1월 한국 경제의 불확실 지수는 900으로 전 세계 최고다.
 
  트럼프는 3월 4일 의회 연설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귀환’을 선언했다. 트럼프, 아니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 시민권을 갖거나 미국에 세금을 내면서 생활하는 사람을 위한 ‘미국인만의 드림’이다.
 
  비슷한 무렵 한국 신문에 실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글은 이와 사뭇 다르다. 글의 흐름을 보면 ‘미국이란 공간에서 전 세계가 모두 나누는 드림’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나름 근거와 정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25년의 시대정신은 ‘아메리칸 드림=미국인만의 드림’일 뿐이다. 시대정신은 정당성이나 정의(正義)와는 무관하다. 미국으로 간 외국인들도 누구나 미국인들과 함께 누리던 아메리칸 드림은 트럼프2.0을 기점으로 사라지고 있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이미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독일·스웨덴·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스위스 등에서 소위 ‘극우(極右) 정당’이 대두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주자학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모든 것을 선악(善惡) 이분법으로 이해하는 한국은 아마 그런 세계적 추세에서 가장 뒤처진 나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추세에 적극적으로 발맞추는 나라도 있다. 바로 ‘생존 제일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일본이다.
 
  3월 6일 흥미로운 도쿄발 기사를 발견했다. 지난 2월 7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의 워싱턴 방문 당시 거론됐던 ‘GDP 대비 국방비 3% 인상’ 문제다. 당시 이시바가 “2027년까지 GDP 대비 국방비를 2%로 인상하겠다”고 하자, 트럼프는 ‘국방비 3% 증액’을 요구했다.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시바는 “국방비 예산은 일본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고 했다.
 
  트럼프의 요청은 즉흥적으로 나온 일회성 주장이 아니라 미국이 면밀하게 구상하는 인도-태평양 군사전략의 일환이었다. 미국 국방부의 실질적인 최고 정책 브레인인 엘브리지 콜비(Elbridge A. Colby)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자는 3월 4일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GDP 대비 3% 이상 국방비’를 일본 측에 요구했다. ‘요청(request)’이 아니라 ‘요구(must)’다.
 
  콜비는 중국을 상대로 한 ‘거부 전략(Denial Strategy)’의 핵심 브레인이다. 아예 중국이 무력(武力) 해결에 나서지 못하도록 미국과 우방국이 압도적인 파워로 준비하자는 것이 거부 전략의 핵심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중(反中) 연합 포위작전인 셈이다. 콜비는 대중(對中) 연합국의 아시아 선봉이 일본이란 점에서 ‘GDP 대비 3% 이상’ 국방비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한다.
 
 
  ‘이시바 고분’
 
  콜비의 주장은 곧바로 일본에 전달됐다. 일본 의회 회기 중인 3월 5일, 야당이 콜비의 요구에 대한 총리의 생각을 물었다. 이시바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의 국방비 문제는 일본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 국방비가 몇 퍼센트가 될지는 여러 가지가 합쳐져서 결과적으로 나타날 뿐, 처음부터 몇 퍼센트 결정과 같은 조잡한 논의로 이끌 생각은 없다.”
 
  ‘이시바 고분(石破構文)’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이시바 특유의 화법을 말하는데, 극존칭 경어(敬語)를 많이 사용하는 겸손형 어투가 특징이다. 21세기 일상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에도(江戶) 시대를 무대로 한 사극(史劇)에서나 나올 법한 화법이다. 내용은 별로 없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예의 바르고 상대를 높인다는 착각에 빠진다. 콜비의 국방비 3% 요구에 대한 총리의 답변을 들으면, 일본인을 안심시키는 듯한 느낌, 더 나아가 자결(自決)·자존(自尊) 의식까지도 느껴진다. 이시바의 발언은 과연 미국의 요구에 감연히 맞서겠다는 것일까?
 
  일본 미디어의 분석은 다르다. 이시바가 미국 측 요구를 부정하는 단어나 어감을 문장 그 어디에도 넣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본 미디어는 이시바가 ‘일본이 결정한다는 원칙 하에, 무작정 3% 목표가 아닌, 차근차근한 과정 속에서 수치를 결정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차근차근’의 개념이다. 일본 미디어는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미일 협상이 그 기준이라고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위협에 맞선 미일 협상, 즉 ‘트럼프와의 딜’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칼자루는 일본이 쥐겠지만, 차근차근한 딜을 통해 구체화하면서 3%, 더 나아가 4% 국방비 증액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미국을 움직이는 ‘트럼프 2.0’ 나침반
 
  필자가 보기에 ‘생존 제일주의’야말로 일본의 국시(國是)다. 1945년 패전(敗戰) 후 여인들이 자기 남편을 죽인 미군에게 몸을 맡긴 나라가 일본이다. 평소에는 ‘사무라이 할복(割腹)’을 외치지만, 거대한 위기가 밀려오면 다르다. 히로히토(裕仁) 천황이 직접 맥아더 장군을 찾아가 ‘미일(美日) 평화’를 호소했다.
 
  물론 위기가 닥치면 생존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일본은 위기가 닥치기 전에, 한국은 위기가 닥친 후에 생존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최근 한국에서 기묘한 논의가 일고 있다. 궁극적으로 트럼프가 중국의 대만(臺灣) 침략도 용인하면서 전 세계를 중국과 함께 나누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식의 정세관이다. ‘좋은 게 좋다’면서, 무역이나 돈 문제만 해결된다면 ‘중국 OK’라는 생각이다.
 
  그 같은 판단은 관세 문제 외에는 중국을 나쁘게 대하지 않고 거꾸로 시진핑(習近平)과의 우정을 자랑하는 트럼프 외교에서 비롯된 것 같다. 특히 최근 ‘대만 수호’에 관한 미국의 의지와 관련해 시종일관 ‘노 코멘트’로 일관한 트럼프의 반응도 그런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세 번이나 ‘대만 수호’를 천명했던 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돼버린 것 같다.
 
  그 같은 배경에서, 트럼프가 푸틴 및 시진핑과 더불어 미국·러시아·중국으로 구성된 세계를 꿈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나무는 보면서 숲을 못 보는 근시안적 오판(誤判)일 뿐이다.
 
  현재 미국을 움직이는 ‘트럼프 2.0’ 나침반은 크게 두 개의 방향을 갖고 있다. 국내 정책으로 ‘아메리카 퍼스트’와, 대외 정책으로 ‘반중(反中)’이다. 이 둘은 마가(MAGA), 즉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연결된 상태로 집행되고 있다.
 
  대외 정책으로서의 반중은 대만 침략이나 중국의 대미(對美) 무역 흑자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는 넓은 듯하지만 좁다. 미국이 당연하게 여기던 나라와 세상이 중국의 의해 야금야금 잠식되고 있다. 미국의 말을 안 듣더라도 중국이라는 대안(代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21세기의 풍경이다.
 
 
  ‘경제적 차원의 거부 전략’
 
  3월 6일 우크라이나와 중국은 식량 수출입조약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식량을 중국에 장기간 저가(低價)로 수출한다는 협약이다. 트럼프가 젤렌스키를 궁지로 몰면 몰수록 우크라이나-중국 협력 관계도 가속될 것이다. 극단적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연을 끊을 경우 젤렌스키는 중국에 국가의 운명을 걸 수도 있다. 트럼프가 노리는 우크라이나 희토류 대부분이 중국 손에 넘어갈 수도 있다.
 
  물론 필자는 국력(國力) 면에서 중국이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아니더라도 중국을 플랜 B로 삼을 수 있다는 발상이 전 세계에 만연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미국의 경쟁국으로 발돋움한 상태다.
 
  한국 정치인 가운데도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한국은 우크라이나와 다르다. 민주주의·자유시장권 국가인 한국이 중국을 선택할 경우, 한국은 트럼프 주도 하의 세계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메이드 인 차이나’ 경제권에서 살아남을 확률도 극히 희박하다. 그러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미국 아니면 중국’이란 생각 자체는 이미 전 세계로 번져 나가고 있다.
 
  ‘트럼프 2.0 대외 정책’은 그 같은 흐름 자체를 차단하는 데 집중한다. 군사적 차원의 거부 전략만이 아닌, 경제적 차원의 거부 전략이 반중 전선의 실체다.
 
  자유세계 시민이라면 트럼프의 푸틴에 대한 짝사랑을 기이하고 불쾌한 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반중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러브콜일 뿐이다. 일단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를 끊은 뒤, ‘반중 전선’에 적극 나서려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트럼프가 中 비난을 피하는 이유
 
  나토의 유럽과 이웃 캐나다조차 적대시하는 트럼프가 중국에 대한 비난은 극도로 피하고 있다. 왜일까? 사자가 이빨을 드러내는 때는 먹잇감에 대한 최후의 공격을 끝낸 직후다. ‘반중’은 트럼프 혼자만이 아닌, 주변 참모, 나아가 공화당·민주당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분모다. 트럼프, 아니 미국에게는 ‘셰셰(謝謝) 외교’가 통할 수 없다. 중국과 악수하고 중국과 공존공영(共存共榮)으로 나아갈 유전자 자체가 아예 없다.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단순히 ‘대만 방어’ 차원이 아니라, 미국을 중국이 감히 타넘을 수 없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것이 ‘트럼프 2.0’ 외교의 핵심이자 방향이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나토조차도 그 같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반중 어젠다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트럼프 2.0’ 시대에 미국은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꽁꽁 묶는 식으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특유의 ‘딜’을 통한 경제적 성과에는 매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고성능 반도체 수출은 안 되지만 저성능 반도체의 중국 수출은 가능하다’는 식의 딜을 하려 할 것이다. 거부 전략에 의거해서 우방국과 함께 중국 포위에 나서기는 하지만, 중국과의 비즈니스는 미국에 유리하게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카드’는 있는가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자. 사진=조선DB
  정의, 선악, 정당성을 잣대로 ‘트럼프 2.0’을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나 ‘트럼프 2.0’을 넘어선 국가 생존에 관한 문제는 그 같은 주자학적 잣대와 무관하다. 어떻게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에 관한 준비와 대안이 절실하다. 트럼프가 젤렌스키에게 던진 “당신은 카드를 갖고 있지 않다”라는 말은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살벌하고도 척박한 광경이지만, 트럼프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매일 죽어 나가고, 푸틴의 개인적 야심 때문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은 자유 진영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능력이나 ‘카드’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약소국의 운명이지만, 우크라이나에는 그 같은 카드가 없다. ‘불난 집 도둑놈’처럼 트럼프는 희토류에 눈독을 들이면서 젤렌스키와의 딜을 시도했지만, 안전 보장 약속은 없다. 젤렌스키가 바친 희토류조차 궁극적인 카드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유효한 카드가 없는 한 버려지고, 게임이나 딜에 참가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한반도의 운명을 생각해 본다.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의 카드는 무엇일까? ‘국뽕’과 자화자찬은 넘치지만 정작 트럼프가 고려할 만한 유효한 카드가 몇 개나 될까? 아니, 카드를 갖고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콜비 지명자는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한미일 삼각안보 체제가 한국의 불투명한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인 문제일 뿐 곧 해결될 것”이라 말할 듯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판단은 미국과 일본이 내릴 것이다. 한국이 백번 가능하다고 말해도, 미국과 일본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순간 한미일 안보 체제는 끊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북핵(北核) 문제는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건너뛰고 북한과 해결할 것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우크라이나가 사라진다고 해서 유럽 전체가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엄청난 국방비가 필요하고 징병제도 실시되겠지만, 우크라이나의 패망이 유럽 자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는 아니다.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극단적으로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을 방어망으로 잡고 한국 없이 갈 수도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는 트럼프의 ‘신(新) 애치슨 라인’에서 한국이 제외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방 중의 우방 캐나다와 멕시코까지 적대국 다루듯 하고 있는 게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이다.
 
 
  핵심은 미국의 ‘反中 전선’ 동참
 
  설사 지금의 혼란을 끝내고 나라의 중심을 바로잡는다 해도, 그 후에 한국이 내밀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반도체 미국 공장 건설, 알래스카 에너지 프로젝트 참여, 미국 조선(造船)산업 지원 같은 것들이 언급되고 있다. 없는 것보다야 백번 낫지만, 핵심을 벗어난 중구난방 카드일 뿐이다. 돈도 엄청나게 들지만 개발 후 경제성도 보장하지 못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3월 들어 트럼프가 매일 되풀이하는 ‘일본관(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핵심은 ‘불평등론’이다. 트럼프는 “미국이 동맹국인 일본을 지켜 주는데, 일본은 미국을 지켜 주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GDP 대비 국방비 3%’ 요구를 넘어서 보다 거시적(巨視的)인 ‘그랜드 픽처’에 근거한 발언이다. 바로 중국 문제다. 직접 지목은 안 하지만, ‘유사시 중국과 대결할 경우 일본도 미국과 함께 싸워야만 한다’는 의미다. ‘국방비 3%’는 중국 대결을 염두에 둔 하부 변수일뿐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다. ‘국방비 증액’ 문제를 한국 미디어는 트럼프가 일상적으로 토해 내는 불만 정도로 보도하지만, 일본 미디어는 이 문제를 ‘중국과의 전쟁’이라는 차원의 발언으로 본다.
 

  트럼프는 곧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는데, 한국은 미국이 어려울 때 왜 안 도와주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요구가 서울로 왕창 밀려올 것이다.
 
  흔히 하는 말이지만, 위기는 기회다. ‘반중 전선’ 직접 참여는 한국이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면서도 가장 확실한 카드다. 물론 ‘셰셰 외교’ 신자라면 펄쩍 뛰며 반대하겠지만, 이 카드야말로 싫든 좋든 한국에 밀려들 ‘트럼프 쓰나미’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금의 미국은 9년 전과 달라
 
  물론 2016년 7월 사드(THAAD) 배치 당시 한국 정부, 야당, 좌파의 행태를 생각하면 한국의 반중 전선 참여는 거의 불가능할 듯하다. 당시 퇴임 직전이던 오바마 대통령의 미국은 속으로는 부글부글하면서도 그걸 모른 척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2025년 ‘트럼프 2.0’ 시대의 미국은 다르다. 9년 전처럼 어설프게 굴다가는 젤렌스키의 우크라이나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트럼프의 권력도, ‘트럼프 2.0’의 글로벌 영향력도 약화될 것이다. 따라서 ‘당장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트럼프는 사라져도 ‘트럼프 아바타’가 향후 10여 년은 미국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한국만 우물 안에서 내전(內戰)으로 시간으로 허송하는 동안, 군사적 차원의 반중 전선은 글로벌 대세로 나아가고 있다. 미일을 중심으로 호주 인도 뉴질랜드 필리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심지어 베트남과 싱가포르까지 반중 전선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에 인접한 한국은 그 같은 글로벌 흐름을 방관하고 있다.
 
  ‘닉슨 쇼크’보다 100배 강한 쓰나미가 전방위적으로 밀려오고 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경제적 잇속을 따지고, 점잖게 국가간 정의(正義)나 입으로만 국익(國益)을 논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국가의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때다. ‘반중 전선 동참’ 카드는 ‘100일 넘게 국가 지도부가 비어 있고 불확실 지수 900에 달하는 나라’가 지금 당장 논의하고 준비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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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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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dekatsu0129    (2025-03-30) 찬성 : 0   반대 : 0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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