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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식량안보

김학수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대표

“인류가 생존하는 한 식량위기는 언제나 재발”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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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CD가 곡물시장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음모론”
⊙ “우리 땅에서 100% 자급자족하는 것은 불가능”
⊙ “해외 곡물 자산 인수해도 안정적 가격으로 공급받기 어려워”

김학수
계명대 영어영문학·무역학 졸업,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 aT 식품마케팅처장·농수산마케팅처장·미국 현지법인설립준비단장, Grain Company 대표·곡물사업 전문위원 역임. 現 U.S. Grains Council 한국사무소 대표
김학수 미국곡물협회 서울사무소 대표 사진=미국곡물협회
  농심이 국제 곡물가격 인상을 반영해 다음 달부터 라면 26개, 스낵 23개 상품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대형상점에서 봉지당 평균 736원에 판매 중인 신라면의 가격이 820원으로 오르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은 CJ햇반·육개장국밥을 기존의 4200원에서 4800원으로, 대상은 조미료 미원 가격을 2400원에서 2700원으로 올린다. 해당 회사들은 ‘원재료 값이 너무 올라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지만, 식품의 유통 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최종 구매자인 소비자의 속은 타들어간다. 머나먼 미국·아르헨티나·러시아 등에서 생산된 옥수수·대두·밀이 우리의 식탁으로 오르는 모든 과정을 아는 김학수 미국곡물협회 한국사무소 대표로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었다. 미국곡물협회는 미국산(産) 옥수수와 보리, 주정박, 에탄올 등의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1960년에 만들어진 조직으로 김 대표는 2015년부터 한국사무소를 맡고 있다.
 
 
  세계 축은 미국·아르헨티나·브라질·러시아·우크라이나
 
미국 중부의 한 농가에 위치한 저장시설. 사진=미국곡물협회
  ― 곡물자급률이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게 낮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2020년 기준)은 20.2%로 낮고, 주요 곡물인 옥수수·밀·대두의 자급률은 각각 0.7%, 0.5%, 7.5%입니다. 대부분의 곡물은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우크라이나·동유럽 등 해외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자급률을 높일 수 없느냐는 말은 현실성이 없지요.
 
  “자급률을 소폭 올릴 수는 있겠지만, 경제성이 문제이고 의미 있는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필요한 옥수수를 우리 땅에서 조달하기 위해 전체 농업용지(155만㏊)에 옥수수만 심더라도 2021년 한국이 수입한 옥수수 1165만 톤의 85% 정도만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전체 농경지의 47%인 73만ha에서 생산되는 쌀을 포함한 무·배추·양파·오이·당근 등 채소·과일 모든 농작물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식량안보에 위협을 받지 않는 수준의 대안을 찾아야 하지만 우리 산지에서 자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내는 국민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농작물과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재배하는 데 주력하고, 주요 식품과 사료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곡물들은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수입하고, 곡물원료의 조달과 관련해 발생하는 가격 변동, 물류비, 환율변화 등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 세계 식량 시장을 움직이는 축은 어느 국가입니까.
 
  “3대 축은 북미권의 미국과 캐나다, 남미권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유럽권의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동유럽 국가들입니다. EU와 중국도 세계 식량 작물 생산에서 상위권에 속하지만, 그들은 자국과 공동경제권 내에서 대부분을 소비하기 때문에 수출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약합니다. 러시아발(發) 전쟁으로 요즘 식량 시장이 불안한 것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밀 수출 시장의 30%, 옥수수 수출 시장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식량 시장의 키 플레이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기후·경제적·지정학적 요인의 결합
 
옥수수는 동물에게 단백질을 제공하는 질 좋은 사료로 활용된다. 사진=조선DB
  옥수수·밀·대두는 3대 곡물이다. 혹자는 ‘빵의 원료가 되는 밀은 그렇다 치더라도 옥수수나 콩은 어디에 어떤 용도로 많이 소비되는지’ 궁금해할 수 있다. 옥수수는 식용보다 가축 사료용으로 훨씬 많이 쓰인다. 옥수수에 포함된 단백질은 가축 사료용으로 최적화된 원료로 양돈·양계·축우 등의 사료로 약 80%가 소비되고, 옥수수유·전분·전분당 등 식품 원료로 15~16%, 나머지는 산업용으로 소비된다. 밀은 유럽이나 북미권에서는 빵·파스타, 아시아권에서는 국수와 제과·제빵의 원재료가 된다. 대두의 가장 큰 쓰임새는 콩기름으로 불리는 식용유이고 두부·간장을 많이 사용하는 한국은 아시아권에서도 손꼽히는 대두 수입국이다. 튀기고 볶는 음식을 주로 섭취하는 중국은 콩기름이 필수이고, 대두박(기름 짜고 남는 콩깻묵)은 단백질 함유량이 많아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김학수 대표로부터 미국에서 생산된 옥수수가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들었다.
 
  미국의 중서부는 대표적인 세계 옥수수 산지다. 우리와 같이 농토가 적은 지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동차로 두세 시간을 가도 끝없는 옥수수밭이 이어진다. 매년 가을 수확기가 되면 농부들은 옥수수를 수확해 농장 저장고나 인근의 곡물 엘리베이터에 보관한다. 곡물 엘리베이터라는 명칭은 곡물을 저장·보관하기 위해 시장시설의 맨 위로 끌어올려 각각의 창고에 분산·보관하는 방법에서 유래했다. 농가에 인접한 엘리베이터를 ‘산지 엘리베이터’라고 부르는데, 산지 엘리베이터는 주로 반경 60마일 이내의 지역 농가로부터 곡물을 수집하고, 저장·건조하는 역할을 한다. 낮은 아파트 한 동만 한 원통형 저장 장치가 흔히 볼 수 있는 곡물 엘리베이터다. 이렇게 산지 엘리베이터에 모인 옥수수는 다시 ‘터미널 엘리베이터’로 옮겨지거나 ‘리버 엘리베이터’로 옮겨진다. 통상 터미널 엘리베이터는 철로를 통해 곡물을 소비지나 수출 터미널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리버 엘리베이터는 곡물을 바지선을 통해 수출 터미널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메이저 곡물회사들은 선물시장 가격 헤지를 통해 리스크 줄여”
 
간장, 두부를 많이 먹는 특성상 콩도 주요 수입품 중 하나다. 매대에 진열된 간장, 두부 제품들. 사진=조선DB
  김학수 대표의 설명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이 규모의 경제입니다. 철도로 운송할 경우에는 110대의 차량을 한꺼번에 움직이는데 한 량에 100톤의 곡물을 실을 수 있기 때문에 약 1만1000톤의 곡물을 산지에서 서부의 수출 터미널로 운송할 수 있습니다. 바지선의 경우에는 한 척에 약 1500톤의 곡물을 적재하고 약 40척이 한 선단을 구성하므로 약 6만 톤의 곡물을 한꺼번에 운송할 수 있습니다. 이후 곡물의 주요 선적항이 있는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에 있는 PNW(Pacific North West) 지역 수출 터미널 엘리베이터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US GULF 지역 수출 터미널을 통해 한국으로 수출됩니다. 산지에서 수출 터미널을 거쳐 한국의 인천·평택·군산·부산 등의 수입항까지 도착하는 데는 최소 1개월에서 3개월이 걸립니다.”
 
  ― 한국에 도착한 이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제분업체들, 배합사료 제조업체들과 전분당 가공업체들은 원가를 절감하고 구매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별, 품목별로 구매그룹을 형성, 공동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합니다. 이들 수입업체는 필요한 곡물을 농가나 지역에 소재하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트레이딩 하우스(Trading House)라 불리는 곡물 메이저들로부터 입찰이나 수의계약을 통해 최저가를 제시하는 업체로부터 곡물을 구매합니다.
 
  대표적인 곡물 메이저들이 ‘ABCD’입니다. 이들 곡물상은 리스크가 큰 곡물의 생산에는 관여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곡물을 구매해 최대의 이윤을 남기고 판매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들 또한 판매를 위해서는 다른 경쟁 공급사와 가격 경쟁을 해야 하며, 이들이 확보하거나 계약한 곡물의 공급 시까지 가격 변동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선물시장을 통한 가격 헤지(hedge·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을 이용해 현물가격의 변동에 따라 발생 가능한 손실을 시장에서 현물과 반대되는 포지션으로 사들이고 파는 것)를 합니다.”
 

  ― 농심의 라면 가격이 오른 이유가 이런 복잡한 프로세스와 관련이 있군요.
 
  “식품회사들이 ‘원가’가 올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입니다. 한국의 제분업체들, 배합사료 제조업체들과 전분당 가공업체들은 국제 곡물시장의 가격 변동, 해상운송 가격의 변동, 환율의 변동과 같은 큰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최근 2년간 이런 3대 요소가 국제 곡물시장을 위협했죠. 최대 곡물의 산지인 남미에서 2년 연속 라니냐 피해로 곡물가격이 올랐고 코로나19에 따른 물류 대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곡물 공급망의 차단, 이상기후에 의한 북반구 주요 산지의 가뭄으로 곡물가격은 2년 전보다 가격이 40~80% 이상 높습니다. 환율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환차손까지 겹쳐 기업의 채산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비가 곡물을 만든다’
 
  수입국인 우리 입장에서는 최근 원가가 상승했으니, 생산지의 농부들이 떼돈을 벌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과연 그럴까.
 
  “농부가 옥수수 1kg을 생산하는 데 100원을 투입해도 선물가격이 1kg에 80원에 형성되면 판매 시점에서의 가치는 80원입니다. 공산품은 상품 원가에 여러 투입 비용을 계산해 최종 가격이 결정되지만, 곡물은 선물시장과 연동한 가격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생산자는 투입한 비용보다 낮게 가격이 형성될 경우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통상 커머더티(Commodity)라고 부르는 옥수수·대두와 밀은 시카고에 있는 CME(Chicago Mercantile Exchange)에서 거래되는 곡물의 선물가격과 연동해 거래됩니다. 이들 곡물은 국제 곡물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준화된 규격에 따라 거래되므로 어느 산지에서 생산되든 기본 규격에 맞으면 같은 가격으로 거래될 수 있습니다.”
 
  ― 가격 변동폭이 큰가요.
 
  “곡물은 채소류나 온실에서 재배하는 원예작물과는 달리 일 년에 한 번 생산해 공급해야 하는 특성으로 가격 탄력성이 매우 높습니다. 가뭄, 한파, 홍수와 같은 자연에 의한 재해가 발생할 경우와 주요 수출국이 자국 곡물가격의 안정을 이유로 수출을 제한할 경우,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지정학적인 위험이 발생할 경우 가격이 폭등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합니다. 최근 곡물가격의 급등세는 2008년, 2012년, 2021년과 같이 4년에서 8년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농작물의 생산은 온실이나 스마트팜에서 재배하는 제품과 달리 계획 생산이 어렵고 생산 주기가 길고 자연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자연재해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생산을 20% 늘린다고 가정할 경우, 예상과 달리 자연재해가 없다면 풍작이 돼, 곡물가격이 폭락해 생산자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최첨단 IT 시대에도 결국 곡물의 생산은 자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비가 곡물을 만든다(Rain makes grain)’라고 합니다.”
 
 
  중국의 국영 곡물유통회사 COFCO 급속도로 성장
 
  앞서 언급한 대로 세계 곡물시장은 ‘ABCD’라고 불리는 4대 메이저 회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에이디엠(ADM·미국 회사·2021년 매출 852.5억 달러)’ ‘벙기(BUNGE·네덜란드계 미국 회사·매출 592.5억 달러)’ ‘카길(CARGILL·미국 회사·매출 1650억 달러)’ ‘루이 드레이퓌스(Louis Dreyfus·프랑스계 네덜란드 회사·매출 496억 달러)’가 전체 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한다. 이들 회사는 110~207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글랜코어(Glencore), 윌마(Wilma), 코프코(COFCO)와 같은 신흥 곡물 메이저들, 마루베니(Marubeni), 미쓰이(Mitsui), 미쓰비시(Mitsubishi)와 같은 일본 상사, 일본 농협인 젠노(全農)도 국제 곡물시장에서 다양한 곡물 자산을 보유한 곡물 트레이딩 회사다. 한국도 포스코, CJ인터내셔널, 팬오션이 국제 곡물시장 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후발주자 중 중국의 국영기업인 COFCO로 불리는 중량(中糧)그룹의 국제 곡물시장 진입 행보는 우리 곡물기업에 주는 의미가 크다. 중국은 2000년대에 들어와 국민소득의 증가, 중산층의 급증으로 식량자급 정책을 부분적으로 포기하면서 식량안보를 위해 공기업인 COFCO를 통해 국제 곡물시장 자산 확보에 나섰다. COFCO는 기존 주요 산지의 곡물 자산과 곡물 비즈니스를 운영 중인 중간 규모의 곡물 메이저인 홍콩계 ‘니데라(Nidera)’와 ‘노블그룹(Noble Group)’의 곡물 자산과 비즈니스를 45억 달러(약 3조5000억원)에 인수하고 ABCD에 버금가는 메이저로 급부상했다.
 
 
  “국제 곡물시장에서 불공정거래 일어날 수 없어”
 
미국 수출 터미널 엘리베이터 전경. 사진=미국곡물협회
  ― 세계 곡물시장은 ABCD 메이저들이 쥐락펴락하는 세상이라고들 하던데요.
 
  “메이저들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메이저들이 시장을 왜곡하면서 쥐락펴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곡물 메이저들에 대한 시각이 음모론적인 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국제 곡물시장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1900년대의 시각으로 곡물기업들을 이해하고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국제 곡물시장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실제적인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메이저들도 치열하고 기후적, 지정학적, 미시·거시 경제적인 위험에서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리스크를 분산할 뿐만 아니라 선물시장을 통한 헤지를 철저하게 함으로써 연평균 2~3%의 순이익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그런데 왜 아직도 ABCD가 가격 담합을 한다고 생각할까요.
 
  “거대한 자본이 움직이는 선물시장과 연동하는 국제곡물시장에서 담합과 불공정거래는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일부 업체가 시장을 왜곡하기 위해 선물시장에서 또는 곡물시장에서 매집할 수가 있을까요? 최대의 곡물기업이라 하더라도 국제 곡물선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어 국제 곡물시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또 곡물시장 가격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그 기업은 하루아침에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 높은 점유율을 위시해 가격 담합하고 그러는 게 아니군요.
 
  “곡물 트레이드는 얼마나 많은 양(volume)을 취급해 회전율을 높이느냐가 관건입니다. 어떤 기업이 수출 터미널 하나를 인수한다면 그곳에서 이윤이 날 수도 있겠지만 꾸준하게 곡물메이저들과 경쟁해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이윤을 창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원료조달에서 수출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프라와 시스템을 갖춘 대형 곡물상들은 곡물 수출에서만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산지에서 수출 터미널에 이르는 다양한 밸류체인에서 이윤을 남길 수 있고, 포트폴리오를 통한 다른 저장, 가공, 물류 분야에서 이익을 창출해 수출 터미널 운영에서 손해가 나도 벌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이 곡물의 수출 터미널 한두 개에 투자하면 국가의 식량위기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본의 사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수십 년 앞선 1960년대부터 국제 곡물시장에 자산과 비즈니스로 진입한 상사들이 많은 일본도 곡물가격이 폭등하는 위기가 발생하면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는 곡물가격의 상승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을 겪고 있습니다.”
 
 
  일본 상사, 1960년대에 곡물사업에 진출
 
  ― 현 상황이 위기는 맞습니까.
 
  “밀, 옥수수, 대두 가격이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1.5배 이상 올랐으니까 위기는 맞습니다. 식량안보의 개념이 처한 국가에 따라 다릅니다. 아프리카처럼 기아를 식량위기로 볼 수도 있지만, 세계 10위의 경제권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곡물 구매를 위한 과도한 지출로 산업의 균형이 깨지고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져 소비자의 후생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식량안보 측면에서 위기 상황으로 봐야 합니다. 특히 곡물의 원료 비중이 높은 배합사료기업, 전분당기업, 제분기업들의 경우에는 곡물가격의 상승이 그대로 원료가격에 반영돼 기업의 채산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됩니다.”
 
  ― 일본 상사들은 일찍 곡물 트레이더 시장에 뛰어들었더군요.
 
  “일본 상사들과 젠노는 1960년대를 전후해 많이 뛰어들었습니다. 북미, 남미를 중심으로 곡물 인프라를 확보하고 국제 곡물 거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죠. 다만 중국의 COFCO 경우와는 달리 일본의 식량안보를 위한 진출이라기보다는 축산과 식품가공에 이르는 수직계열화된 사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측면이 강했습니다. 우리나라 상사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곡물과 식량 사업에 많이 참여했지만 일반 중공업 촉진을 위한 원자재, 공산품, 중공업 제품 수출 위주로 성장해 곡물사업에 영역 구축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다시 상사를 포함한 우리 기업들이 국제 곡물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식량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항구적인 지속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므로 우리 기업들이 뛰어드는 것을 독려하고, 정부 입장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 중국이 곡물 트레이더에서 큰손의 지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는데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우리 상황과 맞지 않죠.
 
  “사회주의체제 정부 주도의 경제인 중국과 민간 주도의 경제체제인 우리나라는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곡물 조달 시스템 구축을 위한 투자는 일본처럼 민간이 하는 것이 맞습니다. 정부가 국제 곡물 조달을 위한 곡물 자산을 인수하고 곡물을 구매해 민간에 판매하거나 배급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죠. 천문학적인 국가 재정이 투입돼야 하고, 엄청난 투자와 곡물가격 변동 리스크를 감당하기 힘듭니다. 곡물을 트레이딩하거나 가공하는 기업들이 기업의 판단에 따라 투자하고 곡물을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만 정부는 민간기업들의 해외 곡물 자산 투자와 시스템 구축을 통해 국제곡물기업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금융지원, 관세 정책(할당 관세 등), 유동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식품위생제도의 개선, 저장 물류비 지원과 같은 위기 시의 원활한 곡물 조달 대책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 곡물 수출 금지
 
  ― 해외 곡물 트레이딩에 참여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뭡니까.
 
  “첫째, 투자기업은 투자한 국가의 정책과 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해외에 농업 투자를 통해 생산한 작물을 수입할 경우에도 다른 수입품과 동등하게 식물 검역, 농약 잔류, 식품안전 규정을 충족해야 합니다. 만일 현지 정부가 곡물의 수출을 금지하면 우리가 100% 투자한 기업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로 수입 자체를 못 하게 됩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전략 곡물 재고 비축분 확대, 식품 및 필수품 수출 제한을 추진했죠.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 등은 코로나19 이후에 쌀 수출을 규제했고,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도 주요 곡물의 수출 쿼터제 도입 등 곡물 수출을 제한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 우리 기업들이 해외 곡물 조달을 위해 투자한 연해주, 남미 등의 농업 투자의 경우에도 생산된 작물의 국내 반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진출 시에는 투자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국제 곡물 트레이딩 기업인지, 안정적 원료 조달인지 아니면 수익 추구를 위한 재무적인 투자인지에 따라 다른 접근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우리가 해외의 곡물 터미널을 인수해도 국가 차원에서 제한 정책을 펼치면 별도리가 없군요.
 
  “가격 문제도 있습니다. 국제가격이 폭등했을 때 한두 번은 투자자인 한국이 원하는 가격대에 공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투자했다고 해도 해당 현지 법인은 엄연한 투자 법인으로서, 현지의 상법에 따른 법인 격으로서 법인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이 비상시이고 우리가 현지에 투자했으니 우리에게는 곡물을 싸게 보내달라’고 요청할 수 없죠.”
 
  ― 해외의 곡물 자산을 인수해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거군요.
 
  “네. 해외의 자산 인수 합병을 통한 국제 곡물시장으로 진출하는 모형은 재무적 투자로 투자기업의 배당 이윤을 추구하거나, 곡물의 공급자로서 국제 시장 가격과 비슷한 조건으로 곡물 공급에 참여하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 이를 통해 식량위기 시에도 곡물을 저가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일본 사례와 우리의 해외 투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이 해외의 사업영역을 다변화하고, 역량 확충, 전문인력의 육성, 투자기법의 전문화를 통해 국제적인 곡물상으로 성장한다면 위기시는 물론 우리나라가 상시 부족한 곡물을 안정적으로 도입하는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곡물을 식량·사료 원료로 공급하는 기업들과 함께 대책”
 
  ― 쉽지 않네요.
 
  “그럼에도 곡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는 식량 위기에 대비하는 정책을 백년대계 프로젝트로 다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모든 연관 부처와 산업계가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실현 가능성을 점검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논의가 시작돼야 합니다.
 
  먼저 대기업 주도의 사업 육성 지원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기업에 대한 금융과 제도적인 지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아직 남아 있죠. 하지만 해외 곡물시장은 중소기업이나 개별 농가의 진입이 불가능한 시장입니다. 만약 대기업이 식량과 곡물 사업을 추진할 경우 원하는 금융지원, 인력 육성, 물류비용 절감 등의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곡물의 가격변동, 환차손에 대비하는 헤지 수단도 필요합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해야겠지만, 정부가 기업들이 리스크를 헤지 하는 거래를 도입할 수 있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문가를 육성하고 헤지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해외 투자 측면이 아닌 국내의 비축과 물류 분야에서 식량위기 시에 저장 및 물류비용 지원을 통해 가격을 안정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곡물기업은 1.5~3개월의 재고를 유지합니다. 그러나 곡물가격 급등 시에는 가격의 추가 상승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재고물량을 줄이게 되고, 이런 상황은 곡물가격을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정부는 현재 운영하고 있는 국제 곡물 조기 경보 시스템이 식량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보완 발전시켜 위기 단계에 따라 기업이 재고를 충분히 비축해 안정적인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저장과 유통 분야에서 필요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식량위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평상시에 위기에 대처하는 지원 방안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갖추어나가면 식량위기 발생 시에 오는 피해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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