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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97세대 정치인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

“789세대가 대한민국 이끌어나가는 시대 왔다”

글 : 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sjkw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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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세대의 장점은 전문성과 다양성”
⊙ “86세대, 민주화라는 오래된 가치에 갇혀 재교육 외면했던 점이 패착”
⊙ 각자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자리 잡은 789세대, ‘단일대오; 86세대’ 비교해 개인주의적이라는 정치적 단점 어떻게 극복할까
⊙ “789세대 정치 세력화가 급선무”… 97세대가 정치 세력화되지 못했던 이유
⊙ 정치 선진국 독일이 국민 위해 내놓은 파격적인 정책들 참고할 만

金姬廷
1971년생. 대명여고·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17·19대 국회의원,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청와대 대변인, 여성가족부 장관 역임
사진=조준우
  1973년생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5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 운동권 세대) 청산’과 ‘789세대(70·80·90년대생)의 시대’를 선언하면서 정치권에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다만 789세대 중 정치에 입문한 인물은 많지만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내거나 정치적 성공을 거둔 인물은 흔치 않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이 중 주목할 만한 789세대 정치인인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만났다. 김 전 장관은 정치를 하며 늘 ‘최초’와 ‘최연소’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1971년생인 그는 2004년 17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만 33세) 기록을 세웠다. 2010년에는 이명박 청와대 최연소 대변인이면서 최초의 비언론인 출신 대변인이 됐다. 2012년 총선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2014년에는 만 43세의 나이로 여성가족부 장관에 취임해 6공화국 출범(1987년) 후 역대 최연소 장관이 됐는데,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1년 반 동안 독일에서 방문학자로 연구
 
2014년 7월 만 43세의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김 전 장관은 2020년 제21대 총선 당시 당내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정치권에서 보이지 않았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1년 6개월 동안 방문학자(비지팅 펠로)로 공부를 하고 작년 가을에 돌아왔습니다. 재충전하며 연구하고 배운 것을 다시 우리 사회에 접목시켜볼 계획입니다.”
 
  ― 독일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의원 시절 한독의원친선협회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독일 한스자이델 재단 초청 연수, 독일 헤르베르트 콴트 재단 주최 유럽아시아 젊은지도자 포럼 한국 대표 등으로 여러 번 독일을 방문하면서 배울 것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전공이 정치외교학인데, 방문학자로서 독일 등 유럽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위상과 역할 연구, 공공외교 전략, 독일의 선진 제도에 대한 연구 등을 진행했습니다. 동시에 선진적인 제도를 직접 경험하고 관련 인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2년 5월 김희정 전 장관이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윤석열 정부 국정 비전에 대한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희정 전 장관
  그는 작년 5월 16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대한민국 새 정부의 도전과 시대적 소명’이라는 제목의 특강을 갖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 비전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등장으로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789세대의 선두주자 격인 김 전 장관을 주목하는 시선도 늘었다. 작년 말에는 입각(入閣)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만약 이번 총선에서 당선되면 3선 고지에 올라 상임위원장이 될 수도 있다. 김 전 장관은 “정치권에 ‘97세대(90년대 학번, 70년대생)’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치 문화에 많은 변화가 기대된다”고 했다.
 
  “97세대는 86세대와 달리 이미 민주화를 겪었고 성장기에 경제 호황을 겪은 세대입니다. 이념으로 뭉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데 집중했고 이런 이유로 개인주의적인 특징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전문성을 갖고 성공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정치를 제외한 각 분야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세대가 97세대입니다.”
 
  ― 정치에서는 97세대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다들 자신의 분야에 충실했고, 민주화세대와 86세대처럼 확실한 목표 또는 이념으로 뭉치는 ‘무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86세대와 같은 시기에 계속 정치를 해왔는데, 가까이서 본 86세대는 어떻습니까.
 
  “정치권의 86세대는 민주화라는 공동의 가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민주화에 성공하고 군사정권의 잔재에서 벗어나는 것까지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가 이뤄졌으면 재교육을 통해 스스로 태어나든가 아니면 정치적 역할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기 때문에 지금 비판을 받고 있는 겁니다.”
 
 
  “86세대 에너지는 이미 고갈”
 
  ― 86세대 최대의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념과 가치가 중심이 돼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이외의 목소리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일대오’가 소중한 가치였잖아요.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런 성향이 크게 도움이 됐겠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의 가치를 설정했다면 이에 반(反)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입니다.”
 
  ― 과거에 갇혀 있다는 것도 (86세대의) 문제점이죠.
 
  “86세대의 배움이란 대학교에서 끝난 것 같아요. 어느 세대든 재교육, 보수(補修)교육, 평생학습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기업과 조직은 계속 구성원들을 교육하잖아요. 그런데 86세대는 오랜 시간 보수교육과 재교육 없이 기본 가치만 갖고 살아온 겁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며 정치를 했다면 민주화가 이뤄진 다음에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나갔어야 했는데, 과거의 가치만으로 지금 시대에 정치를 한다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그들의 에너지는 이미 고갈돼 있다고 봅니다. (86세대) 선배님들은 에너지가 충전돼 있는 다음 세대로 바통터치를 하고 ‘인생 이모작(二毛作)’을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김 전 장관은 “97세대와 그 이후 세대가 전면에 나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시점이 왔다”면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등장은 97세대가 전면 등장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자기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뤄온 사람으로, 위아래 세대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적절한 나이에 당의 수장(首長)으로 등장했다고 봅니다. 앞으로 한 위원장이 영입하는 인재들도 대부분은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낸 789세대일 것이고, 그중 연장자인 97세대가 주도권을 갖게 될 겁니다. 각 분야에서 경력이 풍부한 97세대들이 같은 가치를 위해 모여 정치를 이끈다면 국가의 모습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97세대, 자신감 있고 상대방 존중”
 
  ― 97세대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데, 개개인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가 주목하는 97세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신입으로 들어가 자신의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성공에 가까이 간 세대잖아요. 97세대의 대표적 인물인 한 위원장은 평검사에서 법무장관까지 경력을 착실히 쌓아왔고, 같은 세대 공직자나 기업인, 전문직들도 신입부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 지금은 임원이나 장(長)의 자리 혹은 그에 가까이 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 그 분야가 ‘정치’인 겁니다. 저는 대학 졸업 후 정당(당시 민주자유당) 사무처 공채시험을 보고 입당, 지금까지의 이력을 쌓아왔습니다.”
 
  ― 개인주의적인 97세대가 정치 세력이 될 수 있을까요.
 
  “일단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가치에 짓눌려서 할 말을 못 하는 경우가 없어요. 또 법조, 기업, 금융, 언론, 문화, 학계 등 자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고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감이 뒷받침돼 있고 상대방을 존중할 줄도 압니다. 그리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했기 때문에 이제 공적(公的) 영역에 기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모이면 꼭 일사불란하거나 단일대오가 아니라도 다양성을 포용하는 정치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됩니다. 86세대에게 고갈된 정치적 에너지를 97세대가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국민의힘이 그런 정치 문화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봅니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모습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전의 당대표나 비대위원장처럼 인재를 발탁하고 데려오는 게 아니고, ‘함께하자’고 부탁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왔으니 이제 우리가 나라를 좋은 방향으로 함께 바꿔보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어요. ‘동료시민’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 동료(fellow)라는 단어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한 위원장이나 영입 인사들 입장에선 기성정치의 틀 안에서 정치를 해야 하니 어려움이 있을 때도 있겠죠.
 
  “물론입니다. 정치라는 게 자신만 옳고 바르다고 고집해선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의사 결정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 서로 협력과 양보를 할 필요가 있고, 친목과 네트워킹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97세대가 꼭 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뒤늦게 정치에 입문한 분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정치 분야의 전문가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임위 간사, 대변인, 국무위원 등 제가 맡았던 직책은 협력을 원만하게 이끌어내야 하는 업무도 많았습니다. 그런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정치권에서 늘 막내였던 97세대
 
  김 전 장관은 33세에 국회의원이 된 후 연령상으로는 쭉 청년 정치인이었지만 연달아 고위직을 맡으면서 오히려 기성정치인의 이미지를 갖게 된 케이스다. 그는 지금의 청년 정치인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고 했다.
 
  “재선에 장관까지 지냈지만 당에서도, 상임위에서도, 국무회의에서도 늘 막내였고 그게 정치권에서 97세대의 현실이었습니다. 사실 97세대 중 정치를 시작했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정치를 떠나신 분들도 적지 않아요. 예를 들면 홍정욱(1970년생, 18대 국회의원) 전 의원은 대표적인 97세대 정치인으로 인기도 있었고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는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치를 그만뒀죠. 이 밖에도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다 여러 이유로 떠난 분도 많고요. 같은 세대 동료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치라는 게 결국 세력화가 필요한 일인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 젊은 국회의원이어서인지 입법 활동도 조금 색달랐던 것 같습니다.
 
  “17, 19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제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을 많이 했었죠. 나이가 젊다는 것은 윗세대에 비해 디지털 마인드가 장착돼 있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가 좀 더 유연하다는 점, 젊은이들을 좀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표발의한 수많은 법안 중에 기억에 많이 남는 법안은 제가 최초로 발의한 무인자동차운행법, 학교밖청소년지원법 두 가지를 들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이미 무인자동차 상용화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무인자동차가 아예 길에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국내 자동차 회사들도 시범운행조차 할 수가 없으니 무인자동차를 개발할 엄두도 못 냈죠. 그래서 업체에서 개발 중인 시험용 무인자동차의 경우 도로에서 시범운행을 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결국 다음 국회로 넘어가긴 했지만요. 그때부터 무인자동차에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우리나라 무인자동차 산업은 상당히 늦어졌을 겁니다.
 
  또 학교 밖 청소년 문제도 의원들이 의외로 관심 없는 분야였어요. 당시 학교 밖 청소년이 36만 명에 달했는데 사실상 방치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생활과 취업, 학교 복귀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 한발 앞서가는 법안들이었네요.
 
  “젊은 정치인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들보다 두세 배 더 뛰면서 사회 전반을 살폈습니다. 보통 의원들이 상임위 1곳에 집중하지만 저는 8년간 늘 2~3개의 상임위에서 활동했어요. 예결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운영위원회 등 겸임 가능한 상임위는 모두 맡아 다양한 시각을 갖고 국정에 참여하려 노력했습니다.”
 
 
  “국회에도 교육시스템 필요”
 
  20대 시절부터 정치를 떠난 적이 없는 김 전 장관은 후배 정치인들을 위해 “내가 정치를 왜 하는지, 정치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늘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789세대 정치인들이 대세가 되면 정치에 변화는 있겠지만 경험 부족과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인뿐만 아니라 경력 있는 사람들도 함께해야 한다는 겁니다. 부처, 공공기관, 기업 등은 신입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지만 국회엔 그런 게 없어요. 초선의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원은 자신이 대표발의하는 법안 외에도 동료들의 다른 많은 법안들에 서명을 하게 되는데, 상반된 조항이 있는 법안에 둘 다 이름을 올리는 의원들이 있어요. 또 법안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것만 생각하고 쓸데없는 법은 폐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법은 만들었는데 예산, 시행령, 기본시설 등이 없어서 법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시행착오들은 경험 있는 선배 의원들과 교류를 통해 줄일 수 있습니다.”
 
  ― 국회에도 교육시스템이 필요하겠군요.
 
  “초선의원은 물론이고 재선 교육, 3선 교육 모두 필요합니다. 상임위 간사, 상임위원장이 됐을 때의 교육도 필요하고요. 상임위 간사를 맡는다 한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매뉴얼화된 게 없어요. 전임자한테 물어보고 예전 뉴스 찾아보고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의원들이 공부모임을 괜히 만드는 게 아니에요. 진짜 혼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국회도 교육시스템을 갖춰야 하는데 86세대가 장기간 집권하면서 그들의 특징인 언더그라운드식(式) 교육, 즉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방식이 아닌 공식적인 정치 교육이나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전문가와 능력 있는 인물들이 정치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정치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은 타임머신을 탈 줄 알아야”
 

  ― 새롭게 정치에 입문하는 정치 신인을 위해 조언한다면.
 
  “정치인은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강의를 할 때면 ‘정치인은 타임머신을 탈 줄 알아야 한다’고도 이야기하는데요, 과거에서 교훈을 찾고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측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어두운 과거에서는 반면교사 삼아 해결 방안을 찾고, 어두운 미래에 대해서는 경고와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지 못하면 정치를 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정치인이 필요로 하는 덕목은 어떤 게 있을까요.
 
  “또 다른 덕목은 겸손이 있습니다. 나에 대한 겸손이라기보다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추천할 줄 아는 겸손입니다. 훌륭한 정치인이 있어야 국가가 잘되고 나도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그런데 정치에는 어떻게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제가 정치를 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어릴 적 읽은 위인전 때문이었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장영실의 뒤에는 세종대왕이 있고,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의 뒤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전폭적으로 믿고 지원해준 정치인이 없었다면 장영실과 콜럼버스는 위인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요. 훌륭한 인물이 있어도 동시대에 어떤 정치인, 어떤 지도자가 존재하느냐에 따라 인물의 역량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가치 ‘패밀리즘’
 
2010년 7월 김희정 신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 중 역대 최연소이며 비언론인 출신으로는 최초다. 사진=조선DB
  ―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만큼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저출산·고령화에도 관심이 많죠.
 
  “평균수명이 늘면서 미래에 대한 공포감도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년(停年) 연장은 결국 대세가 되겠지만 사실 정년 연장이 국민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만 있다고 보긴 어려워요. 오래 일하도록 하려면 직장인에게 안식년(安息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교육, 보수교육과도 관련되는 얘기인데요, 인생의 에너지를 대학 졸업 후 정년 퇴직 전까지에 모두 몰아넣고 그 후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것도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직 중간중간에 안식년을 2~3회 갖도록 하고 번아웃을 방지하면서 재생할 에너지를 얻고 인생의 다음 스텝을 밟도록 하는 거죠. 중간에 쉬는 기간을 주고 정년을 연장하는 게 고령화 시대를 건강하게 맞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휴가를 늘리는 정책이 나오면 기업에 부담을 주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는데요.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업무의 상당 부분이 재택근무 또는 유연근무제로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습니다. 직장인에게 이런 ‘쉼’의 기간이 있으면 출산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
 
  ― 출산율 제고(提高)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아빠의 육아휴직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확산되긴 했지만 아직 엄마의 육아휴직만큼 일반화돼 있지는 않아요. 따라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육아휴직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형편에 따라 육아휴직을 짧고 굵게 하느냐, 길고 가늘게 하느냐, 여러 번에 나눠서 하느냐, 아니면 유연근무제로 육아시간을 확보하느냐 등 선택의 폭을 넓히고 국민이 ‘시간 주권’을 갖는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사업장 특성과 개인의 형편에 맞춰 업무를 조정하면 충분히 가능해요. 제가 여성가족부 장관 시절 중시했던 가치는 ‘패밀리(family)즘’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예전처럼 일과 성공, 명예와 재산에서 찾기보다는 가족, 휴식, 워라밸에서 찾는 쪽으로 변하고 있어요. 국민이 바라는 방향을 충분히 파악해야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해결 방향이 보일 겁니다.”
 
  ― 국회의원부터 장관까지 쉼 없이 달려왔는데요, 국회의원, 공공기관장, 청와대 대변인, 장관 중 어떤 직업이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갑니까.
 
  “모두 소중한 경험이지만 가장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보람된 자리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은 다른 공직에 비해 두 가지의 큰 장점이 있는데요, 첫째는 국민이 선출한다는 점, 둘째는 임기가 4년간 보장된다는 점입니다. 장관이나 기관장, 청와대 비서 등은 그렇게 임기가 길지 못하고 업무의 연속성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독일에서 본 정책들
 
  김 전 장관은 1년 6개월 동안 독일에 체류했던 경험을 우리 정치에도 접목시키고 싶다고 했다.
 
  “보통 독일 하면 잘사는 나라, 자동차의 나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살아보니 왜 자동차 강국인지 깨달았어요. 물론 기계 등 기술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독일 국민의 자동차 문화와 교통 문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선진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지역구 활동을 하다 보면 교통이나 주차에 대한 민원이 아주 많아요. 똑같은 길을 두고 왜 주차단속을 하느냐, 왜 하지 않느냐라는 민원이 나란히 줄줄이 들어옵니다. 독일도 대도시는 우리나라처럼 주차장이 모자라고 차가 많아 길이 밀리는 건 마찬가지인데, 불법주차나 얌체운전이 전혀 없어요. 운전을 하면서 불편하게 느낄 일이 없다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교통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돼 있고 시민들이 이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차의 경우 주택가의 노상주차장은 각 가정이 시간대별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구간을 정확히 지정해둡니다. 절대 자기 시간과 구간이 아닌 공간은 건드리지 않아요. 아우토반이라 불리는 고속도로도 어느 지역이든 주행과 진입 등이 원칙대로 만들어져 길을 잃거나 잘못 들 위험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다 정부와 기업이 국민의 편의를 위해 빈틈없이 만들어낸 결과죠.”
 

  ― 그 밖에 거주하는 동안 인상적인 독일의 정책이 있었다면요.
 
  “2022년 6~8월 석 달 동안 독일 정부가 ‘9유로(한화 약 1만3000원) 티켓’을 판매했습니다. 한 달에 9유로만 내면 독일 전국에서 버스와 전철, 트램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이용권인데요, 비행기와 고속철도만 빼고 모든 교통수단을 한 달 동안 9유로에 탈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독일 전국 투어도 할 수 있는 티켓입니다. 이 티켓은 총 5200만 장이 팔려 독일 인구의 60%가 구매한 셈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기름값 상승과 인플레이션에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독일 정부가 파격적으로 내놓은 건데요, 독일 정부는 철도청과 운수업체들의 손실 보전을 위해 3조원 이상의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죠. 국민 부담을 줄였고, 대중교통 이용률을 늘려 승용차 이용을 줄임에 따라 탄소저감에 기여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대규모로 이동하며 전국의 관광산업이 흥하는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큼직한 배낭에 운동화 차림
 
  ― 획기적인 제도지만 국내에서 가능하겠습니까. 김포골드라인 등 서울-경기 연결교통편 문제도 늘 이슈인데요.
 
  “독일 정부도 진행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전국의 주(州) 정부, 전국의 지하철, 버스, 트램 회사들과 어렵게 합의를 했고 관련 예산 편성, 승객 폭증으로 인한 문제점 등을 모두 고려해야 했기에 준비과정이 어마어마했다고 해요. 우리도 당장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국민을 위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정책을 추진한다면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비대위원장이 내세운 ‘선민후사(先民後私)’가 바로 국민을 우선으로 한다는 뜻이고, 우리 정치가 나아갈 길입니다.”
 
  서울에서 방송 활동과 각종 모임이 많아 고향 부산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김 전 장관은 인터뷰하는 날, 큼직한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는 그에게선 97세대의 실용주의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났다.
 
  97세대는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X세대(1970년대생으로 성장기를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랐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세대)와 같은 의미다. 과거 X세대의 특징인 실용주의와 능력주의, 개인주의는 기성세대에게 부정적인 가치로 비쳤지만, 지금은 시대에 맞는 가치가 됐다. X세대 및 그 아래 세대 정치인이 더 늘어나서 혐오와 양극화에 찌들어 있는 현재의 정치 문화를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다시 한 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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