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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사상가 列傳 (10) - 레이건·대처의 이념적 스승―밀턴 프리드먼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남들의 이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달을 꾀하는 사람들이다』

권혁철    kwonhc@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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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라』고 한 케네디는 틀렸다
●『경쟁적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유의 체제이며,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과 세금인상만 해도 분명한 사회주의적 정책』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아니라 「생산된 결과물을 사회화」한다고 생각해 보자. 兩者 간에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은 그 이윤을 극대화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
●『자유에 대한 진정한 위험은 동기는 훌륭하나 무식한 열성분자들이 알게 모르게 자유를 잠식하는 데 있다』


權 赫 喆
1961년 경기 이천 출생. 성균관大 행정학과 졸업. 獨 쾰른大 경제학 박사. 저서 「한국경제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시민운동 바로보기」(共著), 「시장경제 질서와 시민단체_우리나라 시민단체 활동의 문제점」.
케네디는 틀렸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십시오』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지극히 잘 나타내며, 참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평을 얻는 케네디의 이 명연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전체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이 말의 전ㆍ후반부 모두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一喝(일갈)한다. 이 말은 自由社會(Free Society)의 自由人(Free Man)이 理想的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부와 시민 간의 관계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라는 前半部 구절은 국가를 보호자로 보고 시민을 피보호자로 보는 온정주의적(Paternalistic) 시각에서 나온다. 이는 국가란 全知全能(전지전능)한 존재여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다는 착각에 바탕을 둔 틀린 얘기이며, 자기 운명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유인의 신념과도 배치된다.
 
  後半部의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구절은 국가를 주인 내지 神으로, 시민을 下人 내지 臣子로 보면서 국민을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할 侍女의 위치로 격하시킨다. 자유인에게 있어 국가란 그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집합체이지, 개인들의 위에 군림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생각이다.
 
  『자유인은 정부를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로 보지 호의를 베풀거나 선물을 주는 施惠者(시혜자)로 보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숭배해야 하는 神이나 봉사해야 하는 주인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자유인은 시민들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와 일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국가적 목표나 목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프리드먼은 『참된 자유인이라면 오히려 자신과 자기 동포들이 각자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목표와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정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우리들의 자유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정부가 역으로 개개인의 자유를 짓밟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억압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하라고 말한다.
 
  프리드먼은 자유에 대한 가장 위협적인 것은 권력의 집중이라고 보았다.
 
  『권력의 집중은 자유에 대한 위협이 되며, 역사가 이를 확인해 준다. 정부는 우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다. 그러나 권력이 정치의 손에 집중되면 정부는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변하기도 한다. 비록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처음에는 善意를 가졌고, 권력에 의해 부패하지 않았을지라도, 권력이라는 것이 다른 유형의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善을 행하는 권력은 惡을 행하는 권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부가 逆으로 우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면, 자유민주사회의 건설과 유지를 위해 정부의 이점을 살리면서 동시에 정부가 지닌 권력의 집중이라고 하는 잠재적 위협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 온 프리드먼이 생각하는 처방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정부가 할 일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정부의 힘을 광범위하게 분산시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헌법에 명시된 두 가지의 큰 근본원칙―물론 끊임없이 위협받고 위반되어 오고는 있지만―을 굳게 따르는 것이 해답이며, 지금까지 자유를 유지ㆍ보존해 온 원천이다.
 
  첫 번째의 근본원칙은 「정부의 역할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책무로 외부의 敵과 내부의 동료 시민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정부가 담당해야 할 책무로 꼽는다. 그는 정부가 담당해야 할 기능을 법과 질서 및 안전의 유지, 私有재산제도의 보장, 계약의무의 이행, 시장경쟁의 촉진, 통화제도의 유지, 그리고 廢疾者(폐질자)와 노약자의 보호 등으로 제한한다. 그는 그 외의 활동은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성장잠재력의 약화를 초래하며, 개인의 창의를 보장하는 자유사회를 위협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의 근본원칙은 「정부권력은 분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지방분권화의 촉진과 이를 통한 지방정부 간의 정책경쟁 및 이에 대한 주민들의 선택권이다. 만일 한 지방정부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민들은 마치 투표를 하듯이 마음에 드는 정책을 펴는 다른 지방으로 이주할 수 있다. 비록 실제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가능성 자체가 지방정부로 하여금 주민들의 자유를 좀더 존중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압력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피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국민들의 압력은 그다지 효과가 없고 따라서 권력이 집중될 수 있다.
 
  중앙정부의 정책은 피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公共의 복지를 이유로 富의 再분배(소득이전) 등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중앙집권을 지지한다. 프리드먼은 이들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이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본인들만 옳다고 여기는 독선적인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은 옳다. 그러나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善을 행하는 권력은 惡을 행하는 권력이 되기도 한다. 오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내일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중앙집권화와 정부 범위의 확대는 대부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길이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후회하는 사람들이 된다』고 지적한다.
 
 
 
 아이로니컬한 출발점
 
   밀턴 프리드먼은 1912년 뉴욕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프리드먼의 부모는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에서 유태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유태인이었다. 프리드먼 가족은 밀턴이 태어나자마자 뉴저지州로 이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초기에는 근무환경이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곳에서 재봉사로 일하다가 얼마 후에는 고가철도 옆에서 초라한 잡화점을 운영했다. 아버지는 조그만 사업에 실패하고 후두염에 시달리다가 밀턴이 15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유ㆍ소년기 및 청년기에 프리드먼은 항상 경제적으로 쪼들렸으며, 어음처럼 지급일을 기재하여 결제할 수 있는 수표인 「지급기일 약정수표」로 근근이 지탱할 수 있었다.
 
  1928년 16세의 프리드먼은 당시 작은 사립대학이었던 러트거스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시절 그는 숱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아침에는 백화점에서 모자를 파는 점원으로, 점심 무렵에는 학교근처의 식당에서 음식을 날랐으며, 밤에는 소방서에서 야간근무를 했다. 오전에 식당 일이 끝나면 오후에 강의를 받으러 다녔는데,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던 그는 강의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당에서 주는 공짜 점심을 항상 급하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생긴 급히 먹는 버릇은 평생 동안 계속됐다. 밀턴의 부인인 로즈 프리드먼의 집안 역시 이민 온 가난한 유태인 가족이었는데, 로즈의 어머니는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평은커녕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어』
 
  실제 식당 종업원에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프리드먼의 성공은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의 상징이기도 하다.
 
  프리드먼은 1932년 러트거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만인 1933년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워싱턴에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대한 소비통계를 작성하는 일을 하였다. 정부의 중앙집권화와 정부 역할의 비대화에 대한 가장 유명한 비판가가 되는 그가 개입주의 정책의 시초가 되는 뉴딜정책의 통계조사 업무에 참여했었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리드먼은 그 업무를 담당하면서 그의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하나 얻게 된다. 바로 실증적 자료의 중요성이다. 이후 그의 이론은 철저하게 경험적ㆍ통계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었고, 그만큼 그의 주장은 신뢰성과 설득력을 지닐 수 있었다. 뛰어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방대한 실증적 증거를 適材適所(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그와 對敵(대적)할 수 있는 논쟁상대는 없었다. 프리드먼도 이를 두고 『아이로니컬하게도 뉴딜정책은 개인적으로 나의 은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유레카!』
 
  논쟁에서 당할 자가 없던 프리드먼을 설득시킨 유일한 사람은 「外部效果(외부효과)」의 정리로 유명한 코즈라는 젊은 경제학자이다. 외부효과란 「한 사람의 경제활동이 이 교환에 전혀 참여하지도 않은 제3자에게 이익을 주거나 손해를 끼치지만, 그 제3자는 이에 대해 代價를 지불하지도 않거나 또는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행자가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피해를 입거나(부정적 외부효과),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예쁜 꽃밭을 꾸며 他人들도 이를 보고 즐거움을 얻는 경우 (긍정적 외부효과)에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코즈의 논지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이 없다면 외부효과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코즈의 발표와 토론은 원래 9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시간은 저녁식사 후까지 대여섯 시간으로 늘어났고, 오랜 토론 끝에 드디어 프리드먼은 『유레카!』(Eureka: 「아! 이제 알겠다」. 아르키메데스가 「浮力의 원리」를 알아내고 외친 말)라고 외쳤다.
 
  프리드먼의 동료이자 시카고學派 경제학자인 스티글리츠(前 세계은행 부총재,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진지한 토론과 그 토론의 과정에서 단 한 번이라도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시카고 대학의 학풍이고 은혜』라고 말한 적이 있다.
 
  미국의 전국경제연구소(NBER)와 재무부 근무를 거쳐 프리드먼은 1946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원래 그의 학위논문은 1941년 완성됐다. 학위가 늦어진 이유는 논문의 내용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켜 4년이 지난 후에야 출판이 됐기 때문이다.
 
  그의 논문은 변호사·의사·세무사·회계사 등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제상황에 관한 「독립 전문직종의 소득」이었다. 그 가운데 「의사들의 소득이 턱없이 높은 것은 의사와 의료단체들이 의료업에의 진입장벽을 높게 쳐놓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관련 이익단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던 것이다. 프리드먼은 이때부터 급진적으로 보이는 많은 정책들, 특히 복지국가와 각종 이익집단들에 의한 진입장벽 등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많은 敵들을 갖게 됐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1946년 시카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프리드먼은 그 후 30년간 그곳에 재직하면서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시카고學派」의 代父가 됐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그는 이듬해인 1977년 신진학자인 로버트 루카스에게 시카고 대학의 자리를 물려주고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연구소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입주의 경제정책 비판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

 
 
 
 
  1930년대 대공황은 그나마 남아 있던 시장과 경쟁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이후 1970년대까지 西歐세계는 독일의 질서자유주의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케인즈의 영향을 받아 「시장은 불완전하며 정부의 적절한 개입으로 矯正(교정)될 수 있고, 또 교정되어야만 한다」고 믿던 개입주의가 지배했다. 보수주의 정치인이라는 미국 대통령 닉슨조차 1971년 『우리는 모두 케인지언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개입주의는 시장실패의 교정과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경제 부문에서 정부 역할의 획기적인 비대화를 동반했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대해진 西歐의 복지국가를 비판하고 자유주의 부활을 선도한 경제학자가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시카고學派는 「정부의 실패」를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시장의 기능을 신뢰하여 「작은 정부 구현」과 정부 개입의 억제를 강조했다.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 경제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 아래서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자율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프리드먼은 1970년대 이전까지는 狂人(광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철저하게 배척받았다. 하지만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갔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사람들은 프리드먼의 주장이 옳았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각국에서 자유시장과 私有재산의 철저한 보장이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주요 정책수단으로 등장하면서 프리드먼은 개입주의 경제학자들과의 오랜 知的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게 됐다.
 
  케인즈와 프리드먼의 인연은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3년 프리드먼은 「예산 자료로부터 수요의 탄력성을 측정하는 피구 교수의 방법에 관하여」라는 자신의 첫 번째 학술 논문을 작성했다. 피구 교수는 당대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의 한 사람이었고,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관계로 프리드먼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발행하는 「경제저널(Economic Journal)」에 그 논문을 제출했다. 하지만 당시 「경제저널」의 발행인이었던 케인즈는 프리드먼의 논문을 게재하기를 거부했다. 프리드먼의 논문은 1년 후인 1934년 하버드 대학교의 「계간 경제학 저널(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실렸다.
 
  프리드먼만 개입주의를 주장하는 케인즈 경제학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오이켄, 뢰프케, 하이에크 등 모든 자유주의자들은 개입주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다.
 
  프리드먼의 케인즈 비판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두 가지 점에서 더 중요하고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 프리드먼의 전공이 巨視경제학이었고 그의 케인즈 비판도 주로 巨視경제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원래 케인즈 경제학은 巨視경제학이므로 巨視경제학을 전공한 프리드먼의 비판이 다른 사람들의 비판보다 이론적으로 더 엄밀하고, 본격적이며, 설득력이 있었다.
 
  둘째, 오이켄이나 뢰프케, 하이에크 등은 모두 유럽에서 활동한 반면 프리드먼은 미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학과 경제정책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으며,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학과 경제정책에 좀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의미에서 케인즈의 경제학과 그에 입각한 개입주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이 프리드먼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자발적 교환은 번영과 자유의 필요조건
 
  프리드먼은 가격이론과 자유시장경제가 인간의 경제 행위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고, 자원배분은 물론 소득분배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에 그쳐야 한다고 확신했다.
 
  시장에 대한 프리드먼의 신뢰는 2002년 엔론社와 월드콤社의 회계부정사건을 보면서도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 정치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회계규정을 만들어 회계부정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지만, 프리드먼은 이 사건을 계기로 회계부정은 시장에서 스스로 교정될 것이며, 어떤 새로운 정책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본다.
 
  『경영자로서 부정을 저지른 사람은 감옥에 가는 것이 마땅하고 또 실제 감옥에 가지 않나. 그런데 그들을 감옥으로 보내기 위해 또 새로운 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가격의 세 가지 기능, 즉 첫째 정보전달, 둘째 가장 비용이 낮은 생산방식을 택하도록 유인함으로써 가용자원을 가장 값진 목적에 사용되도록 하며, 셋째 소득분배 기능을 통하여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한다.
 
  개입주의자들은 시장이라는 가격기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의 실패」를 이유로 정부가 적극 개입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정부의 실패」를 불러와 「시장의 실패」보다 더 큰 왜곡과 비용을 초래한다.
 
  정부규제를 통해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활용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장이 불완전하듯이 제한된 정보를 가진 정부의 활동 또한 시장만큼 불완전하거나 시장보다 더 불완전할 수 있다. 정부는 시장에 대한 개입의 명분으로 公共의 복리증진을 내세우지만, 사실 정부개입은 이해관계가 강한 이익집단이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가진 정부나 집권당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특혜나 차별에 다름 아니다.
 
  정부규제에 대한 스티글리츠의 비판은 프리드먼의 생각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규제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는 수단으로 發效(발효)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강한 소규모 집단이 자원배분의 강제력을 가진 정부를 포획하여 자원을 再분배하는 메커니즘에 의해 발효되는 것으로, 정부의 경제규제는 정부 또는 정당에 의해 가장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집단에 판매되고, 보통 공공의 후생 증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발효된다. 즉 정부규제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정치시장에서 매매가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와 칠레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국가 전체적으로 이익이며, 국민들의 복지증진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앞두고 일부 국회의원들이 농민단체들의 눈치를 살피며 비준案 통과에 결사반대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 도 마찬가지이다.
 
  公益을 명분으로 한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증가할수록 개인의 자유는 제한되고 시장기능은 위축되어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성장은 저조해질 수밖에 없다.
 
  개입주의자들은 정부가 자원배분에 직접 개입하여 사회적으로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지, 사회적으로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恣意的(자의적)으로 결정된 우선순위에 따른 자원배분은 非효율적일 수밖에 없어 경제는 침체의 길로 접어들고, 개인의 자유는 위축된다.
 
  이와는 반대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시장의 기능이 잘 발달될수록 자유는 물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다.
 
  『시장에서의 자발적 교환이 자유와 번영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자발적 교환은 번영과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제너럴 모터스는 당신의 돈을 빼앗을 수 없지만, 정부는 착취할 수 있다』

 
  시장을 통한 자발적 교환과 정부개입에 의한 자원배분의 차이를 프리드먼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은 「제너럴 모터스가 가장 非정상적으로 비대한 관료조직을 가지고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과 정부가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을 가지고 있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고 종종 질문한다.
 
  그 차이는 분명하다. 제너럴 모터스로 대변되는 민간기업은 시장에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으며 고객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만, 정부는 그러한 給付(급부)의 제공 없이 돈을 가져간다.
 
  민간기업은 다른 기업과의 경쟁 속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개인들에게 충분한 선택의 여지를 주지만, 정부는 시장원리와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非효율적이고 非민주적이다.
 
  제너럴 모터스는 경찰을 보내 당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아갈 수 없지만, 미국 정부는 그것을 할 수 있다. 모든 州정부 또는 정부기관은 그렇지 않지만, 제너럴 모터스는 당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왜냐하면 제너럴 모터스가 당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포드社의 제품이나 크라이슬러社의 제품, 폭스바겐이나 도요타의 제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너럴 모터스가 당신을 착취할 수 없도록 하는 이유이다』
 
  경쟁에 직면하고 있는 기업과 경쟁에서 제외되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파산의 위험이 없는 정부 간에는 상황이 어려울 때 대처하는 방법에도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기업은 경영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 등을 통해 규모를 축소하지만, 정부는 경영이 나빠지고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구를 더욱 늘리는 경향이 있다』
 
  정부기구의 비대화는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업무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이 공무원의 수는 늘어난다」는 법칙이다. 그 주요한 이유는 공무원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이 커지고 조직원과 예산이 늘어나면 위신과 권한이 커지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조직의 비대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결국 일이 많아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아져서 일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에게 일을 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제, 새로운 개입영역을 계속 확대하게 된다. 공무원의 「철밥통」 문제는 결코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며, 또 어제 오늘 생긴 일도 아닌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 셈이다.
 
  프리드먼은 「국민총생산(GNP) 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인 소위 프리드먼 비율(Friedman Ratio)을 계산하고, 이 비율이 높을수록 실질경제성장률이 저하된다는 것을 실증했다.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비대하고 큰 정부」를 「작은 정부」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로부터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이다.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하여 규칙을 만드는 규칙 제정자, 그리고 그 규칙을 집행하는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정부가 맡아야 하며, 그 이상의 역할은 자원배분의 왜곡과 非효율성을 초래하게 된다.
 
 
 
 『화폐가 정말 중요하다』
 
  프리드먼이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옹호한 케인즈의 이론이 근본적으로 틀린 것임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자칫하면 국가 중심의 전체주의로 흐를 뻔한 세계경제의 조류를 시장중심의 자유주의로 되돌려 놓은 것이다.
 
  케인즈는 경제대공황을 예로 들면서 시장경제의 내재적 결함이 대공황의 원인이라고 하면서 정부가 경제활동에 좀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프리드먼은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빠지게 된 것은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이 통화공급량을 늘려 경기활성화를 꾀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대폭 축소함으로써 극심한 신용경색을 야기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음을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입증했다.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정부의 잘못된 통화정책이 통화교란을 낳고 이것이 다시 경제의 교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경제의 내재적 결함이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이 아니라 잘못된 정부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화폐가 정말 중요하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은 경기조절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경제교란의 主원인이 통화교란이므로 이 통화교란을 철저하게 방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화폐가 중요하다는 이 새로운 관점을 「通貨主義 (통화주의·Monetarism)」라고 한다.
 
  따라서 정부가 경제의 불안정을 상쇄시킨다는 목적으로 경제에 恣意的으로 개입해서 경제를 微細調整(미세조정)하지 말 것이며, 잘못된 판단에 근거한 잘못된 통화정책으로 경제를 교란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프리드먼은 정부가 통화증가율을 일정하게 정한 다음 이를 公示하고 장기에 걸쳐 철저히 준수해 나가는 이른바 「k-퍼센트 準則(준칙)」을 주장한다. 그는 실질경제성장률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통화증가율을 제안한다. 「k-퍼센트 준칙」이 준수되면 인플레이션이나 대공황 등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한 혼란을 예방할 수 있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감소되어 경제주체들로 하여금 계획에 입각한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경제라고 하는 자동차에 화폐라고 하는 능숙한 운전자가 앉아서 도로상에 예기치 않게 파여 있는 곳들을 능숙한 솜씨로 운전대를 움직여 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뒷좌석에 앉아서 자동차의 중심을 잡고 있는 화폐라는 탑승자가 때때로 앞으로 쏠림으로써 운전대가 이 사람의 몸에 닿아서 돌아가지고 길 밖으로 벗어나는 사태를 방지하는 일이다』
 
  프리드먼의 「화폐가 중요하다」는 통화주의 이론은 1970년대에 와서 빛을 발하기 시작, 결국 그의 知的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1970년대가 되자 세계경제는 침체기에 들어가면서도 물가는 빠르고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성장과 물가상승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그때까지의 경제에 대한 믿음과는 정반대로 물가는 오르는데 실업자가 급증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이 만성화되면서 임금 상승을 부채질하고 임금 상승은 다시 생산비 증가를 부르고, 생산비 증가는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惡순환이 되풀이됐다.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는데도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경제 현상이 나타났고, 이에 대해 개입주의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은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때에야 비로소 인플레이션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통화량 팽창을 억제해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이 관심을 끌게 됐다. 이후 그의 통화주의 정책은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받아들여지고 만성적인 인플레이션의 퇴치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프리드먼이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이 통화량 팽창임을 지적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던 1950년대부터였다. 그는 이때 이미 지속적인 통화팽창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경제의 최대문제로 떠오를 것을 일찍이 인식하고, 인플레이션의 예방과 해소를 위해서는 통화량의 억제가 불가피함을 역설했던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생산 결과물의 사회화」 간에 무슨 차이가 있나』
 
  『자유주의자로서 우리는 사회현상을 판단함에 있어서 개인 혹은 가족의 자유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자유가 중요한 것은 자유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경제적 자유도 그 자체가 목적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중요한 수단임을 프리드먼은 강조한다.
 
  『경쟁적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유의 체제이며,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치下의 독일이나 파시즘下의 이탈리아, 군국주의下의 일본과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정치적 자유는 박탈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는 아니지만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반면에 자본주의가 아닌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절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자본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정치적 자유가 존재할 수 있는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프리드먼은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말의 의미가 현대에 들어와 변질되고 오용되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하고 안타까워한다. 자유주의의 원래 의미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반 자유를 궁극적인 가치로, 개인을 궁극적인 실체로 인정하여 개인의 사회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반대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私有재산의 절대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19세기 말 이후, 특히 1930년대 이후 국민의 후생과 평등을 앞세우면서 이러한 목적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자유, 특히 私有재산권에 대한 제한도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주장이 자유주의란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프리드먼은 「자유주의라는 용어의 타락」이라고 표현하면서 「본래 의미의 자유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진보」 또는 「사회민주」라는 이름으로 성행하고 있는 현대국가의 각종 복지정책과 기업에 대한 통제, 그리고 이로 인한 정부의 비대화를 「사회주의적」이라고 분명하게 摘示(적시)하고 있다.
 
  東歐圈의 몰락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프리드먼은 『공산주의는 무너졌지만 사회주의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만 해도 클린턴 대통령의 의료보험개혁과 세금인상만 해도 분명한 사회주의적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을 들은 독일 슈피겔誌 기자가 『방금 그 말은 「사회민주적」이라고 해야 맞는 것 아니냐』고 질문을 하자, 프리드먼은 자신은 분명히 「사회주의」를 언급했다고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회주의가 도대체 무엇인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요구하면 「사회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아니라 「생산된 결과물을 사회화」한다고 생각해 보자. 兩者 간에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생산수단을 사회화」한다는 것은 결국 「생산된 결과물을 사회화」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기업은 그 이윤을 극대화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
 
  유럽을 한번 살펴보자. 유럽에서는 최소한 소득의 절반 이상이 세금 등의 형태로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만일 국가가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곧 생산의 절반을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이것이 사회주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부쩍 많은 논의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까지 기업통제에 가세하고 있다. 하이에크는 일찍이 『기업에게 본질적인 사회적 책임을 벗어난 과도한 사회적 책임을 강요하는 것은 국가에 의한 기업통제로 이어지며, 결국 자유기업 시장경제 체제의 붕괴로까지 이어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기업의 본질적 사회적 책임」이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용역이나 재화를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공급함으로써 사회의 富를 증대시키며, 근로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결국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유일한 목적은 장기적인 최대이윤을 달성하는 일이며, 그것이 곧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길이다.
 
  프리드먼도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은 그 이윤을 극대화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경기규칙(Rules of Game) 속에서의 이윤추구이며, 사기나 부정수단이 아닌 자유로운 경쟁, 공정한 경쟁을 하는 윤리만이 요구될 뿐 그 밖의 사회적 책임은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지 정확히 200년 뒤인 1976년 프리드먼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부인인 로즈와 함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라고 하는 10회에 걸친 TV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출연해 정부의 규제와 복지국가의 잘못과 실패에 대해 논리적이고 사실적으로 고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1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이 방송 내용을 담은 동일한 제목의 책은 미국에서 1980년 전문서적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프리드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源泉(원천) 과세제도를 마련하는 일에 잠시 관여한 이후 줄곧 공직을 피해 왔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워싱턴에서 수년간 경험을 쌓으라. 하지만 단 2~3년 동안만이다. 더 오래 머무를 경우 정치에 중독되어 다시는 학자의 길로 되돌아올 수 없게 된다』
 
  그는 국회에 나가 증언하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여기기도 했다.
 
  『그 시간에 사설을 쓴다든지 강연을 하는 편이 정책의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효율적이다』
 
 
 
 아들 데이비드, 『내 아버지는 사회주의적』
 
  이렇듯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思想의 힘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도 매우 드물 것이다. 프리드먼은 교육문제와 관련해서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제도로서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사립학교를 포함해 자신이 다니고 싶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교육비 일부를 이용권(Voucher) 형식으로 지원해 주는 「스쿨 바우처」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그밖에도 단일 소득세율, 마이너스 소득세를 통한 복지개혁,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 지원병 제도, 변동환율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정책제안을 했다.
 
  그의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한때 급진적으로 여겨졌으나 많은 부분이 후에 대부분 정책으로 채택됐다. 미국이 1971년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것이나, 1973년 징병 제도에서 지원병 제도로 전환한 것이 그 예이다. 「스쿨 바우처」 제도의 도입은 현재 활발히 논의 중에 있으며,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에 대한 논쟁도 진행 중에 있다. 최근 그는 마약 합법화를 제안했는데, 조만간 이 주제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벌어질 것이다.
 
  그의 사상이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대처 영국 수상의 경제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가 제안한 수많은 정책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극단적 자유주의자로 보이는 프리드먼에 대해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그의 아들인 데이비드 프리드먼이다.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당초 물리와 화학을 공부했으나 나중에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현재는 캘리포니아州 산타 클라라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자신을 「경제학자, 시대착오자, 무정부주의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국가와 정부는 내일보다는 오늘 당장 해체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하는 모든 임무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오늘 당장 철폐할 수 있는 임무」가 그 하나이며, 「내일은 철폐할 수 있겠다고 여겨지는 임무」가 그 두 번째이다』
 
  따라서 데이비드의 눈에 예를 들어 규칙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정부의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아버지 밀턴 프리드먼이 「사회주의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밀턴 프리드먼은 자신도 원래는 무정부주의자가 되기를 원했었지만, 그것이 실행 가능한 사회구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답변한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상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런 형태의 사회가 발전했던 예를 찾아볼 수 없다』고 덧붙인다.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는 평등도 자유도 잃을 것』
 
  프리드먼은 하이에크, 오이켄 등과 함께 세계 자유주의자 모임인 몽펠링 협회를 설립했다. 이 모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진국의 여러 자유주의자들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동료 자유주의자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만남의 場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수많은 자유주의자들, 특히 그 중에서도 『키는 작지만 경제학자들 중에서 우뚝 솟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프리드먼의 영향으로 우리는 자유주의 부활의 시대, 각국이 경쟁적으로 규제를 철폐하고 복지제도를 민영화하고 개혁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하지만 李之舜(이지순) 서울大 교수의 말대로 『反자유주의자들이 각계에서 득세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불행히도 이와는 거리가 멀며, 정체도 수상한 「제3의 길」이 유행인 것을 보면 이 땅에서 자유주의가 꽃을 피우기는 아주 어려운 일』인 듯 싶다. 李교수는 이렇게 덧붙인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입만 열면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남들의 이익을 빙자하여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러한 사람들이 정부를 좌우하게 되면 평상인의 경제적 복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의 우리를 겸허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프리드먼은 자유시장경제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
 
  『자유시장 자본주의, 혹은 기회의 평등의 보장으로 인해 富者가 貧者를 착취한다는 의미의 불평등이 증가해 왔다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 자유시장의 작동이 보장된 곳, 혹은 기회의 평등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보통 사람이 그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생활수준을 얻을 수 있었다. 자유시장의 작동을 허용치 않는 그런 사회들만큼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크고 또 富益富 貧益貧이 되는 곳은 없다. … 결과의 평등을 자유보다 중시하는 사회는 평등도 자유도 잃을 것이다. … 반면에 자유를 가장 중시하는 사회는 그 부산물로서 좀더 많은 자유와 좀더 많은 평등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와 아울러 프리드먼은 미국의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판결문을 즐겨 인용한다.
 
  『정부의 목적하는 바가 이로울 때 자유를 수호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임을 경험은 가르치고 있다. 사악한 통치자가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에 이를 격퇴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자유인에게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유에 대한 진정한 위험은 동기는 훌륭하나 무식한 열성분자들이 알게 모르게 자유를 잠식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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