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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한시집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펴낸 김윤세 회장

“한시, 메마른 정서 적셔주고,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해줘”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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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많은 분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 도연명, 두보, 이백, 왕유, 한산, 서산대사 등 韓中의 漢詩 140수 번역, 풀이
⊙ 시의 절반가량은 깨달음을 담은 禪詩
사진=양수열
  ‘요즘 세상에 누가 한시(漢詩)를 읽는다고….’
 
  ‘죽염종가(竹鹽宗家)’ 인산가(仁山家)의 김윤세(金侖世·70) 회장이 중국과 한국의 좋은 한시들 140수를 엮은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를 펴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40년 전 한문이나 고전(古典) 시간에 배웠던 두보(杜甫), 이백(李白), 왕유(王維) 등의 생각이 났다. 특히 간난(艱難)한 삶을 살았던 두보의 시, 두시(杜詩)를 가르치면서 강개(慷慨)해하시던 국어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추억이 새해 벽두부터 김 회장을 만나기 위해 경남 함양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메마른 정서를 적셔주는 한시들
 
  ‘고전 한시집을 낸 이유가 뭐냐’고 첫 질문을 던졌더니, 김 회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금 장수면 소금이나 팔 것이지, 왜 한시집을 냈느냐, 이 말이지요?”
 
  ― 요즘 같은 첨단 디지털 시대에, 게다가 국민 대부분이 한자를 잘 모르는 시대에 한시집이라니, 궁금해서 그러는 것이지요.
 
  “요즘 사람들이 너무 생각 없이 살고 있어요.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경망스러운 망상(妄想), 허상(虛想)인 경우가 많고요. 이 나라의 교육도 인성(人性)이 올바르고 도덕·윤리에 충실한 사람들을 길러내려는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 잘해서 잘된 사람들도 사리사욕(私利私慾)이나 채우려 들어요. 정치인들도 당리당략(黨利黨略)에만 몰두하고 있잖아요? 여의도에서 싸움박질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초등학생도 저 정도는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그렇지요.
 
  “그게 다 심성(心性)이 메말라서 그래요. 정의감, 의협심, 충성, 이런 걸 얘기하면 ‘무슨 케케묵은 얘기냐?’고 하는데, 충성이라는 게 임금에게 절대 충성하라는 얘기가 아니잖아요? 목숨 바쳐서 나랏일에 충실히 임하라는 것이지. 그런데 공무원들을 보면, 책임 안 지려고 손 놓고 있어요. 그러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 맞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심성을 가다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시(詩)에 착안하게 된 것입니다. 공자(孔子)께서도 ‘시 300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라고 하셨잖아요?”
 
  ― 왜 하필 한시입니까.
 
  “현대시들을 읽어보니 좀 난해해요. 그런데 한시들, 특히 시성(詩聖) 두보, 시선(詩仙) 이백, 시불(詩佛) 왕유 같은 분들의 시를 보면, 단순히 메마른 정서를 적셔주는 것을 넘어서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요.”
 
 
  민족문화추진회에서 한학 공부
 
  ― 한학(漢學)은 언제 공부했나요.
 
  “선친[先親·인산(仁山) 김일훈 선생]께서 저희 형제들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은 알아야 한다면서 제일 먼저 던져주신 책이 《시경》이었습니다.”
 
  ― 그게 몇 살 때였습니까.
 
  “스물두세 살 때였어요. 《시경》은 두껍기도 하지만, 난해한 한자가 많아서 그거 읽느라고 한 3년 끙끙거렸어요.”
 
  ― 회장님 연배면 한학을 공부하는 세대는 아니었을 텐데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한자 교육을 폐지했어요. 그때는 한문이라고 하면 ‘과학 시대에 공자왈 맹자왈 하느냐’고 폄하하는 분위기였어요. 선친께서는 ‘후대들이 갈수록 경박하고 경망스러워지고 있는 데다가, 우리의 수천 년 문화유산이 전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렇게 한문 교육을 폐지하는 것은 나라의 장래를 위해 걱정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고, ‘너희만이라도 사서삼경을 익히도록 하라’고 하셨어요.”
 
  ― 한학은 어떻게 공부했습니까.
 
  “본격적인 한학 공부는 1978년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5회)에 들어가면서부터였습니다. 40명 뽑는 데 160명이 지원, 경쟁률이 4대 1이었습니다. 삼 형제가 나란히 합격해 기사가 나가기도 했어요.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낸 유봉영 선생님이 이사장, 송지영 선생님이 이사셨는데,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사서삼경을 공부한 후 형은 이희승 교수님의 단국대 동양학연구소로 갔고, 동생은 《조선왕조실록》 번역에 투입됐습니다. 저는 불교신문사 기자가 됐고요.”
 
 
  《동사열전》 번역
 

  ― 기자 생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당시 만나기 힘들다는 고승(高僧)들을 만나 기사들을 여러 개 썼지만, 《동사열전[東師列傳·19세기 말 승려 범해 각안(梵海 覺岸)이 지은 삼국~조선 후기 고승 198명의 전기-기자 주]》을 최초로 번역한 것은 특히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그걸로 조계종 총무원장상, 서울시 문화상 등을 받았지요.”
 
  ― 기자 생활은 오래 했나요.
 
  “9년간 하다가 나왔어요. 원래 제가 한학을 공부했던 것도 아버지의 의술(醫術)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거든요. 그래도 기자를 하던 게 있어서 《월간 민의학》 《신토불이건강》 《인산의학》 이런 잡지들을 계속 펴냈어요. 그런데 환자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왜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지 답이 잡히는 겁니다. 특히 정서가 메마르고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걸 보면서, ‘이건 우리에 갇힌 짐승들 사는 세상이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선현(先賢)들이 우리를 일깨워주는 고시(古詩)들을 번역해 《인산의학》 ‘건강한 삶을 위한 이정표’라는 칼럼을 통해 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중 140수를 모아 이번에 책으로 내게 된 것이죠.”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 한시라고 하면, 대개 유가(儒家) 선비들이 짓는 것으로 여겼는데,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에는 선승(禪僧)들의 시도 많이 실렸더군요.
 
  “두보, 이백, 왕유 등을 비롯한 당송(唐宋) 시대의 문장가들, 한산(寒山), 야보 도천(冶父 道川) 등 선승들, 그리고 이인로(李仁老), 김시습(金時習), 김병연(金炳淵·김삿갓), 휴정(休靜·서산대사) 등 고려와 조선 시대 문인, 고승의 시를 모았습니다. 절반 이상은 선사(禪師)들의 시인데, 좋은 시가 참 많아요.”
 
  ―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라는 책 제목이 참 멋있습니다. 누구의 시에서 따온 것인가요.
 
  “화정 덕성(華亭 德誠)선사의 시 ‘선거우의(船居寓意·배에 기거하는 동안 생각나 읊다)’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김윤세 회장은 눈을 지그시 감고 ‘선거우의’를 줄줄 읊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
 
  천자 긴 낚싯줄 물속으로 던지니
  잔잔한 파문이 끝없이 번져가네
  밤은 깊고 물은 찬데 물고기들은 입질조차 않으니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 느낌이 참 좋네요.
 
  “비록 고기는 못 잡았지만, 오늘 달빛을 하나 가득 싣고 돌아가네! 이것이 만선(滿船)의 귀환이에요. 이분은 원래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할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세월을 낚고 밝음을 낚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이 뜨니 확 밝아진 거예요. 그러니 배에 달빛 하나 가득 싣고 왔다고 하는 거죠. 이는 실제로 그에게 일어난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참 수준 높은 선시이고 오도송(悟道頌)이지요.”
 
  ― 화정 덕성 선사는 어떤 분입니까.
 
  “절강성(浙江城) 화정현(華亭縣)의 오강(吳江)에서 배를 띄우고 노를 저어 소주(蘇州) 사람들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어요.”
 

  ― 뱃사공이요? 뱃사공이 본업이었습니까, 선사가 본업이었습니까?
 
  “선사였는데, 참 특이한 분이었어요. 도(道)가 높다는 스님을 배에 태우면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엉뚱한 소리를 하면 배를 확 뒤집어버렸어요. 물에 빠진 스님은 ‘나 죽는다’고 허우적거리다가 문득 도를 깨치게 되는 거죠.”
 
 
  ‘저 높은 한산으로 가는 길을 묻는가’
 
  ― 참 여러 가지로 어렵고 팍팍한 시절입니다. 이런 시절에 위로가 되는 시가 있을까요.
 
  “당나라의 전설적인 도인(道人) 한산(寒山)의 ‘한산 가는 길을 묻는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인문한산도 한산로불통(人問寒山道 寒山路不通)
  하천빙미석 일출무몽롱(夏天氷未釋 日出霧朦朧)
  사아하유계 여군심부동(似我何由屆 與君心不同)
  군심약사아 환득도기중(君心若似我 還得到其中)
 
  저 높은 한산으로 가는 길을 묻는가 한산으로는 갈 수가 없다네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아니하고 해가 떠오르면 안개가 자욱하다네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갔느냐면 그대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이라네
  만약 그대 마음이 내 마음과 같다면 이미 그대는 한산에 당도했으리라.”
 
  ― 알 듯 모를 듯합니다.
 
  “한산은 흔히 은둔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인간에 대한 연민(憐憫)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이 시도 그렇습니다. ‘세속에서 만나서 아등바등 싸우고, 다른 당(黨)이라고, 적국이라고 죽이고 하는데, 도(道)에 맞게 자연에 맞게 이 풍요를 즐기면서 바르게 살아가자, 적어도 남을 해치지는 말고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많이 읽혀서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많은 분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시에 대한 이야기는 두보로, 이백으로, 왕유로, 한산으로, 야보 도천으로, 휴정으로, 그리고 한시를 넘어 《금강경(金剛經)》과 《도덕경(道德經)》으로 종횡무진(縱橫無盡) 흘러갔다. 김윤세 회장의 입에서는 시구(詩句)가, 불경과 노자의 가르침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시에 취하고, 이야기에 취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첩첩산중 함양 산골의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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