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어느 나라도 한국과 똑같은 형사소송 구조를 가진 곳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견제와 균형인데 한 기관에 수사권, 기소권, 집행권이 다 집중돼 있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 “쏠 상황이 되면 최루탄 쏘겠다”
⊙ 경찰청장 후보에서 탈락했을 때 솔직히 서운했다
⊙ 불법 폭력 시위자는 채증 통해 끝까지 추적
⊙ 용산사태에 대해: “어느 지휘관이 자기 부하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 투입하겠나”
⊙ ‘가요 반세기 별명’ 전통가요 수백 곡 꿰고 있어
강희락
⊙ 1953년 경북 성주 출생.
⊙ 경북대 사대부속고·고려대 법학과 졸업, 고려대 법학대학원 수료. 동국대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 중부경찰서장, 워싱턴주재관, 경찰청 공보관, 경찰청 수사기획국장,
대구·부산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 홍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취재지원 : 具希彦 月刊朝鮮 인턴기자
⊙ “쏠 상황이 되면 최루탄 쏘겠다”
⊙ 경찰청장 후보에서 탈락했을 때 솔직히 서운했다
⊙ 불법 폭력 시위자는 채증 통해 끝까지 추적
⊙ 용산사태에 대해: “어느 지휘관이 자기 부하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 투입하겠나”
⊙ ‘가요 반세기 별명’ 전통가요 수백 곡 꿰고 있어
강희락
⊙ 1953년 경북 성주 출생.
⊙ 경북대 사대부속고·고려대 법학과 졸업, 고려대 법학대학원 수료. 동국대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 중부경찰서장, 워싱턴주재관, 경찰청 공보관, 경찰청 수사기획국장,
대구·부산경찰청장, 해양경찰청장.
⊙ 홍조근정훈장, 대통령표창.
취재지원 : 具希彦 月刊朝鮮 인턴기자
14만 경찰의 수장(首長)이 외부인을 맞이하는 접견실은 소박했다. 8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무릎 높이의 원탁과 작은 책장, 텔레비전 한 대가 고작이었다. 벽에 걸린 장식이라곤 독도사진이 들어있는 액자 하나뿐이었다.
‘방 분위기는 방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강희락(姜熙洛) 경찰청장의 첫 인상이 그랬다. 소박했다. 수식어를 덧붙인다면 몸이 단단해 보이는 그는 소박했다. 경찰 수사권 독립 등 경찰이 안고 있는 현안과 관련해 강한 어조로 말할 때도 그의 손동작은 크지 않았다. 크지 않은 대신 입고 있는 경찰제복에 어울리는 절도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경찰청장이 됐다. 강 청장은 65년 경찰 역사상 치안총감을 두 번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출범 초기 청장 후보 물망에 올랐다가 어청수(魚淸秀) 전(前) 경찰청장에게 밀렸지만, 같은 치안총감인 해양경찰청장이 됐다. 해양경찰청장을 끝으로 경찰생활을 마무리할 줄 알았던 그는 어청수 청장의 후임으로 내정됐던 김석기(金碩基) 전 서울경찰청장이 용산사태로 사퇴하면서 경찰 총수로 돌아왔다. 강희락을 수식하는 용어 중 하나인, ‘대운(大運)의 사나이’라 할 만하다.
―본인 스스로도 ‘대운의 사나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잘 만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시켜 주셨고, 건강한 몸도 주셨고요. 운도 좋았고, 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얘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미리 쓴 답변서엔 “부인(김정미)을 잘 만난 게 대운”이라고 적혀 있던데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났습니까.
“그건 잘못 쓴 것 같고요(웃음).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도 합격이 안돼서 군(軍)에 입대했습니다. 첫 휴가 나와서 집사람과 맞선을 봤어요. ‘나는 제대하고도 공부를 계속할 사람인데 교사니까 뒷바라지 좀 해줄 수 있겠습니까’ 했죠. 그렇게 결혼했어요.”
결혼하려고 잠시 직장생활
강 청장은 만 32세에 사법시험에 붙었다. 그 전에 잠시 직장생활도 했다. 결혼을 앞두고 장인 될 분이 “직업도 없는 사람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서울신탁은행 입행 1주일 후 결혼식을 올렸고, 그 5개월 후 직장을 그만뒀다. 사법시험 준비 때문이었다. 결혼 4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을 그렇게 고집했던 이유는 뭡니까.
“솔직히 말하면 할 게 없어서 했다고 해야 하나? 언론인이 되겠다고 언론사 문도 두드리고 했는데 나이가 넘어서 원서 접수도 안되고, 증권회사나 KT 같은 데도 응시해 봤는데 뜻대로 안됐어요. 나이가 30이 넘어버리니까 다 안돼요. 언젠가는 되겠지 하면서 준비했어요. 아기도 낳고 하니까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좀 정의감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쪽에 종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왜 법조인의 길을 가지 않고 경찰을 선택했습니까.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수원 마치니까 법조계로 가기에는 많이 늦었고 경찰 쪽에 기회가 돼서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권유도 있었고요.”
―신탁은행을 그만둘 때 부인이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집사람보다는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아버지 모르게 사표 내고 고시 공부했어요. 집사람은 결혼 전 이미 합의했으니까 반대하지 않았죠.”
―‘경찰의 꽃’은 어느 계급입니까.
“총경이죠. 다른 계급은 기간이 너무 짧아서 사실 뭔가 해볼 시간 여유도 없어요. 저는 총경은 근 7년 했고, 경무관 3년, 치안감 3년을 했어요. 총경 때 처음으로 서장을 했죠. 경찰 직위로는 서장이 꽃이에요. 어떤 지역 단위를 책임지는 치안 책임자로 가서 소신도 펼 수 있기 때문에 제일 좋았죠.”
선의의 라이벌 김석기 前 서울경찰청장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유력한 경찰청장 후보였는데 임명이 안됐습니다. 서운하지 않았습니까.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저 스스로도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했었고요. 막상 안되니까 팔자대로 산다고 생각하고, 운명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습니까.
“고려대 동문이라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경찰청장에 내정됐다가 용산사태로 사퇴한 김석기 전 서울청장과 강 청장은 동갑에 동향(경북)으로 두 사람은 경찰 내에서도 소문난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김석기 청장과는 지금도 자주 만납니까.
“우리는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친구의 친구로 연결돼 있지만 처음 알게 된 시기는 경찰에 들어온 후인 1992년도입니다. 지역도 같고 연배도 같고, 승진 연도도 비슷했어요. 총경은 김 청장이 저보다 1년 빨리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인사 때 지역 안배 같은 원칙 때문에 그랬는지 본의 아니게 라이벌로 불리게 됐고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실상은 라이벌이 아니었다는 말로 들립니다.
“선의의 라이벌이었죠. 보통 라이벌이라 하면 상대방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둘은 서로 칭찬하는 사이였습니다. 김 청장이 경북청장을 하고 제가 대구청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경북청장과 대구청장이 서로 불편하게 지냈다고 하는데 우리가 청장을 할 때는 참모들끼리도 아주 잘 지냈습니다. 한 식구처럼 지냈죠. 경찰을 떠난 후에도 소주도 하고 여러 번 만났습니다.”
강희락 청장 취임 당시 경찰은 용산사태로 두 달 가까이 지휘부 공백사태였다. 취임 후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같은 큼직한 국제행사가 열렸고, 노무현(盧武鉉),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국장(國葬), 쌍용자동차 불법농성 사건 등 대형 이슈들이 연이어 터졌다.
合法보장 不法必罰 실천
―치안 책임자로서 국장을 두 번이나 치렀는데 어떤 점이 가장 신경쓰였습니까.
“촛불 집회의 망령이 되살아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죠.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이 모이다 보면 순수한 장례를 다른 방향으로 악용하려는 세력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욕을 먹어가면서 통제를 많이 했죠.”
―촛불 사태 때 그랬지만 불법 폭력 시위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입니다.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청장으로서 불법 폭력 시위 근절책은 있습니까.
“이제까지 법집행 기관이 계속 내세운 게 ‘합법(合法)보장 불법필벌(不法必罰)’이었어요. 그런데 말로만 했지 실천을 못했어요. 불법시위자를 잡아놔도 풀어주라 하는 때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막말로 ‘깽판 쳐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돼 있었죠. 근절책은 다른 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엄정한 법집행을 했습니까.
“그럼요. 지금은 시위대가 넘을 수 없는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이 있습니다. 합법과 불법, 적법과 위법은 선(線) 하나 차이예요. 폴리스 라인을 넘는 순간 불법과 위법 상태로 돼 버리는 겁니다. 우리는 적법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3회 이상 해산 명령을 내려요. 그래도 불응할 경우에 검거하는데, 요즘은 두 번만 해산 명령을 하면 시위대가 해산해요. 세 번 하면 검거를 해버리니까요.”
―2008년 촛불 사태를 비롯한 각종 불법집회자를 지금도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시위에서 채증한 자료를 가지고 신원확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은 상습 시위꾼 자료를 축적해서 많이 검거했습니다. 본인은 불법시위를 벌인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당신 옛날 여기 있지 않았느냐’ 이러면서 증거를 들이대면 깜짝 놀라죠. 법을 어기면 언젠가는 응징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산사태에서 우리 경찰도 죽었는데…
―불법시위에는 과거처럼 최루탄을 사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써야 할 상황이 된다면 써야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루탄을 써야 할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해야죠. 정말 급박한 상황, 경찰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까지 된다면 써야죠. 그 전 단계로 최루액을 섞어서 분사하고 있습니다.”
―불법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은 당연히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물리적인 힘끼리 부딪치면 우리 경찰이 비무장이라고 해도 부딪치는 접점에 있는 사람은 다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장비와 차를 개발해서 서로 물리적 충돌이 생기지 않게끔 미연에 방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상황이 돼야 최루탄을 쓸 수 있습니까.
“현장에서 봐야 알죠. 사전에 대비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2007년 촛불 사태가 그 정도 상황 아니었습니까.
“제가 그때는 해경에 있었습니다.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뭐라고 답변할 수 없군요.”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다가 진압 과정에서 경찰과 민간인 희생자를 낸 용산사태 때 경찰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말 있어서는 안될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합니다. 어느 지휘관이 자기 부하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 거기에 투입하겠습니까. 누구도 상상 못했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해서, 결과가 너무나 엄청나게 나쁘게 발생해서 좀 더 잘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전·의경 폐지론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근본적으로 전·의경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집회시위 문화가 개선된다는 전제하에서죠. 지금 상태로서는 시기상조입니다. 누가 막아도 막아야 하는데 전·의경 없이 그런 불법 시위를 막는 것은 힘듭니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자”
―청장 취임 후 “구태의연한 관행과 제도를 혁파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관행은 무엇이고 어떻게 혁파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인사 문제로 잡음은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어디 가서 제 신상에 대해서 누구에게 부탁해 본 적도 없고 오직 일만 열심히 했는데 알아주더라는 겁니다. 상사가 돼 보니 부하 직원 중에 누가 능력 있고 열심히 하는지 다 압니다. 그런데 일 따로, 진급 따로 이런 얘기가 많아서 이건 고쳐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빽’을 동원하는 것은 막겠다고 선언했고 실천했습니다.”
―밤늦게 일하는 직원들은 쫓아낸다면서요.
“무조건 쫓아내는 건 아니고요. 저는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자’라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쓸데없이 상사 눈치 보고 밤늦게까지 앉아 있으면 전기 닳는다고 나가라고 그럽니다. 근무시간 중에 밀도 있게 일하고 나가서 사생활도 즐겨야죠. 눈치 보느라 약속도 못하고 사람 못 만나고 하는 건 과감히 없애버렸죠.”
―그동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까.
“청장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자체 사고가 봇물 터지듯 터졌어요. 당시에는 욕먹는 자리를 왜 맡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보람 있었던 것은 합법보장 불법필벌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죠.
“쌍용자동차 장기 농성 사건입니다. 그 사태가 만약 잘못 전개됐다면 엄청난 피해와 사회적 파문이 생겼을 겁니다. 그걸 스텝 바이 스텝으로 치밀하게 대응해서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 사태는 한 회사의 노사(勞使)관계만이 아니고 한국 사회의 노사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사건이 아닌가 하는 자평(自評)도 해봅니다. 참 잘했다고 대통령으로부터 칭찬도 받았습니다.”
―쌍용차 농성 사태 당시 일부에서는 경찰이 너무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쌍용자동차 공장 내부에는 워낙 위험물질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간 싸움이라고 봤습니다. 제가 우리 경찰에 ‘농성자 중 밖으로 나오는 건 얼마든지 받아주되 지금부터는 외부와 단절시키고 개미 새끼 하나도 못 들어가게 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고사 작전 비슷하게 시간을 끈 것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작전이었으니까요.”
鄕避制의 딜레마
움직임이 거의 없던 강 청장의 손동작이 바빠졌다. 경찰이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일부 지구대에서 심야에 취객이 난동을 부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데요.
“주취(酒醉)소란, 난동이라고도 하죠. 답답하지만 이런 행태에 대한 효율적인 제재 방안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2년 전에 주취자 보호법 만들려다 실패했습니다만, 외국 경찰은 술 먹고 소란을 피우면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외국에서는 그런 상황을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우리는 기껏해야 경범죄 처벌로 5만원 스티커 끊는 것밖에 없단 말이에요. 국회를 상대로 입법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고위직 토착비리 적발하면 특진(特進)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성과는 있습니까.
“건수는 상당히 많은데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해당자가 분명히 있을 텐데 잘 안되네요.”
―이유가 뭡니까.
“의지만 가지고 안되는 게, 사건을 추적해야 할 경찰도 그 지역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지연, 혈연, 학연으로 다 연결돼 있어서 제약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진이라는 당근책을 좀 썼는데, 지금 여러 가지 진행 중에 있으니까 성과가 있을 겁니다.”
―연고 없는 지역으로 발령 내는 향피제(鄕避制)를 도입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딜레마예요. 안면 때문에 일 제대로 못하는 것, 이걸 없애기 위해 다른 지역 사람을 데려오면 또 지역을 너무 모르고 그걸 파악하려면 몇 년 걸려버리니 딜레마죠.”
―서울경찰청과 경기경찰청이 공표한 경찰관 개인의 휴대전화 사용 조회나 은행 계좌 조사를 전(全) 경찰청으로 확대할 생각입니까.
“서울청장의 진의가 잘못 전달된 걸로 알고 있어요. 특히 오락실 관련해서 업주와 유착한 사람들, 경찰관 신분을 망각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어떤 업주를 단속했을 때, 경찰관과 통화 내용이 많이 나오면 그걸 하나의 증거자료로 파악해서 유착관계를 밝혀내겠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경찰관도 사생활이 있는데 모든 경찰관을 상대로 휴대전화 내역을 조사하고 계좌를 조사한다는 것은 맞지도 않고 그런 건 아니라고 보고받았습니다. 특별히 확대할 생각도 없습니다.”
―취임 후 그동안 사라졌던 파출소를 부활시키고 있는데 2003년 도입한 지구대 제도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겁니까.
“미국 경찰은 커뮤니티 폴리싱(Community Policing)이라 해서 구역을 잘게 쪼개나가는 추세예요. 과거 시골 파출소 근무자는 어느 동네 어느 성씨가 많이 살고, 누가 손버릇이 나쁘고 출세했고 다 알았거든요. 이장, 부녀회장, 새마을회장 다 협조받을 수 있었어요. 이게 지구대 제도를 시행하면서 불가능해졌던 겁니다. 우리 경찰들에게 근무 부담을 주더라도 주민들을 위해서는 파출소를 더 확대해야 해요.”
수사권 독립 이루어져야
―경찰의 오랜 숙제인데 수사권 독립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제가 사법고시 출신이라 우리 경찰 내 조직원들은 큰 기대를 거는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인데 지구상 어느 나라도 한국과 똑같은 형사와 소송 구조를 가진 곳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견제와 균형인데 한 기관에 수사권, 기소권, 집행권이 다 집중돼 있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효율적이라는 장점도 있을 수 있지만 남용됐을 경우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수사와 기소는 분리돼야 합니다. 민주당에서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 법안도 발의해 놓은 상태입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반대하고 있는데요.
“지금 국회에는 경찰 입장을 대변해 줄 의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한계예요. 다행히 지금은 옛날보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생각합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언제까지 우리가 다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가, 실제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은데 경찰에 좀 주자’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기 내에 수사권 독립이 이뤄질까요.
“희망하죠.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요. 지금 당장 우리 경찰에 수사권을 주더라도 국민을 실망 안 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보안인력 강화는 정상화 일환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자치경찰제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금 당장 자치경찰제 시행이 가능할까요?
“현재의 지방자치제하에서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봅니다. 현재 행정구역 개편이 논의되고 있는데 그 일이 정리되고 나면 그때 가서 실질적인 방안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공직자 비리를 수사하는 공수처(公搜處) 신설은 필요한 겁니까.
“공수처를 신설할 바에야 경찰에 수사권 일부를 주는 게 낫죠. 결과적으로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드는 건데 그럴 바에야 있는 수사기관에 견제와 균형을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죠. 현재 각종 사건의 98%를 우리 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동의대사건 순국경찰 추모비제막식이 사건 발생 20여 년 만인 지난해 10월 이뤄졌는데 경찰이 너무 권력의 눈치를 봤던 것 아닙니까.
“시대 상황이 그랬다고 이해해 주십시오. 동의대 사건은 경찰관들이 정당한 법집행을 하다가 불법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던진 화염병에 7명이 희생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았던 그들을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고 하니까 전 경찰관의 명예와 희생당한 경찰들의 명예가 엄청나게 상했죠.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시대 상황이 바뀌어서 추모비 제막식도 할 수 있었죠. 유가족의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경찰 보안인력 강화를 추진 중인데 일부에서는 이를 신(新)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경제력 등 남북 격차가 워낙 커져서 우리 한반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김정일이 하는 것을 보세요. 앞과 뒤가 다르지 않습니까.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와 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관계에서 위험이 엄존하고 있는데 없어진 걸로 착각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어요. 공안 정국 조성이라는 말은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보안인력과 조직 축소와 함께 안보위해사범에 대한 보안역량이 약화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요? 정상화시키자는 거죠.”
―간첩을 많이 잡겠다는 거죠?
“잡아야죠.”
유영철 사건 잊히지 않아
강희락 청장은 서울경찰청 형사과장, 경찰청 수사국장을 거친 수사통이다. 경찰청 수사국장 시절에는 21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담당한 사건 중에는 아무래도 유영철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 외에 경찰관 2명을 칼로 찔러 살해한 이학만 사건과 2004년 수능시험 부정행위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사를 하다 보면 동정이 가는 범인도 있고,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범죄자도 있을 텐데 후자에 속하는 범죄자들은 어떤 유형입니까.
“다 알고 있는데도 대놓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죠. 사기 범죄자가 많고요. 여성을 갈취하는 범죄자들이 있어요.”
―경험상 범죄자는 태어난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타고난 DNA가 싸움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범죄자 가운데 100%가 생래적(生來的)이 아닌 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경찰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들이 2005년부터 약 2100여 명의 강력 범죄자를 면담해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이 어느 정도 범죄에 취약한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범죄 수사를 할 때 경험과 과학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지금은 증거재판주의이기 때문에 과학을 중시해야겠죠. 요즘은 경험에서 오는 감(感)이 안 먹히는 경우도 많아요. 감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범죄자들이 많거든요. 옛날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해결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도 필요하지만, 과학수사 비중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호탕하지 않고 깐깐하다”
경찰청장에 내정됐을 때 그의 인물평을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말이 “호탕하다”는 말이다.
―스스로도 본인의 성격이 호탕하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호탕하지 않습니다(웃음). 업무와 관련해서는 ‘깐깐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죠. 저는 업무와 사생활은 완전히 딱 분리합니다. 이게 체질 같아요. 경찰청 정문을 나서는 순간 업무를 잊어버립니다. 집을 나서면 가정일은 잊어버리고 일에 전념합니다.”
―별명 중에 ‘가요반세기’라는 별명이 있던데 노래는 몇 곡 정도 알고 있습니까.
“흘러간 옛 노래 위주로 수백 곡 알죠. 중학교 때 합창반을 했어요. 사실 여건이 안돼서 못했지만 한때는 보컬을 하고 싶었습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탓인지 지금도 스트레스를 참 안 받는 스타일입니다.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상사에게 깨지더라도 노래 실컷 부르고 나면 풀립니다.”
―퇴임 후에 어떤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기억되길 원합니까.
“열심히 바르게 하고 나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청장에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절대 청장이 처신 잘못해서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에는 경찰 출신 의원이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는데 퇴임 후 후배경찰을 위해서 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그것도 팔자가 되면 해야죠. 팔자에 없으면 안 할 겁니다.”
1년 후면 그의 임기도 끝난다. ‘대운의 사나이’에게 펼쳐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장담컨대 강 청장은 그가 지금 원하는 대로 퇴임 후 한가로이 여행만 하고 있을 처지는 못될 것 같다. 퇴임 후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을 하기에는 2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난 후 잡은 그의 손에서 전해오는 악력(握力·손아귀로 무엇을 쥐는 힘)이 너무 셌다.⊙
‘방 분위기는 방주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강희락(姜熙洛) 경찰청장의 첫 인상이 그랬다. 소박했다. 수식어를 덧붙인다면 몸이 단단해 보이는 그는 소박했다. 경찰 수사권 독립 등 경찰이 안고 있는 현안과 관련해 강한 어조로 말할 때도 그의 손동작은 크지 않았다. 크지 않은 대신 입고 있는 경찰제복에 어울리는 절도가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경찰청장이 됐다. 강 청장은 65년 경찰 역사상 치안총감을 두 번 지낸 유일한 인물이다. 이명박(李明博) 정부 출범 초기 청장 후보 물망에 올랐다가 어청수(魚淸秀) 전(前) 경찰청장에게 밀렸지만, 같은 치안총감인 해양경찰청장이 됐다. 해양경찰청장을 끝으로 경찰생활을 마무리할 줄 알았던 그는 어청수 청장의 후임으로 내정됐던 김석기(金碩基) 전 서울경찰청장이 용산사태로 사퇴하면서 경찰 총수로 돌아왔다. 강희락을 수식하는 용어 중 하나인, ‘대운(大運)의 사나이’라 할 만하다.
―본인 스스로도 ‘대운의 사나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잘 만나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공부시켜 주셨고, 건강한 몸도 주셨고요. 운도 좋았고, 운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얘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미리 쓴 답변서엔 “부인(김정미)을 잘 만난 게 대운”이라고 적혀 있던데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났습니까.
“그건 잘못 쓴 것 같고요(웃음).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대학원 졸업할 때까지도 합격이 안돼서 군(軍)에 입대했습니다. 첫 휴가 나와서 집사람과 맞선을 봤어요. ‘나는 제대하고도 공부를 계속할 사람인데 교사니까 뒷바라지 좀 해줄 수 있겠습니까’ 했죠. 그렇게 결혼했어요.”
결혼하려고 잠시 직장생활
강 청장은 만 32세에 사법시험에 붙었다. 그 전에 잠시 직장생활도 했다. 결혼을 앞두고 장인 될 분이 “직업도 없는 사람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서울신탁은행 입행 1주일 후 결혼식을 올렸고, 그 5개월 후 직장을 그만뒀다. 사법시험 준비 때문이었다. 결혼 4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을 그렇게 고집했던 이유는 뭡니까.
“솔직히 말하면 할 게 없어서 했다고 해야 하나? 언론인이 되겠다고 언론사 문도 두드리고 했는데 나이가 넘어서 원서 접수도 안되고, 증권회사나 KT 같은 데도 응시해 봤는데 뜻대로 안됐어요. 나이가 30이 넘어버리니까 다 안돼요. 언젠가는 되겠지 하면서 준비했어요. 아기도 낳고 하니까 먹고살아야 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좀 정의감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쪽에 종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왜 법조인의 길을 가지 않고 경찰을 선택했습니까.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수원 마치니까 법조계로 가기에는 많이 늦었고 경찰 쪽에 기회가 돼서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권유도 있었고요.”
―신탁은행을 그만둘 때 부인이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집사람보다는 부모님이 반대하셨죠. 아버지 모르게 사표 내고 고시 공부했어요. 집사람은 결혼 전 이미 합의했으니까 반대하지 않았죠.”
―‘경찰의 꽃’은 어느 계급입니까.
“총경이죠. 다른 계급은 기간이 너무 짧아서 사실 뭔가 해볼 시간 여유도 없어요. 저는 총경은 근 7년 했고, 경무관 3년, 치안감 3년을 했어요. 총경 때 처음으로 서장을 했죠. 경찰 직위로는 서장이 꽃이에요. 어떤 지역 단위를 책임지는 치안 책임자로 가서 소신도 펼 수 있기 때문에 제일 좋았죠.”
선의의 라이벌 김석기 前 서울경찰청장

“서운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저 스스로도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했었고요. 막상 안되니까 팔자대로 산다고 생각하고, 운명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습니까.
“고려대 동문이라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경찰청장에 내정됐다가 용산사태로 사퇴한 김석기 전 서울청장과 강 청장은 동갑에 동향(경북)으로 두 사람은 경찰 내에서도 소문난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김석기 청장과는 지금도 자주 만납니까.
“우리는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친구의 친구로 연결돼 있지만 처음 알게 된 시기는 경찰에 들어온 후인 1992년도입니다. 지역도 같고 연배도 같고, 승진 연도도 비슷했어요. 총경은 김 청장이 저보다 1년 빨리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인사 때 지역 안배 같은 원칙 때문에 그랬는지 본의 아니게 라이벌로 불리게 됐고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실상은 라이벌이 아니었다는 말로 들립니다.
“선의의 라이벌이었죠. 보통 라이벌이라 하면 상대방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깎아내리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둘은 서로 칭찬하는 사이였습니다. 김 청장이 경북청장을 하고 제가 대구청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경북청장과 대구청장이 서로 불편하게 지냈다고 하는데 우리가 청장을 할 때는 참모들끼리도 아주 잘 지냈습니다. 한 식구처럼 지냈죠. 경찰을 떠난 후에도 소주도 하고 여러 번 만났습니다.”
강희락 청장 취임 당시 경찰은 용산사태로 두 달 가까이 지휘부 공백사태였다. 취임 후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같은 큼직한 국제행사가 열렸고, 노무현(盧武鉉),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국장(國葬), 쌍용자동차 불법농성 사건 등 대형 이슈들이 연이어 터졌다.
合法보장 不法必罰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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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제43회 청룡봉사상 시상식에서 강희락 경찰청장이 수상자들에게 특별승진 임명을 하고 있다. |
“촛불 집회의 망령이 되살아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죠.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이 모이다 보면 순수한 장례를 다른 방향으로 악용하려는 세력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욕을 먹어가면서 통제를 많이 했죠.”
―촛불 사태 때 그랬지만 불법 폭력 시위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입니다.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청장으로서 불법 폭력 시위 근절책은 있습니까.
“이제까지 법집행 기관이 계속 내세운 게 ‘합법(合法)보장 불법필벌(不法必罰)’이었어요. 그런데 말로만 했지 실천을 못했어요. 불법시위자를 잡아놔도 풀어주라 하는 때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막말로 ‘깽판 쳐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돼 있었죠. 근절책은 다른 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엄정한 법집행을 했습니까.
“그럼요. 지금은 시위대가 넘을 수 없는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이 있습니다. 합법과 불법, 적법과 위법은 선(線) 하나 차이예요. 폴리스 라인을 넘는 순간 불법과 위법 상태로 돼 버리는 겁니다. 우리는 적법 절차를 밟아야 하니까 3회 이상 해산 명령을 내려요. 그래도 불응할 경우에 검거하는데, 요즘은 두 번만 해산 명령을 하면 시위대가 해산해요. 세 번 하면 검거를 해버리니까요.”
―2008년 촛불 사태를 비롯한 각종 불법집회자를 지금도 추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시위에서 채증한 자료를 가지고 신원확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은 상습 시위꾼 자료를 축적해서 많이 검거했습니다. 본인은 불법시위를 벌인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다가 ‘당신 옛날 여기 있지 않았느냐’ 이러면서 증거를 들이대면 깜짝 놀라죠. 법을 어기면 언젠가는 응징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법시위에는 과거처럼 최루탄을 사용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써야 할 상황이 된다면 써야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루탄을 써야 할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해야죠. 정말 급박한 상황, 경찰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상황까지 된다면 써야죠. 그 전 단계로 최루액을 섞어서 분사하고 있습니다.”
―불법 시위 현장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물리적 충돌은 당연히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물리적인 힘끼리 부딪치면 우리 경찰이 비무장이라고 해도 부딪치는 접점에 있는 사람은 다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장비와 차를 개발해서 서로 물리적 충돌이 생기지 않게끔 미연에 방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상황이 돼야 최루탄을 쓸 수 있습니까.
“현장에서 봐야 알죠. 사전에 대비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2007년 촛불 사태가 그 정도 상황 아니었습니까.
“제가 그때는 해경에 있었습니다.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뭐라고 답변할 수 없군요.”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다가 진압 과정에서 경찰과 민간인 희생자를 낸 용산사태 때 경찰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말 있어서는 안될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아쉽게 생각합니다. 어느 지휘관이 자기 부하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 거기에 투입하겠습니까. 누구도 상상 못했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해서, 결과가 너무나 엄청나게 나쁘게 발생해서 좀 더 잘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시위 진압에 동원되는 전·의경 폐지론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근본적으로 전·의경 제도는 폐지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집회시위 문화가 개선된다는 전제하에서죠. 지금 상태로서는 시기상조입니다. 누가 막아도 막아야 하는데 전·의경 없이 그런 불법 시위를 막는 것은 힘듭니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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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9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강희락 신임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우선 인사 문제로 잡음은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어디 가서 제 신상에 대해서 누구에게 부탁해 본 적도 없고 오직 일만 열심히 했는데 알아주더라는 겁니다. 상사가 돼 보니 부하 직원 중에 누가 능력 있고 열심히 하는지 다 압니다. 그런데 일 따로, 진급 따로 이런 얘기가 많아서 이건 고쳐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빽’을 동원하는 것은 막겠다고 선언했고 실천했습니다.”
―밤늦게 일하는 직원들은 쫓아낸다면서요.
“무조건 쫓아내는 건 아니고요. 저는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자’라는 말을 제일 좋아합니다. 쓸데없이 상사 눈치 보고 밤늦게까지 앉아 있으면 전기 닳는다고 나가라고 그럽니다. 근무시간 중에 밀도 있게 일하고 나가서 사생활도 즐겨야죠. 눈치 보느라 약속도 못하고 사람 못 만나고 하는 건 과감히 없애버렸죠.”
―그동안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까.
“청장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자체 사고가 봇물 터지듯 터졌어요. 당시에는 욕먹는 자리를 왜 맡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보람 있었던 것은 합법보장 불법필벌을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죠.
“쌍용자동차 장기 농성 사건입니다. 그 사태가 만약 잘못 전개됐다면 엄청난 피해와 사회적 파문이 생겼을 겁니다. 그걸 스텝 바이 스텝으로 치밀하게 대응해서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 사태는 한 회사의 노사(勞使)관계만이 아니고 한국 사회의 노사관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사건이 아닌가 하는 자평(自評)도 해봅니다. 참 잘했다고 대통령으로부터 칭찬도 받았습니다.”
―쌍용차 농성 사태 당시 일부에서는 경찰이 너무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쌍용자동차 공장 내부에는 워낙 위험물질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는 시간 싸움이라고 봤습니다. 제가 우리 경찰에 ‘농성자 중 밖으로 나오는 건 얼마든지 받아주되 지금부터는 외부와 단절시키고 개미 새끼 하나도 못 들어가게 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고사 작전 비슷하게 시간을 끈 것이 주효했던 것 같습니다.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작전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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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10일 해양경찰 해상특수기동대 발대식이 열린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발대식을 마친 강희락 해양경찰청장이 대원들의 장비를 검점해 보고 있다. |
―일부 지구대에서 심야에 취객이 난동을 부리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데요.
“주취(酒醉)소란, 난동이라고도 하죠. 답답하지만 이런 행태에 대한 효율적인 제재 방안이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2년 전에 주취자 보호법 만들려다 실패했습니다만, 외국 경찰은 술 먹고 소란을 피우면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외국에서는 그런 상황을 제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우리는 기껏해야 경범죄 처벌로 5만원 스티커 끊는 것밖에 없단 말이에요. 국회를 상대로 입법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고위직 토착비리 적발하면 특진(特進)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성과는 있습니까.
“건수는 상당히 많은데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해당자가 분명히 있을 텐데 잘 안되네요.”
―이유가 뭡니까.
“의지만 가지고 안되는 게, 사건을 추적해야 할 경찰도 그 지역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면 지연, 혈연, 학연으로 다 연결돼 있어서 제약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진이라는 당근책을 좀 썼는데, 지금 여러 가지 진행 중에 있으니까 성과가 있을 겁니다.”
―연고 없는 지역으로 발령 내는 향피제(鄕避制)를 도입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딜레마예요. 안면 때문에 일 제대로 못하는 것, 이걸 없애기 위해 다른 지역 사람을 데려오면 또 지역을 너무 모르고 그걸 파악하려면 몇 년 걸려버리니 딜레마죠.”
―서울경찰청과 경기경찰청이 공표한 경찰관 개인의 휴대전화 사용 조회나 은행 계좌 조사를 전(全) 경찰청으로 확대할 생각입니까.
“서울청장의 진의가 잘못 전달된 걸로 알고 있어요. 특히 오락실 관련해서 업주와 유착한 사람들, 경찰관 신분을 망각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어떤 업주를 단속했을 때, 경찰관과 통화 내용이 많이 나오면 그걸 하나의 증거자료로 파악해서 유착관계를 밝혀내겠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경찰관도 사생활이 있는데 모든 경찰관을 상대로 휴대전화 내역을 조사하고 계좌를 조사한다는 것은 맞지도 않고 그런 건 아니라고 보고받았습니다. 특별히 확대할 생각도 없습니다.”
―취임 후 그동안 사라졌던 파출소를 부활시키고 있는데 2003년 도입한 지구대 제도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겁니까.
“미국 경찰은 커뮤니티 폴리싱(Community Policing)이라 해서 구역을 잘게 쪼개나가는 추세예요. 과거 시골 파출소 근무자는 어느 동네 어느 성씨가 많이 살고, 누가 손버릇이 나쁘고 출세했고 다 알았거든요. 이장, 부녀회장, 새마을회장 다 협조받을 수 있었어요. 이게 지구대 제도를 시행하면서 불가능해졌던 겁니다. 우리 경찰들에게 근무 부담을 주더라도 주민들을 위해서는 파출소를 더 확대해야 해요.”
수사권 독립 이루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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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은 지난해 시위대와 물리적으로 충돌했을 때 부상자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차벽(車壁) 차량’을 제작했다. 지난해 7월 30일, 서울경찰청 앞마당에서 강 청장이 차벽의 방탄기능 등을 점검하기 위해 해머로 때리고 있다. |
“제가 사법고시 출신이라 우리 경찰 내 조직원들은 큰 기대를 거는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인데 지구상 어느 나라도 한국과 똑같은 형사와 소송 구조를 가진 곳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견제와 균형인데 한 기관에 수사권, 기소권, 집행권이 다 집중돼 있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효율적이라는 장점도 있을 수 있지만 남용됐을 경우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수사와 기소는 분리돼야 합니다. 민주당에서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서 법안도 발의해 놓은 상태입니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반대하고 있는데요.
“지금 국회에는 경찰 입장을 대변해 줄 의원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한계예요. 다행히 지금은 옛날보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생각합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언제까지 우리가 다 끌어안고 있어야 하는가, 실제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은데 경찰에 좀 주자’ 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기 내에 수사권 독립이 이뤄질까요.
“희망하죠.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요. 지금 당장 우리 경찰에 수사권을 주더라도 국민을 실망 안 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보안인력 강화는 정상화 일환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실현되려면 자치경찰제가 시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지금 당장 자치경찰제 시행이 가능할까요?
“현재의 지방자치제하에서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봅니다. 현재 행정구역 개편이 논의되고 있는데 그 일이 정리되고 나면 그때 가서 실질적인 방안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공직자 비리를 수사하는 공수처(公搜處) 신설은 필요한 겁니까.
“공수처를 신설할 바에야 경찰에 수사권 일부를 주는 게 낫죠. 결과적으로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드는 건데 그럴 바에야 있는 수사기관에 견제와 균형을 취할 수 있는 방안을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죠. 현재 각종 사건의 98%를 우리 경찰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동의대사건 순국경찰 추모비제막식이 사건 발생 20여 년 만인 지난해 10월 이뤄졌는데 경찰이 너무 권력의 눈치를 봤던 것 아닙니까.
“시대 상황이 그랬다고 이해해 주십시오. 동의대 사건은 경찰관들이 정당한 법집행을 하다가 불법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이 던진 화염병에 7명이 희생당한 일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았던 그들을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고 하니까 전 경찰관의 명예와 희생당한 경찰들의 명예가 엄청나게 상했죠.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시대 상황이 바뀌어서 추모비 제막식도 할 수 있었죠. 유가족의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경찰 보안인력 강화를 추진 중인데 일부에서는 이를 신(新)공안정국 조성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경제력 등 남북 격차가 워낙 커져서 우리 한반도에는 더 이상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 김정일이 하는 것을 보세요. 앞과 뒤가 다르지 않습니까.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와 정체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관계에서 위험이 엄존하고 있는데 없어진 걸로 착각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어요. 공안 정국 조성이라는 말은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보안인력과 조직 축소와 함께 안보위해사범에 대한 보안역량이 약화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요? 정상화시키자는 거죠.”
―간첩을 많이 잡겠다는 거죠?
“잡아야죠.”
유영철 사건 잊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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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3일 대전현충원에서 ‘동의대 사건 순국 경찰관 2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 참석한 강 청장이 순국 경찰관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
―담당한 사건 중에는 아무래도 유영철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 외에 경찰관 2명을 칼로 찔러 살해한 이학만 사건과 2004년 수능시험 부정행위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사를 하다 보면 동정이 가는 범인도 있고,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운 범죄자도 있을 텐데 후자에 속하는 범죄자들은 어떤 유형입니까.
“다 알고 있는데도 대놓고 거짓말하는 사람들이죠. 사기 범죄자가 많고요. 여성을 갈취하는 범죄자들이 있어요.”
―경험상 범죄자는 태어난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타고난 DNA가 싸움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건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범죄자 가운데 100%가 생래적(生來的)이 아닌 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경찰의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들이 2005년부터 약 2100여 명의 강력 범죄자를 면담해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이 어느 정도 범죄에 취약한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범죄 수사를 할 때 경험과 과학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지금은 증거재판주의이기 때문에 과학을 중시해야겠죠. 요즘은 경험에서 오는 감(感)이 안 먹히는 경우도 많아요. 감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범죄자들이 많거든요. 옛날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해결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도 필요하지만, 과학수사 비중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호탕하지 않고 깐깐하다”
경찰청장에 내정됐을 때 그의 인물평을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말이 “호탕하다”는 말이다.
―스스로도 본인의 성격이 호탕하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호탕하지 않습니다(웃음). 업무와 관련해서는 ‘깐깐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죠. 저는 업무와 사생활은 완전히 딱 분리합니다. 이게 체질 같아요. 경찰청 정문을 나서는 순간 업무를 잊어버립니다. 집을 나서면 가정일은 잊어버리고 일에 전념합니다.”
―별명 중에 ‘가요반세기’라는 별명이 있던데 노래는 몇 곡 정도 알고 있습니까.
“흘러간 옛 노래 위주로 수백 곡 알죠. 중학교 때 합창반을 했어요. 사실 여건이 안돼서 못했지만 한때는 보컬을 하고 싶었습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탓인지 지금도 스트레스를 참 안 받는 스타일입니다.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상사에게 깨지더라도 노래 실컷 부르고 나면 풀립니다.”
―퇴임 후에 어떤 모습으로 후배들에게 기억되길 원합니까.
“열심히 바르게 하고 나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청장에 취임하면서 직원들에게 ‘절대 청장이 처신 잘못해서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에는 경찰 출신 의원이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는데 퇴임 후 후배경찰을 위해서 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그것도 팔자가 되면 해야죠. 팔자에 없으면 안 할 겁니다.”
1년 후면 그의 임기도 끝난다. ‘대운의 사나이’에게 펼쳐질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장담컨대 강 청장은 그가 지금 원하는 대로 퇴임 후 한가로이 여행만 하고 있을 처지는 못될 것 같다. 퇴임 후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생활을 하기에는 2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난 후 잡은 그의 손에서 전해오는 악력(握力·손아귀로 무엇을 쥐는 힘)이 너무 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