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고급 자동차·名品 소비,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범람 등의 측면에서 버블경제 시대 일본과 흡사
⊙ 한국, 세계 8위의 람보르기니 수입국… 한국 내 샤넬 매장은 다른 나라 매장보다 3배 매상 올려
⊙ 1980년대 유행하던 J-팝, 버블 붕괴와 함께 사라져
⊙ 타이완의 TSMC, 시총 14% 성장… 삼성전자보다 시총 2380억 달러 앞질러
⊙ 중국 부동산 시장 붕괴 시작, 한국은?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한국, 세계 8위의 람보르기니 수입국… 한국 내 샤넬 매장은 다른 나라 매장보다 3배 매상 올려
⊙ 1980년대 유행하던 J-팝, 버블 붕괴와 함께 사라져
⊙ 타이완의 TSMC, 시총 14% 성장… 삼성전자보다 시총 2380억 달러 앞질러
⊙ 중국 부동산 시장 붕괴 시작, 한국은?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 한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서 손님들이 대기 순번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진=조선DB
“개인적으로 보면 지극히 이성적(理性的)이고 합리적이지만, 군중(群衆) 속에 들어가는 순간 ‘꽉 막힌 바보(Blockhead)’로 추락한다.”
18세기 말 활동한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가 남긴 명언(名言)이다. 이 말은 실러 사후(死後) 130년 뒤인 1930년대 나치당 출현을 예언한 말로 통한다. 군중심리를 이용해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탄생한 것이다.
실러의 경구(警句)는 정치만이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영역에도 통용된다. 군중은 강하다. 그러나 무책임하다. 우렁찬 목소리 속에 숨은 채 허위(虛僞)·독선(獨善)·허세(虛勢)로 가득한 행동을 얼마든지 자행할 수 있다. 군중의 이름으로 나설 경우, 폭력·살인, 나아가 학살까지도 허용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오페라와 예술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의 창작품이다. 광기(狂氣)의 군중심리로부터 자유로울 인간은 극히 드물다.
버블경제는 실러가 경고한 군중심리가 작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버블경제는 포말(泡沫), 즉 실제 가치 이상으로 부풀려진 경제 상황을 의미한다. 주식·토지·건물·보석·예술품과 같은 각종 자산의 가격이 투기 목적에 의해 급등(急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자산이 급팽창하면서, 엄청난 이익이 생기는 듯한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가치를 부풀리고 과장해서 살아가는 ‘허장성세(虛張聲勢)’ 경제 상황이 버블경제다.
단군 이래 최대의 버블경제
신년 들어 부동산 폭락(暴落) 가능성에 관한 뉴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갑론을박(甲論乙駁) 중이지만, 부동산 가격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2022년 한국은 버블경제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고 확신한다. 2022년 한국은 20세기 말 버블경제 시대의 일본과 판박이다.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과연 버블이 터질지, 터진다면 언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이 단군 이래 최대의 버블경제 상황이란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이 결코 정상(正常)이 아니라고 확신할 것이다. 물론 어떤 나라를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초한 OECD 선진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버블경제’이다.
버블경제의 특징인데, 버블이 터지는 날까지는 버블 붕괴가 가져올 가공(可恐)할 후유증에 대해 무심(無心)하다. 버블경제라고 경고를 하고, 버블이 터질 날이 임박했다고 말해도 “그래서?”라는 답만 돌아온다.
버블경제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현상에 기초한 상황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나 할까? 모두 버블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당연시한다. 50달러(6만원)짜리 빙수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희한한 논리를 동원해 100달러짜리 빙수의 등장을 기다린다. 버블이 터진다 해도 자신은 그로 인한 후유증과 무관하다고 믿는다.
상식이지만, 버블경제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버블경제가 끝난 뒤 한순간, 그것도 장기간 밀려올 경제적 후유증이 문제다.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심지어 심리적 영역에까지 버블의 후유증이 퍼져나간다.
버블시대 일본 풍경
필자는 1990년대 초 일본에서 버블경제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1985년 9월 선진 5개국(G5) 플라자(Plaza) 협약에 의해 엔화(円貨)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버블이 끓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1990년 3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토지 관련 융자 억제’ 정책을 기점으로 버블경제도 종식된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버블의 달콤한 맛은 1995년까지는 지속됐다. 따라서 1990년대 전반기 일본은 달콤한 버블과 씁쓸한 후유증이 공존하던 때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필자의 첫 번째 외국 생활 무대다. 한국인의 외국여행 자유화는 1989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시행됐다. 필자가 처음으로 일본에 간 것은 1990년 연말연시(年末年始) 때다. 도쿄(東京)의 호텔에 머물던 중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대학생들이 호텔 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연말연시 파티를 하고 있던 것이다.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1만 엔이 넘는 샴페인에다 프랑스 요리를 즐겼다. 파티 이후에는 아예 호텔에서 숙식을 함께하는 연말연시 특별 플랜이었다. 요즘 10만원짜리 케이크, 15만원짜리 부페, 35만원짜리 2인용 호텔 플랜이 초인기라는 서울발(發) 뉴스를 들었다. 32년 전 일본과 너무도 비슷한 상황이다.
버블경제 당시 일본 대학생들의 취업은 보통 3학년 말에 결정됐다. 입사(入社)가 확정되는 순간 50만 엔 정도의 영어 회화 교재 지원비가 제공됐다. 알아서 쓰라고 던져주는 회사의 용돈이었다. 1990년 환율은 100엔에 532원 정도였다. 필자의 당시 월급은 40만원대였다. 일본 회사는 직원들에게 공짜 점심도 제공했다. 점심 도시락 구입 비용으로 평균 1500엔이 일률적으로 지급됐다. 당시 한국의 콜라 한 병 값은 100원 정도였다. 일본 자동판매기의 캔콜라가 100엔인 것을 보고 너무 비싸서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이 한 세대 이전 버블경제 당시 일본과 얼마나 닮았는지 ▲과연 지금의 한국은 버블경제라 단정할 수 있는지 ▲버블이 터질 경우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를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알아보기로 하자.
1. 고급 자동차와 레이스용 오토바이
자동차는 버블경제를 보여주는 나침반(羅針盤)이다. 버블경제 시대에는 스포츠카는 물론 극소수의 부자나 탈법한 최고급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다.
지난해 한국에서 판매된 람보르기니 자동차가 300여 대에 달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8번째 람보르기니 수입국이다. 차종이나 장식물에 따라 다르겠지만, 람보르기니는 대략 한 대에 3억원대라고 한다. 중동(中東) 산유국(産油國) 왕자들이나 타고 다닌다는 7억원대의 롤스로이스도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6억원대의 페라리, 5억원대의 벤틀리 수요도 수직 상승이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에서 팔린 외제차는 25만 대 이상에 달한다. 이 가운데 1억원대에서 출발하는 벤츠가 5만5000여 대, BMW가 각각 1만7000여 대 정도 팔렸다.
日 버블시대의 상징 피가로
20세기 일본의 버블경제 때에도 그 분위기는 거리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거리에 형형색색의 유럽산 고급 자동차들이 넘쳐났다. 미국산 자동차는 무시되던 시대다. 도쿄에 처음 들렀을 때 위로 접어 올리는 문을 가진 빨간 스포츠카를 처음 봤다. 당시로서는 문화 충격이었다. 자동차 할부도 있었지만, 고급 자동차로 갈수록 일시불(一時拂) 현금으로 지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90년대 당시 일본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자동차는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일본산이었다. 필자도 당시 너무 갖고 싶었던 이 차는 닛산(日産)이 1991년 개발한 피가로(フィガロ)란 클래식 자동차다. 1960년대 프랑스나 이탈리아 자동차를 연상케 하는 작고 귀여운 복고풍 자동차다.
피가로는 200만 엔 정도로 비교적 저가(低價)였지만, 일본 버블경제 시대를 상징하는 자동차로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유명하다. 1년 동안 2만 대 한정(限定) 판매를 했던 단종(斷種) 자동차인 데다가 당시 20대 청춘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버블경제 당시 아르바이트 3개 정도만 뛰면 한 달 수입 100만 엔이 보장됐다. 돈만 본다면, 초봉 20만 엔 월급의 정규직 사원보다 아르바이트가 한층 더 좋았다. 택시 운전사는 단기 고소득을 보장하는 최고의 아르바이트로 통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굿 디자인상’까지 받은 닛산 피가로는 20대 아르바이트생의 두 달 정도 급료만으로도 살 수 있는 꿈의 자동차였다.
오토바이는 고급 자동차와 더불어 일본 버블 시대를 상징하는 양대 산맥이다.
이른바 수십, 수백 대씩 함께 움직이는 폭주족(暴走族)이 이 시기에 본격 등장했다. 주된 멤버는 고교생이었다. 100만 엔대의 경주용 오토바이가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이들은 학교도 아예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150만 엔대 야마하(ヤマハ)의 YSR50 모델은 최고 히트상품이었다. 집단의식이 강한 일본답게 매년 리더를 바꾸면서 폭주족 조직을 확대해나갔다. ‘깍두기 머리 고교생=오토바이 폭주족=버블경제’가 일본에서 통하는 공식이다.
일제 경주용 오토바이의 크기는 미국에 비해 3분의 2 정도 작다. 바퀴를 종래의 17인치에서 12인치로 축소해 날렵하게 만들어 판매했다. 소수(少數)의 부자만이 아니라 중산층 나아가 고교생도 버블의 달콤한 맛에 취했다.
2. 名品 시계와 가방
지난해 12월 14일, 9500달러짜리 샤넬 가방에 매달리는 한국인의 모습이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오픈런(Open Run)’, 즉 개장과 동시에 밀려드는 손님 행렬이 한국 내 샤넬 매장의 일상적 풍경이라고 한다. 신제품을 먼저 사려고 밤새 캠프를 치고 매장 앞에서 잠을 잔다.
샤넬은 한국에 9개 직영 매장을 갖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전 세계 샤넬 총수입의 8.5%에 달한다(2020년 기준). 샤넬 직영 매장은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에 310개나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대략 한국 매장 하나의 수입이 다른 나라 매장의 3배 정도다.
한국의 명품(名品) 소비 규모는 142억 달러(2020년 기준)에 달한다. 2019년 기준 북한의 1년 예산은 84억7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한국의 명품 소비 규모가 북한 전체 예산의 1.7배에 달하는 것이다.
루이비통, 버블시대 日 여고생의 필수품
샤넬·구찌·루이비통과 같은 유럽산 명품 브랜드가 글로벌 상표로 부상한 때는 1980년대다. 일본인들은 버블경제 시작과 함께 유명 고급 브랜드에 주목했다. 1980년대 중반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구찌와 같은 명품 브랜드 고객의 70% 정도가 일본인이었다.
원래 유럽산 명품 브랜드는 지금처럼 비싸거나, 일반인에게 열린 상품이 아니었다. 일부 명문가의 특별한 기호품(嗜好品)이었다. 일반인 기준으로 볼 때 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1만 달러짜리 가방과 같은 터무니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를 바꾸어놓은 것이 버블경제 시절의 일본인들이었다. 루이비통 가방은 버블 당시 일본 여고생의 필수품 중 하나였다. 아르바이트를 1개월 정도 열심히 하면 루이비통 가방을 살 수 있었다. 요즘 나이키 운동화 하나 사는 기분이라 볼 수 있다. 버블 당시에는 일본의 비즈니스호텔 가격이 파리의 5성급 호텔 숙박비에 준했다. 당시 대학생 졸업여행은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가서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는 것으로 이어졌다.
고급 시계는 버블 당시 남자들의 기호품이었다. 유럽 왕실과 관계 있는 고급 시계가 버블경제 시대 일본 남성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새해가 되기 무섭게 한국에서 ‘롤렉스’ 시계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최하 1000만원에서 시작하지만, 인기 모델의 경우 2000만원이 넘는다.
일본 도시에 가면 중고(中古) 브랜드 시계 가게가 곳곳에 있다. 중고 롤렉스 시계는 신품 가격의 70% 선에서 팔리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중고 롤렉스 시계의 주된 손님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3. 영화제, 음악제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범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브릿어워즈(Brit Awards)’ 음악제의 국제그룹 후보에 올랐다. 스웨덴의 전설적 그룹 아바(ABBA)도 경쟁 후보에 나섰다고 한다. 아바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뉴스를 접하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1980년대 일본의 버블과 21세기 한국 버블의 대결이란 느낌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아바는 버블경제의 상징으로 통한다. 아바 멤버 본인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 아바의 노래가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도심 곳곳에 들어선 수많은 디스코클럽이 아바 노래에 열광하면서 춤을 췄다.
근래 들어 한국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국제 이벤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정부나 기업과 함께 이런저런 이름의 국제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하고, 외국 엔터테인먼트 이벤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세계 곳곳에서 한국 가수나 배우의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 것 같다. 전 세계가 하루 종일 한국인 연예인만 지켜보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빠져든다.
사라져버린 J-팝
이것도 버블경제 당시 일본 판박이다. 버블경제 시대는 아이돌(Idol) 문화 탄생기에 해당한다. 지금도 활동 중인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를 비롯한 수많은 아이돌이 텔레비전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외국으로 진출하는 일본인도 많았다. 유명인도 있지만, 일본인도 잘 모르는 연예인들이 세계 어딘가에서 상을 받는 뉴스도 거의 매일 보도됐다. 일본 연예인의 할리우드 영화 데뷔도 고정뉴스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였지만, 미국·유럽에서의 일본 아이돌 관련 뉴스는 한 페이지로 반드시 등장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외국의 초대형 스타들과의 공연도 일상적 풍경이었다. 최하 100만 달러 단위의 CM 촬영에 외국 대스타를 불러들인 뒤, 일본 연예인과 함께 서는 식의 이벤트였다. 초스피드로 건설된 골프장, 스키장, 테마파크가 이벤트용 무대로 활용됐다. 버블경제에 의해 세워진 전국 곳곳의 화수분 시설을 활용한, ‘버블의, 버블에 의한, 버블을 위한’ 이벤트인 셈이었다. 마치 일본인이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계를 좌지우지하는 느낌이 들던 시대였다.
K-Pop이란 말이 글로벌 시장에 뜨기 무려 40여 년 전에 J-Pop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버블경제 후유증이 밀어닥친 20세기 말부터의 풍경이다. 그 많던 국제 이벤트, 할리우드 데뷔 배우, 유럽 음악제를 수놓던 가수들 대부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버블 심리라고나 할까? ‘설마’가 득세를 한다. 신문·방송에서의 경고에 무심하다. 터진다고 믿지도 않지만, 터지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믿는다. 버블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즐기느냐에 따라 그 후유증의 전망도 가능하다.
문재인 정권의 아마추어 실험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겠지만, 서울에서는 아파트 하나만 갖고 있어도 최하 100만 달러 부자로 올라선 상태다. 세금도 오르고 불만도 많지만, 일단 액면가로 보면 하룻밤 만에 100만 달러 부자가 된 ‘기적의 해’가 2021년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깨닫게 되지만, ‘결코’ 기적은 없다. 정도와 시간의 문제일 뿐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 터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실러가 간파한 군중심리의 연장선에 있겠지만, 허장성세를 실체(實體)라 믿고 따르는 ‘버블신앙’이 굳건히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즐길 수도 있다.
팬데믹 시대인 2022년 한국 버블경제의 ‘급소(急所)’가 하나 있다. 바로 중국 변수(變數)다. 100만 달러 단위 한국 부동산 부자들의 버블을 산산조각 부술 수 있는 ‘치명타’가 바로 중국이다. 버블의 달콤한 꿈과 중국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뉴욕 證市에서 추락한 중국 기업들
‘애플 주식 시가총액, 3조 달러 돌파!’
신년 시무식(始務式)이 시작되는 순간 터진 뉴스다. 애플은 새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뉴욕 증시(證市)에서 장중(場中) 최고 182.86달러까지 오르며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주식 시총으로 볼 때 세계 1위다. 3조 달러는 한화(韓貨)로 환산하면 대략 3600조원 정도에 달한다. 피부로 체감하기 어려운 규모겠지만, 한국 주식 시총 전체가 250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한국 주식시장 전부를 합쳐도 애플 시총의 70%에도 못 미친다.
애플은 대외채무(對外債務)가 없다. 외부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자체 자금에 의존해 기업을 확장해나간다. 애플의 시가총액 3조 달러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부채(負債) 하나 없이 이룬 성적이란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애플 신기록을 지켜보면서 미국과 디커플링(decoupling) 상태에 들어선 중국의 상황이 궁금했다. 뉴욕 증시 기준으로, 지난해 글로벌 100대 기업에는 10개의 중국 회사가 들어서 있다. 상위 중국 회사 3개만 보면, 글로벌 랭킹 11위의 텐센트(騰訊), 19위의 마오타이(貴州茅臺), 26위의 알리바바다.
중국 회사 시총을 보면서 놀란 것은 주가가 급추락했기 때문이다. 텐센트는 1년 전 시총에 비해 18%가 떨어졌다. 중국의 아마존닷컴인 알리바바는 47.5% 대추락이다. 글로벌 랭킹 100대 기업 내 10개 중국 회사 전부를 살펴봤는데, 1년 전에 비해 8개 회사의 시총이 떨어졌다.
지난해 미국 증시 내 1000개 상위 기업의 시총은 78조 달러에 달한다. 1년 전에 비해 15%포인트 증가했다. 가만히 있어도 1년 전 시가총액의 15% 정도 올라야 정상이다. 글로벌 100대 기업 내 중국 회사 가운데 시총이 오른 곳은 마오타이(10%)와 CM BANK(27%) 두 군데에 그친다.
흥미로운 것은 글로벌 100대 기업 내의 10개 중국 회사의 시총 총합이다. 전부 합치면 2조5310억 달러 정도다(2022년 1월 5일 기준). 중국이 자랑하는 월스트리트 내 글로벌 기업 10개를 전부 합쳐도 애플 시총 하나에 못 미친다.
미국 활황, 중국 추락
오해하기 쉬운데, 수출·수입과 같은 무역 분야는 미중(美中) 디커플링의 표면적 모습에 불과하다. 반도체 같은 전략물자에 관한 규제와 무역 중단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활용품이나 자원 등 대부분의 거래는 기존 방식대로 이뤄진다. 디커플링이 시작된 이래 미중 총무역은 오히려 증가세로 나아가고 있다.
미중 디커플링에서 주목할 부분은 투자·금융이다. 상품 거래와 같은 무역과 달리, 자본 거래는 빨리 진행된다. 온라인 디지털 투자·금융 플랫폼을 통해 한순간 치고 빠질 수 있다.
지난해 미국 주식시장을 보면 중국쇠퇴론은 이미 대세(大勢)로 느껴진다. 중국에 대한 투자나 금융지원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잠시 나타나는 트렌드가 아니다.
중국은 정치적 위험성과 더불어, 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급추락하는 ‘한물간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해 3/4분기 경제성장률은 4.9%, 4/4분기는 3.9%에 그쳤다. 하향세(下向勢)가 본격화되면서 2022년 중국 경제성장률은 3% 이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이나 서방이 중국에서 100% 발을 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투자나 박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글로벌 1000대 기업에 대한 중국 회사의 시총 비율이 1년 전보다 3%포인트 떨어진 12%로 추락했다. 미국 주식시장, 나아가 미국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12%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반면 미국 기업의 시총 비율은 2020년보다 무려 5%포인트 늘어난 53%로 급성장했다. 불과 1년 만에 미국세 활황, 중국세 추락이 명명백백 드러난 셈이다.
삼성전자와 TSMC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다. 지난해 주식 시총 글로벌 랭킹 100대 기업 가운데 한국 회사는 단 하나, 삼성전자뿐이다. 1월 5일 기준으로 시총 4343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간판 기업이자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맡고 있다지만, 애플 시총의 14%에 그치는 수준이다. 삼성 7개 정도가 있어야 애플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주목할 부분은 2020년에 비해 삼성전자의 시총이 1%포인트 떨어졌다는 부분이다. 추락인 것이다. 중국에 비해서는 양호하지만, 1년 동안 평균 15%포인트 시총 증가를 기록한 다른 기업에 비하면 아주 저조하다. 덕분에 2020년 글로벌 시총 순위 11위에서 무려 다섯 단계 내려가 16위에 머물렀다.
삼성전자의 부진은 타이완(臺灣) 반도체 회사 TSMC와 비교할 때 한층 더 분명히 드러난다. 2020년 TSMC의 시총 순위는 삼성보다 한 단계 낮은 12위였다. 그러나 지난해 시총 14%포인트가 증가하면서 6693억 달러 기업으로 급성장한다. 불과 1년 만에 삼성전자보다 시총 2380억 달러나 더 많은 초인기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TSMC는 급성장하는데 왜 삼성전자는 내리막일까? 1년 만에 나타난 극적인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안이 될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봉쇄에 들어간 중국 시안(西安)은 최적의 본보기다. 인구 1300만 시안은 삼성전자 반도체와 삼성 SDI 배터리 공장이 있는 곳이다. 시민들 이동이 중단되면서 반도체 생산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1월 8일 기준).
월스트리트 기준으로 보면 중국 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진 기업이 삼성전자이다. TSMC도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다지만, 미중 디커플링 이후 반도체 공장을 타이완·미국·일본으로 옮길 계획을 발표하면서 월스트리트를 안심시키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뿐 아니라 북한에서 비롯되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안고 있다. 불안한 삼성전자보다, TSMC가 미래 성장주(成長株)로 떠오르는 이유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黃禍
2021년 월스트리트 주식시장 내 시총 분석을 보면 중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중국에 올인해온 한국이 어디로 내몰리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하다. 부인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 믿지만, 중국 시장은 20세기 말 이래 거의 30여 년간 한국 경제를 지지해온 버팀목이었다. 싫든 좋든, 전 세계가 열광하고 주목한 중국이란 시장이 있었기에 한국의 번영도 이어질 수 있었다.
1년 전부터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디커플링과 타이완 무력(武力) 침공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근본적인 이유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급추락은 가장 간단하고도 명확한 증거다.
한중 간의 변화하는 경제적 관계도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은 한국에서 수입하던 물건들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상품에 대해 우위를 지켰던 한국산 자동차나 모바일의 추락은 대표적인 예다. 전기 자동차(EV)에서 보듯, 가격은 물론 질적(質的) 차원에서의 중국 승리다. 앞으로 중국에 수출하기는커녕, 싸고 질 좋은 중국산 물건들이 한국으로 밀려들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 시장이 싹 사라지고, 거꾸로 중국산 물건의 수입대국이 될 곳이 바로 한국이다. 중국 특수(特需)가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황화(黃禍)가 한국에 밀려들고 있다.
韓·中·日 부동산 신앙
한국은 토지·아파트와 같은 부동산 문제를 종교 차원으로 이해하는 나라다. ‘한 번 오른 이상,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신앙 차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로 돌아가 일본인의 부동산관(觀)이 어떠했는지 물어보자. 한국과 똑같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집·토지·건물의 가격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이미 부동산 버블이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한 중국인은 어떨까? 한국·일본보다 더할 것이다. 공식 3000억 달러, 비공식 1조 달러 이상의 부채를 갖고 있다는 헝다(恒大) 파산을 보면서도 ‘부동산 불패론(不敗論)’을 되뇐다.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헝다 사태를 수습하고 있지만, 8000개가 넘는다는 계열사와 다른 부동산 회사들의 운명도 풍전등화(風前燈火)다.
중국 곳곳에서 부동산 하락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1979년 개방 이후 중국의 무패(無敗) 성공 신화를 믿는다면, 곧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중국도 힘자랑 외교에 나서기 전의 얘기에 불과하다.
2022년, 중국은 미국의 명명백백한 적이다. 워싱턴의 공기를 보면, 러시아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고 사악한 나라가 시진핑(習近平) 체제하의 중국이다. 만약 중국이 타이완을 점령하고 태평양으로 진출할 경우 미국 전역이 중국 해군의 직접 공격권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상황이 미국 코앞에 펼쳐지는 셈이다.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파트너가 아니다. 외교적 표현으로 경쟁자라고 부르지만, 실제는 적(敵)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2022년 한국은 오렌지색 람보르기니와 15만원짜리 햄버거의 세계를 즐기고 있다. 200여 년 전 실러가 던진 말은 2022년 한국에 통용될 최고·최적의 경구일 듯하다. 버블이든 중국이든, 군중 속에 들어가서는 안 보인다. 20년, 30년 잃어버린 시대를 원치 않는다면,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개인으로 살아야 한다.⊙
18세기 말 활동한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가 남긴 명언(名言)이다. 이 말은 실러 사후(死後) 130년 뒤인 1930년대 나치당 출현을 예언한 말로 통한다. 군중심리를 이용해 히틀러라는 독재자가 탄생한 것이다.
실러의 경구(警句)는 정치만이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영역에도 통용된다. 군중은 강하다. 그러나 무책임하다. 우렁찬 목소리 속에 숨은 채 허위(虛僞)·독선(獨善)·허세(虛勢)로 가득한 행동을 얼마든지 자행할 수 있다. 군중의 이름으로 나설 경우, 폭력·살인, 나아가 학살까지도 허용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오페라와 예술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의 창작품이다. 광기(狂氣)의 군중심리로부터 자유로울 인간은 극히 드물다.
버블경제는 실러가 경고한 군중심리가 작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버블경제는 포말(泡沫), 즉 실제 가치 이상으로 부풀려진 경제 상황을 의미한다. 주식·토지·건물·보석·예술품과 같은 각종 자산의 가격이 투기 목적에 의해 급등(急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자산이 급팽창하면서, 엄청난 이익이 생기는 듯한 착각 속에서 살아간다. 가치를 부풀리고 과장해서 살아가는 ‘허장성세(虛張聲勢)’ 경제 상황이 버블경제다.
단군 이래 최대의 버블경제
신년 들어 부동산 폭락(暴落) 가능성에 관한 뉴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갑론을박(甲論乙駁) 중이지만, 부동산 가격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2022년 한국은 버블경제의 한복판에 들어서 있다고 확신한다. 2022년 한국은 20세기 말 버블경제 시대의 일본과 판박이다.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다. 과연 버블이 터질지, 터진다면 언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이 단군 이래 최대의 버블경제 상황이란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이 결코 정상(正常)이 아니라고 확신할 것이다. 물론 어떤 나라를 기준으로 하는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초한 OECD 선진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버블경제’이다.
버블경제의 특징인데, 버블이 터지는 날까지는 버블 붕괴가 가져올 가공(可恐)할 후유증에 대해 무심(無心)하다. 버블경제라고 경고를 하고, 버블이 터질 날이 임박했다고 말해도 “그래서?”라는 답만 돌아온다.
버블경제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현상에 기초한 상황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나 할까? 모두 버블의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당연시한다. 50달러(6만원)짜리 빙수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희한한 논리를 동원해 100달러짜리 빙수의 등장을 기다린다. 버블이 터진다 해도 자신은 그로 인한 후유증과 무관하다고 믿는다.
상식이지만, 버블경제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버블경제가 끝난 뒤 한순간, 그것도 장기간 밀려올 경제적 후유증이 문제다. 경제만이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심지어 심리적 영역에까지 버블의 후유증이 퍼져나간다.
버블시대 일본 풍경
필자는 1990년대 초 일본에서 버블경제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1985년 9월 선진 5개국(G5) 플라자(Plaza) 협약에 의해 엔화(円貨)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버블이 끓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1990년 3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토지 관련 융자 억제’ 정책을 기점으로 버블경제도 종식된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버블의 달콤한 맛은 1995년까지는 지속됐다. 따라서 1990년대 전반기 일본은 달콤한 버블과 씁쓸한 후유증이 공존하던 때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필자의 첫 번째 외국 생활 무대다. 한국인의 외국여행 자유화는 1989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시행됐다. 필자가 처음으로 일본에 간 것은 1990년 연말연시(年末年始) 때다. 도쿄(東京)의 호텔에 머물던 중 특이한 장면을 목격했다. 대학생들이 호텔 내 고급 레스토랑에서 연말연시 파티를 하고 있던 것이다.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1만 엔이 넘는 샴페인에다 프랑스 요리를 즐겼다. 파티 이후에는 아예 호텔에서 숙식을 함께하는 연말연시 특별 플랜이었다. 요즘 10만원짜리 케이크, 15만원짜리 부페, 35만원짜리 2인용 호텔 플랜이 초인기라는 서울발(發) 뉴스를 들었다. 32년 전 일본과 너무도 비슷한 상황이다.
버블경제 당시 일본 대학생들의 취업은 보통 3학년 말에 결정됐다. 입사(入社)가 확정되는 순간 50만 엔 정도의 영어 회화 교재 지원비가 제공됐다. 알아서 쓰라고 던져주는 회사의 용돈이었다. 1990년 환율은 100엔에 532원 정도였다. 필자의 당시 월급은 40만원대였다. 일본 회사는 직원들에게 공짜 점심도 제공했다. 점심 도시락 구입 비용으로 평균 1500엔이 일률적으로 지급됐다. 당시 한국의 콜라 한 병 값은 100원 정도였다. 일본 자동판매기의 캔콜라가 100엔인 것을 보고 너무 비싸서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이 한 세대 이전 버블경제 당시 일본과 얼마나 닮았는지 ▲과연 지금의 한국은 버블경제라 단정할 수 있는지 ▲버블이 터질 경우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를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알아보기로 하자.
1. 고급 자동차와 레이스용 오토바이
자동차는 버블경제를 보여주는 나침반(羅針盤)이다. 버블경제 시대에는 스포츠카는 물론 극소수의 부자나 탈법한 최고급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다.
지난해 한국에서 판매된 람보르기니 자동차가 300여 대에 달한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8번째 람보르기니 수입국이다. 차종이나 장식물에 따라 다르겠지만, 람보르기니는 대략 한 대에 3억원대라고 한다. 중동(中東) 산유국(産油國) 왕자들이나 타고 다닌다는 7억원대의 롤스로이스도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6억원대의 페라리, 5억원대의 벤틀리 수요도 수직 상승이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한국에서 팔린 외제차는 25만 대 이상에 달한다. 이 가운데 1억원대에서 출발하는 벤츠가 5만5000여 대, BMW가 각각 1만7000여 대 정도 팔렸다.
日 버블시대의 상징 피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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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경제시대를 상징하는 승용차 피가로(왼쪽)와 오토바이 YSR50. |
1990년대 당시 일본 버블경제를 상징하는 자동차는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일본산이었다. 필자도 당시 너무 갖고 싶었던 이 차는 닛산(日産)이 1991년 개발한 피가로(フィガロ)란 클래식 자동차다. 1960년대 프랑스나 이탈리아 자동차를 연상케 하는 작고 귀여운 복고풍 자동차다.
피가로는 200만 엔 정도로 비교적 저가(低價)였지만, 일본 버블경제 시대를 상징하는 자동차로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유명하다. 1년 동안 2만 대 한정(限定) 판매를 했던 단종(斷種) 자동차인 데다가 당시 20대 청춘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버블경제 당시 아르바이트 3개 정도만 뛰면 한 달 수입 100만 엔이 보장됐다. 돈만 본다면, 초봉 20만 엔 월급의 정규직 사원보다 아르바이트가 한층 더 좋았다. 택시 운전사는 단기 고소득을 보장하는 최고의 아르바이트로 통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굿 디자인상’까지 받은 닛산 피가로는 20대 아르바이트생의 두 달 정도 급료만으로도 살 수 있는 꿈의 자동차였다.
오토바이는 고급 자동차와 더불어 일본 버블 시대를 상징하는 양대 산맥이다.
이른바 수십, 수백 대씩 함께 움직이는 폭주족(暴走族)이 이 시기에 본격 등장했다. 주된 멤버는 고교생이었다. 100만 엔대의 경주용 오토바이가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이들은 학교도 아예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150만 엔대 야마하(ヤマハ)의 YSR50 모델은 최고 히트상품이었다. 집단의식이 강한 일본답게 매년 리더를 바꾸면서 폭주족 조직을 확대해나갔다. ‘깍두기 머리 고교생=오토바이 폭주족=버블경제’가 일본에서 통하는 공식이다.
일제 경주용 오토바이의 크기는 미국에 비해 3분의 2 정도 작다. 바퀴를 종래의 17인치에서 12인치로 축소해 날렵하게 만들어 판매했다. 소수(少數)의 부자만이 아니라 중산층 나아가 고교생도 버블의 달콤한 맛에 취했다.
2. 名品 시계와 가방
지난해 12월 14일, 9500달러짜리 샤넬 가방에 매달리는 한국인의 모습이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오픈런(Open Run)’, 즉 개장과 동시에 밀려드는 손님 행렬이 한국 내 샤넬 매장의 일상적 풍경이라고 한다. 신제품을 먼저 사려고 밤새 캠프를 치고 매장 앞에서 잠을 잔다.
샤넬은 한국에 9개 직영 매장을 갖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전 세계 샤넬 총수입의 8.5%에 달한다(2020년 기준). 샤넬 직영 매장은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에 310개나 있다. 통계적으로 보면, 대략 한국 매장 하나의 수입이 다른 나라 매장의 3배 정도다.
한국의 명품(名品) 소비 규모는 142억 달러(2020년 기준)에 달한다. 2019년 기준 북한의 1년 예산은 84억7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한국의 명품 소비 규모가 북한 전체 예산의 1.7배에 달하는 것이다.
루이비통, 버블시대 日 여고생의 필수품
샤넬·구찌·루이비통과 같은 유럽산 명품 브랜드가 글로벌 상표로 부상한 때는 1980년대다. 일본인들은 버블경제 시작과 함께 유명 고급 브랜드에 주목했다. 1980년대 중반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구찌와 같은 명품 브랜드 고객의 70% 정도가 일본인이었다.
원래 유럽산 명품 브랜드는 지금처럼 비싸거나, 일반인에게 열린 상품이 아니었다. 일부 명문가의 특별한 기호품(嗜好品)이었다. 일반인 기준으로 볼 때 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1만 달러짜리 가방과 같은 터무니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를 바꾸어놓은 것이 버블경제 시절의 일본인들이었다. 루이비통 가방은 버블 당시 일본 여고생의 필수품 중 하나였다. 아르바이트를 1개월 정도 열심히 하면 루이비통 가방을 살 수 있었다. 요즘 나이키 운동화 하나 사는 기분이라 볼 수 있다. 버블 당시에는 일본의 비즈니스호텔 가격이 파리의 5성급 호텔 숙박비에 준했다. 당시 대학생 졸업여행은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가서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는 것으로 이어졌다.
고급 시계는 버블 당시 남자들의 기호품이었다. 유럽 왕실과 관계 있는 고급 시계가 버블경제 시대 일본 남성들 사이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새해가 되기 무섭게 한국에서 ‘롤렉스’ 시계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최하 1000만원에서 시작하지만, 인기 모델의 경우 2000만원이 넘는다.
일본 도시에 가면 중고(中古) 브랜드 시계 가게가 곳곳에 있다. 중고 롤렉스 시계는 신품 가격의 70% 선에서 팔리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중고 롤렉스 시계의 주된 손님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3. 영화제, 음악제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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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의 대표 주자 방탄소년단은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브릿어워즈’ 음악제 국제그룹 후보에 올랐다. 사진=뉴시스 |
일본에서 아바는 버블경제의 상징으로 통한다. 아바 멤버 본인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 아바의 노래가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도심 곳곳에 들어선 수많은 디스코클럽이 아바 노래에 열광하면서 춤을 췄다.
근래 들어 한국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국제 이벤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정부나 기업과 함께 이런저런 이름의 국제 이벤트를 개최하기도 하고, 외국 엔터테인먼트 이벤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세계 곳곳에서 한국 가수나 배우의 수상 소식이 들려오는 것 같다. 전 세계가 하루 종일 한국인 연예인만 지켜보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 속에 빠져든다.
사라져버린 J-팝
이것도 버블경제 당시 일본 판박이다. 버블경제 시대는 아이돌(Idol) 문화 탄생기에 해당한다. 지금도 활동 중인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를 비롯한 수많은 아이돌이 텔레비전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외국으로 진출하는 일본인도 많았다. 유명인도 있지만, 일본인도 잘 모르는 연예인들이 세계 어딘가에서 상을 받는 뉴스도 거의 매일 보도됐다. 일본 연예인의 할리우드 영화 데뷔도 고정뉴스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였지만, 미국·유럽에서의 일본 아이돌 관련 뉴스는 한 페이지로 반드시 등장했다.
소문으로만 듣던 외국의 초대형 스타들과의 공연도 일상적 풍경이었다. 최하 100만 달러 단위의 CM 촬영에 외국 대스타를 불러들인 뒤, 일본 연예인과 함께 서는 식의 이벤트였다. 초스피드로 건설된 골프장, 스키장, 테마파크가 이벤트용 무대로 활용됐다. 버블경제에 의해 세워진 전국 곳곳의 화수분 시설을 활용한, ‘버블의, 버블에 의한, 버블을 위한’ 이벤트인 셈이었다. 마치 일본인이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계를 좌지우지하는 느낌이 들던 시대였다.
K-Pop이란 말이 글로벌 시장에 뜨기 무려 40여 년 전에 J-Pop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흥미로운 것은 버블경제 후유증이 밀어닥친 20세기 말부터의 풍경이다. 그 많던 국제 이벤트, 할리우드 데뷔 배우, 유럽 음악제를 수놓던 가수들 대부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버블 심리라고나 할까? ‘설마’가 득세를 한다. 신문·방송에서의 경고에 무심하다. 터진다고 믿지도 않지만, 터지더라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믿는다. 버블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즐기느냐에 따라 그 후유증의 전망도 가능하다.
문재인 정권의 아마추어 실험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겠지만, 서울에서는 아파트 하나만 갖고 있어도 최하 100만 달러 부자로 올라선 상태다. 세금도 오르고 불만도 많지만, 일단 액면가로 보면 하룻밤 만에 100만 달러 부자가 된 ‘기적의 해’가 2021년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깨닫게 되지만, ‘결코’ 기적은 없다. 정도와 시간의 문제일 뿐 버블은 터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 터지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실러가 간파한 군중심리의 연장선에 있겠지만, 허장성세를 실체(實體)라 믿고 따르는 ‘버블신앙’이 굳건히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즐길 수도 있다.
팬데믹 시대인 2022년 한국 버블경제의 ‘급소(急所)’가 하나 있다. 바로 중국 변수(變數)다. 100만 달러 단위 한국 부동산 부자들의 버블을 산산조각 부술 수 있는 ‘치명타’가 바로 중국이다. 버블의 달콤한 꿈과 중국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애플 주식 시가총액, 3조 달러 돌파!’
신년 시무식(始務式)이 시작되는 순간 터진 뉴스다. 애플은 새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 뉴욕 증시(證市)에서 장중(場中) 최고 182.86달러까지 오르며 시가총액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주식 시총으로 볼 때 세계 1위다. 3조 달러는 한화(韓貨)로 환산하면 대략 3600조원 정도에 달한다. 피부로 체감하기 어려운 규모겠지만, 한국 주식 시총 전체가 2500조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한국 주식시장 전부를 합쳐도 애플 시총의 70%에도 못 미친다.
애플은 대외채무(對外債務)가 없다. 외부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자체 자금에 의존해 기업을 확장해나간다. 애플의 시가총액 3조 달러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부채(負債) 하나 없이 이룬 성적이란 점에서 ‘아주’ 특별하다.
애플 신기록을 지켜보면서 미국과 디커플링(decoupling) 상태에 들어선 중국의 상황이 궁금했다. 뉴욕 증시 기준으로, 지난해 글로벌 100대 기업에는 10개의 중국 회사가 들어서 있다. 상위 중국 회사 3개만 보면, 글로벌 랭킹 11위의 텐센트(騰訊), 19위의 마오타이(貴州茅臺), 26위의 알리바바다.
중국 회사 시총을 보면서 놀란 것은 주가가 급추락했기 때문이다. 텐센트는 1년 전 시총에 비해 18%가 떨어졌다. 중국의 아마존닷컴인 알리바바는 47.5% 대추락이다. 글로벌 랭킹 100대 기업 내 10개 중국 회사 전부를 살펴봤는데, 1년 전에 비해 8개 회사의 시총이 떨어졌다.
지난해 미국 증시 내 1000개 상위 기업의 시총은 78조 달러에 달한다. 1년 전에 비해 15%포인트 증가했다. 가만히 있어도 1년 전 시가총액의 15% 정도 올라야 정상이다. 글로벌 100대 기업 내 중국 회사 가운데 시총이 오른 곳은 마오타이(10%)와 CM BANK(27%) 두 군데에 그친다.
흥미로운 것은 글로벌 100대 기업 내의 10개 중국 회사의 시총 총합이다. 전부 합치면 2조5310억 달러 정도다(2022년 1월 5일 기준). 중국이 자랑하는 월스트리트 내 글로벌 기업 10개를 전부 합쳐도 애플 시총 하나에 못 미친다.
미국 활황, 중국 추락
오해하기 쉬운데, 수출·수입과 같은 무역 분야는 미중(美中) 디커플링의 표면적 모습에 불과하다. 반도체 같은 전략물자에 관한 규제와 무역 중단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활용품이나 자원 등 대부분의 거래는 기존 방식대로 이뤄진다. 디커플링이 시작된 이래 미중 총무역은 오히려 증가세로 나아가고 있다.
미중 디커플링에서 주목할 부분은 투자·금융이다. 상품 거래와 같은 무역과 달리, 자본 거래는 빨리 진행된다. 온라인 디지털 투자·금융 플랫폼을 통해 한순간 치고 빠질 수 있다.
지난해 미국 주식시장을 보면 중국쇠퇴론은 이미 대세(大勢)로 느껴진다. 중국에 대한 투자나 금융지원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잠시 나타나는 트렌드가 아니다.
중국은 정치적 위험성과 더불어, 산업 자체의 경쟁력도 급추락하는 ‘한물간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해 3/4분기 경제성장률은 4.9%, 4/4분기는 3.9%에 그쳤다. 하향세(下向勢)가 본격화되면서 2022년 중국 경제성장률은 3% 이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이나 서방이 중국에서 100% 발을 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투자나 박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글로벌 1000대 기업에 대한 중국 회사의 시총 비율이 1년 전보다 3%포인트 떨어진 12%로 추락했다. 미국 주식시장, 나아가 미국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12%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반면 미국 기업의 시총 비율은 2020년보다 무려 5%포인트 늘어난 53%로 급성장했다. 불과 1년 만에 미국세 활황, 중국세 추락이 명명백백 드러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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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반도체 회사 TSMC는 시총에서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
주목할 부분은 2020년에 비해 삼성전자의 시총이 1%포인트 떨어졌다는 부분이다. 추락인 것이다. 중국에 비해서는 양호하지만, 1년 동안 평균 15%포인트 시총 증가를 기록한 다른 기업에 비하면 아주 저조하다. 덕분에 2020년 글로벌 시총 순위 11위에서 무려 다섯 단계 내려가 16위에 머물렀다.
삼성전자의 부진은 타이완(臺灣) 반도체 회사 TSMC와 비교할 때 한층 더 분명히 드러난다. 2020년 TSMC의 시총 순위는 삼성보다 한 단계 낮은 12위였다. 그러나 지난해 시총 14%포인트가 증가하면서 6693억 달러 기업으로 급성장한다. 불과 1년 만에 삼성전자보다 시총 2380억 달러나 더 많은 초인기 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TSMC는 급성장하는데 왜 삼성전자는 내리막일까? 1년 만에 나타난 극적인 변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안이 될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봉쇄에 들어간 중국 시안(西安)은 최적의 본보기다. 인구 1300만 시안은 삼성전자 반도체와 삼성 SDI 배터리 공장이 있는 곳이다. 시민들 이동이 중단되면서 반도체 생산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1월 8일 기준).
월스트리트 기준으로 보면 중국 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가진 기업이 삼성전자이다. TSMC도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다지만, 미중 디커플링 이후 반도체 공장을 타이완·미국·일본으로 옮길 계획을 발표하면서 월스트리트를 안심시키고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뿐 아니라 북한에서 비롯되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안고 있다. 불안한 삼성전자보다, TSMC가 미래 성장주(成長株)로 떠오르는 이유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黃禍
2021년 월스트리트 주식시장 내 시총 분석을 보면 중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중국에 올인해온 한국이 어디로 내몰리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하다. 부인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 믿지만, 중국 시장은 20세기 말 이래 거의 30여 년간 한국 경제를 지지해온 버팀목이었다. 싫든 좋든, 전 세계가 열광하고 주목한 중국이란 시장이 있었기에 한국의 번영도 이어질 수 있었다.
1년 전부터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디커플링과 타이완 무력(武力) 침공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근본적인 이유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급추락은 가장 간단하고도 명확한 증거다.
한중 간의 변화하는 경제적 관계도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은 한국에서 수입하던 물건들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중국 상품에 대해 우위를 지켰던 한국산 자동차나 모바일의 추락은 대표적인 예다. 전기 자동차(EV)에서 보듯, 가격은 물론 질적(質的) 차원에서의 중국 승리다. 앞으로 중국에 수출하기는커녕, 싸고 질 좋은 중국산 물건들이 한국으로 밀려들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 시장이 싹 사라지고, 거꾸로 중국산 물건의 수입대국이 될 곳이 바로 한국이다. 중국 특수(特需)가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황화(黃禍)가 한국에 밀려들고 있다.
韓·中·日 부동산 신앙
한국은 토지·아파트와 같은 부동산 문제를 종교 차원으로 이해하는 나라다. ‘한 번 오른 이상,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는 신앙 차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로 돌아가 일본인의 부동산관(觀)이 어떠했는지 물어보자. 한국과 똑같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집·토지·건물의 가격은 절대 내려가지 않는다!”
이미 부동산 버블이 곳곳에서 터지기 시작한 중국인은 어떨까? 한국·일본보다 더할 것이다. 공식 3000억 달러, 비공식 1조 달러 이상의 부채를 갖고 있다는 헝다(恒大) 파산을 보면서도 ‘부동산 불패론(不敗論)’을 되뇐다.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헝다 사태를 수습하고 있지만, 8000개가 넘는다는 계열사와 다른 부동산 회사들의 운명도 풍전등화(風前燈火)다.
중국 곳곳에서 부동산 하락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1979년 개방 이후 중국의 무패(無敗) 성공 신화를 믿는다면, 곧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하고, 중국도 힘자랑 외교에 나서기 전의 얘기에 불과하다.
2022년, 중국은 미국의 명명백백한 적이다. 워싱턴의 공기를 보면, 러시아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고 사악한 나라가 시진핑(習近平) 체제하의 중국이다. 만약 중국이 타이완을 점령하고 태평양으로 진출할 경우 미국 전역이 중국 해군의 직접 공격권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상황이 미국 코앞에 펼쳐지는 셈이다.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파트너가 아니다. 외교적 표현으로 경쟁자라고 부르지만, 실제는 적(敵)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상황하에서 2022년 한국은 오렌지색 람보르기니와 15만원짜리 햄버거의 세계를 즐기고 있다. 200여 년 전 실러가 던진 말은 2022년 한국에 통용될 최고·최적의 경구일 듯하다. 버블이든 중국이든, 군중 속에 들어가서는 안 보인다. 20년, 30년 잃어버린 시대를 원치 않는다면,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개인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