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春根
1952년 서울 출생. 연세大 정외과·同 대학원 졸업. 美 텍사스 주립大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자유기업원 부원장 역임.
1952년 서울 출생. 연세大 정외과·同 대학원 졸업. 美 텍사스 주립大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자유기업원 부원장 역임.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지난 4월27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중국 유학생들.
중국문제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1992년 韓中修交(한중수교) 이후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우호적으로 변해 왔다. 盧武鉉(노무현) 정권 시절 일부 인사들은 『중국이야말로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작은 잘못에 대해서는 즉각 분노했지만, 중국의 잘못에 대해서는 대체로 너그러웠고 항의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2007년 5월 한국 화물선이 중국 화물선에 들이받혀 선원들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중국 측에 변변한 항의도 하지 못했다. 중국 측 잘못이 분명했는데도 말이다.
盧武鉉 정부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가 되겠다」는 발상까지 했다. 그런 발상은 미국과의 동맹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대한민국이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면 우선 미국과의 동맹관계부터 해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東北工程(동북공정), 남북한을 중국의 변방 정도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오만불손한 태도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키웠다.
특히 지난 4월 베이징(北京)올림픽 聖火(성화) 봉송 과정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저지른 서울시청 앞 난동사건은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중국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거대한 중국의 출현 앞에 한국이 생존을 담보할 국가전략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중국의 젊은 학생들 수천 명이 서울시청 등 서울 시내 곳곳에 집단적으로 모여 티베트의 자유화를 지지하는 한국 데모대를 폭행하는 난동을 저질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살아본 경험이 없는 중국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외국 수도에서 그 나라 국민에게 부린 중국인의 행패를 『젊은 학생들의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두둔하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중국 유학생들이 보인 행동이 중국 정부의 지시 아래 조직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중국은 어떤 나라이고 우리는 어떻게 중국에 대처해야 할 것인가?
중국인의 개인 소득, 21년 만에 7배 성장
나폴레옹은 『잠자고 있는 중국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중국이 잠에서 깨어날 경우 세계가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半(반)식민지가 되는 처지로 몰락했다. 전쟁과 內戰(내전)이라는 일련의 혼돈을 겪은 후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라는 새로운 나라로 국제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冷戰(냉전) 시절 우리가 「中共(중공)」이라고 부르던 이 나라는 국제공산주의 세력이 몰락하기 10여 년 전 사회주의로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일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중국은 1970년대 후반에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통해 경제체제를 변질시키기 시작했고 지난 3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잠자는 사자」이기는커녕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허약한 국가라는 수모를 당했던 중국은 20세기 후반 스스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깨어난 중국은 나폴레옹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 세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1842년부터 20세기 중엽 공산중국을 건국한 1949년 사이의 기간을 「모욕의 시대」라 규정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으로 보면 1860년대 이전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초강대국이었다. 1800년 당시 중국의 제조업은 세계 제조업 비중의 33.3%에 이르렀다. 1860년 영국이 중국을 막 앞서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등극하던 무렵, 중국의 제조업 생산 능력은 여전히 19.7%에 이르렀다(1860년 영국은 19.9 %). 이는 같은 해 미국 제조업 생산량의 2.7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국이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몰락했다가 20세기 후반 등소평의 개혁정책 이후 강대국으로 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포춘」(2001년 5월14일)은 20세기 후반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국의 개인소득이 2.5배 증가하는 데는 19세기 전체가 필요했다. 미국의 개인소득은 1870년부터 1930년에 이르는 60년간 3.5배 증가했다. 일본의 개인소득은 1950년부터 1975년까지 25년 만에 6배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성장속도가 가장 빨랐다, 1979년부터 2001년까지 21년 만에 중국의 개인 소득은 7배가 되었다>
패권국가를 향한 중국의 집념
중국과 같은 초거대 국가가 급성장하는 경우 국제정치 힘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어떤 국가라도 강대국이 되겠다는 것은 당연한 국가 목표이지만 중국은 覇權國(패권국)을 향한 집념이 특히 강하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중국은 패권국이 되어야 한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연구한 스티븐 모셔는 『중국은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적 불만, 이슬람 혁명국가의 편집증적 민족주의, 세력이 절정이었던 소련의 팽창주의적 야망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중국은 유감이 많은 신흥 超(초)강대국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서 自國(자국)의 정당한 위치를 되찾을 때를 기다리는 패권국가다』라고 단언한다.
중국의 급성장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국제정치 체제에 구조적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국제체제의 급격한 역학 구조 변화는 불안과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평론가 조지 윌은 『중국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100년 전 독일의 성장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의 급성장은 세계대전으로 종결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국제정치학적 근거와 이론에 충실한 분석이다. 아테네의 급격한 힘의 증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켰으며 빌헬름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급격한 힘의 증가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촉발했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패권 장악을 위해 미국에 도전할 나라가 될 것인가?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수 없는 우리의 국가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중국인의 세계관 혹은 국제정치관, 이에 연원하는 「중국적 국제행동」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위계질서에 입각한 중국식 세계관
국가로서 중국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학자들은 『「중국」이라는 개념을 오늘날의 「국민국가」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국」은 국가이기보다는 문명 혹은 제국에 더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이라는 나라는 영토의 3분의 1 이상의 지역에 중국인이 아닌 다른 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은 이들을 독재적인 방법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모두 같은 나라, 즉 「하나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少數(소수) 민족들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엄연히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중국은 또한 장구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정치사상과 철학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의 「儒家思想(유가사상)」은 인간사회의 조화로운 모습을 인간관계의 수평적인 평등에서가 아니라 수직적인 位階(위계)에서 찾는다.
그리스의 정치사상이 「인간은 상호 평등할 때 질서와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본 것과 달리 중국의 정치사상은 「인간관계의 분명한 위계에서 질서와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즉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형과 동생 사이에는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 이러한 上下 관계가 잘 지켜지는 곳에 평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관점에서는 인간관계의 위아래가 무너진 사회는 마치 禽獸(금수)의 사회나 다를 바 없다. 동물의 세상과 인간 세상은 구성 방식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유교 사상은 漢(한)나라에 이르러 공식적인 정치사상으로 승격됐을 뿐 아니라 중국이 보는 세계관 혹은 국제정치관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서양 학자들이 「유교적 세계관」이라고 칭하는 세계관은 바람직한 세계를 바로 天子(천자), 즉 중국의 황제를 頂點(정점)에 놓고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중국에 대해 字小事大(자소사대)의 禮(예)를 지키는 관계로 본다. 字小事大란 「위의 나라를 섬기고 아래 나라를 돌본다」는 뜻이다.
중국적 국제질서 관점에는 위에 있는 나라와 아래에 있는 나라라는 개념이 분명히 존재한다. 중국은 물론 꼭대기에 있는 나라다. 중국의 문화와 사상을 섬기기로 하고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禮(예)를 행하는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중국식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 들어온 이는 모두 천자의 아들과 딸들이다.
중국을 따르기로 하고 天子를 공경하는 지구촌의 지도자와 국민은 四海同胞(사해동포)다. 全세계 모든 인민이 천자의 아들딸, 중국의 동포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아래에 있는 나라들과의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 국경을 확정한 바 없다. 중국은 국경선 대신 「변방」이라는 개념으로 중국과 다른 나라의 경계를 구분했다. 중원의 힘이 늘어나면 변방은 확대되었고, 중원이 약해지면 변방도 줄어들었다.
중국의 對外전쟁은 「敎化」·「징벌」
중국은 다른 나라와 무력 충돌을 전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이 말하는 「전쟁」이란 格(격)이 같은 나라들이 싸우는 것이다.
유일한 나라인 중국이 아래의 나라, 무식한 나라, 無禮(무례)한 나라들과 무력으로 다투는 것은 敎化(교화)와 징벌(징벌)이지 전쟁이 아니다. 중국의 역사책은 흉노족 등이 도발한 전쟁들을 「入寇(입구)」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오랑캐가 들어오다」는 의미다.
오늘날 현대 국제정치와 국제법의 기본적 개념은 「모든 국가는 비록 힘의 크기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동등한 主權(주권)국가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 간 평등을 국제평화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인간관계에는 물론 국제관계에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하게 확립되는 것이 평화를 위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국인들이 오랫동안 익숙했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 중국을 최고로 간주하는 中華思想(중화사상)은 서구의 국제질서와 충돌하면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중국인들의 마음 한구석의 중화사상, 중국우월주의, 유교적 국제질서 관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적 국제정치 관점들은 중국이 힘을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표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냉전 당시 이웃나라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으나 이를 서구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 예로 1979년 중국은 베트남을 침공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적이 있다. 중국은 계획했던 대로 전쟁을 개시하고 종료했다. 전투의 성과만 보면 분명히 중국이 패배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베트남에 「교훈」을 주었고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교훈을 주려는 전쟁이었으니 패배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한 이후 한국에 파견한 중국 대사들은 중국 정치가들의 연령과 비교할 때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간주하는 일 등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전통시대 중화사상의 잔재를 느끼게 한다.
앞에서 중국에 「少數 민족이 살고 있다」 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중국적 세계관이 아니라 현대의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21세기의 중국인들은 티베트를 중국적 세계관에 입각해 생각하고 다루고 있다. 중국의 보통 사람들은 「티베트人들이 중국의 문화와 사상,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면, 중국의 아들딸, 즉 四海同胞로 인정해 줄 터인데 왜 독립하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국의 지도급 정치가들은 티베트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은 미국을 대체할 大國(대국) 중국의 꿈을 파탄시키는 것은 물론 현재의 중국마저 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티베트의 독립은 위구르族, 몽골族(內몽골), 만주族, 그리고 대만 독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韜光養晦」에서 「和平굴起」로
21세기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표적 이론가인 시카고 대학의 미어 셰이머 교수는 그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한국어 번역판 序文(서문)에서 중국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그간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속하게 될 경우 중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마치 미국이 西半球(서반구)를 지배하는 것처럼 아시아 대륙에서 패권적 지위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중국 문화가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라든지, 중국의 지도자들이 잘못된 길로 인도되기 때문은 아니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가장 좋은 보장 장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저지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무대에서 미국에 근접한 도전국의 존재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와 유사한 심각한 안보경쟁이 야기될 것이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물론 정치 지도자들조차 국제정치를 낭만적·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높다. 그러나 强大國(강대국)이든 弱小國(약소국)이든 모든 나라는 自國의 힘을 증강시키기 원하며 국가들의 경쟁은 언제라도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중국이 또다시 지난 1000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노력이다. 미국이 이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처럼 강대국들이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지만 결국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강대국 국제정치는 물론 일반적인 국제정치도 비극적인 일로 보이는 것이다.
중국은 당연히 패권을 추구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외교적인 修辭(수사)일 뿐이다. 미국도 『중국의 발전은 미국에 좋은 일이며 미국과 중국은 우호관계,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제정치가 현재보다 훨씬 진보한 이후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이 시작된 1980년대에는 「韜光養晦(도광양회)」의 전략을 취했다. 착실히 실력을 키우지만 대외관계의 범위는 줄이면서 불필요한 위협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공산중국이 제3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며 벌였던 확장 지향의 외교와 반대다.
1990년대 후반 중국의 국력 증강이 국제사회에서 점차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자 중국은 2003년 「和平?起(화평굴기)」라는 담론을 제시했다. 「평화롭게 부상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Peaceful Rise」라고 부른다.
그러나 굴기라는 말이 「급속한 부상」이라는 뜻을 포함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중국은 「和平發展(화평발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고안해 냈다.
그러던 중국은 2007년 「大國?起(대국굴기)」라는 용어를 고안해 대대적인 TV 프로그램 방영 및 출판으로 중국의 패권 의지를 다시 과시했다.
중국의 對美 협박
미국은 중국의 힘이 급속히 증강하고 있는 「굴기」 현상 그 자체를 우려하고 있다. 그것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관심 밖이다. 약한 나라가 힘이 강해지면 당연히 그 행동도 달라진다.
1995년 중국은 독립을 주장하는 후보가 나온 대만의 선거를 위협하기 위해 대만을 향한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었다. 미국이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의 고위급 장성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미국인)은 1950년대 우리를 核(핵)공격할 수 있었을 때와 같은 지렛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미국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미국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 그러니 위협하지 마라. 궁극적으로 미국은 대만보다는 로스앤젤레스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미국의 관리들은 물론 이 말을 공갈로 인식했지만, 결코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말이라고 판단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항공모함 두 척을 대만 인근 해협에 급파하는 것으로 중국의 미사일 실험에 대응했다.
학자들 중에는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이 아무 저항 없이 순조롭게 미국을 앞질러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앵글로색슨의 好戰的(호전적)인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미국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미국은 지난 3월 하순, 중국이 대만의 민주주의 선거를 훼방할지 모른다는 명분 아래 항공모함 두 척을 대만해협에 파견했다. 3월 초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봉기가 발생하고 중국 정부가 이를 탄압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1척의 航母(항모)를 증파, 4월 중순 당시 대만 해협에는 3척의 미국 항공모함이 포진해 있었다. 3척의 항모란 이라크 전쟁 수준의 전쟁을 시작할 때 배치하는 군사력 규모다.
가치에 따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국은 地政學的(지정학적)으로 중국의 부상과 그 결과 야기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래서 어려운 전략적 선택에 당면할 수 있으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전략적 선택에 기준은 있다. 우리가 선호하는 정치·경제적 가치, 우리가 지향하는 사상과 국가목표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면 된다.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인권·평등·평화·자존 등이 바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가치다.
이념을 떠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선택한다면 좀더 막강한 편에 서야 한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군사력(군사비) 및 경제력(GDP)에서 미국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미국의 GDP는 중국의 약 5배, (세계은행 2007) 군사비는 4.8배(2005년 기준, 「밀리터리 밸런스」 2007)다.
힘이 비대칭적인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연구한 폴 교수는 경제적·군사적 능력이 우세한 국가가 상대 국가보다 2배 이상 강한 경우를 「非대칭적 관계」 라고 정의했다. 미국과 중국의 실질적인 힘의 격차를 보면, 非대칭적인 두 나라가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가정 자체가 시기상조의 공허한 논란일 수 있다.●
2007년 5월 한국 화물선이 중국 화물선에 들이받혀 선원들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중국 측에 변변한 항의도 하지 못했다. 중국 측 잘못이 분명했는데도 말이다.
盧武鉉 정부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가 되겠다」는 발상까지 했다. 그런 발상은 미국과의 동맹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대한민국이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갈등에서 중립을 지키겠다면 우선 미국과의 동맹관계부터 해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東北工程(동북공정), 남북한을 중국의 변방 정도로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오만불손한 태도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키웠다.
특히 지난 4월 베이징(北京)올림픽 聖火(성화) 봉송 과정에서 중국 유학생들이 저지른 서울시청 앞 난동사건은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중국인들은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거대한 중국의 출현 앞에 한국이 생존을 담보할 국가전략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중국의 젊은 학생들 수천 명이 서울시청 등 서울 시내 곳곳에 집단적으로 모여 티베트의 자유화를 지지하는 한국 데모대를 폭행하는 난동을 저질렀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 살아본 경험이 없는 중국 학생들이 그렇게 많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외국 수도에서 그 나라 국민에게 부린 중국인의 행패를 『젊은 학생들의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두둔하는 중국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중국 유학생들이 보인 행동이 중국 정부의 지시 아래 조직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과연 중국은 어떤 나라이고 우리는 어떻게 중국에 대처해야 할 것인가?
중국인의 개인 소득, 21년 만에 7배 성장
나폴레옹은 『잠자고 있는 중국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중국이 잠에서 깨어날 경우 세계가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해 半(반)식민지가 되는 처지로 몰락했다. 전쟁과 內戰(내전)이라는 일련의 혼돈을 겪은 후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라는 새로운 나라로 국제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冷戰(냉전) 시절 우리가 「中共(중공)」이라고 부르던 이 나라는 국제공산주의 세력이 몰락하기 10여 년 전 사회주의로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일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중국은 1970년대 후반에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통해 경제체제를 변질시키기 시작했고 지난 3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잠자는 사자」이기는커녕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는 허약한 국가라는 수모를 당했던 중국은 20세기 후반 스스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깨어난 중국은 나폴레옹이 말했던 것처럼 이제 세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1842년부터 20세기 중엽 공산중국을 건국한 1949년 사이의 기간을 「모욕의 시대」라 규정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으로 보면 1860년대 이전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초강대국이었다. 1800년 당시 중국의 제조업은 세계 제조업 비중의 33.3%에 이르렀다. 1860년 영국이 중국을 막 앞서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등극하던 무렵, 중국의 제조업 생산 능력은 여전히 19.7%에 이르렀다(1860년 영국은 19.9 %). 이는 같은 해 미국 제조업 생산량의 2.7배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국이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몰락했다가 20세기 후반 등소평의 개혁정책 이후 강대국으로 재기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포춘」(2001년 5월14일)은 20세기 후반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국의 개인소득이 2.5배 증가하는 데는 19세기 전체가 필요했다. 미국의 개인소득은 1870년부터 1930년에 이르는 60년간 3.5배 증가했다. 일본의 개인소득은 1950년부터 1975년까지 25년 만에 6배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성장속도가 가장 빨랐다, 1979년부터 2001년까지 21년 만에 중국의 개인 소득은 7배가 되었다>
패권국가를 향한 중국의 집념
중국과 같은 초거대 국가가 급성장하는 경우 국제정치 힘의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어떤 국가라도 강대국이 되겠다는 것은 당연한 국가 목표이지만 중국은 覇權國(패권국)을 향한 집념이 특히 강하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중국은 패권국이 되어야 한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연구한 스티븐 모셔는 『중국은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적 불만, 이슬람 혁명국가의 편집증적 민족주의, 세력이 절정이었던 소련의 팽창주의적 야망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중국은 유감이 많은 신흥 超(초)강대국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서 自國(자국)의 정당한 위치를 되찾을 때를 기다리는 패권국가다』라고 단언한다.
중국의 급성장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국제정치 체제에 구조적 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국제체제의 급격한 역학 구조 변화는 불안과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미국의 평론가 조지 윌은 『중국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100년 전 독일의 성장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의 급성장은 세계대전으로 종결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국제정치학적 근거와 이론에 충실한 분석이다. 아테네의 급격한 힘의 증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켰으며 빌헬름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급격한 힘의 증가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촉발했다.
그렇다면 과연 중국은 패권 장악을 위해 미국에 도전할 나라가 될 것인가?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수 없는 우리의 국가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중국인의 세계관 혹은 국제정치관, 이에 연원하는 「중국적 국제행동」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위계질서에 입각한 중국식 세계관
국가로서 중국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학자들은 『「중국」이라는 개념을 오늘날의 「국민국가」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국」은 국가이기보다는 문명 혹은 제국에 더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이라는 나라는 영토의 3분의 1 이상의 지역에 중국인이 아닌 다른 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은 이들을 독재적인 방법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모두 같은 나라, 즉 「하나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少數(소수) 민족들은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엄연히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중국은 또한 장구한 역사와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정치사상과 철학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중국의 「儒家思想(유가사상)」은 인간사회의 조화로운 모습을 인간관계의 수평적인 평등에서가 아니라 수직적인 位階(위계)에서 찾는다.
그리스의 정치사상이 「인간은 상호 평등할 때 질서와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본 것과 달리 중국의 정치사상은 「인간관계의 분명한 위계에서 질서와 평화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즉 왕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형과 동생 사이에는 위계 질서가 존재한다. 이러한 上下 관계가 잘 지켜지는 곳에 평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관점에서는 인간관계의 위아래가 무너진 사회는 마치 禽獸(금수)의 사회나 다를 바 없다. 동물의 세상과 인간 세상은 구성 방식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유교 사상은 漢(한)나라에 이르러 공식적인 정치사상으로 승격됐을 뿐 아니라 중국이 보는 세계관 혹은 국제정치관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서양 학자들이 「유교적 세계관」이라고 칭하는 세계관은 바람직한 세계를 바로 天子(천자), 즉 중국의 황제를 頂點(정점)에 놓고 다른 나라의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중국에 대해 字小事大(자소사대)의 禮(예)를 지키는 관계로 본다. 字小事大란 「위의 나라를 섬기고 아래 나라를 돌본다」는 뜻이다.
중국적 국제질서 관점에는 위에 있는 나라와 아래에 있는 나라라는 개념이 분명히 존재한다. 중국은 물론 꼭대기에 있는 나라다. 중국의 문화와 사상을 섬기기로 하고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禮(예)를 행하는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중국식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 들어온 이는 모두 천자의 아들과 딸들이다.
중국을 따르기로 하고 天子를 공경하는 지구촌의 지도자와 국민은 四海同胞(사해동포)다. 全세계 모든 인민이 천자의 아들딸, 중국의 동포가 될 수 있다.
중국은 아래에 있는 나라들과의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어 국경을 확정한 바 없다. 중국은 국경선 대신 「변방」이라는 개념으로 중국과 다른 나라의 경계를 구분했다. 중원의 힘이 늘어나면 변방은 확대되었고, 중원이 약해지면 변방도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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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티베트人들의 독립 요구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라싸에 투입된 중국군. |
유일한 나라인 중국이 아래의 나라, 무식한 나라, 無禮(무례)한 나라들과 무력으로 다투는 것은 敎化(교화)와 징벌(징벌)이지 전쟁이 아니다. 중국의 역사책은 흉노족 등이 도발한 전쟁들을 「入寇(입구)」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오랑캐가 들어오다」는 의미다.
오늘날 현대 국제정치와 국제법의 기본적 개념은 「모든 국가는 비록 힘의 크기에서는 차이가 있더라도 동등한 主權(주권)국가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 간 평등을 국제평화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인간관계에는 물론 국제관계에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하게 확립되는 것이 평화를 위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국인들이 오랫동안 익숙했던 중국 중심의 세계관, 중국을 최고로 간주하는 中華思想(중화사상)은 서구의 국제질서와 충돌하면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중국인들의 마음 한구석의 중화사상, 중국우월주의, 유교적 국제질서 관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적 국제정치 관점들은 중국이 힘을 회복하는 것과 동시에 표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냉전 당시 이웃나라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으나 이를 서구적인 의미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 예로 1979년 중국은 베트남을 침공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적이 있다. 중국은 계획했던 대로 전쟁을 개시하고 종료했다. 전투의 성과만 보면 분명히 중국이 패배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베트남에 「교훈」을 주었고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교훈을 주려는 전쟁이었으니 패배라는 개념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한 이후 한국에 파견한 중국 대사들은 중국 정치가들의 연령과 비교할 때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간주하는 일 등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전통시대 중화사상의 잔재를 느끼게 한다.
앞에서 중국에 「少數 민족이 살고 있다」 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중국적 세계관이 아니라 현대의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21세기의 중국인들은 티베트를 중국적 세계관에 입각해 생각하고 다루고 있다. 중국의 보통 사람들은 「티베트人들이 중국의 문화와 사상, 정치적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면, 중국의 아들딸, 즉 四海同胞로 인정해 줄 터인데 왜 독립하려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중국의 지도급 정치가들은 티베트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티베트의 독립은 미국을 대체할 大國(대국) 중국의 꿈을 파탄시키는 것은 물론 현재의 중국마저 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티베트의 독립은 위구르族, 몽골族(內몽골), 만주族, 그리고 대만 독립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韜光養晦」에서 「和平굴起」로
21세기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표적 이론가인 시카고 대학의 미어 셰이머 교수는 그의 저서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한국어 번역판 序文(서문)에서 중국에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그간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속하게 될 경우 중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마치 미국이 西半球(서반구)를 지배하는 것처럼 아시아 대륙에서 패권적 지위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중국 문화가 본질적으로 공격적이라든지, 중국의 지도자들이 잘못된 길로 인도되기 때문은 아니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가장 좋은 보장 장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저지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무대에서 미국에 근접한 도전국의 존재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와 유사한 심각한 안보경쟁이 야기될 것이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물론 정치 지도자들조차 국제정치를 낭만적·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높다. 그러나 强大國(강대국)이든 弱小國(약소국)이든 모든 나라는 自國의 힘을 증강시키기 원하며 국가들의 경쟁은 언제라도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중국이 또다시 지난 1000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노력이다. 미국이 이를 용인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처럼 강대국들이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지만 결국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강대국 국제정치는 물론 일반적인 국제정치도 비극적인 일로 보이는 것이다.
중국은 당연히 패권을 추구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외교적인 修辭(수사)일 뿐이다. 미국도 『중국의 발전은 미국에 좋은 일이며 미국과 중국은 우호관계,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제정치가 현재보다 훨씬 진보한 이후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중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이 시작된 1980년대에는 「韜光養晦(도광양회)」의 전략을 취했다. 착실히 실력을 키우지만 대외관계의 범위는 줄이면서 불필요한 위협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공산중국이 제3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며 벌였던 확장 지향의 외교와 반대다.
1990년대 후반 중국의 국력 증강이 국제사회에서 점차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자 중국은 2003년 「和平?起(화평굴기)」라는 담론을 제시했다. 「평화롭게 부상한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Peaceful Rise」라고 부른다.
그러나 굴기라는 말이 「급속한 부상」이라는 뜻을 포함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중국은 「和平發展(화평발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고안해 냈다.
그러던 중국은 2007년 「大國?起(대국굴기)」라는 용어를 고안해 대대적인 TV 프로그램 방영 및 출판으로 중국의 패권 의지를 다시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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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군사비는 중국의 4.8배에 이른다. 사진은 2006년 1월 「용감한 방패」 훈련에 참가한 美 해군 항모전단. |
1995년 중국은 독립을 주장하는 후보가 나온 대만의 선거를 위협하기 위해 대만을 향한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었다. 미국이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중국의 고위급 장성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들(미국인)은 1950년대 우리를 核(핵)공격할 수 있었을 때와 같은 지렛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미국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미국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 그러니 위협하지 마라. 궁극적으로 미국은 대만보다는 로스앤젤레스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미국의 관리들은 물론 이 말을 공갈로 인식했지만, 결코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말이라고 판단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항공모함 두 척을 대만 인근 해협에 급파하는 것으로 중국의 미사일 실험에 대응했다.
학자들 중에는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이 아무 저항 없이 순조롭게 미국을 앞질러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 그것은 앵글로색슨의 好戰的(호전적)인 피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미국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미국은 지난 3월 하순, 중국이 대만의 민주주의 선거를 훼방할지 모른다는 명분 아래 항공모함 두 척을 대만해협에 파견했다. 3월 초 티베트 독립을 요구하는 봉기가 발생하고 중국 정부가 이를 탄압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1척의 航母(항모)를 증파, 4월 중순 당시 대만 해협에는 3척의 미국 항공모함이 포진해 있었다. 3척의 항모란 이라크 전쟁 수준의 전쟁을 시작할 때 배치하는 군사력 규모다.
가치에 따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국은 地政學的(지정학적)으로 중국의 부상과 그 결과 야기될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그래서 어려운 전략적 선택에 당면할 수 있으며 이에 대비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전략적 선택에 기준은 있다. 우리가 선호하는 정치·경제적 가치, 우리가 지향하는 사상과 국가목표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면 된다.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인권·평등·평화·자존 등이 바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가치다.
이념을 떠나 지극히 현실적으로 선택한다면 좀더 막강한 편에 서야 한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군사력(군사비) 및 경제력(GDP)에서 미국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미국의 GDP는 중국의 약 5배, (세계은행 2007) 군사비는 4.8배(2005년 기준, 「밀리터리 밸런스」 2007)다.
힘이 비대칭적인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연구한 폴 교수는 경제적·군사적 능력이 우세한 국가가 상대 국가보다 2배 이상 강한 경우를 「非대칭적 관계」 라고 정의했다. 미국과 중국의 실질적인 힘의 격차를 보면, 非대칭적인 두 나라가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가정 자체가 시기상조의 공허한 논란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