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점한 시험지 학생에게 돌려주면서 점수 공개”
⊙ “프랑스 교육의 힘은 생각을 기르게 하는 힘”
⊙ “한국 교육은 ‘빨리’, 프랑스 교육은 ‘기본’”
⊙ “대입에는 100% 바칼로레아 성적만 반영… 2021년부터 이과, 경제사회과, 문과 구분 사라져”
⊙ “超엘리트는 ‘그랑제콜’로… 대통령·정관계 요직·CEO는 ‘그랑제콜’ 출신”
이지현
1981년생. 파리5대학 법학과 졸업, 프랑스 국립 생모 국립음악원 플루트 클래스 수석 졸업, 現 프랑스대사관 IT분야 부상무관, 플루티스트
⊙ “프랑스 교육의 힘은 생각을 기르게 하는 힘”
⊙ “한국 교육은 ‘빨리’, 프랑스 교육은 ‘기본’”
⊙ “대입에는 100% 바칼로레아 성적만 반영… 2021년부터 이과, 경제사회과, 문과 구분 사라져”
⊙ “超엘리트는 ‘그랑제콜’로… 대통령·정관계 요직·CEO는 ‘그랑제콜’ 출신”
이지현
1981년생. 파리5대학 법학과 졸업, 프랑스 국립 생모 국립음악원 플루트 클래스 수석 졸업, 現 프랑스대사관 IT분야 부상무관, 플루티스트
“수능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넘게 고생했는데 단 하루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나잖아요. 학생들이 느껴야 할 비장함과 압박감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처럼 여러 날 대입시험을 치면 어떨까요.”
2023년 대학수학능력(이하 수능)시험이 치러진 지 일주일이 지난 날 만난 이지현씨와의 얘기는 자연스레 수능으로 시작됐다.
― 프랑스는 대입시험을 며칠 동안 보는군요.
“프랑스 수능인 바칼로레아는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치릅니다. 논술형 시험인 바칼로레아는 과목당 4시간이 걸리는데 보통 오전 8시 반에 시작해 오후 2시 반에 끝납니다. 구두시험이 있는 날은 하루에 두 과목을 치릅니다. 구두시험은 준비시간 30분, 실제시험 20분입니다.”
― 과목별로 시험을 나눠 치는군요.
“수능과는 다르죠. 바칼로레아는 정확하게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증’입니다. 20점 만점에 전 과목 평균이 10점 이상이면 바칼로레아를 취득하고, 누구나 원하는 일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전교에서 몇 등인지’ ‘내 친구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실력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인지 가늠하는 시험이니까요. 프랑스 고등학교는 오로지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기간인데 일주일 동안 바칼로레아를 치르면서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하고 쌓아온 실력을 진지하게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교사와 학생이 맞담배 피워”
한국에서 한 번도 수능을 본 적이 없는, 10대 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대학원까지 마친 사람과 마주 앉아 한국 교육에 대해 얘기하게 된 이유는 그가 최근 《프랑스 교육처럼》이라는 책을 냈기 때문이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요동치는 우리로서는 200년 동안 줄곧 한 입시 정책을 펼치는 프랑스에 관심을 가져볼 법하다. 이지현씨는 “한국의 교육이 빨리, 빨리라면 프랑스의 교육은 기본, 기본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어를 못 했던 제가 고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선생들과 맞담배를 피웠습니다.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라이터 불을 빌리더군요. 그렇게 교문 밖에서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던 교사와 학생이 수업 시간이 되자 180도 바뀌었습니다. 좀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철저히 교사를 존중했고,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 워낙 문화가 다르지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죠.
“학교 밖보다 교실 안에서의 행동에 더욱 놀랐습니다. 모자를 쓰고 등교한 학생이라도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자를 벗고, 껌을 씹다가도 수업이 시작되면 뱉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은 오로지 수업만 합니다.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집에서 하고 학교에는 수업만 하러 오는 거죠. 프랑스 고등학교에는 교무실이 없습니다. 결석, 지각, 복장관리는 담당 행정직원이 따로 있습니다. 교사는 오로지 수업에만 집중하고, 좋은 수업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권리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숫자만 썼잖아”
― 수업 내용도 판이하죠.
“토론 위주의 수업입니다. 고1 역사 시간에 ‘백년전쟁’ 주제 수업이었는데 사전에 지정된 한두 명의 학생이 주제와 관련한 발표를 하고, 주제를 미리 준비해온 학생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들의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백년전쟁 이외에 프랑스 봉건제 몰락을 가져온 요인은 어떤 것이냐’ ‘백년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등이었습니다. 토론 수업의 주인공은 학생들이고, 선생들은 잘못된 정보가 언급되면 수정해주고, 토론이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줄 뿐,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 역사, 철학, 불문학 수업은 그렇다 치고, 수학 수업은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요.
“프랑스어 실력이 부족한 제가 자신 있게 참여할 수 있었던 수업은 수학 시간이었습니다. 수학 교사도 계산이 빠르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첫 수학 시험 범위는 통계였는데 20점 만점에 12점을 받았습니다. 나름 자신이 있던 제가 낮은 점수를 받아서 선생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숫자만 썼잖아’라고 하더군요. 좋은 점수를 받은 친구의 답안지를 보니 문제 풀이 과정을 모두 글로 설명했습니다. 문제 한 개에 한쪽 이상을 할당했습니다. 프랑스 고등학교 수학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수학 공식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문제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기본적인 문제여서 풀이과정을 생략하면 점수는 깎였습니다. 숙제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 숙제가 너무 많아서 어려웠나요.
“아뇨, 고1 불문학 시간에 ‘규율이 학교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논제로 3주 후에 에세이를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지선다형 문제나 풀었던 제가 프랑스에서 이런 주제로 서론, 본론, 결론 형식에 맞춰 에세이를 쓰려니 숙제가 제일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문학뿐 아니라 다른 과목도 두 달에 한 번꼴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숙제가 주어졌는데 언제나 어려웠어요. 졸업할 즈음에야 익숙해지더군요. 수업 준비를 하느라 읽게 된 책을 통해 사고력과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왜 詩를 외우게 하는가’
― 한국에서의 교과과정이 도움이 된 것은 없습니까.
“고1 불문학 시간에 매주 한 편의 시(詩)를 반드시 외우게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명을 지목해 낭송을 시켰는데, 못 외우면 외울 때까지 지목을 했어요.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랭보(Arthur Rimbaud), 라신(Jean Racine) 등 프랑스 작가의 시를 외웠는데, 이런 교육은 한국과 비슷했네요. 1년에 20여 편의 시를 외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반 친구들 앞에서 시를 외우게 하더군요.”
이지현씨는 프랑스 공립학교가 왜 학생들에게 시를 외우게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검색을 많이 했다고 한다. 2018년 프랑스의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실린 ‘왜 우리는 시를 외우게 하는가’의 내용은 이랬다.
〈첫째, 외웠던 시를 낭송하면서 자신의 발음과 목소리 크기를 개선하고 억양을 다양화해 청중의 주의를 끌기 위한 자세와 시선 처리 등을 배운다.
둘째, 초등학교 1학년 때 짧은 시를 외우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외울 분량을 늘려, 중학교 과정에서 암기해야 하는 습관을 미리 알려주기 위함이다.〉
“토론형 수업을 하는 프랑스 고등학교의 평상시 숙제는 독서입니다. 시험은 중간, 기말고사처럼 기간이 없고, 과목별로 한두 챕터가 끝나면 수업시간 내에 에세이를 작성해 평가합니다. 주어진 문제 3~4개에 서술형으로 답을 쓰는데 채점한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되돌려줍니다. ‘○○군, 18점입니다. 잘 썼어요’라는 식입니다.”
― 점수를 언급하네요.
“제가 ‘프랑스가 인권국가 맞아?’라고 생각했던 대목인데 점수가 높은 학생들부터 차례대로 이름을 부르며 점수를 공개하고 에세이를 되돌려줬습니다. 프랑스어가 서툴렀던 저는 당연히 꼴찌였죠(웃음). 처음에는 인권 침해가 아닌가 싶었는데, 프랑스 친구들은 본인 점수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 일등이고, 누가 꼴찌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전쟁을 치렀던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죠.”
― 우리는 등수를 경쟁하고, 이를 위해 선행(先行) 학습까지 하는데요.
“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자아(自我)발전으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과열된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의 수능 바칼로레아는 입학 자격증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학문을 성취했다는 지표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지식과 소양 차원에서 바칼로레아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수의 흔적 남겨놓아”
프랑스에도 우리나라처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다. 유치원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노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파닉스(로마자 알파벳)를 배우고, 책을 읽는데 동화책 한 권을 여러 날에 걸쳐서 읽는다. 동화책 맨 앞 2쪽만 읽고 다음에 무슨 내용이 나올지 상상하게 한단다.
특이한 점은 시험 때 학생들에게 볼펜을 쓰게 하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두 줄을 쫙 긋고 다시 옆에 쓰게 하는 점이다. 그래서 초등학생의 노트는 늘 지저분하다.
“우리나라처럼 수정액으로 지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두 줄이 쫙 그어진 지저분한 노트를 보며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습니다. 실수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놓는 프랑스 교육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 완벽한 정답을 깨끗하게 보여주는 우리의 교육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 그렇게 고등학교에 가면 바칼로레아만 준비하는군요.
“1808년 나폴레옹 1세 때 만들어졌다는 바칼로레아는 지금까지 프랑스의 유일한 대학 입학 시스템으로, 200년 넘도록 바뀐 적이 없습니다. 바칼로레아 외에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고, 100% 바칼로레아 성적만 반영됩니다. 2021년에 바뀌긴 했는데, 이과, 경제사회과, 문과 기준이 사라진 정도입니다.”
― 프랑스는 입시학원이 없나요.
“글로벌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은 있지만, 중고등학생 대상의 과목별 전문학원은 없습니다. 정답이 아닌 논리적 사고(思考)를 요구하는 채점 기준 때문에 사실상 학원에 다닐 필요도 없죠.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문제들을 보면 ‘지금의 나는 과거의 종합인가?’ ‘언어 없이도 사고가 가능한가?’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나 스스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가?’ 이런 식입니다.”
“교사, 정치적 신념 드러낼 수 없어”
― 교사는 어떤 사람들이 되나요.
“우리나라 임용고시와 같은 CAPES(Cerfiticate d'Aptitude au Professorat de l'Enseignement du Second degre)라는 국가시험을 봐야 합니다. 대학에서 5년 과정을 이수해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데 1차 필기시험, 2차 구두시험 합격자에게 1년 인턴교사 자격증을 줍니다. 인턴 기간에 국가 교육기관에서 나온 검사관들에게 평가받아 정식 교사가 되고, 공식적인 공무원이 됩니다. 교사의 의무는 ‘중립성’입니다. 사회 이슈와 관련해 농담도 하면 안 됩니다.”
프랑스의 고교생들은 바칼로레아 시험을 보기 전에 희망하는 대학 교과 학과 3개를 정한다. 프랑스 전역에 70여 개 국립대학이 있다. 13개는 파리에 있는데 파리1대학, 2대학 이렇게 부른다. 한 대학에 모든 전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리6대학은 의약 계열과 이공 계열 17개 과, 이런 식이다. 프랑스 대학은 국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아 학비가 저렴하다. 20년 전이지만 1년 학비가 170유로(한화 23만원)였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유급되고, 두 번 이상 유급하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바칼로레아 합격증이 있으니 다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지만 같은 과를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졸업은 아무나 못 한다.
“프랑스 대학은 ‘피아노과’ ‘관현악과’ 같은 실기 전공과가 없습니다. 클래식 악기를 전공하려면 콩세르바토아(Conservatoire), 즉 음악원에 다녀야 합니다. 미술 전공을 위해서는 파리 보자르(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유명한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는 대학교가 아니고 요리에 관한 전문 기술을 배우는 직업 전문학교입니다. 프랑스인들에게 대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곳 출신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죠. 이들에게 학문을 배우는 대학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만의 리그, ‘그랑제콜’
― 하지만 프랑스에도 한국의 ‘스카이캐슬’과 같은 곳이 있습니다. 상류층만 진입 가능한 ‘그랑제콜’이 있지 않습니까.
“그랑제콜(Grande ecoles)은 일종의 엘리트 양성 교육 기관입니다. 프랑스의 미래를 이끌어갈 초(超)엘리트로서 상상 이상의 혜택을 줍니다.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의 90% 이상, 프랑스 외교관, 고위 공무원, 대기업 CEO는 대부분 그랑제콜을 졸업했습니다. 프랑스는 너무 심하다 싶을 만큼 막강한 학연(學緣)이 존재합니다. 외국인은 감히 낄 수 없는 그들만이 누리는 힘은 프랑스 평등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강력하죠.”
― 일찍부터 프랑스를 이끌어갈 엘리트들을 선별하는 것이군요.
“프랑스를 이끌어갈 상위 3%의 엘리트들입니다. 입시 과정은 잔인할 정도입니다. 바칼로레아 성적은 당연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프레파(Prepa)라는 준비 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이들은 일명 ‘두더지’라고 불립니다. 햇빛을 못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 학교, 집, 학교만 반복해 다니기 때문입니다. 프레파 과정 이후에 논술 필기시험, 면접 등 험난한 입시 전쟁을 거쳐야 하기에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이 절반 이상입니다.”
사실상 프랑스의 ‘그랑제콜’은 ‘톱3’ 학교가 좌지우지한다.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Ecole Normale Superieure)는 인문학과 자연계, 순수학문 계열의 최고 학교다. 한 해 200여 명만 선발하고, 매년 1.5% 미만의 합격률, 재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물리학과와 수학과는 프랑스의 천재들만 들어가는 곳으로 알려졌다.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에콜 나시오날 다드미니스트라시옹(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은 엘리트 관료를 양성하는 국립행정학교다. 대통령, 정관계 인사들 모두 이곳 출신이라 봐도 무방하다.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는 최상급 공대다. 프랑스 국방부 소속이며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 모두 학부 교육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군사 교육을 받는다. 테제베 기차, 콩코드 여객기, 원자력과 우주 항공에 강한 프랑스를 만든 주역들이다. 프랑스는 혁명기념일 군대 행렬의 선두에 이들에게 군복을 입혀 세운다.
명문 그랑제콜은 입학금이 없고 학생들에게 용돈과 생활비를 넉넉히 대준다. 월급 줘가며 공부를 시키는데 졸업과 동시에 최고 인재로 대우받는다. 그랑제콜 출신의 상류층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그랑제콜에 보내기 위해 대치동 엄마들을 능가하는 교육열을 보인다. 이지현씨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에 그랑제콜이 존재한다는 것만큼 모순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공부의 의미를 찾는 길이 되길”
서울예중을 졸업하고 서울예고 시험에 낙방해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온갖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파리5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국립 생모 국립음악원 플루트 클래스를 수석 졸업했다. 현재는 프랑스대사관 IT 부(副)상무관이자 플루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뒤 한국의 교육 현실을 체험하면서 ‘프랑스는?’이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책을 냈다고 한다.
“저는 서울에서 예술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좋은 악기(골드 악기)를 소지한 채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예술 전공자는 이 정도 악기는 지녀야지’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프랑스 선생들은 제 악기를 보고 다들 놀랐습니다. 제게 조심스럽게 ‘악기 한 번 연주해봐도 되니?’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음악이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고, 정말 실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는 평범한 악기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가 유독 연주자들에게 ‘장비 탓’을 많이 한다는 것도 유학을 떠나서야 알았습니다. 이번에 책을 쓴 이유도 한국과 프랑스 교육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우리의 교육이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 프랑스 교육의 힘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생각을 기르게 하는 교육, 자존감을 스스로 개발하는 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었고, 소통조차 되지 않는 10대의 작은 소녀였지만 선생님들은 저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인정해줬습니다. 못하는 것을 지적하기보다 제가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실수를 꾸짖기보다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쳤습니다. 제 이름이 프랑스 사람들이 발음하기에 어려운 편인데, 선생님들은 제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작은 노력이 제가 이방인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 나 자신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저는 뛰어난 작가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닙니다. 그저 10대 시절을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보냈던 경험을 제 또래의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프랑스 교육을 얘기하면서 아이들을 풀어주자, 공부에서 해방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아이들이 공부를 많이 하도록, 하지만 공부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일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책이 그런 화두(話頭)를 던졌으면 싶습니다.”⊙
2023년 대학수학능력(이하 수능)시험이 치러진 지 일주일이 지난 날 만난 이지현씨와의 얘기는 자연스레 수능으로 시작됐다.
― 프랑스는 대입시험을 며칠 동안 보는군요.
“프랑스 수능인 바칼로레아는 하루에 한 과목씩 일주일 동안 치릅니다. 논술형 시험인 바칼로레아는 과목당 4시간이 걸리는데 보통 오전 8시 반에 시작해 오후 2시 반에 끝납니다. 구두시험이 있는 날은 하루에 두 과목을 치릅니다. 구두시험은 준비시간 30분, 실제시험 20분입니다.”
― 과목별로 시험을 나눠 치는군요.
“수능과는 다르죠. 바칼로레아는 정확하게 ‘프랑스 대학 입학 자격증’입니다. 20점 만점에 전 과목 평균이 10점 이상이면 바칼로레아를 취득하고, 누구나 원하는 일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전교에서 몇 등인지’ ‘내 친구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실력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인지 가늠하는 시험이니까요. 프랑스 고등학교는 오로지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기간인데 일주일 동안 바칼로레아를 치르면서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하고 쌓아온 실력을 진지하게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교사와 학생이 맞담배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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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교육처럼》 |
“프랑스어를 못 했던 제가 고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선생들과 맞담배를 피웠습니다.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라이터 불을 빌리더군요. 그렇게 교문 밖에서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던 교사와 학생이 수업 시간이 되자 180도 바뀌었습니다. 좀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철저히 교사를 존중했고, 교사는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 워낙 문화가 다르지만,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죠.
“학교 밖보다 교실 안에서의 행동에 더욱 놀랐습니다. 모자를 쓰고 등교한 학생이라도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자를 벗고, 껌을 씹다가도 수업이 시작되면 뱉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은 오로지 수업만 합니다. 교사들은 수업 준비를 집에서 하고 학교에는 수업만 하러 오는 거죠. 프랑스 고등학교에는 교무실이 없습니다. 결석, 지각, 복장관리는 담당 행정직원이 따로 있습니다. 교사는 오로지 수업에만 집중하고, 좋은 수업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권리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합니다.”
“숫자만 썼잖아”
― 수업 내용도 판이하죠.
“토론 위주의 수업입니다. 고1 역사 시간에 ‘백년전쟁’ 주제 수업이었는데 사전에 지정된 한두 명의 학생이 주제와 관련한 발표를 하고, 주제를 미리 준비해온 학생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들의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백년전쟁 이외에 프랑스 봉건제 몰락을 가져온 요인은 어떤 것이냐’ ‘백년전쟁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등이었습니다. 토론 수업의 주인공은 학생들이고, 선생들은 잘못된 정보가 언급되면 수정해주고, 토론이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줄 뿐, 누구의 의견이 옳고 그른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 역사, 철학, 불문학 수업은 그렇다 치고, 수학 수업은 그러기 쉽지 않을 텐데요.
“프랑스어 실력이 부족한 제가 자신 있게 참여할 수 있었던 수업은 수학 시간이었습니다. 수학 교사도 계산이 빠르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첫 수학 시험 범위는 통계였는데 20점 만점에 12점을 받았습니다. 나름 자신이 있던 제가 낮은 점수를 받아서 선생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숫자만 썼잖아’라고 하더군요. 좋은 점수를 받은 친구의 답안지를 보니 문제 풀이 과정을 모두 글로 설명했습니다. 문제 한 개에 한쪽 이상을 할당했습니다. 프랑스 고등학교 수학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수학 공식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문제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기본적인 문제여서 풀이과정을 생략하면 점수는 깎였습니다. 숙제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 숙제가 너무 많아서 어려웠나요.
“아뇨, 고1 불문학 시간에 ‘규율이 학교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논제로 3주 후에 에세이를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오지선다형 문제나 풀었던 제가 프랑스에서 이런 주제로 서론, 본론, 결론 형식에 맞춰 에세이를 쓰려니 숙제가 제일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문학뿐 아니라 다른 과목도 두 달에 한 번꼴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숙제가 주어졌는데 언제나 어려웠어요. 졸업할 즈음에야 익숙해지더군요. 수업 준비를 하느라 읽게 된 책을 통해 사고력과 글쓰기 실력이 향상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왜 詩를 외우게 하는가’
― 한국에서의 교과과정이 도움이 된 것은 없습니까.
“고1 불문학 시간에 매주 한 편의 시(詩)를 반드시 외우게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명을 지목해 낭송을 시켰는데, 못 외우면 외울 때까지 지목을 했어요.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랭보(Arthur Rimbaud), 라신(Jean Racine) 등 프랑스 작가의 시를 외웠는데, 이런 교육은 한국과 비슷했네요. 1년에 20여 편의 시를 외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반 친구들 앞에서 시를 외우게 하더군요.”
이지현씨는 프랑스 공립학교가 왜 학생들에게 시를 외우게 하는지를 알고 싶어서 검색을 많이 했다고 한다. 2018년 프랑스의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실린 ‘왜 우리는 시를 외우게 하는가’의 내용은 이랬다.
〈첫째, 외웠던 시를 낭송하면서 자신의 발음과 목소리 크기를 개선하고 억양을 다양화해 청중의 주의를 끌기 위한 자세와 시선 처리 등을 배운다.
둘째, 초등학교 1학년 때 짧은 시를 외우다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외울 분량을 늘려, 중학교 과정에서 암기해야 하는 습관을 미리 알려주기 위함이다.〉
“토론형 수업을 하는 프랑스 고등학교의 평상시 숙제는 독서입니다. 시험은 중간, 기말고사처럼 기간이 없고, 과목별로 한두 챕터가 끝나면 수업시간 내에 에세이를 작성해 평가합니다. 주어진 문제 3~4개에 서술형으로 답을 쓰는데 채점한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되돌려줍니다. ‘○○군, 18점입니다. 잘 썼어요’라는 식입니다.”
― 점수를 언급하네요.
“제가 ‘프랑스가 인권국가 맞아?’라고 생각했던 대목인데 점수가 높은 학생들부터 차례대로 이름을 부르며 점수를 공개하고 에세이를 되돌려줬습니다. 프랑스어가 서툴렀던 저는 당연히 꼴찌였죠(웃음). 처음에는 인권 침해가 아닌가 싶었는데, 프랑스 친구들은 본인 점수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 일등이고, 누가 꼴찌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전쟁을 치렀던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죠.”
― 우리는 등수를 경쟁하고, 이를 위해 선행(先行) 학습까지 하는데요.
“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자아(自我)발전으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과열된 경쟁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의 수능 바칼로레아는 입학 자격증이지만,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학문을 성취했다는 지표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래서 프랑스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지식과 소양 차원에서 바칼로레아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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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 당시 이지현씨. |
특이한 점은 시험 때 학생들에게 볼펜을 쓰게 하고, 틀린 부분이 있다면 두 줄을 쫙 긋고 다시 옆에 쓰게 하는 점이다. 그래서 초등학생의 노트는 늘 지저분하다.
“우리나라처럼 수정액으로 지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두 줄이 쫙 그어진 지저분한 노트를 보며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습니다. 실수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겨놓는 프랑스 교육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 완벽한 정답을 깨끗하게 보여주는 우리의 교육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 그렇게 고등학교에 가면 바칼로레아만 준비하는군요.
“1808년 나폴레옹 1세 때 만들어졌다는 바칼로레아는 지금까지 프랑스의 유일한 대학 입학 시스템으로, 200년 넘도록 바뀐 적이 없습니다. 바칼로레아 외에 대학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고, 100% 바칼로레아 성적만 반영됩니다. 2021년에 바뀌긴 했는데, 이과, 경제사회과, 문과 기준이 사라진 정도입니다.”
― 프랑스는 입시학원이 없나요.
“글로벌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은 있지만, 중고등학생 대상의 과목별 전문학원은 없습니다. 정답이 아닌 논리적 사고(思考)를 요구하는 채점 기준 때문에 사실상 학원에 다닐 필요도 없죠.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의 문제들을 보면 ‘지금의 나는 과거의 종합인가?’ ‘언어 없이도 사고가 가능한가?’ ‘인간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나 스스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가?’ 이런 식입니다.”
“교사, 정치적 신념 드러낼 수 없어”
― 교사는 어떤 사람들이 되나요.
“우리나라 임용고시와 같은 CAPES(Cerfiticate d'Aptitude au Professorat de l'Enseignement du Second degre)라는 국가시험을 봐야 합니다. 대학에서 5년 과정을 이수해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데 1차 필기시험, 2차 구두시험 합격자에게 1년 인턴교사 자격증을 줍니다. 인턴 기간에 국가 교육기관에서 나온 검사관들에게 평가받아 정식 교사가 되고, 공식적인 공무원이 됩니다. 교사의 의무는 ‘중립성’입니다. 사회 이슈와 관련해 농담도 하면 안 됩니다.”
프랑스의 고교생들은 바칼로레아 시험을 보기 전에 희망하는 대학 교과 학과 3개를 정한다. 프랑스 전역에 70여 개 국립대학이 있다. 13개는 파리에 있는데 파리1대학, 2대학 이렇게 부른다. 한 대학에 모든 전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리6대학은 의약 계열과 이공 계열 17개 과, 이런 식이다. 프랑스 대학은 국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아 학비가 저렴하다. 20년 전이지만 1년 학비가 170유로(한화 23만원)였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유급되고, 두 번 이상 유급하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바칼로레아 합격증이 있으니 다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지만 같은 과를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공부할 수 있지만, 졸업은 아무나 못 한다.
“프랑스 대학은 ‘피아노과’ ‘관현악과’ 같은 실기 전공과가 없습니다. 클래식 악기를 전공하려면 콩세르바토아(Conservatoire), 즉 음악원에 다녀야 합니다. 미술 전공을 위해서는 파리 보자르(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유명한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는 대학교가 아니고 요리에 관한 전문 기술을 배우는 직업 전문학교입니다. 프랑스인들에게 대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곳 출신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죠. 이들에게 학문을 배우는 대학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만의 리그, ‘그랑제콜’
― 하지만 프랑스에도 한국의 ‘스카이캐슬’과 같은 곳이 있습니다. 상류층만 진입 가능한 ‘그랑제콜’이 있지 않습니까.
“그랑제콜(Grande ecoles)은 일종의 엘리트 양성 교육 기관입니다. 프랑스의 미래를 이끌어갈 초(超)엘리트로서 상상 이상의 혜택을 줍니다. 프랑스의 역대 대통령과 유력 정치인의 90% 이상, 프랑스 외교관, 고위 공무원, 대기업 CEO는 대부분 그랑제콜을 졸업했습니다. 프랑스는 너무 심하다 싶을 만큼 막강한 학연(學緣)이 존재합니다. 외국인은 감히 낄 수 없는 그들만이 누리는 힘은 프랑스 평등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로 강력하죠.”
― 일찍부터 프랑스를 이끌어갈 엘리트들을 선별하는 것이군요.
“프랑스를 이끌어갈 상위 3%의 엘리트들입니다. 입시 과정은 잔인할 정도입니다. 바칼로레아 성적은 당연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프레파(Prepa)라는 준비 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이들은 일명 ‘두더지’라고 불립니다. 햇빛을 못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 학교, 집, 학교만 반복해 다니기 때문입니다. 프레파 과정 이후에 논술 필기시험, 면접 등 험난한 입시 전쟁을 거쳐야 하기에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이 절반 이상입니다.”
사실상 프랑스의 ‘그랑제콜’은 ‘톱3’ 학교가 좌지우지한다.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Ecole Normale Superieure)는 인문학과 자연계, 순수학문 계열의 최고 학교다. 한 해 200여 명만 선발하고, 매년 1.5% 미만의 합격률, 재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물리학과와 수학과는 프랑스의 천재들만 들어가는 곳으로 알려졌다.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에콜 나시오날 다드미니스트라시옹(E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은 엘리트 관료를 양성하는 국립행정학교다. 대통령, 정관계 인사들 모두 이곳 출신이라 봐도 무방하다.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는 최상급 공대다. 프랑스 국방부 소속이며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 모두 학부 교육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군사 교육을 받는다. 테제베 기차, 콩코드 여객기, 원자력과 우주 항공에 강한 프랑스를 만든 주역들이다. 프랑스는 혁명기념일 군대 행렬의 선두에 이들에게 군복을 입혀 세운다.
명문 그랑제콜은 입학금이 없고 학생들에게 용돈과 생활비를 넉넉히 대준다. 월급 줘가며 공부를 시키는데 졸업과 동시에 최고 인재로 대우받는다. 그랑제콜 출신의 상류층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그랑제콜에 보내기 위해 대치동 엄마들을 능가하는 교육열을 보인다. 이지현씨는 “자유와 평등의 나라에 그랑제콜이 존재한다는 것만큼 모순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공부의 의미를 찾는 길이 되길”
서울예중을 졸업하고 서울예고 시험에 낙방해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온갖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파리5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프랑스 국립 생모 국립음악원 플루트 클래스를 수석 졸업했다. 현재는 프랑스대사관 IT 부(副)상무관이자 플루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난 뒤 한국의 교육 현실을 체험하면서 ‘프랑스는?’이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책을 냈다고 한다.
“저는 서울에서 예술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좋은 악기(골드 악기)를 소지한 채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예술 전공자는 이 정도 악기는 지녀야지’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프랑스 선생들은 제 악기를 보고 다들 놀랐습니다. 제게 조심스럽게 ‘악기 한 번 연주해봐도 되니?’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프랑스는 음악이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것이 아니고, 정말 실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는 평범한 악기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가 유독 연주자들에게 ‘장비 탓’을 많이 한다는 것도 유학을 떠나서야 알았습니다. 이번에 책을 쓴 이유도 한국과 프랑스 교육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우리의 교육이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 프랑스 교육의 힘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생각을 기르게 하는 교육, 자존감을 스스로 개발하는 교육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었고, 소통조차 되지 않는 10대의 작은 소녀였지만 선생님들은 저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인정해줬습니다. 못하는 것을 지적하기보다 제가 잘하는 것을 인정하고, 실수를 꾸짖기보다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쳤습니다. 제 이름이 프랑스 사람들이 발음하기에 어려운 편인데, 선생님들은 제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작은 노력이 제가 이방인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 나 자신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줬습니다. 저는 뛰어난 작가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닙니다. 그저 10대 시절을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보냈던 경험을 제 또래의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프랑스 교육을 얘기하면서 아이들을 풀어주자, 공부에서 해방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아이들이 공부를 많이 하도록, 하지만 공부의 의미를 찾아가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일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책이 그런 화두(話頭)를 던졌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