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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계무역센터 설계자’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본 서울과 용산의 ‘미래’

“서울 도시 디자인의 ‘핵심’은 한강 변 스카이라인과 공공 공간 재구성”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thegood@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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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신축 계획 수립한 세계적인 건축가
⊙ 20년 동안 40회 이상 한국 방문하며 ‘한국인’ ‘한국문화’ 연구
⊙ “서울은 환상적인 대도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수도”
⊙ “멋진 도시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 상승 요인”
⊙ “‘한강 르네상스’ 사업 인상적… 오세훈은 도시 변화 추구하는 ‘진보’”
⊙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사업비 31조원)’인 ‘용산국제업무지구’ 종합계획 설계
⊙ 2013년에 무산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오세훈 복귀 후 재시동
⊙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가치와 잠재력은 여전해… 서울과 용산의 미래 낙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1946년 폴란드 출생. 뉴욕 쿠퍼유니온대 건축학사, 영국 에식스대 건축이론 석사 / 美 크랜브룩 예술 아카데미 건축학부 학장, 하버드대 객원교수, UCLA 전임교수
사진=월간조선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2001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재건(2014년~)’ 등의 설계 작업을 한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지난 4월 방한(訪韓)했다. 4월 말, 부산광역시에서 열린 대한건축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리베스킨트는 정(靜)적인 기존 건축 방식에서 벗어나 건물의 ‘비대칭성’과 ‘역동성’을 강조하는, 이른바 ‘해체주의’를 표방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프랭크 게리, 피터 아이젠먼,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등과 함께 1988년 뉴욕현대미술관 전시회에서 ‘해체주의 건축’을 선보여 이후 ‘7인의 해체주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불린다.
 
  리베스킨트는 1946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남서쪽에 있는 로지에 거주하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를 폴란드에서 보낸 그는 1957년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폴란드에서부터 음악 공부를 하던 그는 이스라엘 거주 당시 미국·이스라엘 문화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유학 기회를 얻었다. 이에 그의 가족은 1967년 미국 뉴욕으로 터전을 옮겼다. 뉴욕 이주 후 음악을 접고, 미술을 공부하던 리베스킨트에게 그의 모친은 “접시닦이나 하면서 빈털터리로 사는 예술가 1000명 중에 앤디 워홀 같은 사람은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며 진로 전향을 권했다. “건축은 예술이면서도 돈이 되는 장사이고, 예술가는 건축을 못 하지만, 건축가는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모친의 조언에 따라 리베스킨트는 진로를 바꿨다. 1970년 뉴욕 쿠퍼 유니언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쿠퍼 유니언은 건축, 미술, 공학 등 3개 단과대로 구성된 미국 최상위권 사립대다. 건축 부문의 경우에는 ‘미국 최고’라는 평가를 받으며, 연간 신입생이 30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후 영국 에식스대 대학원에서 건축이론과 건축사를 전공한 그는 건축학자 또는 건축 평론가로 주로 활동하다가 1989년에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설계를 맡으면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과 ‘세계무역센터’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2001년 9·11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를 재건하는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출처=세계무역센터
  ‘다윗의 별’을 연상케 한다는 초현실적인 지그재그 모양의 건물, 불규칙한 공간 배분, 교차하는 십자가를 떠올리게 하는 예리한 직선 등 ‘파격적 외관’으로 유명한 독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알리고, 추념하는 공간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 밑에서 성장한 리베스킨트는 해당 공간이 갖는 역사성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그는 사실상의 데뷔작인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을 설계하면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공간 연출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의 상처를 재현하는 걸 넘어 찾는 이들로 하여금 과거 비극에 대해 각자 성찰하고, 미래 지향점을 고찰하도록 했다. 이런 까닭에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소장·전시품이 아닌 ‘건물’과 ‘공간’ 그 자체로 방문객을 이끄는 ‘특이한’ 박물관으로 자리 잡았다.
 
리베스킨트는 기존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거대한 추모공간을 넣고, 그 주위를 서로 다른 고층 빌딩들이 둘러싸는 방식으로 종합계획을 구상했다. 사진=뉴시스
  리베스킨트가 세계적인 건축가 반열에 오른 때는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의 항공기 납치·자폭 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재건축 기본계획을 맡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9·11테러는 민주주의, 전 세계 민주주의와 전 세계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한 리베스킨트는 2003년 세계무역센터 재건축 설계안 공모 당시 미국을 상징하던 건물이 붕괴한 후 남은 ‘폐허(그라운드제로)’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테러 현장의 기억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건물보다 저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초고층 빌딩 건설 경쟁 일색이었던 공모전에서 주목받으며 당선됐다.
 
  리베스킨트는 “건축은 우리가 겪은 비극에 대해 분석하고, 이를 통해 희망을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한다”며 기존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거대한 추모공간을 넣고, 그 주위를 서로 다른 고층 빌딩들이 둘러싸는 방식으로 기본계획을 구상했다. 이 중 가장 상징성 있는 소위 ‘1WTC’의 높이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선포된 1776년을 기념하는 ‘1776피트(약 541m)’로 정했다. 상기한 건물 외에도 ▲대영 전쟁박물관(영국 맨체스터) ▲펠리스 누스바움 미술관(독일 오스나브뤼크) ▲MGM미라지 시티센터(미국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리베스킨트의 ‘대표작’이 세계 각지에 산재하고 있다. 리베스킨트의 작품은 국내에도 있다. 그는 건물의 외벽 정면에 거대한 원 조형물이 설치된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소재 현대아이파크타워, 부산 해운대의 상징 건물인 ‘해운대 아이파크’를 설계했다.
 
 
  “한국에서 얻는 영감은 삶의 중요 요소”
 
  이런 이력을 가진 리베스킨트가 한국에 오기 전, 《월간조선》은 이미 그와의 인터뷰를 기획했다. 국가적 차원의 경쟁을 넘어서 도시 간 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국내 주요 도시들이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도시 설계’ ‘건축’ 전문가에게 묻기 위해서다. 이에 리베스킨트가 대한건축학회 행사 참석차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날인 4월 26일, 서울시내에서 그를 만나 서울의 도시 디자인 경쟁력과 그가 설계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 서울과 부산에도 ‘작품’들이 있는데, 종종 방문합니까.
 
  “예, 그렇습니다. 여전히 잘 있던데요.”
 

  — 과거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창의적인 에너지를 느낀다”고 얘기했는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0년 전 한국과 인연을 맺고서는 관광객 또는 멀리서 한국을 바라보는 관찰자로 머물지 않고,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적 특성을 느끼고 한국 문화의 독특함을 체감했습니다. 40회 이상 한국에 왔는데, 그때마다 서울과 부산 등지를 다니면서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삶을 분석합니다. 이 과정에서 얻는 영감(靈感)은 제 삶의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마다 하늘이 다르게 보인다”
 
리베스킨트는 부산 해운대의 상징 건물인 ‘해운대 아이파크’를 설계했다. 사진=뉴시스
  — 2005년에 쓴 《낙천주의 예술가》란 책을 보면, “도시마다 하늘이 다르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한국 또는 서울의 하늘은 어떻습니까.
 
  “서울의 스카이라인(건물 또는 지물과 하늘이 만나는 지점을 연결한 선)은 계속 변화합니다. 고층 건축 기술이 발달하면서, 건물이 점점 더 높게 올라가고, 이에 따라 스카이라인이 바뀌고 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발전을 했습니다. 서울은 환상적인 대도시이며,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수도입니다.”
 
  — 설계 작업을 할 때 해당 국가 또는 도시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또는 서울에 대한 느낌은 어떻습니까.
 
  “서울은 많은 면에서 독특합니다.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전통 기반이 강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같은 거리에서 서로 다른 시대의 건물을 보게 됩니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각기 다른 동네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한곳에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게 아닌데도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유럽 같은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모습이죠. 매우 독특한 풍경입니다.”
 
  — 도시 공간 또는 기능적 관점에서 서울이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한다면요?
 
  “물론 완벽한 도시는 없습니다. 많은 부분이 개선돼야 하죠. 서울은 자동차가 너무 많습니다. 공원은 너무 적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부족합니다. 흥미로운 건물이 적습니다. 공공 공간 또한 많지 않습니다. 한강 변에도 가족을 위한 공간이 적습니다. 이를 개선하는 데는 큰 구상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서울이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 같은 ‘위험’ 고려해야”
 
  —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서울시청 청사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 모양이 상당히 기괴하고, 주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악평을 듣는 곳(기자 주: 2013년 건축 전문가 100인이 꼽은 ‘광복 이후 최악의 현대건축물 1위’)인데요.
 
  “특정 건물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물론 적절한 건축적 표현이 부족한 건물도 때로는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서울처럼 흥미로운 도시에는 좋은 건축물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도시계획과 실제 건축 디자인 사이에는 ‘흥미로운 연결’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도시’들은 이 두 가지를 하나로 통합해 도시 전체에 적용해왔습니다.”
 
  — 이 인터뷰 직후 ‘서울 도시 건축·디자인 혁신’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할 예정인데요. 주요 내용은 무엇입니까.
 
  “도시를 ‘21세기 도시’로 전환하는 도시계획과 디자인 혁신에 관한 것입니다. 도시 전체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특히 기후위기 같은 ‘위험’을 고려해 건물뿐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전체적인 도시 환경을 건강한 방향으로 전환해야 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말하려고 합니다.”
 
  — ‘도시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린다’고 강조했는데, 그 상관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요?
 
  “도시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도시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 둘 다 멋져야 합니다. 그 도시로 가고 싶게 하고, 그 도시에서 살고 싶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멋진 외관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 공간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역사 유적, 전통문화 공간, 아름다운 풍경, 산책할 수 있는 공원에 대해 동등한 접근성을 누려야 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융합돼야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강 변 아파트는 한강 감상 방해하는 ‘벽’”
 
리베스킨트는 한강 변 아파트들에 대해 “서울의 중심인 한강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는 ‘벽’”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조선DB
  — 지금 그 내용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과거에 소위 ‘매력 도시 서울’ ‘디자인 서울’을 주창할 때 했던 얘기들과 유사합니다. 혹시 이전에 오 시장과 이런 얘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까.
 
  “만난 일은 없습니다만,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아름답게 만들고, ‘한강 르네상스’를 통해 시민의 접근성을 올려 도시 전체를 변화시키겠다는 그의 아이디어는 인상적입니다. 그는 매우 ‘진보적’인 시장입니다.”
 
  — 아까 얘기한 것처럼 도시 공간을 ‘공공재’로 볼 경우, 서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한강 변에 줄지어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아파트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역사성, 상징성, 예술성이 있는 게 아니라 단순한 주거용 건물들이 서울 대표 공간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강 변 아파트들은 서울의 중심인 한강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는 ‘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은 평범한 강이 아닙니다. 한강은 서울이란 도시가 탄생한 곳입니다. 서울이란 도시의 ‘보물’이며, 서울을 움직이는 동맥들이 연결된 ‘심장’이며, 도시 생활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그런 배경을 고려하면, ▲공공 공간 ▲산책로 ▲정자 등 가족들이 주말에 나가 모일 수 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장소들이 더욱 많아야 합니다. 스카이라인도 다양해져야 합니다. 한강 변 스카이라인은 남쪽과 북쪽 모두 사람들의 눈길을 끌 정도로 아름다워야 합니다.”
 
 
  “한강의 서정적 면 느낄 수 있게 해야”
 
  — 이와 유사한 취지에서 추진된 오세훈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정치적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어떤 일이든지 비판이 있기 마련입니다. 대담한 결정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강의 접근성입니다. 한강은 서울의 중심입니다. 도시계획상으로 봐도 이 중심지를 부활시키는 게 서울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데, 시민이 한강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항상 차들로 가로막혀 있고, 교통체증이 심합니다. 한강에는 여러 다리가 있지만, 시민이 강을 오감(五感)으로 즐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시민이 한강의 서정적인 면을 느끼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오늘 오후에 오 시장과 면담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도시계획 또는 한강 개발과 관련해서 무슨 조언을 할 생각입니까.
 
  “서울시장에게 조언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될 겁니다. 사전에 접한 내용에 따르면 훌륭한 계획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듣고,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2013년 무산 후 방치된 ‘용산국제업무지구’
 
리베스킨트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라고 불렸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사진=조선DB
  리베스킨트가 이처럼 ‘한강’의 중요성을 역설한 데는 그 이유가 있다. 10여 년 전 ‘단군 이래 최대 개발’이라고 불렸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마스터플랜(종합계획)’을 만든 이가 바로 리베스킨트이기 때문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용산역사 배후의 코레일 철도정비창과 서부 이촌동 일대 56만6800㎡(약 17만 평) 부지에 150층(620m) 높이의 ‘대표 건물’과 국제업무, 상업, 주거, 문화시설이 결합한 복합개발단지를 건설하는 사업이었다. 들어설 건물만 60개 동에 달했으며, 당시 추정 사업비만 31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규모 도심 복합 개발 사업 지구인 ‘롯폰기힐스’의 부지 면적이 11만㎡라는 점을 감안하면,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2009년 시행된 ‘용산국제업무지구 종합계획 국제 현상 공모’에서 리베스킨트의 설계안인 ‘아카펠라고 21’이 당선됐다. ‘아카펠라고 21’에 따르면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초고층 빌딩군의 ‘스카이라인’은 고대 신라의 ‘금관(金冠)’ 형상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사업 지구를 용도별로 ▲업무 ▲상업 ▲주거 ▲문화 ▲여가 등 5개로 나눠 ‘섬’처럼 분리되는 공간으로 나누고, 그사이에 크고 작은 인공호수를 만든다는 계획도 있었다. 이 수변 공간은 다도해(多島海)를 상징했다.
 
  이처럼 리베스킨트는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인 ‘신라 금관’과 아름다운 자연유산인 ‘다도해’를 형상화해 한국 고유의 역사와 자연을 용산에 구현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사업성 악화 ▲사업 시행자 자본 조달력 부족 ▲서부 이촌동 주민들의 반발 ▲오세훈 사퇴 등의 이유 탓에 난항을 겪다가 2013년에 끝내 무산됐다. 애초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됐다면, 이미 서울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거듭났을 ‘철도정비창’ 부지는 지난 10년 동안 폐허로 방치됐다.
 
 
  吳 복귀 후 꿈틀대는 ‘용산국제업무지구’
 
2013년 사업 무산 이후 용산역 인근 철도정비창 부지는 폐허로 방치돼왔다. 사진=조선DB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10년 만에 시정에 복귀한 이후 다시 추진되고 있다. 오 시장은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재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2021년 보궐선거, 그 이듬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한 오 시장은 2022년 7월 26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구상’을 발표했다. 애초 계획과 달리 서부 이촌동 일대는 사업 대상 부지에서 제외됐다. 이에 따라 면적은 49만3000㎡로 축소됐다. 이날 개발 구상의 핵심은 용산국제업무지구에 적용되는 용적률 법적 상한을 1500~1700%로 상향하면서 이전보다 더 높은 초고층 빌딩을 올리는 게 가능해진 점이다.
 
  이 밖에 오 시장이 밝힌 서울시 구상에 따르면 ‘용산국제업무지구’는 ▲24시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융복합 국제도시’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쾌적한 생활환경의 ‘녹지생태도시’ ▲세계로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3차원 ‘입체교통도시’ ▲첨단 스마트 기술 혁신의 전진기지 ‘스마트도시’로 개발된다. 이어지는 내용은 리베스킨트가 종합계획을 세웠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에 관한 문답이다.
 
  — 과거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국제 현상 설계 공모’를 실시하면서 세계적인 건축설계사무소에 참여 제안을 했습니다. 그중 한 곳이 리베스킨트 스튜디오였습니다. 그때 어떤 각오를 했습니까.
 
  “세계 어디에도 용산 같은 곳은 없습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프로젝트는 독특하고 유일합니다. 그런 사업과 관련해서 세계 최고 건축가들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도로망과 교통 시설을 만드는 식으로 기존 공식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새로운 도시상을 제시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시민을 위한 도시’ ‘격차를 없애는 도시’ ‘건축과 환경이 조화로운 도시’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도시는 항상 변한다”
 
서울시가 밝힌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계획의 주요 내용이다. 사진=뉴시스
  — ‘용산국제업무지구’ 종합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당시 진행 과정에서는 특별히 어려운 일이 없었습니다. 정치·경제적 이유 때문에 사업이 중단된 게 무척 아쉽습니다. 사업이 무산될 당시는 종합계획에 따라 세계 최고 건축가 20여 명이 참여해 ‘용산국제업무지구’ 빌딩의 외관과 내부 공간 설계(계획설계)를 완료한 이후입니다. 그래서 더 서운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서울과 용산의 미래를 낙관합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내재된 가치와 잠재력은 지금도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가 무산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실망했습니까.
 
  “아닙니다. 도시는 항상 변합니다. 각기 다른 변화의 파도가 계속 몰려오죠. 경제적 상황에 따라서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 서울시장이 시정에 복귀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서울시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종합계획을 다시 공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들은 일이 있습니까.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네요?”
 

  — 그런데 이내 그 입장을 바꿔서 다시 원안대로 추진한다고 했습니다. ‘설계 공모’를 다시 진행하고, 당선작을 선정하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우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를 단축한다는 이유로 번복했습니다.
 
  “종합계획은 수주, 수개월 만에 완성된 게 아닙니다. 여러 해에 걸쳐 개발됐습니다. 교통, 기술, 지속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전 분야 전문가들이 대규모 팀을 이뤄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서 만든 결과물입니다. 저는 그 시간과 노력, 설계 작업, 그에 따른 ‘용산국제업무지구 종합계획’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황 변화와 무관하게 언제든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의 지침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용산공원은 국제업무지구의 ‘폐’ 역할 할 것”
 
  —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직선거리로 약 400m 떨어진 곳에는 주한미군이 기지로 이용하던 부지가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지금 이곳에 국가 공원을 조성하겠다고 하는데, 일부 당국자들은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처럼 녹지가 마천루에 둘러싸인 외딴 섬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초고층빌딩 건축 계획을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 매우 좋습니다. 공원은 ‘선물’입니다. 공원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삶의 일부’ 같은 공간입니다. 그 공원은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숨을 쉬도록 돕는 ‘폐’ 같은 역할을 할 겁니다. 고밀도 구역(용산국제업무지구)과 저밀도 구역(용산공원)의 조화도 좋습니다. 균형 있게 개발해 자연 공간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종합계획을 개발한다면, 이전보다 더 큰 강점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 이해관계자의 주장이 반영되고 각종 규제를 적용하면서 애초 설계안 내용이 많이 바뀔 텐데요. 그럼에도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과정에서 이것만은 꼭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기준’ 또는 ‘원칙’은 무엇입니까.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계획도 바뀌기 마련이겠지만 변하지 않아야 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조화(調和)’입니다. 자연과 건축물, 그 지역 문화와 건축물이 서로 어울리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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