寬勳클럽과 全言會의 관계
한국의 엘리트들에게 출신고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출신고는 그가 어느 지역 사람인지를 분류하는 기준이 될 뿐 아니라, 출세의 배경까지 파악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되기도 한다. 세칭 「명문高」 출신들은 실제 사회 각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권마다 권력의 핵심 고리와 연계돼 있는 특정고 출신들은 이른바 「實勢(실세)」로 군림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신문 방송도 이 점에서 예외일 수 없다. 언론계에서 「實勢」로 통하는 학교는 어디일까. 바로 全州高(전주고)다. 全北지역의 대표적 명문고인 全州高 출신들이 언론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로 창립 45주년을 맞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寬勳(관훈)클럽. 이 클럽의 창립멤버 10명 중 5명이 全州高 출신이었다. 朴權相(박권상·24회·현 KBS 사장), 金寅昊(김인호·24회), 鄭仁亮(정인량·24회), 林芳鉉(임방현·26회), 趙世衡(조세형·27회)씨가 모두 全州高 동문이었다. 이 모임의 명칭인 「寬勳」도 최초의 회합장소였던 朴權相씨의 하숙집이 관훈동에 있었던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현직 언론사 사장 8명 배출
全州高가 언론계 실세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각 언론사에 광범위하게 포진한 인맥과 잘 짜여진 동문조직 때문이다. 全言會(전언회). 1988년 결성된 全州高 출신 在京 언론인 모임이다. 2000년 현재 全言會에 등록된 현직 언론인 수(신문·방송 기자 및 PD 포함) 는 170여 명. 他명문高의 언론인 배출 현황과 비교해 보면 이 수치는 더욱 돋보인다. 서울고 150여 명, 경기고 130명, 부산고 130명 수준이다. 대전고 출신 언론인 모임인 언능회에는 2001년 현재 약 180여 명이 가입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대전지역 언론인과 신문사, 방송사 행정·기술직 동문까지 포함한 수치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했거나 다른 분야로 진출한 명예회원 95명, 全北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문언론인까지 포함하면 全州高 출신 전현직 언론인 수는 총 350여 명 가량 될 것이라고 全言會 관계자는 전했다.
全言會는 1988년 1월 全州高 출신 정치부 기자 9명이 모여 在京 全州高 언론인 모임체를 만들기로 결의한 데서 시발점을 이뤘다. 柳鈞(유균·41회·現 KBS 보도국장), 金大坤(김대곤·44회·現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 韓明奎(한명규·52회·現 매일경제신문 증권부장)씨 등이 全言會의 뼈대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과 함께 朴俊雄(박준웅·41회·前 시사저널 편집장), 高道源(고도원·48회·現 청와대 연설담당관), 鄭東泳(정동영·48회·現 국회의원), 金基萬(김기만·49회·現 청와대 해외언론담당관), 崔奎植(최규식·49회·現 한국일보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黃宇淵(황우연·50회·한국통신 엠 닷컴 상무)씨 등이 창립멤버로 활약했다.
全言會가 만들어진 후 이에 자극받은 광주고 출신들은 광언회, 광주일고 출신들은 무등언론회(약칭 무언회), 익산 남성고 출신들은 남언회 등을 연이어 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全言會 초대 회장은 朴權相씨가 맡았다. 2代 회장은 鄭璟喜(정경희·28회·前 한국일보 논설위원)씨가, 3代인 現 회장직은 張潤煥(장윤환·33회·現 대한매일 논설고문)씨가 맡았다.
全言會의 위력은 현직 언론사 사장이 8명에 이르고 있다는 데서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KBS 사장인 朴權相씨를 비롯, 金槿(김근·37회·연합뉴스 사장), 金景徹(김경철·34회·코리아 헤럴드·내외경제신문 사장), 郭永吉(곽영길·50회·파이낸셜뉴스 사장), 全炳寀(전병채·35회·KBS 영상사업단 사장), 河永錫(하영석·38회·대전문화방송 사장), 柳熙根(유희근·41회·전주문화방송 사장), 白樂千(백낙천·42회·전주방송 사장)씨 등이다. 全言會 멤버는 아니지만 전북일보 徐彰焄(서창훈) 사장과 전북도민일보 林秉澯(임병찬) 사장도 全州高 출신이다.
全言會 출신 전현직 편집국장 14명
全言會 멤버 중 신문사 주필은 申瓚均(신찬균·33회·세계일보), 李正根(이정근·44회·매일경제신문)씨 등 2명. 申瓚均 세계일보 주필은 연합통신 출판국장, 논설위원실장을 거쳐 국민일보 편집국장, 세계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李正根 매경 주필은 매일경제 東京특파원, 경제부장·정치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全言會에는 「기자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신문사 편집국장 출신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朴權相(동아일보), 金寅昊(중앙일보), 林芳鉉 (현대경제일보, 일요신문), 趙世衡(한국일보), 金景徹(김경철·34회·중앙경제신문), 申瓚均(신찬균·33회·국민일보), 孟泰均(맹태균·35회·충청매일), 裵琪哲(배기철·41회·한국일보), 李正根(이정근·44회·매일경제), 崔相(최상현·45회·국민일보), 李忠雨(이충우·34회·평화신문), 張世煥(장세환·48회·전북제일신문) 등 12명에 이른다. 전북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陸完泰(육완태)씨는 全言會 멤버는 아니지만 全州高 출신이다.
현역으로는 朴鉉泰(박현태·48회·現 전자신문 편집국장)씨가 있다.
全言會 출신으로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이도 4명이나 된다. 제5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郭址湧(곽지용·26회·前 동화통신 정치부장)씨를 비롯, 제16대 朴實(박실·35회·前 국회의원), 제15, 21, 22, 23, 24대 회장을 지낸 李肯珪(이긍규·전주북중 35회·前 국회의원·전주고와 전주북중은 1951년 6·3·3·4제 학제개편으로 분리됨), 제36대 趙成富(조성부·52회·연합뉴스 경제부장)씨다.
TV앵커 출신 鄭東泳 국회의원도 전주고 출신
全言會는 언론사 노조위원장도 다수 배출했다. 韓明奎(매경 증권부장), 朴魯承(박노승·53회·경향신문 경제부장), 尹錫仁(윤석인·53회·한겨레신문 경영기획실 부실장), 尹勝容(윤승용·53회·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씨 등이 그들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3회 수상한 황호택(52회·동아일보 논설위원)씨와 기자협회 사상 이달의 기자상을 최다(7회) 수상한 동아일보 사회부 梁基大(양기대·58회) 기자도 全言會 멤버다.
방송계에서도 全言會 출신은 두각을 나타낸다. 방송사 보도국장 출신으로는 金現廷(김현정·34회·KBS), 李忠雨 (평화방송), 유남수(49회·現 교통방송 심의실장)씨 등이 있다. 현역으로 柳鈞 (유균·41회·KBS 보도국장), 朴南勳(박남훈·38회·CBS 보도국장)씨 등이 활약하고 있다.
전현직 TV 앵커도 상당수다. 金澤煥(김택환·32회·KBS), 鄭秉秀(정병수·35회·MBC), 吉宗燮(길종섭·북중 39회·KBS), 辛京珉(신경민·48회·MBC), 鄭東泳(MBC), 李康鈞(이강균·55회·KBS), 金鍾振(김종진·57회·KBS)씨 등 화려하다. 吉宗燮씨는 중앙일보, 동아방송 기자를 거쳐 KBS 정치부장, LA지국장, 경제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KBS 보도본부 대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2001년 삼성언론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방송기자도 신문 쪽 못지 않다. KBS를 먼저 살펴 본다. 보도본부장을 역임한 全炳寀씨는 現 KBS 영상사업단 대표이사 겸 방송기자클럽 부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柳鈞씨는 경제부장, 정치부장을 거쳐 보도국장으로, 李昶煥(이창환·40회)씨는 워싱턴지국 지국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동양방송 출신의 晉洪順(진홍순·45회)씨는 통일부, 정치부 차장을 역임하고 현재 보도국 국제 주간으로, 李喜燦(이희찬·45회)씨는 LA 주재 특파원으로 재직 중이다.
MBC의 경우 문화과학부장, 경제부장을 지낸 梁英喆(양영철·43회)씨와 정치부장을 지낸 金宅坤(김택곤·45회)씨는 해설위원직을 맡고 있다. 李善鎬(이선호·북중 45회)씨는 보도제작국 부장, 全在哲(전재철·49회)씨는 스포츠영상부 부장을 맡고 있다.
PD로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많다. 趙義振(조의진·46회·KBS 제주방송총국 총국장)씨는 KBS 장수 오락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李元君(이원군·46회·KBS 편성국장)씨도 KBS 간판 PD 출신이며 崔公燮(최공섭·56회) KBS 예능국 차장은 「사랑의 리퀘스트」로 全言會에서 주는 자랑스런 회원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MBC의 경우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연출자 殷暻杓(은경표·52회) 예능국 차장이 눈에 띈다. 李勝烈(이승렬·51회)씨는 「한지붕 세가족」 「질투」 「파일럿」 「TV시티」 「국희」 등 숱한 화제작을 연출한 드라마 전문PD. 최근 MBC를 떠나 김종학 프로덕션社로 자리를 옮겼다.
「인간시대」, 「PD수첩」을 연출한 崔震溶(최진용·54회) MBC 시사교양팀 차장은 現 제14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약칭 PD연합회) 회장이며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들」로 1993년도 대한민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丁楚永(정초영·49회·KBS 밀레니엄 기획단 부주간), 李元君(이원군·46회·KBS 편성국장)씨도 PD연합회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全州高 출신이 언론계에 많은 이유
全州高는 올해로 개교 82주년을 맞는 전북지역의 대표적 명문고다. 1919년 6월 문을 연 전주고등보통학교(全州高普)가 全州高·全州北中의 전신이다. 1978∼1981년 4년 간은 서울대에 137명, 160명, 155명, 177명을 진학시켜 서울대 합격자 수 전국랭킹 최상위권에 들었다. 全州北中은 1972년 중학교 평준화 정책에 의해 학생배정이 중단된 후 폐교되었다.
林秉澯 전북도민일보 사장은 全州高 출신이 언론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이유로 독특한 교풍을 들었다.
林사장의 설명.
『全州高의 교훈은 自彊(자강) 自律 自立이다. 교훈에서 느낄 수 있듯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학풍이 있다. 1960∼70년대 호남 출신이 불이익을 받던 시절 오직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연고주의의 폐단이 상대적으로 적은 언론사에 머리 좋은 인재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
全言會 총무를 맡고 있는 韓明奎 매일경제신문 증권부장은 全言會 발족 취지에 대해 『全州高 동문 언론인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말고 우리 사회와 향토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全言會는 언론인들만의 친목단체치고는 그 규모나 활동이 웬만한 학교 총동창회 수준이다. 회원들의 소식을 실은 회보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매년 100여 쪽에 달하는 회원명부를 발행하고 있다. 독립된 사무실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매년 한 두 차례 정도 큰 모임을 열어 동문간 만남의 장을 제공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 외 격월로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를 초청, 토론회를 개최해 회원 간의 친목과 정보교류를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한 해 동안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동문에겐 자랑스런 회원상도 시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임 규모에 대해 중앙일보 사회부 朴鍾權(박종권·53회) 차장은 『요즘은 오해받을까봐 모임도 별로 갖지 않는 편』이라며 『최근에는 모임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을 정도다. 모여봤자 10∼20명 정도』라고 말했다.
全言會 사무국장 郭永吉씨는 『과거 특정고 출신들이 파벌주의와 인사전횡 등으로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전례들을 잘 알고 있는데 누가 감히 그런 전철을 밟으려 할 것인가. 요즘 全言會는 회비도 잘 안 걷히는 등 조직 운영유지도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를 위해 全言會 간부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全言會 멤버들이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취재거부 사유는 간단하다. 언론에서 거론될 만큼 全州高가 실세가 아니며 실속도 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他校 출신들에겐 볼 수 없는 결속력과 조직적인 활동이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다.
全言會를 둘러싼 의혹
現 全言會 회장인 張潤煥 대한매일 논설고문은 『이 시점에서 全言會를 취재하려는 월간조선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며 『일절 취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취재에 응한 경우라도 全言會 소속 언론인 현황과 全言會 활동 등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 답변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全言會가 언론에 언급되는 것을 극히 꺼리는 이유에 대해 全言會 멤버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기도 했다. 작년 2월29일 金大中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특정고 인맥에 대한 경고 발언이 「한 몫 했다」는 것이다. 이날 金대통령은 『특정 고교 출신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오늘까지는 참겠으나 앞으로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全言會에 대한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첫째 기아사태가 터졌을 때 全言會 소속 기자들이 기아측을 비호하는 식의 보도를 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것. 金善弘 당시 기아그룹회장이 全州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全言會 멤버들은 全言會는 태동할 때부터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며 이런 의혹들을 터무니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의혹은 高建 서울특별시 시장 대권후보 만들기에 全言會가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全言會 멤버인 崔모씨가 高建 서울특별시장후보 언론특보를 맡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全言會 소속 회원들은 강하게 부인했다.
全言會 멤버 중 한 명은 『全言會 내에서 高建 시장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일 뿐』이라며 『全言會 차원에서 대권후보로 누구를 지원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鄭東泳 의원도 『全言會는 순수한 언론인 친목단체일 뿐』이라며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파벌형성 운운하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KBS와 연합뉴스의 경우 전주고 출신인 朴權相, 金槿 사장 취임 이후 全州高 동문들이 핵심 보직에 등용되었다.
金槿씨는 연합뉴스 사장으로 취임한 지 4개월 만인 2000년 12월 동문 후배이자 직장후배인 한겨레 논설위원 출신의 朴鍾文(박종문·53회)씨를 경영기획실 기획위원으로 임명했다. 이에 연합뉴스 노조측은 朴씨의 영입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계획하는 등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언론 노동조합(당시 위원장 최문순)도 金槿 사장의 그같은 조치를 「정실인사」라며 공식 성명을 발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상무급 인사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다. 작년 11월 崔正 당시 편집 상무는 정년 퇴임까지 2년여의 재임기간을 남겨두고 갑자기 사표를 제출했다. 후임으로 역시 全州高 동문후배인 千亮哲(천양철·42회) 前 지방국장이 발탁됐다.
金槿 사장이 내정된 데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2000년 8월 29일 연합뉴스 신임 사장 선출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노조측의 주총장 점거농성으로 무산되었다. 노조는 또 사장 내정자에 대해 찬반 투표까지 강행하기도 했다. 개표 결과 반대표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조측은 金槿씨의 사장 내정에 대해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연합뉴스의 경우 소유구조상 KBS와 MBC가 74.5%(KBS 42.4%, MBC 32.1%)의 주식지분을 갖고 있는 구조다. 사장은 정관에 따라 대주주가 내정하기로 되어 있는데 바로 연합뉴스의 대주주는 KBS다. 이런 이유로 金槿 사장 내정에 KBS 朴權相 사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KBS의 전주고 공방전
1998년에 취임한 朴權相 KBS 사장은 작년 6월 1명이던 부사장을 2명으로 늘리면서 언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출신 李炯模 부사장을 경질하고 강대영 방송정책실장과 全州高 후배인 金炯準 시설사업단 사장을 부사장에 임명했다. 더욱이 李炯模 前 부사장이 퇴임 후 가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특정고 출신을 멀리하라고 진언한 것이 문제가 돼 부사장직에서 밀려났다』고 주장한 이후 勞使간 全州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그 동안 KBS 내부에서는 朴사장의 全州高 출신 우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KBS 노조 특보 2000년 5월31일자는 KBS 전체 직원 가운데 全州高 출신이 1.2%인 62명에 불과하나 국장급 인사 책임직 75명의 15%인 11명이 全州高 출신이며 이들 중 80%가 朴사장 취임 뒤 승진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朴사장 취임 이후 KBS 핵심보직인 편성국주간, TV2국장, 보도본부장, 해설주간, 정책기획국장 등을 全州高 출신이 차지한 적도 있었다.
2000년도 全言會 회원 명단을 통해 파악한 全言會 멤버 중에는 全州北中, 全州高 출신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全言會 멤버 중 한 명은 이에 대해 『1981년부터 시작된 고교평준화 시책으로 언론사에 들어오는 全州高 후배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런 이유로 요즘엔 全言會의 명맥 유지를 위해 전주지역 출신 언론인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상태』라고 말했다. 2000년 현재 全言會 소속 현직 언론인 170명 중 全州高(北中 포함) 출신이 아닌 언론인은 12명이다.
95명의 명예회원 중에는 재계, 학계 등 다른 분야에 진출한 유명인사도 많다. 문화방송 편성국장을 지낸 徐圭錫(서규석·26회·前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씨는 광주대 언론대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강사로 활동중이다. 경향신문 논설주간을 역임한 任洪彬(임홍빈·27회)씨는 문학사상사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KBS PD 출신인 柳勳根(유훈근·36회)씨는 한효건설, 명화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해펄프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일보 출신의 成榮紹(성영소·38회)씨는 쌍용그룹, 한국통신 부사장을 역임했고 現 한국통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역시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鄭東益(정동익·38회)씨는 한국전기안전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동아, 중앙일보 기자를 지낸 朴廷基(박정기·41회)씨는 현재 조선대 미대 초빙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정·관계에도 두루 포진
官界에서의 全言會 인맥도 막강하다. 특히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동아일보 출신 金大坤 국내언론비서관, 金基萬 해외언론비서관, 중앙일보 출신 高道源 연설담당비서관 등 全言會 출신이 눈에 띈다.
吳弘根(오홍근·38회) 국정홍보처장도 全言會 인맥이다. 吳국정홍보처장은 중앙일보 상무 겸 논설위원을 지낸 후 언론계를 떠났다가 관계에 발을 디딘 경우다. 高錫晩(고석만·북중 40회) 국립영상간행물 제작소장 겸 K-TV(채널 14) 대표도 全言會 소속이다. 高대표는 「수사반장」,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야망의 25시」, 「간난이」 등 인기드라마를 연출한 MBC 간판 PD 출신이다.
全言會 인맥은 한나라당 입까지 커버하고 있다. 2000년 16代 총선 당시 한나라당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던 李元昌 한나라당 총재 언론특보는 경향신문 출신으로 역시 全言會 인맥이다. 그 뿐 아니다. 국회쪽에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金勝雄(김승웅·북중 35회) 국회사무처 공보관이 全言會 소속이다.
全州高 출신 언론인들은 정계로 진출한 경우도 많다. 趙世衡(27회·민주당 상임고문), 朴實(35회), 李鍾律(이종률·37회) 前의원 등이 全言會 출신이다. 현역의원인 金元基(김원기·32회·민주당), 張誠源(장성원·34회·민주당), 鄭東泳(민주당), 李元昌(이원창·38회·한나라당) 의원들도 全言會 출신이다.
2000년도 全言會 명부에는 정회원은 아니지만 언론계와는 상관없는 全州高 출신 정·관·재계 인사들로 구성된 특별회원 10명도 포함되어 있다. 특별회원은 宋三錫 모나미 회장, 林哲洙 前 서호레저 회장, 17代 감사원 원장을 지낸 韓勝憲 변호사, 법제처 장관 및 한국통신 이사장을 지낸 金鐘鍵 변호사, 노동부 장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李衍澤 현 2002 월드컵 축구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許鎭奎 일진그룹 회장, 李義喆 쌍방울 회장, 黃義仁 변호사, 崔勝軫 前 우성그룹 부회장, 李起台 광전자그룹 회장 등이다.●
신문 방송도 이 점에서 예외일 수 없다. 언론계에서 「實勢」로 통하는 학교는 어디일까. 바로 全州高(전주고)다. 全北지역의 대표적 명문고인 全州高 출신들이 언론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올해로 창립 45주년을 맞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寬勳(관훈)클럽. 이 클럽의 창립멤버 10명 중 5명이 全州高 출신이었다. 朴權相(박권상·24회·현 KBS 사장), 金寅昊(김인호·24회), 鄭仁亮(정인량·24회), 林芳鉉(임방현·26회), 趙世衡(조세형·27회)씨가 모두 全州高 동문이었다. 이 모임의 명칭인 「寬勳」도 최초의 회합장소였던 朴權相씨의 하숙집이 관훈동에 있었던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全州高가 언론계 실세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각 언론사에 광범위하게 포진한 인맥과 잘 짜여진 동문조직 때문이다. 全言會(전언회). 1988년 결성된 全州高 출신 在京 언론인 모임이다. 2000년 현재 全言會에 등록된 현직 언론인 수(신문·방송 기자 및 PD 포함) 는 170여 명. 他명문高의 언론인 배출 현황과 비교해 보면 이 수치는 더욱 돋보인다. 서울고 150여 명, 경기고 130명, 부산고 130명 수준이다. 대전고 출신 언론인 모임인 언능회에는 2001년 현재 약 180여 명이 가입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는 대전지역 언론인과 신문사, 방송사 행정·기술직 동문까지 포함한 수치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은퇴했거나 다른 분야로 진출한 명예회원 95명, 全北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문언론인까지 포함하면 全州高 출신 전현직 언론인 수는 총 350여 명 가량 될 것이라고 全言會 관계자는 전했다.
全言會는 1988년 1월 全州高 출신 정치부 기자 9명이 모여 在京 全州高 언론인 모임체를 만들기로 결의한 데서 시발점을 이뤘다. 柳鈞(유균·41회·現 KBS 보도국장), 金大坤(김대곤·44회·現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 韓明奎(한명규·52회·現 매일경제신문 증권부장)씨 등이 全言會의 뼈대를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과 함께 朴俊雄(박준웅·41회·前 시사저널 편집장), 高道源(고도원·48회·現 청와대 연설담당관), 鄭東泳(정동영·48회·現 국회의원), 金基萬(김기만·49회·現 청와대 해외언론담당관), 崔奎植(최규식·49회·現 한국일보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黃宇淵(황우연·50회·한국통신 엠 닷컴 상무)씨 등이 창립멤버로 활약했다.
全言會가 만들어진 후 이에 자극받은 광주고 출신들은 광언회, 광주일고 출신들은 무등언론회(약칭 무언회), 익산 남성고 출신들은 남언회 등을 연이어 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全言會 초대 회장은 朴權相씨가 맡았다. 2代 회장은 鄭璟喜(정경희·28회·前 한국일보 논설위원)씨가, 3代인 現 회장직은 張潤煥(장윤환·33회·現 대한매일 논설고문)씨가 맡았다.
全言會의 위력은 현직 언론사 사장이 8명에 이르고 있다는 데서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KBS 사장인 朴權相씨를 비롯, 金槿(김근·37회·연합뉴스 사장), 金景徹(김경철·34회·코리아 헤럴드·내외경제신문 사장), 郭永吉(곽영길·50회·파이낸셜뉴스 사장), 全炳寀(전병채·35회·KBS 영상사업단 사장), 河永錫(하영석·38회·대전문화방송 사장), 柳熙根(유희근·41회·전주문화방송 사장), 白樂千(백낙천·42회·전주방송 사장)씨 등이다. 全言會 멤버는 아니지만 전북일보 徐彰焄(서창훈) 사장과 전북도민일보 林秉澯(임병찬) 사장도 全州高 출신이다.

全言會 멤버 중 신문사 주필은 申瓚均(신찬균·33회·세계일보), 李正根(이정근·44회·매일경제신문)씨 등 2명. 申瓚均 세계일보 주필은 연합통신 출판국장, 논설위원실장을 거쳐 국민일보 편집국장, 세계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李正根 매경 주필은 매일경제 東京특파원, 경제부장·정치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全言會에는 「기자의 꽃」이라 일컬어지는 신문사 편집국장 출신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朴權相(동아일보), 金寅昊(중앙일보), 林芳鉉 (현대경제일보, 일요신문), 趙世衡(한국일보), 金景徹(김경철·34회·중앙경제신문), 申瓚均(신찬균·33회·국민일보), 孟泰均(맹태균·35회·충청매일), 裵琪哲(배기철·41회·한국일보), 李正根(이정근·44회·매일경제), 崔相(최상현·45회·국민일보), 李忠雨(이충우·34회·평화신문), 張世煥(장세환·48회·전북제일신문) 등 12명에 이른다. 전북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陸完泰(육완태)씨는 全言會 멤버는 아니지만 全州高 출신이다.
현역으로는 朴鉉泰(박현태·48회·現 전자신문 편집국장)씨가 있다.
全言會 출신으로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이도 4명이나 된다. 제5대 한국기자협회 회장 郭址湧(곽지용·26회·前 동화통신 정치부장)씨를 비롯, 제16대 朴實(박실·35회·前 국회의원), 제15, 21, 22, 23, 24대 회장을 지낸 李肯珪(이긍규·전주북중 35회·前 국회의원·전주고와 전주북중은 1951년 6·3·3·4제 학제개편으로 분리됨), 제36대 趙成富(조성부·52회·연합뉴스 경제부장)씨다.

全言會는 언론사 노조위원장도 다수 배출했다. 韓明奎(매경 증권부장), 朴魯承(박노승·53회·경향신문 경제부장), 尹錫仁(윤석인·53회·한겨레신문 경영기획실 부실장), 尹勝容(윤승용·53회·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씨 등이 그들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한국기자상을 3회 수상한 황호택(52회·동아일보 논설위원)씨와 기자협회 사상 이달의 기자상을 최다(7회) 수상한 동아일보 사회부 梁基大(양기대·58회) 기자도 全言會 멤버다.
방송계에서도 全言會 출신은 두각을 나타낸다. 방송사 보도국장 출신으로는 金現廷(김현정·34회·KBS), 李忠雨 (평화방송), 유남수(49회·現 교통방송 심의실장)씨 등이 있다. 현역으로 柳鈞 (유균·41회·KBS 보도국장), 朴南勳(박남훈·38회·CBS 보도국장)씨 등이 활약하고 있다.
전현직 TV 앵커도 상당수다. 金澤煥(김택환·32회·KBS), 鄭秉秀(정병수·35회·MBC), 吉宗燮(길종섭·북중 39회·KBS), 辛京珉(신경민·48회·MBC), 鄭東泳(MBC), 李康鈞(이강균·55회·KBS), 金鍾振(김종진·57회·KBS)씨 등 화려하다. 吉宗燮씨는 중앙일보, 동아방송 기자를 거쳐 KBS 정치부장, LA지국장, 경제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KBS 보도본부 대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2001년 삼성언론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방송기자도 신문 쪽 못지 않다. KBS를 먼저 살펴 본다. 보도본부장을 역임한 全炳寀씨는 現 KBS 영상사업단 대표이사 겸 방송기자클럽 부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柳鈞씨는 경제부장, 정치부장을 거쳐 보도국장으로, 李昶煥(이창환·40회)씨는 워싱턴지국 지국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동양방송 출신의 晉洪順(진홍순·45회)씨는 통일부, 정치부 차장을 역임하고 현재 보도국 국제 주간으로, 李喜燦(이희찬·45회)씨는 LA 주재 특파원으로 재직 중이다.
MBC의 경우 문화과학부장, 경제부장을 지낸 梁英喆(양영철·43회)씨와 정치부장을 지낸 金宅坤(김택곤·45회)씨는 해설위원직을 맡고 있다. 李善鎬(이선호·북중 45회)씨는 보도제작국 부장, 全在哲(전재철·49회)씨는 스포츠영상부 부장을 맡고 있다.
PD로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도 많다. 趙義振(조의진·46회·KBS 제주방송총국 총국장)씨는 KBS 장수 오락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李元君(이원군·46회·KBS 편성국장)씨도 KBS 간판 PD 출신이며 崔公燮(최공섭·56회) KBS 예능국 차장은 「사랑의 리퀘스트」로 全言會에서 주는 자랑스런 회원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MBC의 경우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연출자 殷暻杓(은경표·52회) 예능국 차장이 눈에 띈다. 李勝烈(이승렬·51회)씨는 「한지붕 세가족」 「질투」 「파일럿」 「TV시티」 「국희」 등 숱한 화제작을 연출한 드라마 전문PD. 최근 MBC를 떠나 김종학 프로덕션社로 자리를 옮겼다.
「인간시대」, 「PD수첩」을 연출한 崔震溶(최진용·54회) MBC 시사교양팀 차장은 現 제14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약칭 PD연합회) 회장이며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들」로 1993년도 대한민국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丁楚永(정초영·49회·KBS 밀레니엄 기획단 부주간), 李元君(이원군·46회·KBS 편성국장)씨도 PD연합회 회장직을 맡은 바 있다.

全州高는 올해로 개교 82주년을 맞는 전북지역의 대표적 명문고다. 1919년 6월 문을 연 전주고등보통학교(全州高普)가 全州高·全州北中의 전신이다. 1978∼1981년 4년 간은 서울대에 137명, 160명, 155명, 177명을 진학시켜 서울대 합격자 수 전국랭킹 최상위권에 들었다. 全州北中은 1972년 중학교 평준화 정책에 의해 학생배정이 중단된 후 폐교되었다.
林秉澯 전북도민일보 사장은 全州高 출신이 언론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는 이유로 독특한 교풍을 들었다.
林사장의 설명.
『全州高의 교훈은 自彊(자강) 自律 自立이다. 교훈에서 느낄 수 있듯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학풍이 있다. 1960∼70년대 호남 출신이 불이익을 받던 시절 오직 실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연고주의의 폐단이 상대적으로 적은 언론사에 머리 좋은 인재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
全言會 총무를 맡고 있는 韓明奎 매일경제신문 증권부장은 全言會 발족 취지에 대해 『全州高 동문 언론인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말고 우리 사회와 향토발전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全言會는 언론인들만의 친목단체치고는 그 규모나 활동이 웬만한 학교 총동창회 수준이다. 회원들의 소식을 실은 회보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매년 100여 쪽에 달하는 회원명부를 발행하고 있다. 독립된 사무실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매년 한 두 차례 정도 큰 모임을 열어 동문간 만남의 장을 제공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 외 격월로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를 초청, 토론회를 개최해 회원 간의 친목과 정보교류를 도모하고 있다고 한다. 한 해 동안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동문에겐 자랑스런 회원상도 시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모임 규모에 대해 중앙일보 사회부 朴鍾權(박종권·53회) 차장은 『요즘은 오해받을까봐 모임도 별로 갖지 않는 편』이라며 『최근에는 모임 자체가 잘 이뤄지지 않을 정도다. 모여봤자 10∼20명 정도』라고 말했다.
全言會 사무국장 郭永吉씨는 『과거 특정고 출신들이 파벌주의와 인사전횡 등으로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전례들을 잘 알고 있는데 누가 감히 그런 전철을 밟으려 할 것인가. 요즘 全言會는 회비도 잘 안 걷히는 등 조직 운영유지도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를 위해 全言會 간부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全言會 멤버들이 취재에 응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취재거부 사유는 간단하다. 언론에서 거론될 만큼 全州高가 실세가 아니며 실속도 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他校 출신들에겐 볼 수 없는 결속력과 조직적인 활동이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염려도 있었다.

現 全言會 회장인 張潤煥 대한매일 논설고문은 『이 시점에서 全言會를 취재하려는 월간조선의 의도가 무엇이냐』고 반문하며 『일절 취재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취재에 응한 경우라도 全言會 소속 언론인 현황과 全言會 활동 등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 답변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全言會가 언론에 언급되는 것을 극히 꺼리는 이유에 대해 全言會 멤버 중 한 명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하기도 했다. 작년 2월29일 金大中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특정고 인맥에 대한 경고 발언이 「한 몫 했다」는 것이다. 이날 金대통령은 『특정 고교 출신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오늘까지는 참겠으나 앞으로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全言會에 대한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첫째 기아사태가 터졌을 때 全言會 소속 기자들이 기아측을 비호하는 식의 보도를 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것. 金善弘 당시 기아그룹회장이 全州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全言會 멤버들은 全言會는 태동할 때부터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며 이런 의혹들을 터무니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의혹은 高建 서울특별시 시장 대권후보 만들기에 全言會가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全言會 멤버인 崔모씨가 高建 서울특별시장후보 언론특보를 맡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도 全言會 소속 회원들은 강하게 부인했다.
全言會 멤버 중 한 명은 『全言會 내에서 高建 시장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 차원일 뿐』이라며 『全言會 차원에서 대권후보로 누구를 지원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鄭東泳 의원도 『全言會는 순수한 언론인 친목단체일 뿐』이라며 『영향력을 행사한다거나 파벌형성 운운하는 것은 오해』라고 말했다.
KBS와 연합뉴스의 경우 전주고 출신인 朴權相, 金槿 사장 취임 이후 全州高 동문들이 핵심 보직에 등용되었다.
金槿씨는 연합뉴스 사장으로 취임한 지 4개월 만인 2000년 12월 동문 후배이자 직장후배인 한겨레 논설위원 출신의 朴鍾文(박종문·53회)씨를 경영기획실 기획위원으로 임명했다. 이에 연합뉴스 노조측은 朴씨의 영입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계획하는 등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언론 노동조합(당시 위원장 최문순)도 金槿 사장의 그같은 조치를 「정실인사」라며 공식 성명을 발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상무급 인사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일어났다. 작년 11월 崔正 당시 편집 상무는 정년 퇴임까지 2년여의 재임기간을 남겨두고 갑자기 사표를 제출했다. 후임으로 역시 全州高 동문후배인 千亮哲(천양철·42회) 前 지방국장이 발탁됐다.
金槿 사장이 내정된 데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다. 2000년 8월 29일 연합뉴스 신임 사장 선출을 위한 임시주주총회가 노조측의 주총장 점거농성으로 무산되었다. 노조는 또 사장 내정자에 대해 찬반 투표까지 강행하기도 했다. 개표 결과 반대표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조측은 金槿씨의 사장 내정에 대해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연합뉴스의 경우 소유구조상 KBS와 MBC가 74.5%(KBS 42.4%, MBC 32.1%)의 주식지분을 갖고 있는 구조다. 사장은 정관에 따라 대주주가 내정하기로 되어 있는데 바로 연합뉴스의 대주주는 KBS다. 이런 이유로 金槿 사장 내정에 KBS 朴權相 사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다.

1998년에 취임한 朴權相 KBS 사장은 작년 6월 1명이던 부사장을 2명으로 늘리면서 언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출신 李炯模 부사장을 경질하고 강대영 방송정책실장과 全州高 후배인 金炯準 시설사업단 사장을 부사장에 임명했다. 더욱이 李炯模 前 부사장이 퇴임 후 가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특정고 출신을 멀리하라고 진언한 것이 문제가 돼 부사장직에서 밀려났다』고 주장한 이후 勞使간 全州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그 동안 KBS 내부에서는 朴사장의 全州高 출신 우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KBS 노조 특보 2000년 5월31일자는 KBS 전체 직원 가운데 全州高 출신이 1.2%인 62명에 불과하나 국장급 인사 책임직 75명의 15%인 11명이 全州高 출신이며 이들 중 80%가 朴사장 취임 뒤 승진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朴사장 취임 이후 KBS 핵심보직인 편성국주간, TV2국장, 보도본부장, 해설주간, 정책기획국장 등을 全州高 출신이 차지한 적도 있었다.
2000년도 全言會 회원 명단을 통해 파악한 全言會 멤버 중에는 全州北中, 全州高 출신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全言會 멤버 중 한 명은 이에 대해 『1981년부터 시작된 고교평준화 시책으로 언론사에 들어오는 全州高 후배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런 이유로 요즘엔 全言會의 명맥 유지를 위해 전주지역 출신 언론인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된 상태』라고 말했다. 2000년 현재 全言會 소속 현직 언론인 170명 중 全州高(北中 포함) 출신이 아닌 언론인은 12명이다.
95명의 명예회원 중에는 재계, 학계 등 다른 분야에 진출한 유명인사도 많다. 문화방송 편성국장을 지낸 徐圭錫(서규석·26회·前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씨는 광주대 언론대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강사로 활동중이다. 경향신문 논설주간을 역임한 任洪彬(임홍빈·27회)씨는 문학사상사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KBS PD 출신인 柳勳根(유훈근·36회)씨는 한효건설, 명화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해펄프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동아일보 출신의 成榮紹(성영소·38회)씨는 쌍용그룹, 한국통신 부사장을 역임했고 現 한국통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역시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鄭東益(정동익·38회)씨는 한국전기안전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동아, 중앙일보 기자를 지낸 朴廷基(박정기·41회)씨는 현재 조선대 미대 초빙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官界에서의 全言會 인맥도 막강하다. 특히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동아일보 출신 金大坤 국내언론비서관, 金基萬 해외언론비서관, 중앙일보 출신 高道源 연설담당비서관 등 全言會 출신이 눈에 띈다.
吳弘根(오홍근·38회) 국정홍보처장도 全言會 인맥이다. 吳국정홍보처장은 중앙일보 상무 겸 논설위원을 지낸 후 언론계를 떠났다가 관계에 발을 디딘 경우다. 高錫晩(고석만·북중 40회) 국립영상간행물 제작소장 겸 K-TV(채널 14) 대표도 全言會 소속이다. 高대표는 「수사반장」,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야망의 25시」, 「간난이」 등 인기드라마를 연출한 MBC 간판 PD 출신이다.
全言會 인맥은 한나라당 입까지 커버하고 있다. 2000년 16代 총선 당시 한나라당 선대위 대변인을 맡았던 李元昌 한나라당 총재 언론특보는 경향신문 출신으로 역시 全言會 인맥이다. 그 뿐 아니다. 국회쪽에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金勝雄(김승웅·북중 35회) 국회사무처 공보관이 全言會 소속이다.
全州高 출신 언론인들은 정계로 진출한 경우도 많다. 趙世衡(27회·민주당 상임고문), 朴實(35회), 李鍾律(이종률·37회) 前의원 등이 全言會 출신이다. 현역의원인 金元基(김원기·32회·민주당), 張誠源(장성원·34회·민주당), 鄭東泳(민주당), 李元昌(이원창·38회·한나라당) 의원들도 全言會 출신이다.
2000년도 全言會 명부에는 정회원은 아니지만 언론계와는 상관없는 全州高 출신 정·관·재계 인사들로 구성된 특별회원 10명도 포함되어 있다. 특별회원은 宋三錫 모나미 회장, 林哲洙 前 서호레저 회장, 17代 감사원 원장을 지낸 韓勝憲 변호사, 법제처 장관 및 한국통신 이사장을 지낸 金鐘鍵 변호사, 노동부 장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李衍澤 현 2002 월드컵 축구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 許鎭奎 일진그룹 회장, 李義喆 쌍방울 회장, 黃義仁 변호사, 崔勝軫 前 우성그룹 부회장, 李起台 광전자그룹 회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