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로비로 美 상원 2명·하원 34명 지지 확보”
⊙ 韓·中·日, 지난해 각각 2881만·6721만·2962만 달러 지출
⊙ 이명박 정부 31건, 박근혜 정부 21건, 문재인 정부 26건
⊙ 2020년 한국의 대미 로비 금액 상위 4곳은 ① KBS ② KOTRA ③ 대한민국 정부 ④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대미 로비 명목은 ‘북미 지역 국가와의 전략적 특별협력관계 강화 사업’
⊙ 기록상 한국 최초의 로비는 1942년 이승만이 기획한 臨政 승인 로비
⊙ 韓·中·日, 지난해 각각 2881만·6721만·2962만 달러 지출
⊙ 이명박 정부 31건, 박근혜 정부 21건, 문재인 정부 26건
⊙ 2020년 한국의 대미 로비 금액 상위 4곳은 ① KBS ② KOTRA ③ 대한민국 정부 ④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대미 로비 명목은 ‘북미 지역 국가와의 전략적 특별협력관계 강화 사업’
⊙ 기록상 한국 최초의 로비는 1942년 이승만이 기획한 臨政 승인 로비
- 미국 로비업체와 로펌이 몰려 있는 K Street. 백악관 후문에서 600m 떨어져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한국에서 ‘청탁(請託)’ ‘로비(lobby)’ ‘로비스트(lobbyist)’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성격이 짙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접대, 뇌물, 정치자금 등 비(非)합법적 수단을 동원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로비는 13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 1215년 대헌장(Magna CHarta)이 제정되자 귀족은 봉건 신민(臣民)을 대신해 왕에게 청원하는 대리인(petitioning agents) 역할을 맡았다. 16세기 들어서는 귀족을 중심으로 한 의회의 대표성이 커지자 시민은 의회 청원을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방식이 17세기 후반 영국 식민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특유의 로비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당시 식민지 미국에서는 대리인을 통한 청원이 사회적 요구를 파악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었다.
美國에서 로비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미국은 로비를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입법부·행정부와 모든 정치적 영역에 영향을 미치려는 노력’으로 정의하고, ‘정책 입안자나 결정자와의 직접적인 접촉뿐 아니라 정책에 영향을 주기 위한 준비 작업 일체’라고 여긴다. 로비 활동은 미국 수정(修正) 헌법 제1조 청원권(‘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에 따른 권리로써 보호된다.
미국의 로비와 관련한 입법은 단계를 거쳐왔다. ▲1938년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FARA)’을 시작으로 ▲1946년 ‘연방로비활동규제법(Federal Regulations of Lobbying Act)’ ▲1995년 ‘로비활동공개법(Public Disclosure Act)’을 거쳐 현재는 2007년 개정된 ▲‘정직한 리더십 및 정부공개법(Hones Leadership and Open Government Act)’의 규제를 받는다.
미국이 FARA를 만든 배경에는 독일 나치가 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나치 정권은 나치즘을 미국에 전파하고 히틀러에 대한 미국 내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미 의회는 미국 내 나치 활동을 위협으로 판단하고 이러한 활동을 규제할 법을 제정했다.
FARA는 미국 내 외국인 또는 외국 기관을 대리하는 개인이 미 법무부에 등록한 뒤 활동하도록 규정했다. 대리인은 자신이 활동을 지원하는 대상과의 관계, 활동 내용, 수입 및 지출을 공개하고 신고해야만 한다.
연방로비활동규제법의 핵심은 6개월 동안 5000달러 이상을 받은 로비스트나 2만 달러 이상을 수임한 로비 회사는 미 상·하원 사무국에 누가 자신들을 고용하고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고지해야 한다.
로비활동공개법에 따르면, 미국에서 로비스트는 ‘보상을 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 로비에 관여하는 이로, 의원·의원 사무실 직원·정부 관계자와 접촉하는 데 업무 시간의 20% 이상을 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등록된 공개 로비스트는 1만2000명
미국 로비스트의 주 활동 무대는 백악관과 미 의회가 있는 워싱턴 DC다. 미 상·하원은 총 535명(상원 100명, 하원 435명)이다. 워싱턴에 등록된 공개 로비스트는 2020년 기준 약 1만2000명이다. 의원마다 로비스트가 최소 22명씩 달라붙는 셈이다.
미국 로비 산업의 연간 지출 총액은 1998년 10억4500만 달러(약 1조2500억원)에서 2017년에는 30억3400만 달러(약 3조6300억원)로 늘었다. 비공개 로비스트의 활동을 포함하면 로비 산업의 규모는 더 크리라 예상된다.
비공식 로비스트와 워싱턴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포함하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로비스트의 수는 더 많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공개 로비스트는 2000년 1만5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연방로비활동규제법은 로비스트가 입법 관련자나 정치인에게 한 끼에 25달러가 넘는 식사를 대접할 수 없도록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와 유사한 제도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다. 김영란법도 식대가 3만원(선물은 5만원)을 초과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김영란법의 원조가 연방로비활동규제법이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작성자 정민정 입법조사관)로부터 제출받은 ‘한·중·일 3국의 대미(對美) 로비 현황’에 따르면, 한·중·일 3국의 정부 기관과 기업을 대리한 역대 로비스트 등록 건수(1942년~2021년 9월 기준)는 일본 1146건, 한국 417건, 중국 257건이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한·중·일 3국의 누적 대미 로비 금액은 ▲일본 2억1024만 달러(세계 1위) ▲중국 1억8525만 달러(세계 2위) ▲한국 1억7217만 달러(세계 3위)이다.
대한민국 정부 기관과 기업을 대리한 등록 건수는 ▲이명박 정부(2008년 2월~2013년 2월) 31건 ▲박근혜 정부(2013년 2월~2017년 3월) 21건 ▲문재인 정부(2017년 5월~2021년 9월 기준) 26건이다.
李承晩의 對美 로비
2007년 미 법무부는 1942년부터 제출된 모든 로비 활동 보고서를 디지털화해 FARA 사이트(www.fara.gov)에 공개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1942~2014년 총 2만8852건의 로비 활동 보고서가 제출됐다.
FARA 사이트에 공개된 한국의 대미 로비 기록은 1942년부터 시작한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李承晩)은 미국 정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한국 대표 정부로 승인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이때 미국을 상대로 한 로비를 위해 현지에 한미협회(The Korean-American Council)를 조직했다.
FARA에 따르면, 한국은 1942년 한 해에만 13건의 로비를 벌였다. 한미협회는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Korean Commission)와 대한민국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를 대리해 로비한 기록이 있다.
구미위원부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미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 설치한 외교 담당 기관이다.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함께 동지회(同志會)를 조직한 정운수(鄭雲樹·1903~1986)는 이승만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을 대리해 대미 로비를 벌였다.
구미위원부 위원을 지내고 서울특별시장(1960)을 지낸 장기영(張基永·1903~1981)도 독립을 위해 미국에서 로비 활동을 했다.
일본의 진주만폭격을 사전 예고했던 독립운동가 한길수(韓吉洙·1900~1976)는 광복군 부사령관 신분인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1898~1958)을 대리해 로비를 벌였다. FARA 자료는 김원봉을 ‘Commander Yak San Kim, Chungking, China’라고 표기했다.
미국인 변호사 존 스태거즈(Staggers, John W.)는 임시정부를 대리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했다. 스태거즈는 기록상으로는 최초로 한국을 대리해 공식 로비를 벌인 미국인이다.
코리아 게이트, 미국 법 어긴 不法 로비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 원조를 얻기 위해 존 스태거즈를 통해 대미 로비를 벌였다. 이 대통령은 시인 모윤숙에게 “스태거즈를 통해 한국이 미국에 진해 기지를 내주는 대가로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 원조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받아낸 성과가 대한민국 해군의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이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당시 부산 상륙을 노린 북한군 상륙함을 격침했다. 당시 백두산함에서 전투를 치렀던 이들 중 한 명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고(故)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다. 한국 정부를 위해 1942년부터 로비를 시작한 스태거즈의 활동은 1954년까지 계속된다.
1976년에는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Korea gate)’ 사건이 터진다.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재미(在美) 한국인 사업가인 박동선(朴東宣) 등을 통해 미 의회에 불법(不法) 로비를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로비가 문제가 된 까닭은 미국 법을 어기며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 의회 의원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매년 50만~100만 달러 규모의 정치자금 내지 향응을 제공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보완책과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특별지원책이 미 의회로부터 승인돼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로비를 강화했다.
2016년부터 2021년(9월 기준)까지 최근 6년간 대한민국의 대미 로비 지출액을 연도별로 분류하면 ▲2021년(9월 기준) 251만7069달러(정부 로비 169만4931달러, 비정부 로비 82만2138달러) ▲2020년 2881만3016달러(963만9981달러, 1917만3035달러) ▲2019년 3658만4993달러(2702만1557달러, 956만3436달러) ▲2018년 4113만2042달러(1805만9082달러, 2307만2960달러) ▲2017년 3100만9453달러(1443만6637달러, 1657만2816달러) ▲2016년 3377만730달러(693만352달러, 2684만378달러)이다.
2020년 한국의 대미 로비 금액 상위 4곳은 ▲KBS(한국방송공사·950만 달러)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832만 달러) ▲대한민국 정부(377만 달러) ▲대외경제정책연구원(283만 달러)이다.
2019년은 ▲KOTRA(1976만 달러) ▲대한민국 정부(725만 달러) ▲KBS(328만 달러) ▲대외경제정책연구원(126만 달러), 2018년은 ▲KOTRA(1513만 달러) ▲KBS(1327만 달러) ▲대한민국 정부(726만 달러)였다. 2016년, 2017년 역시 비슷한 규모였다.
KBS의 대미 로비 지출이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KBS가 사업 운영비 등 각종 경비를 모두 ‘로비 자금’ 형식으로 계상해 벌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도별 한·중·일 3국의 대미 로비를 비교하면 2020년은 중국(세계 1위·6721만1203달러), 일본(세계 4위·2962만8155달러), 한국(세계 5위·2881만2916달러), 2019년은 중국(세계 1위·6580만9058달러), 일본(세계 4위·4182만3988달러), 한국(세계 5위·3658만4993달러) 순이었다.
2018년은 한·중·일 3국 중 한국(세계 2위·4113만2042달러)이 가장 많은 로비 금액을 지출했다. 이어 일본(세계 4위·3444만7727달러), 중국(1702만5557달러) 순이었다.
2017년은 일본(세계 1위·4536만708달러), 한국(세계 2위·3100만9453달러), 중국(세계 10위·1807만9534달러), 2016년은 일본(세계 1위·4259만3849달러), 한국(세계 2위·3311만4086달러), 중국(1036만8698달러) 순이었다.
日, 아시아에서 對美 로비에 가장 전문적
일본의 대미 로비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이후 고도성장기에 벌어질 미일(美日) 간 경제·무역 마찰에 대응하고 중국·러시아 등을 상대하기 위해 로비를 펼쳤다.
일본의 대미 로비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한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일본을 잠재적인 기독교 동맹국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일본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은 1948년 6월 대일(對日) 미국위원회(American Council on Japan·ACJ)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로비를 벌인다. 《뉴스위크》 국제 담당 편집인 출신의 해리 컨(Kern)은 에버럴 해리먼(Harriman) 상무장관의 도움을 받아 ACJ를 이끌었다. 컨은 1950년대 중반 ‘포린 리포트(Foreign Reports)’라는 컨설팅 회사를 세워 양국을 잇는 로비를 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로비스트로 등장했다. 워싱턴에는 ‘일본계 미국 시민연맹(Japanese American Citizens League)’과 일본 로비 전담 법률회사가 만들어졌다.
또 일본 통산성 산하 기관인 일본무역진흥회(JETRO)는 일본계 미국인 변호사를 통해 ‘미일 무역위원회(US-Japan Trade Council)’라는 준(準)로비 단체를 만들었다. 일본은 1948년 미국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토머스 듀이(Dewey)를 통해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일본의 경제가 급성장하고 1970년부터는 일본과 미국의 통상 마찰도 심화했다. 미국 내에서는 일본 기업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문제 삼았고, 일본 재계도 이에 위기감을 가졌다.
1970년대 후반 100억 달러 수준인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는 1980년대 초반 300억 달러, 1980년대 중반에는 500억 달러를 넘겼다. 이에 미 의회에선 ‘일본 경계론’이 일었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일본의 미국 진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 정부와 재계도 로비를 강화하기 시작해 1982년 한 해 1700만 달러 수준이었던 로비 금액을 1984년에는 6000만 달러로 늘렸다.
도시바 코콤 위반 사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대미 직접 투자는 증가했다. 1986년에는 도시바 코콤(COCOM) 위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대미 로비를 더욱 활발하게 벌였다. 1986년 당시 일본 정부나 기업이 의뢰한 로비 회사는 모두 120개로 프랑스(37개), 서독(35개), 한국(35개)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 중 일본 정부 기관은 5개사, 115개사는 민간 기업이나 단체가 로비 계약의 주체였다.
코콤 사건이란, 코콤(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소속 일부 회원국이 소련에 공작 기계를 불법으로 수출해 벌어진 일이다. 코콤 통제를 어기고 노르웨이산 수치 제어 장치와 일본 도시바의 컴퓨터 제어식 금속 가공 기계 8대가 소련에 수출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소음이 컸던 소련 잠수함은 도시바의 장비를 반입해 소음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를 빌미로 도시바는 대미 수출이 금지됐고 일본의 전자제품과 반도체 몰락의 발단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부시 대통령의 연임과 미국 내 네오콘의 부상과 맞물려 ‘보통 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정치인을 중심으로 대미 로비를 집중적으로 벌였다. 이러한 일본 정치인들의 대미 로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골든 위크(Golden Week)’이다. 4월 말부터 시작되는 10일간의 연휴를 이용해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은 워싱턴을 방문한다.
일본 로비의 특징은 미 의회 내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대립 구도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일본과 이익을 같이하는 외국의 이익단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일본은 워싱턴뿐만 아니라 미국 주 정부를 공략해 해당 주, 카운티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를 위해 일본 기업의 미국 현지 진출을 돕는 방식으로 주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펼친다. 이미 1989년에만 미국 주 정부 50곳 중 39곳이 일본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해 일본 자금을 유치해왔다.
中, 우한에서 코로나19 터지자 로비 지출 늘려
2020년 중국의 대미 로비 금액 상위 5개 기관은 ▲CCTV 아메리카(CCTV America·5024만4312달러)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 of Beijing, China·501만3667달러) ▲화웨이 테크놀로지(Huawei Technologies·406만9401달러) ▲하이크비전 USA(Hikvision USA·343만6783달러) ▲중미(中美)교류재단(China-US Exchange Foundation·94만209달러) 순이었다.
지난 5월 미국의소리(VOA)는 중국 언론 매체의 대미 로비 금액 급증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악화한 대중 인식에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민간 부문에서는 화웨이가 지출 1위를 했다. 여기에는 중국 IT 기업의 상징인 화웨이를 두고 미중 간 벌인 갈등이 영향을 끼쳤다.
중국은 1990년대 들어 미국 내 로비를 활성화했다. 《미국을 로비하라》(2007)에 따르면, 당시 중국 정부의 최고 관심사는 미국 시장에서 자국 수출품에 대한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 status treatment·MFN)를 연장하는지 여부였다. 최혜국 대우란, 국제 무역에 관한 협정에서 특정 국가만 차별 대우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1989년 중국 정부는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의 대외 이미지가 악화하고 반중(反中) 감정과 중국 내 인권 개선에 대한 요구가 늘자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로비를 늘렸다.
중국의 대미 로비의 주체는 미중(美中) 수교를 전후해 중국에 이미 진출했거나 진출 의사를 가진 미국 대기업이었다. 로비 활동 자금과 로비 계획도 모두 이들이 마련했다.
1990년대 초 중국의 대미 로비스트를 맡은 인물은 닉슨 정부에서 국무장관(1973~1977)을 지낸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지미 카터 정부에서 국무장관(1977~1980)을 지낸 사이러스 밴스(Cyrus Roberts Vance),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1992~1993)을 지낸 로렌스 이글버거(Lawrence Eagleburger) 등과 같은 전직 국무장관들이었다.
여기에 제임스 릴리(James Roderick Lilley) 전 주중대사와 국방부 인맥 등도 중국을 위한 로비에 나섰다. 이들은 중국과의 오랜 접촉 경험과 미국과 중국 내의 인맥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MFN 취소는 수만 명의 미국인 실직자를 낳으며 중국과의 교역 확대는 중국 내 정치·사회 발전을 유도한다’고 했다.
UCBC에 포진한 美 주요 기업 임원들
미국인이 주축이 돼 중국의 대미 로비를 벌이는 단체는 미중무역전국위원회(US-China Business Council·UCBC), 미중관계전국위원회(National Committee on United States-China Relations·NCUSCR) 등이 있다.
UCBC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 지 1년 뒤인 1973년 설립됐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200개 사(社)를 회원으로 둔 비영리 단체이다. UCBC의 부의장은 제너럴 모터스(GM) 회장인 메리 바라(Mary T. Barra)다. 이사에는 보잉(Boeing), 퀄컴(Qualcomm), 포드자동차(Ford), 화이자(Pfizer), 비자(Visa), 코카콜라(Coca-Cola) 등의 회장 또는 최고경영자가 이름을 올렸다.
UCBC는 중국이 가장 신뢰하는 친중(親中) 비즈니스 단체이다. 중국의 유력 인사들과 연결되는 ‘핫 파이프(hot pipe)’라는 평가가 있다. UCBC는 1990년대 후반 클린턴 행정부 시절 중국의 MFN 연장과 WTO 가입을 위해 앞장섰다. 당시 세계 500대 기업 중 상위 100대 기업이 주축이 돼 미국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덕분에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의회에 직접 로비를 할 필요성도 없었다. UCBC의 뒤를 이어 NCUSCR도 중국의 대미 로비 과정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정부는 미국 로펌 등과 로비 계약을 맺고 정부 차원의 직접 대미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중국이 고용한 미국 로비 회사의 로비 대상은 주로 미 상원 외교위원회와 군사위원회였다.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중국 지방 성(省)들도 자체적으로 대미 로비를 벌였다.
‘전략적 특별협력관계 강화 사업’
국회입법조사처 김도희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관계 전반을 담당하는 부서는 외교부 북미국이다. 북미국은 미국 의회에 대한 업무를 맡으며 대미 로비는 ‘북미 지역 국가와의 전략적 특별협력관계 강화 사업’이라는 목적으로 주로 의회 외교 강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 내 로비 업체와 계약한 업무의 성격은 주로 ▲홍보 자문(Public Relation) ▲로비(Lobbying) ▲방송 배급(Distribution of Film) ▲무역 진흥(Promotion of Trade) ▲투자 진흥(Promotion of Investment) ▲관광 진흥(Promotion of Tourism) ▲미국 정책 자문(U.S. Policy Consulting) 등이 있다.
지난 10월 1일 외교부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가 2017년부터 2021년 9월 현재까지 계약을 맺은 의회 자문회사의 주요 업무로는 ▲2020년 미 대선 동향 관련 자문 ▲미 의회 관계자 일정 주선 및 네트워크 확대·강화 지원 ▲한미 의회 간 교류 지원 및 미 의회 보좌관 방한(訪韓) 사업 주선 등이 있다.
외교부는 또 ‘전문직 비자 쿼터(Partner with Korea Act)’ 관련 자문회사와도 계약해 입법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 법안은 한국 출신 전문직 종사자에게 매년 1만5000개의 취업비자 쿼터를 할당하자는 내용이 골자이다. 여기에 2017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총 36억6200만원을 지출했다. 미국은 전문직에 대해 연간 비자 발급 쿼터를 설정해두고, 쿼터 도달 시 당해 회계연도에 외국인 전문직의 비자 발급을 제한한다.
외교부는 연도별 미 상·하원 의원 중 한국에 우호적인 이른바 ‘지지 의원’ 확보 현황도 공개했다. ▲114대(2015~2016) 상원 6명·하원 81명 ▲115대(2017~2018) 상원 3명·하원 81명 ▲116대(2019~2020) 상원 3명·하원 54명 ▲117대(2021~2022) 상원 2명·하원 34명, 2021년 9월 기준이다.
북한의 로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지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서울 강남구갑)은 “북한은 동구공산권이 무너지기 전인 1989년까지만 해도 로비를 (활발히) 펼쳤다. 규모는 연간 100만 달러 수준”이라고 했다. 로비는 해외 유력 인사를 찾아다니며 북한의 입장을 전달하고 현금이나 고가 시계(롤렉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이 때문에 크게 논란이 된 적도 있다고 했다.
북한 외교관이 핀란드에서 국회의원들에게 고급 시계를 전달했는데, 한 핀란드 의원이 이를 폭로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현지에서 로비 활동을 벌이던 북한 외교관이 제재를 받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한 뒤로는 북한의 재정이 악화해 금전을 통한 로비는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태영호 의원은 “로비를 목적으로 선물을 주더라도 값비싼 선물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해외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면 고급 호텔에 묵게 하거나 주요 관광지에 들러 도자기와 같은 북한 특산물을 전하는 수준이 전부”라고 했다.
북한은 주로 외무성이나 대외문화연락위원회가 로비를 펼친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는 주로 비정부NGO를 상대한다. 당과 관련된 로비는 당 국제부에서 맡고 해외 인사에 대한 로비는 통일전선부가 담당한다고 했다.
태 의원은 “북한은 중국, 러시아, 유럽 주요 국가 등 큰 나라를 중심으로 로비를 펼친다”면서 “해당 국가에서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이나 법조인을 대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태 의원은 “북한 외교관은 미국에서 CIA의 감시와 미행을 항상 받고 있기에 미국을 직접 상대로 하는 로비는 공개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를 대신해 북한과 미국을 오가며 북한의 주장을 선전하는 친북 성향을 가진 교포나 교포 단체를 통한 로비가 이뤄진다고 했다. 북한 외교관들이 한국 정부 관계자나 외교관 등을 상대로 하는 로비는 거의 없다고 했다.
미인계를 이용한 공작이나 로비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주영공사를 지낼 때 어떻게 로비를 했는지’ 물으니 태영호 의원은 “자금이 부족했기에 로비가 빈번치 못했다”면서도 “명절이나 크리스마스에는 포도주에 북한 달력, 북한 인삼주 등을 선물했고, 상대의 급(級)이 높을 경우 북한의 질 좋은 자개용품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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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XINHUA |
이러한 방식이 17세기 후반 영국 식민지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특유의 로비 문화로 자리 잡았다. 당시 식민지 미국에서는 대리인을 통한 청원이 사회적 요구를 파악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었다.
美國에서 로비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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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사진=뉴시스/XINHUA |
미국의 로비와 관련한 입법은 단계를 거쳐왔다. ▲1938년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FARA)’을 시작으로 ▲1946년 ‘연방로비활동규제법(Federal Regulations of Lobbying Act)’ ▲1995년 ‘로비활동공개법(Public Disclosure Act)’을 거쳐 현재는 2007년 개정된 ▲‘정직한 리더십 및 정부공개법(Hones Leadership and Open Government Act)’의 규제를 받는다.
미국이 FARA를 만든 배경에는 독일 나치가 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나치 정권은 나치즘을 미국에 전파하고 히틀러에 대한 미국 내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미 의회는 미국 내 나치 활동을 위협으로 판단하고 이러한 활동을 규제할 법을 제정했다.
FARA는 미국 내 외국인 또는 외국 기관을 대리하는 개인이 미 법무부에 등록한 뒤 활동하도록 규정했다. 대리인은 자신이 활동을 지원하는 대상과의 관계, 활동 내용, 수입 및 지출을 공개하고 신고해야만 한다.
연방로비활동규제법의 핵심은 6개월 동안 5000달러 이상을 받은 로비스트나 2만 달러 이상을 수임한 로비 회사는 미 상·하원 사무국에 누가 자신들을 고용하고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를 고지해야 한다.
로비활동공개법에 따르면, 미국에서 로비스트는 ‘보상을 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 로비에 관여하는 이로, 의원·의원 사무실 직원·정부 관계자와 접촉하는 데 업무 시간의 20% 이상을 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등록된 공개 로비스트는 1만2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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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2만5000원짜리 도시락을 먹고 있다. 사진=뉴시스 |
미국 로비 산업의 연간 지출 총액은 1998년 10억4500만 달러(약 1조2500억원)에서 2017년에는 30억3400만 달러(약 3조6300억원)로 늘었다. 비공개 로비스트의 활동을 포함하면 로비 산업의 규모는 더 크리라 예상된다.
비공식 로비스트와 워싱턴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포함하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로비스트의 수는 더 많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공개 로비스트는 2000년 1만5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다.
연방로비활동규제법은 로비스트가 입법 관련자나 정치인에게 한 끼에 25달러가 넘는 식사를 대접할 수 없도록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와 유사한 제도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다. 김영란법도 식대가 3만원(선물은 5만원)을 초과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김영란법의 원조가 연방로비활동규제법이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작성자 정민정 입법조사관)로부터 제출받은 ‘한·중·일 3국의 대미(對美) 로비 현황’에 따르면, 한·중·일 3국의 정부 기관과 기업을 대리한 역대 로비스트 등록 건수(1942년~2021년 9월 기준)는 일본 1146건, 한국 417건, 중국 257건이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한·중·일 3국의 누적 대미 로비 금액은 ▲일본 2억1024만 달러(세계 1위) ▲중국 1억8525만 달러(세계 2위) ▲한국 1억7217만 달러(세계 3위)이다.
대한민국 정부 기관과 기업을 대리한 등록 건수는 ▲이명박 정부(2008년 2월~2013년 2월) 31건 ▲박근혜 정부(2013년 2월~2017년 3월) 21건 ▲문재인 정부(2017년 5월~2021년 9월 기준) 26건이다.
李承晩의 對美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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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회의에 파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들. 앞줄 가운데가 대표 단장 이승만. |
FARA 사이트에 공개된 한국의 대미 로비 기록은 1942년부터 시작한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이승만(李承晩)은 미국 정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한국 대표 정부로 승인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이때 미국을 상대로 한 로비를 위해 현지에 한미협회(The Korean-American Council)를 조직했다.
FARA에 따르면, 한국은 1942년 한 해에만 13건의 로비를 벌였다. 한미협회는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Korean Commission)와 대한민국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를 대리해 로비한 기록이 있다.
구미위원부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미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에 설치한 외교 담당 기관이다.
하와이에서 이승만과 함께 동지회(同志會)를 조직한 정운수(鄭雲樹·1903~1986)는 이승만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을 대리해 대미 로비를 벌였다.
구미위원부 위원을 지내고 서울특별시장(1960)을 지낸 장기영(張基永·1903~1981)도 독립을 위해 미국에서 로비 활동을 했다.
일본의 진주만폭격을 사전 예고했던 독립운동가 한길수(韓吉洙·1900~1976)는 광복군 부사령관 신분인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1898~1958)을 대리해 로비를 벌였다. FARA 자료는 김원봉을 ‘Commander Yak San Kim, Chungking, China’라고 표기했다.
미국인 변호사 존 스태거즈(Staggers, John W.)는 임시정부를 대리해 미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했다. 스태거즈는 기록상으로는 최초로 한국을 대리해 공식 로비를 벌인 미국인이다.
코리아 게이트, 미국 법 어긴 不法 로비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 원조를 얻기 위해 존 스태거즈를 통해 대미 로비를 벌였다. 이 대통령은 시인 모윤숙에게 “스태거즈를 통해 한국이 미국에 진해 기지를 내주는 대가로 미국의 대한(對韓) 군사 원조를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받아낸 성과가 대한민국 해군의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이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당시 부산 상륙을 노린 북한군 상륙함을 격침했다. 당시 백두산함에서 전투를 치렀던 이들 중 한 명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부친 고(故)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다. 한국 정부를 위해 1942년부터 로비를 시작한 스태거즈의 활동은 1954년까지 계속된다.
1976년에는 이른바 ‘코리아 게이트(Korea gate)’ 사건이 터진다. 박정희(朴正熙) 정부가 재미(在美) 한국인 사업가인 박동선(朴東宣) 등을 통해 미 의회에 불법(不法) 로비를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로비가 문제가 된 까닭은 미국 법을 어기며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 의회 의원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매년 50만~100만 달러 규모의 정치자금 내지 향응을 제공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지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보완책과 한국군 현대화를 위한 특별지원책이 미 의회로부터 승인돼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로비를 강화했다.
2016년부터 2021년(9월 기준)까지 최근 6년간 대한민국의 대미 로비 지출액을 연도별로 분류하면 ▲2021년(9월 기준) 251만7069달러(정부 로비 169만4931달러, 비정부 로비 82만2138달러) ▲2020년 2881만3016달러(963만9981달러, 1917만3035달러) ▲2019년 3658만4993달러(2702만1557달러, 956만3436달러) ▲2018년 4113만2042달러(1805만9082달러, 2307만2960달러) ▲2017년 3100만9453달러(1443만6637달러, 1657만2816달러) ▲2016년 3377만730달러(693만352달러, 2684만378달러)이다.
2020년 한국의 대미 로비 금액 상위 4곳은 ▲KBS(한국방송공사·950만 달러)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832만 달러) ▲대한민국 정부(377만 달러) ▲대외경제정책연구원(283만 달러)이다.
2019년은 ▲KOTRA(1976만 달러) ▲대한민국 정부(725만 달러) ▲KBS(328만 달러) ▲대외경제정책연구원(126만 달러), 2018년은 ▲KOTRA(1513만 달러) ▲KBS(1327만 달러) ▲대한민국 정부(726만 달러)였다. 2016년, 2017년 역시 비슷한 규모였다.
KBS의 대미 로비 지출이 지나치게 많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KBS가 사업 운영비 등 각종 경비를 모두 ‘로비 자금’ 형식으로 계상해 벌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도별 한·중·일 3국의 대미 로비를 비교하면 2020년은 중국(세계 1위·6721만1203달러), 일본(세계 4위·2962만8155달러), 한국(세계 5위·2881만2916달러), 2019년은 중국(세계 1위·6580만9058달러), 일본(세계 4위·4182만3988달러), 한국(세계 5위·3658만4993달러) 순이었다.
2018년은 한·중·일 3국 중 한국(세계 2위·4113만2042달러)이 가장 많은 로비 금액을 지출했다. 이어 일본(세계 4위·3444만7727달러), 중국(1702만5557달러) 순이었다.
2017년은 일본(세계 1위·4536만708달러), 한국(세계 2위·3100만9453달러), 중국(세계 10위·1807만9534달러), 2016년은 일본(세계 1위·4259만3849달러), 한국(세계 2위·3311만4086달러), 중국(1036만8698달러) 순이었다.
日, 아시아에서 對美 로비에 가장 전문적
일본의 대미 로비는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졌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이후 고도성장기에 벌어질 미일(美日) 간 경제·무역 마찰에 대응하고 중국·러시아 등을 상대하기 위해 로비를 펼쳤다.
일본의 대미 로비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한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일본을 잠재적인 기독교 동맹국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일본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본은 1948년 6월 대일(對日) 미국위원회(American Council on Japan·ACJ)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로비를 벌인다. 《뉴스위크》 국제 담당 편집인 출신의 해리 컨(Kern)은 에버럴 해리먼(Harriman) 상무장관의 도움을 받아 ACJ를 이끌었다. 컨은 1950년대 중반 ‘포린 리포트(Foreign Reports)’라는 컨설팅 회사를 세워 양국을 잇는 로비를 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일본계 미국인들이 로비스트로 등장했다. 워싱턴에는 ‘일본계 미국 시민연맹(Japanese American Citizens League)’과 일본 로비 전담 법률회사가 만들어졌다.
또 일본 통산성 산하 기관인 일본무역진흥회(JETRO)는 일본계 미국인 변호사를 통해 ‘미일 무역위원회(US-Japan Trade Council)’라는 준(準)로비 단체를 만들었다. 일본은 1948년 미국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토머스 듀이(Dewey)를 통해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1960년대 일본의 경제가 급성장하고 1970년부터는 일본과 미국의 통상 마찰도 심화했다. 미국 내에서는 일본 기업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문제 삼았고, 일본 재계도 이에 위기감을 가졌다.
1970년대 후반 100억 달러 수준인 일본의 대미 무역 흑자는 1980년대 초반 300억 달러, 1980년대 중반에는 500억 달러를 넘겼다. 이에 미 의회에선 ‘일본 경계론’이 일었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일본의 미국 진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에 일본 정부와 재계도 로비를 강화하기 시작해 1982년 한 해 1700만 달러 수준이었던 로비 금액을 1984년에는 6000만 달러로 늘렸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대미 직접 투자는 증가했다. 1986년에는 도시바 코콤(COCOM) 위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대미 로비를 더욱 활발하게 벌였다. 1986년 당시 일본 정부나 기업이 의뢰한 로비 회사는 모두 120개로 프랑스(37개), 서독(35개), 한국(35개)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 중 일본 정부 기관은 5개사, 115개사는 민간 기업이나 단체가 로비 계약의 주체였다.
코콤 사건이란, 코콤(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소속 일부 회원국이 소련에 공작 기계를 불법으로 수출해 벌어진 일이다. 코콤 통제를 어기고 노르웨이산 수치 제어 장치와 일본 도시바의 컴퓨터 제어식 금속 가공 기계 8대가 소련에 수출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소음이 컸던 소련 잠수함은 도시바의 장비를 반입해 소음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를 빌미로 도시바는 대미 수출이 금지됐고 일본의 전자제품과 반도체 몰락의 발단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부시 대통령의 연임과 미국 내 네오콘의 부상과 맞물려 ‘보통 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정치인을 중심으로 대미 로비를 집중적으로 벌였다. 이러한 일본 정치인들의 대미 로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골든 위크(Golden Week)’이다. 4월 말부터 시작되는 10일간의 연휴를 이용해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은 워싱턴을 방문한다.
일본 로비의 특징은 미 의회 내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대립 구도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일본과 이익을 같이하는 외국의 이익단체를 활용하기도 한다.
일본은 워싱턴뿐만 아니라 미국 주 정부를 공략해 해당 주, 카운티 등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를 위해 일본 기업의 미국 현지 진출을 돕는 방식으로 주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펼친다. 이미 1989년에만 미국 주 정부 50곳 중 39곳이 일본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해 일본 자금을 유치해왔다.
中, 우한에서 코로나19 터지자 로비 지출 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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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헨리 키신저, 사이러스 밴스, 로렌스 이글버거. |
지난 5월 미국의소리(VOA)는 중국 언론 매체의 대미 로비 금액 급증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으로 악화한 대중 인식에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민간 부문에서는 화웨이가 지출 1위를 했다. 여기에는 중국 IT 기업의 상징인 화웨이를 두고 미중 간 벌인 갈등이 영향을 끼쳤다.
중국은 1990년대 들어 미국 내 로비를 활성화했다. 《미국을 로비하라》(2007)에 따르면, 당시 중국 정부의 최고 관심사는 미국 시장에서 자국 수출품에 대한 최혜국 대우(Most Favored Nation status treatment·MFN)를 연장하는지 여부였다. 최혜국 대우란, 국제 무역에 관한 협정에서 특정 국가만 차별 대우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1989년 중국 정부는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의 대외 이미지가 악화하고 반중(反中) 감정과 중국 내 인권 개선에 대한 요구가 늘자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로비를 늘렸다.
중국의 대미 로비의 주체는 미중(美中) 수교를 전후해 중국에 이미 진출했거나 진출 의사를 가진 미국 대기업이었다. 로비 활동 자금과 로비 계획도 모두 이들이 마련했다.
1990년대 초 중국의 대미 로비스트를 맡은 인물은 닉슨 정부에서 국무장관(1973~1977)을 지낸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지미 카터 정부에서 국무장관(1977~1980)을 지낸 사이러스 밴스(Cyrus Roberts Vance),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1992~1993)을 지낸 로렌스 이글버거(Lawrence Eagleburger) 등과 같은 전직 국무장관들이었다.
여기에 제임스 릴리(James Roderick Lilley) 전 주중대사와 국방부 인맥 등도 중국을 위한 로비에 나섰다. 이들은 중국과의 오랜 접촉 경험과 미국과 중국 내의 인맥을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MFN 취소는 수만 명의 미국인 실직자를 낳으며 중국과의 교역 확대는 중국 내 정치·사회 발전을 유도한다’고 했다.
미국인이 주축이 돼 중국의 대미 로비를 벌이는 단체는 미중무역전국위원회(US-China Business Council·UCBC), 미중관계전국위원회(National Committee on United States-China Relations·NCUSCR) 등이 있다.
UCBC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 지 1년 뒤인 1973년 설립됐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200개 사(社)를 회원으로 둔 비영리 단체이다. UCBC의 부의장은 제너럴 모터스(GM) 회장인 메리 바라(Mary T. Barra)다. 이사에는 보잉(Boeing), 퀄컴(Qualcomm), 포드자동차(Ford), 화이자(Pfizer), 비자(Visa), 코카콜라(Coca-Cola) 등의 회장 또는 최고경영자가 이름을 올렸다.
UCBC는 중국이 가장 신뢰하는 친중(親中) 비즈니스 단체이다. 중국의 유력 인사들과 연결되는 ‘핫 파이프(hot pipe)’라는 평가가 있다. UCBC는 1990년대 후반 클린턴 행정부 시절 중국의 MFN 연장과 WTO 가입을 위해 앞장섰다. 당시 세계 500대 기업 중 상위 100대 기업이 주축이 돼 미국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덕분에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의회에 직접 로비를 할 필요성도 없었다. UCBC의 뒤를 이어 NCUSCR도 중국의 대미 로비 과정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국 정부는 미국 로펌 등과 로비 계약을 맺고 정부 차원의 직접 대미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중국이 고용한 미국 로비 회사의 로비 대상은 주로 미 상원 외교위원회와 군사위원회였다.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중국 지방 성(省)들도 자체적으로 대미 로비를 벌였다.
‘전략적 특별협력관계 강화 사업’
국회입법조사처 김도희 입법조사관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관계 전반을 담당하는 부서는 외교부 북미국이다. 북미국은 미국 의회에 대한 업무를 맡으며 대미 로비는 ‘북미 지역 국가와의 전략적 특별협력관계 강화 사업’이라는 목적으로 주로 의회 외교 강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 내 로비 업체와 계약한 업무의 성격은 주로 ▲홍보 자문(Public Relation) ▲로비(Lobbying) ▲방송 배급(Distribution of Film) ▲무역 진흥(Promotion of Trade) ▲투자 진흥(Promotion of Investment) ▲관광 진흥(Promotion of Tourism) ▲미국 정책 자문(U.S. Policy Consulting) 등이 있다.
지난 10월 1일 외교부가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가 2017년부터 2021년 9월 현재까지 계약을 맺은 의회 자문회사의 주요 업무로는 ▲2020년 미 대선 동향 관련 자문 ▲미 의회 관계자 일정 주선 및 네트워크 확대·강화 지원 ▲한미 의회 간 교류 지원 및 미 의회 보좌관 방한(訪韓) 사업 주선 등이 있다.
외교부는 또 ‘전문직 비자 쿼터(Partner with Korea Act)’ 관련 자문회사와도 계약해 입법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 법안은 한국 출신 전문직 종사자에게 매년 1만5000개의 취업비자 쿼터를 할당하자는 내용이 골자이다. 여기에 2017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총 36억6200만원을 지출했다. 미국은 전문직에 대해 연간 비자 발급 쿼터를 설정해두고, 쿼터 도달 시 당해 회계연도에 외국인 전문직의 비자 발급을 제한한다.
외교부는 연도별 미 상·하원 의원 중 한국에 우호적인 이른바 ‘지지 의원’ 확보 현황도 공개했다. ▲114대(2015~2016) 상원 6명·하원 81명 ▲115대(2017~2018) 상원 3명·하원 81명 ▲116대(2019~2020) 상원 3명·하원 54명 ▲117대(2021~2022) 상원 2명·하원 34명, 2021년 9월 기준이다.
북한의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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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사진=뉴시스 |
북한 외교관이 핀란드에서 국회의원들에게 고급 시계를 전달했는데, 한 핀란드 의원이 이를 폭로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현지에서 로비 활동을 벌이던 북한 외교관이 제재를 받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한 뒤로는 북한의 재정이 악화해 금전을 통한 로비는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태영호 의원은 “로비를 목적으로 선물을 주더라도 값비싼 선물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해외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면 고급 호텔에 묵게 하거나 주요 관광지에 들러 도자기와 같은 북한 특산물을 전하는 수준이 전부”라고 했다.
북한은 주로 외무성이나 대외문화연락위원회가 로비를 펼친다. 대외문화연락위원회는 주로 비정부NGO를 상대한다. 당과 관련된 로비는 당 국제부에서 맡고 해외 인사에 대한 로비는 통일전선부가 담당한다고 했다.
태 의원은 “북한은 중국, 러시아, 유럽 주요 국가 등 큰 나라를 중심으로 로비를 펼친다”면서 “해당 국가에서 영향력이 있는 정치인이나 법조인을 대상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태 의원은 “북한 외교관은 미국에서 CIA의 감시와 미행을 항상 받고 있기에 미국을 직접 상대로 하는 로비는 공개적으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를 대신해 북한과 미국을 오가며 북한의 주장을 선전하는 친북 성향을 가진 교포나 교포 단체를 통한 로비가 이뤄진다고 했다. 북한 외교관들이 한국 정부 관계자나 외교관 등을 상대로 하는 로비는 거의 없다고 했다.
미인계를 이용한 공작이나 로비에 대해서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주영공사를 지낼 때 어떻게 로비를 했는지’ 물으니 태영호 의원은 “자금이 부족했기에 로비가 빈번치 못했다”면서도 “명절이나 크리스마스에는 포도주에 북한 달력, 북한 인삼주 등을 선물했고, 상대의 급(級)이 높을 경우 북한의 질 좋은 자개용품을 선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