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총선에서 ‘진박(眞朴) 중의 진박’ 으로 낮은 지지율에도 송파을 공천받아
⊙ ‘옥새 파동’ 끝에 네 번째 총선 출마 무산됐지만 묵묵히 수용
⊙ SNS 통해 좌파·종북세력에 대해 직격탄 공격
⊙ 야(野), “부패·비리·부도덕 의혹 그랜드슬램” 주장도
⊙ ‘옥새 파동’ 끝에 네 번째 총선 출마 무산됐지만 묵묵히 수용
⊙ SNS 통해 좌파·종북세력에 대해 직격탄 공격
⊙ 야(野), “부패·비리·부도덕 의혹 그랜드슬램” 주장도
- 2016년 3월 유영하 변호사(맨 왼쪽) 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옥새 파동으로 공천이 보류된 후보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검찰 조사를 앞두고 11월 15일 박 대통령의 변호사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의 경력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사법연수원 24기로 창원지검, 인천지검, 서울지검 북부지청에서 검사생활을 했던 유 변호사는 2010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던 박 대통령의 법률특보를 지냈고 2014년부터 올해 1월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유 변호사는 ‘친박 중의 친박’으로 불리는 정치인이다. 고향은 경상북도 의성이며 군포초, 안양중, 수원수성고,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네 번 출마를 시도했는데, 17, 18, 19대 당시에는 경기 군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1월에는 서울 송파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새누리당이 이 지역에서 경선 없이 유 변호사를 단수 추천해 공천을 받았다.
당시 송파을에는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해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과 김무성 대표의 지원을 받은 정치평론가 박상헌씨 등 8명이 경쟁에 나섰지만 원박(원조 박근혜계) 또는 진박(진짜 박근혜계)으로 불렸던 유영하 변호사를 넘지 못했다. 특히 새누리당은 자당에 유리한 지역인 강남 3구의 7개 선거구 중 송파을만을 단수추천 지역으로 선정해 유 변호사가 ‘진박 중의 진박’이라는 설도 무성했다.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송파을에 예비후보로 8명이 나섰는데 유 후보 여론조사 지지율은 6%대 최하위권으로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의 1/4 수준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 결과에 반발해 당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향하는 ‘옥새 파동’이 일어났고 새누리당 지도부가 송파을을 무공천지역으로 변경하면서 유 변호사의 출마가 무산됐다. 당시 함께 무공천지역 통보를 받은 5명(이재만 유재길 유영하 정종섭 추경호)이 김무성 대표를 향해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정종섭 추경호 의원만 살아남았고 이재만 유재길 유영하 세 명은 시간상 무소속 출마의 길마저 막혔다.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거세게 항의했지만 유 변호사는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의원이 경선에서 패배한 후 많은 사람이 박 의원 곁을 떠날 때 이런 말을 했다. “전쟁에 졌는데 장수가 살기를 바라지 않고 투항 같은 건 안 한다. 사내가 주인을 한 번 모셨으면 끝이지 주인이 어려울수록 밑에서 모시는 사람들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
SNS에 직설적인 성격 드러나
2004년 검찰을 떠나 변호사가 된 후 유 변호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직설적인 성격을 드러내 왔다. 주변인들 사이에서도 화끈하고 남자다운 성격으로 평가받던 그는 SNS에서도 강한 면모를 드러낸다. 특히 좌파 또는 종북으로 불리는 인물들에 대해 거센 말을 내뱉는다.
BBK 등 정치 관련 의혹도 다수
그는 2007년 BBK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기획 입국’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대통령이 당시 경쟁자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김씨를 한국으로 불러들였으며, 이를 유 변호사가 주도했다는 증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이에 유 변호사는 언론 보도를 통해 “2007년 미국에서 수감 중이던 김씨를 만났으나 기획입국을 제안할 위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19대 총선 당시 야당은 유영하 후보에 대해 ‘부패·비리·부도덕 의혹 그랜드슬램’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당 논평에 따르면 “유영하 후보는 인천지검 특수부검사 출신으로 나이트클럽 사장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아 징계를 받은 비리검사이고 2011년에는 토마토 저축은행 부행장으로 근무하다 영업정지 전 퇴사했으며, BBK 김경준을 미국 교도소까지 찾아가 기획입국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던 2015년 UN 제출 보고서에 세월호 참사 등 중요한 쟁점 사항을 누락시킨 주요 인물로도 지적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은 “인권위원이라는 임무를 내팽개친 채 박 대통령의 ‘방탄조끼’ 노릇을 하고 있는 유 변호사는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 변호사는 20대 총선 출마 무산 후에도 박 대통령을 끝까지 모신다고 주변에 호언장담해 진박 중의 진박, 호위무사, 방탄조끼 등 다양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응천 전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과는 검찰 선후배 사이(유영하 사법연수원 24기, 조응천 18기)지만 나이가 같고(55세)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서 같이 일하는 등 친하게 지냈다. 유 변호사는 조응천 전 비서관의 더민주 입당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둘도 없는 친구이며 동반자였는데 더민주에 입당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조응천이 (청와대) 저격수로 나서면 내가 그의 저격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 변호사는 ‘친박 중의 친박’으로 불리는 정치인이다. 고향은 경상북도 의성이며 군포초, 안양중, 수원수성고,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여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네 번 출마를 시도했는데, 17, 18, 19대 당시에는 경기 군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1월에는 서울 송파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새누리당이 이 지역에서 경선 없이 유 변호사를 단수 추천해 공천을 받았다.
당시 송파을에는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해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과 김무성 대표의 지원을 받은 정치평론가 박상헌씨 등 8명이 경쟁에 나섰지만 원박(원조 박근혜계) 또는 진박(진짜 박근혜계)으로 불렸던 유영하 변호사를 넘지 못했다. 특히 새누리당은 자당에 유리한 지역인 강남 3구의 7개 선거구 중 송파을만을 단수추천 지역으로 선정해 유 변호사가 ‘진박 중의 진박’이라는 설도 무성했다.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송파을에 예비후보로 8명이 나섰는데 유 후보 여론조사 지지율은 6%대 최하위권으로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의 1/4 수준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공천 결과에 반발해 당 직인을 들고 부산으로 향하는 ‘옥새 파동’이 일어났고 새누리당 지도부가 송파을을 무공천지역으로 변경하면서 유 변호사의 출마가 무산됐다. 당시 함께 무공천지역 통보를 받은 5명(이재만 유재길 유영하 정종섭 추경호)이 김무성 대표를 향해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정종섭 추경호 의원만 살아남았고 이재만 유재길 유영하 세 명은 시간상 무소속 출마의 길마저 막혔다.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거세게 항의했지만 유 변호사는 섭섭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의원이 경선에서 패배한 후 많은 사람이 박 의원 곁을 떠날 때 이런 말을 했다. “전쟁에 졌는데 장수가 살기를 바라지 않고 투항 같은 건 안 한다. 사내가 주인을 한 번 모셨으면 끝이지 주인이 어려울수록 밑에서 모시는 사람들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
SNS에 직설적인 성격 드러나
![]() |
유영하 변호사가 20대 총선 예비후보 때 사용한 공보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
2012. 12. 〈공지영 너 좀 입다물고 그냥 가만 있으면 안되니? 네 눈에는 51.6%의 국민들은 나치에 협력한 부역자로 보이니? 말 좀 가려서 해라. 인간에 대한 예의도 모르면서 그 잘난 글재주 너무 알랑대지 말고 네 지금 꼬라지가 왜 그 모양인지 그거나 잘 생각해 봐라.〉 2013.1.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이외수가 주제 파악 못하고 설치니 그 마누라라는 여자도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다. 나잇살 되는 사람들에게 험한 말 쓰는 내 자신이 싫지만 마누라라는 여자가 사과하러 온 후배에게 욕설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두 노추의 인생말로가 걱정된다.〉 2012.5. 〈사람의 말이 최소한 사람 말 같아야 비판을 하든 지지를 하든 할 것인데 도를 넘어서 깐죽거리는 박지원의 입을 보면서 새삼 어릴적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느낀다. 원래 타고난 인성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뇌물로 실형까지 산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니.〉 2012.5 〈예로부터 군자는 말을 가려서 하라 했고 나이 40이 넘으면 얼굴에 살아온 이력이 새겨진다고 했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성정을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요새 박지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의 가벼운 말과 더불어 옛 사람들의 경구가 새삼 놀랍다.〉 2012.11. 〈자기가 감당치 못할 자리에 있으면 꼭 화를 부른다고 했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머릿속이 든 것들이 가벼운 처신으로 얕은 꼼수를 부리다간 감당하지도 못할 화를 자초한다. 누군들 입이 없어서 가만히 있겠는가? 이정현(現 새누리당 대표)의 가벼움이 더는 못 볼 지경이다.〉 2012. 6. 〈선거 후 처음으로 공식행사인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 분향을 하면서 살아있는 자로서 조국을 위해 푸른 삶을 초개처럼 버리시고 산화하신 영령님들께 님들께서 목숨으로 지킨 이 땅에 악성종양처럼 번져있는 종북세력들을 반드시 뿌리 뽑겠다는 다짐을 했다.〉 |
BBK 등 정치 관련 의혹도 다수
![]() |
2008년 18대 총선 당시 경기 군포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 사무실 개소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이에 유 변호사는 언론 보도를 통해 “2007년 미국에서 수감 중이던 김씨를 만났으나 기획입국을 제안할 위치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19대 총선 당시 야당은 유영하 후보에 대해 ‘부패·비리·부도덕 의혹 그랜드슬램’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주당 논평에 따르면 “유영하 후보는 인천지검 특수부검사 출신으로 나이트클럽 사장으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아 징계를 받은 비리검사이고 2011년에는 토마토 저축은행 부행장으로 근무하다 영업정지 전 퇴사했으며, BBK 김경준을 미국 교도소까지 찾아가 기획입국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던 2015년 UN 제출 보고서에 세월호 참사 등 중요한 쟁점 사항을 누락시킨 주요 인물로도 지적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정의당은 “인권위원이라는 임무를 내팽개친 채 박 대통령의 ‘방탄조끼’ 노릇을 하고 있는 유 변호사는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 변호사는 20대 총선 출마 무산 후에도 박 대통령을 끝까지 모신다고 주변에 호언장담해 진박 중의 진박, 호위무사, 방탄조끼 등 다양한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응천 전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과는 검찰 선후배 사이(유영하 사법연수원 24기, 조응천 18기)지만 나이가 같고(55세)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서 같이 일하는 등 친하게 지냈다. 유 변호사는 조응천 전 비서관의 더민주 입당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둘도 없는 친구이며 동반자였는데 더민주에 입당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조응천이 (청와대) 저격수로 나서면 내가 그의 저격수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