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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우크라이나 전쟁 1년, 한국군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나?

육사 출신 예비역 청년장교가 말하는 국방개혁 4.0

글 : 조성원  예비역 육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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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은 껍데기만 디지털화된 산업화 시대의 군인들… 디지털화된 것은 전투복 무늬뿐
⊙ ‘AI ·로봇 만들어달라’지만, 만들어주면 운용할 수 있나?
⊙ 국군은 期數主義, 미군은 能力主義
⊙ 直言할 용기 없는 上意下達 모범생 군인들
⊙ 육군대학, 전략 교육 없이 전술 교육에만 급급
⊙ 우리 軍의 인재 교육은 ‘생각하는 지휘관’ 아닌 장비 조작요원(operator), 체크 리스트 운용자 양성 교육

조성원
1987년생. 예비역 대위 / 육사(66기) 졸업,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재학 / 미 육군 포병학교 고등군사반, 한미연합사단 화력계획장교 / 합참의장 표창
육군은 차륜형 장갑차·소형전술차량 등을 기동플랫폼으로 드론봇 전투체계, 네트워크화, AI 기반 초지능 의사결정체계를 결합한 아미타이거 시범여단을 운용 중이다. 사진=뉴스1
  2022년 11월 23일 서울의 한 특급호텔 연회장이 전투복을 입은 야전군인, 정복을 차려입은 사관생도, 단정한 사복 차림의 학자 등 육군의 미래상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한데 모여 북적였다.
 
  이날 호텔에선 육군과 서울대학교 미래전연구센터가 공동 개최한 ‘제8회 육군력 포럼’이 열렸다.
 
  여정성 서울대학교 교육부총장 인사말 중 일부이다.
 
  “예전에 ‘국방개혁 2.0(문재인 정부)’이었던 국방혁신이 왜 (3.0을 거치지 않고 윤석열 정부에서) 곧장 ‘국방혁신 4.0’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말실수였다.
 
  육군은 그간 포럼(1~7회)을 서강대와 함께 진행했다. 이번 8회 포럼부터는 서울대와 협업한다. 그런데 육군과 서울대가 만나 처음으로 육군의 미래를 논하는 공식 석상에서 서울대 측은 국방혁신 4.0이 왜 4.0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육군참모차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 서울대학교 미래전 연구센터장 등을 비롯해 군(軍)과 학계에서 국방혁신을 이끌어갈 이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런데도 서울대 부총장이 제기한 의문 또는 말실수에 대해 설명하거나 정정하는 이는 없었다.
 
 
  ‘국방혁신 4.0’ 유감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우리 군이 가장 관심을 두는 주제는 ‘국방혁신 4.0’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국방혁신 4.0에 대한 수많은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덕분에 용역을 따낸 학계·연구기관은 경쟁적으로 국방혁신 4.0을 주제로 한 세미나와 포럼을 열고 있다. 양적으로만 보면 윤석열 정부의 국방혁신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관심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관학교에 입학해 16년 동안 군복을 입었던, 36세 예비역 대위인 필자는 최근 논의되는 국방혁신 4.0에 대해 유감(有感)이 있다.
 

  필자는 ‘본질을 논하지 않는 사후강평(AAR·After Action Review)은 의전(儀典) 행사에 불과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우리 군과 국방혁신을 연구하는 이들의 노고를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필자는 2010년 육군 포병 장교로 임관했다. 대위 시절 고등군사반(OAC) 교육을 마친 후 2014년에는 미 육군 포병학교 고등군사반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다. 유학에 앞서 미군이 강한 이유는 단순히 막대한 예산 때문만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미군은 다양한 인종·계층의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입대해 이뤄진 군대다. 그만큼 미군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지적)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이에 미군은 우수한 자원(엘리트)에 대해서는 인사 우대 정책을 공개적이고 합당하게 시행하고 있다. 설령 우대 정책에 대한 혜택을 입지 못한 이들도 ‘유능한 자’에 대한 우대를 문제 삼지 않는 문화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투명한 소통 문화를 갖고 있었다.
 
 
  바뀐 것은 전투복 무늬뿐
 
육사 입학식. 우리 군은 아직도 ‘기수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필자는 국외 교육을 마치고 돌아온 뒤 ‘미군에서 배운 것을 우리 군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능력’이 아닌 ‘기수(期數)’로 개개인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기수주의’에 잠식돼 투명한 소통이 단절됐다. 장교단(將校團) 특유의 배타성(排他性)이었다. 이는 국외 교육을 받아 개방적인 사고 경험이 많은 장교들로 이뤄진 (다국적) 연합부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장교단은 ‘진급하기 바빠’ 지적인 사고와 논리력을 통한 전략적 사고를 기르는 데는 인색하다. 진급에 유리한 핵심 보직에 ○○기가 앉아 있으면 그다음에는 ○○기가 임명될 것이고, 그 기수 중에 누가 후임자로 임명될 것인가가 장교들의 관심사이다.
 
  우리 군도 지적으로 우수하고 논리력을 갖춘 엘리트 집단이 장교단에 형성돼야 한다. 역사적으로 문제의식과 개선 의지를 갖춘 장교들은 군의 합리적인 문화 창달을 이끌었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제도를 혁신했다.
 
  2006년 필자가 육사에 처음 입교했을 때 사관생도 생활을 함께했던 선배들이 이제는 대대장(중령) 부임을 앞두고 있다. 2023년 한국군은 필자가 임관한 2010년과 비교할 때 본질은 발전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군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논의를 외면한 채 ‘혁신으로 포장된 구호’만을 앞세운다면 우리 군은 10년, 20년 뒤에도 전투복의 무늬 외에는 근본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 염려스럽다.
 
 
  왜 국방혁신 4.0인가?
 
  “4.0과 2.0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숫자가 달라지면 단계가 변하는 것인데 단계가 변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국방혁신을 논하는 세미나가 개최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은 지금까지 없다. 서울대 부총장이 육군 관계자들 앞에서 제기한 의문에 이른바 ‘정책 결정 당사자’가 답하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국방혁신 4.0? 그 뜻은 아무도 모른다. 국방부에서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아무도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물론 국방혁신 4.0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존재한다. 사전이나 교범에 적힌 정의가 중언부언(重言復言)에 그쳐 아무리 읽어도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간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군이 앞세우는 국방혁신 4.0이 현재 그러한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이슈가 되니 국방혁신에 숫자 ‘4’를 갖다 붙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는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의 차이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그럴싸해 보이는 단어나 표현을 써가며 ‘4차 산업혁명’을 애써 정의하려고 든다. 하지만 이 용어가 기존에 누려왔던 ‘3차 산업혁명’ 시대와는 무엇이 다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위정자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세련된 욕망과 공상·환상이 담긴 단어나 기술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친다. 대표적으로 AI, 드론, 스마트팜, 로봇 같은 것들이다.
 
  우리나라 군인들은 ‘체크 리스트(Check-List)’를 참 좋아한다. 이는 2차 산업혁명 시절 사고의 산물이다.
 
  2차 산업혁명식 사고는 체크 리스트를 바탕으로 각종 기준을 설정한다. 이 기준은 다시 강제로 백분율화한 (의미 없는) 수치를 바탕으로 ▲녹색 ▲황색 ▲적색으로 시각화돼 구분된다.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녹색의 개수가 몇 개인지, 녹색·황색·적색의 비율이 어떤지에 집착한다. 연말 성과분석자료에 기재된 백분율 수치나 알록달록한 표를 보고 기뻐한다면, 이는 2차 산업혁명식 사고에 익숙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3차 산업혁명부터는 2차 산업혁명 시절처럼 선형적인 사고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민간은 물론 우리 군에서는 선형적 사고를 바탕으로 3차 산업혁명을 맞았다.
 
  2000년대 초반, 우리 군도 미군처럼 디지털화된 전장가시화(戰場可視化)를 시도했다. 모니터를 통해 적과 아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먼저 보고, 먼저 결심해, 먼저 타격하겠다”는 ‘선견(先見) → 선결(先決) → 선타(先打)’를 구현하고자 했다.
 
  미군이 활용한 기술은 미군 지휘통제체계 ‘CENTRIX-K’였다. CENTRIX-K는 미군의 디지털 군사기술을 한반도 전구(戰區)에 최적화한 지휘통제 시스템이다. 노트북에 아군 부대의 움직임은 물론 아군이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적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노트북의 ‘전송’ 버튼만 누르면 각종 작전 명령이 하달되고 표적 정보도 제공된다.
 
  우리 군도 미군을 본떠 한국판 CENTRIX-K인 ‘ATCIS(Army Tactical Command Information System·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를 도입했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천하무적 미군처럼 우리 군도 모니터 스크린으로 지휘통제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지도를 잘라 붙인 입식 상황판에 아스테이지를 오려 붙인 말판으로 적의 위치를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는 듯했다. 여기에 중대 단위 행정반에도 국방망이 연결된 PC가 보급됐다.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본다면 정말로 우리 군은 ATCIS를 도입해 전장을 가시화했을까? 지휘관들의 망상(妄想) 속에선 구현됐을지도 모른다.
 
 
  연동되지 않는 ‘난개발된 시스템’
 
  우선 우리 군에 국방망 PC가 보급된 뒤 군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겼을까. 노란 파일철, 황색 봉투, 수기(手記·종이) 문서로 대표되는 평시(平時) 행정 업무는 그 처리 도구에 PC가 추가됐을 뿐 업무 처리 방식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여전히 산업화 시대 방식으로 거의 모든 일이 진행됐다.
 
  행정 업무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각종 시스템을 개발해 전력화(연대통합 행정 업무, 온나라 시스템, 병과별 체계 등)했다. 하지만 ‘난개발된 시스템들’은 서로 연동되지 않았다. 일선 부대는 불만만 커졌다. 여기에 2차 산업혁명식 사고에 머물렀던 지휘관들은 PC를 이용한 ‘전자 서명(문서)’을 불신했다.
 
  이 때문에 실무자들은 수기 문서에 더해 전자 문서까지 추가로 만들어야 했다. 이중고를 덜기 위해 도입한 전자 결재 시스템이 ▲퇴행적인 업무 처리 방식 ▲시스템 간 연동 문제 등으로 오히려 삼중고, 사중고를 유발했다.
 
  일례로 배차 업무를 맡은 실무자는 상급자에게 수기 문서로 대면 보고한 뒤 허락을 받고는 다시 전자 결재를 신청해 승인받아야 했다. 전자 결재만을 올리면 ‘버릇없다’는 타박을 들어야 했다.
 
  여기에 부대 운영 프로그램과 배차 업무에 사용되는 수송 체계 시스템이 서로 연동돼 있지 않아 일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지금도 육군에는 병과 및 기능별로 ‘○○체계’라는 이름의 시스템만 수십 가지다. 이 시스템들은 여전히 상호 연동되지 않는다. 이 고질적인 연동성 문제로 인해 전산 업무의 양은 오히려 수기 문서만을 다루던 시절보다 더 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무인민원발급기 한 대만 있으면 손쉽게 주민등록등본부터 각종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군이 쓰는 ‘상호 연동되지 않는, 분절·고립된, 난개발된 시스템’은 ‘등본 말고도 각종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등본만 뗄 수 있는 값비싼 기계’와도 같다. 그러나 실상에는 관심 없는 지휘관들이나 원로들은 ‘컴퓨터 생겨서 요즘에는 일이 편해졌다’고 평한다. 우리 군의 평시 행정 업무 문화는 3차 산업혁명 시대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는 전시(戰時) 임무 수행 방식에도 그대로 투영됐다.
 
 
  64Kb짜리 ‘모뎀’ 사용하는 ATCIS
 
미 해군 조지워싱턴호 지휘통제실. 한국군도 미군을 본떠 ATCIS를 도입했지만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진=조선DB
  ATCIS라는 ‘도깨비방망이’가 전력화(戰力化)됐지만 우리가 기대했던 실시간 전장가시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ATCIS에 필요한 정보를 송수신하기 위한 통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약한 데이터 유통 채널로 인해 정작 ATCIS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ATCIS를 운영하기 위해 비싼 노트북을 들여다 놓았지만 정작 ATCIS에 접속하는 통신은 PC통신 시절 사용한 64Kb짜리 ‘모뎀’을 가져다 놓았다.
 
  쉽게 비유를 들자면 100만원 넘는 돈을 들여 성능 좋은 최신 스마트폰을 사놓고는 정작 4G나 5G와 같은 통신 기술 대신 20년 전 ‘폴더폰’에 적용됐던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안 된다’는 말은 군에서 죄악으로 통했다. ATCIS로 적과 아군, 공격 개시선 등 각종 전술적 통제 수단이 ‘COP(Common Operation Picture·공통 작전상황도)’로 도식(圖式)돼야 했다. 이에 작전 장교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가짜 COP’로 64Kb 모뎀이 주는 한계를 우회했다. 이는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패망으로 이끈 ‘쇼와(昭和) 육군’을 연상케 했다.
 
  우리 군의 소통 없는 2차 산업혁명식 업무 문화는 현재 한국군의 평시는 물론 전시 업무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 군은 스스로 3차 산업혁명의 혜택을 보는 것을 거부한 셈이다.
 
  당시의 ATCIS는 순전히 보여주기식 점검용, 사열용 장비였다. 2010년대 초반까지도 대대급 ATCIS는 ‘모뎀’ 수준의 전송력을 가진 장비를 통해 연동해야 했기 때문에 연대장의 작전명령서를 ATCIS로 다운로드하는 것보다 연대 본부로 직접 가 USB에 그 내용을 담아 오는 것이 더 빨랐다. 군 전투지휘검열이 이뤄질 때면 이 애물단지(ATCIS)는 감찰관들 앞에서 현재 전장을 주도하는 ‘결전 병기’로 치켜세워졌다.
 
  그러나 ATCIS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단순히 ‘느린 전송 속도’나 ‘부족한 장비 보급’이 아니었다. ATCIS를 운용하는 지휘관들의 사고에 문제가 있었다.
 
 
  막내 장교가 ‘CENTRIX-K’ 비밀번호 관리
 
  이러한 사고방식의 일례를 필자가 연합부대에서 겪은 체험으로 밝힌다.
 
  한미연합부대는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함께 근무한다. 그런데 미군은 한국군에 대해 ‘기본이 안 됐다’는 경멸감을 가질 때가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쇼와 육군’의 잔재를 가진 우리 한국군은 상급자가 자신의 의무를 하급자에게 대신하도록 떠넘기는 일이 많다.
 
  한미 모 연합부대에서는 2010년대 후반에도 여전히 부서장의 ‘CENTRIX-K’ 비밀번호를 그 부서의 최하급 장교가 관리했다. 상급자 본인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막내 장교가 비밀번호를 교체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서장이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문서도 막내 장교가 부서장의 계정으로 접속해 대신 보내는 악습이 존재했다.
 
  ‘3차 산업혁명 군대’인 미군에 있어서 개인의 페르소나(persona·정체성)와 같은 계정 정보를 하급자에게 양도해 일을 대신 처리하도록 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미군의 시각에서는 실무를 대신 처리하는 하급 장교가 지휘관의 계정을 도용해 자기 마음대로 공격 명령을 하달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ATCIS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우리 군은 ‘지휘관용 ATCIS’를 가장 먼저 전력화해 보급했다. 이는 지휘관의 지휘 판단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우리 군 지휘관은 지휘소 연습에 가장 늦게 도착해놓고는 U자형 회의 테이블 상석에 앉아 변함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준비한 거 (모니터에) 한 번 띄워봐라”
 
  필자가 경험한 지휘관 중 자신의 ATCIS 계정에 대한 접속 정보, 추가 암호(2차 암호) 사항을 숙지하고 본인이 직접 접속해 COP를 지휘한 이는 없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군이 내세우는 ‘3차 산업혁명의 아이콘 ATCIS’는 이를 다룰 줄 아는 소수의 작전 장교가 만든 형형색색의 가짜 COP로 뒤덮여 지휘관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했다. 우리 군의 3차 산업혁명은 이렇게 끝났다. 우리는 껍데기만 디지털화된 산업화 시대의 군인들이었다. 전투복 무늬만 디지털화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했다.
 
  미래 전장 환경은 ‘기술력’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 기술(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에 끝이 없는 현재 진행형 문제다. 국방혁신도 마찬가지다. 최초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국방개혁 2.0(문재인 정부)’, 3.0, ‘국방혁신 4.0(윤석열 정부)’과 같은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사다리 타고 막사 고드름 제거
 
위험 지대를 정찰하기 위해 개발한 다족형 견마로봇(Quadruped Legged Robot). 사진=조선DB
  2008년 육사 을지강당(대강당)에서 사관생도를 비롯해 훈육관, 교수 등을 대상으로 ‘육군비전 2020’에 대한 소개 교육이 있었다. 2020년이 되면 견마(犬馬) 로봇이 위험한 구역을 인간 대신 정찰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근육강화복이 개발돼 이 복장을 착용하면 병사들이 3m짜리 담장을 뛰어오를 수 있다고 교육했다. 하지만 2023년 현실은 막사 지붕 처마에 고드름이 달리면 이를 제거하기 위해 위험한 사다리를 타야 한다.
 
  한편 기술 개발을 책임지는 이공계 연구자들은 ‘국방혁신 4.0’에 대해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우리 군이 4.0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도 없이 유행하는 기술에만 집착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에둘러 비판한다.
 
  한 연구자는 육군력 포럼에서 “육군에선 ‘AI 만들어달라, 로봇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궁금한 건 ‘우리가 만들어주면 육군에서 이를 활용할 수 있을까’란 점”이라고 했다.
 
  우리 군이 현재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예산은 국방비의 약 6% 수준이다. 반면 기술 스타트업은 최고 40%까지 투자한다. 정책 결정자들은 좋아하지만 연구자들은 싫어하는 단어가 ‘저비용 고효율’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미래 전장을 주도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 개발’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군의 인재 교육은 ‘생각하는 지휘관’이 아닌 장비조작요원(operator), 체크 리스트 운용자를 양성하는 교육이 돼버렸다.
 
  교육 기관에서 정한 교리, 모범 답안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니 군사적 천재가 실종됐다. 일국의 군사적 천재, 전략가를 양성해야 할 육군대학에서 자유로운 토론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무능한 장교를 퇴교시켰다거나 학생장교들이 전략을 연구하면서 자신의 전략 개념을 가다듬는 논문을 작성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군사적 천재는커녕 전략을 가르치지 않고 전술 교육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전략의 기본인 전쟁사 또한 대학교 교양과목 수준으로 겉핥기만 하고 비판 없이 ‘교관안’을 수용하기만 하면 교육생들은 ‘육군 대학 수료자’가 된다.
 
  이렇게 양성된 ‘상의하달’식 모범생들은 ‘안 된다, 불가능하다, 바꿔야 한다’는 직언을 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 논리력이 거세된 채로 야전(野戰)에 진입한다. 육군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공계 연구자들이나 재야(在野) 군 원로들이 걱정하는 육군의 미래상을 바로 이 ‘모범생’들이 정책결정자가 돼 주도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논해야 할 때
 
  우리 군이 겪는 어려움은 ‘최신 기술의 개발과 적용의 부재’ 때문이 아니다.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논리성을 갖춘 인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기 체계를 현대화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FM 무전기 송수화기를 들고 있는 침팬지에게 스마트폰을 준다고 그 침팬지가 스마트한 삶을 영위하진 않는다.
 
  국방혁신 4.0을 진정으로 달성하고자 한다면 그 혁신을 담당하고 혁신된 무기와 부대를 직접 지휘할 엘리트 장교단의 육성과 군 문화 혁신을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한다.
 
  필자가 이해하는 국방혁신 4.0은 지난 3차 산업혁명 흐름에 근본적으로 편승하지 못한 우리 군을 어떠한 시대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도록 본질적으로 변모시키는 쇄신이다. 단순히 4차 산업혁명, 드론이나 AI에 국한된 이벤트성 조치가 돼서는 안 된다.
 
  이제 진짜 국방혁신 4.0을 논할 ‘프로(전문가)’들로 TF를 꾸려야 한다. 시간 없다고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들로 세미나를 채워선 안 된다. ‘불편한 진실’을 논해야 할 때이다. 이것저것 변죽만 울리지 말고 핵심과 근본을 관통하는 주제로 밤을 지새워가며 격렬하게 4.0에 대해 말해야 한다. 우리 군의 미래 주역인 사관생도들과 청년장교들에게 허무맹랑한 ‘육군비전 2020’을 교육했던 식의 누를 끼쳐선 안 되고, 그럴 시간도 없다. 그들은 지금 뜬구름 잡는 공상과학 소설이 아닌 미래에 자신들이 활약할 전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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