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집 / 戰後 70年

2023년 7월 27일, 세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입을 지켜본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역사적 연설의 기회! “세계시민 정신”으로 자유세계를 구한 한국전의 의미, 戰後 70년의 위대한 성취, 그리고 자유통일에 대한 전망을 담은 결정적 연설을 ‘한국전의 워털루’ 다부동 전적지의 이승만-트루먼 동상 앞에서 하면 어떨까?
- 李承晩의 天下名文: “미국인으로 살다가 죽었지만 세계시민으로서 목숨을 바쳤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방미 중이던 1954년 8월, 당시 은퇴 후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의 자택에서 살고 있던 트루먼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2023년 7월 27일, 한국전(韓國戰) 휴전(休戰) 70주년 기념일, 세계는 대한민국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의 입을 지켜볼 것이다. 20세기 세계사의 3대 전쟁으로 평가되는 한국전이 한반도에선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핵전쟁의 공포를 안고도 소란스럽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과 지옥 같은 북한의 공존. 이런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맞는 휴전 70주년에 당사자인 대한민국 대통령은 세계를 향하여, 이 전쟁과 휴전 후 70년의 경과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3년간의 국제전에서 300만 명이 죽은 남북한의 한국인, 약 6만 명이 죽은 미국 등 유엔 참전국은 “이 전쟁은 도대체 무엇이었나”에 대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의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
 
  이날 침략자 북한 정권은 이른바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 약칭 전승절 행사를 하겠지만 이는 ‘자기들이 이겼다고 정신승리하고 역사왜곡하는 것’(나무위키)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도 휴전 70주년 행사를 크게 할 것인데 냉전(冷戰) 종식 이후엔 일관되게 ‘자유세계가 이긴 전쟁’으로 기린다. 10년 전 7월 27일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물 앞에서 열린 휴전 60주년 행사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한국전은 이긴 전쟁”(오바마)
 
  “한국전은 무승부가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은 이긴 전쟁입니다. 가난과 압제 속의 북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5000만 명의 한국인들은 활력(活力) 있는 민주제도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대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한국전은 이긴 것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遺産)입니다. 다가올 여러 세대 동안 역사는 자유 진영이 어떻게 뭉쳤으며 어떻게 냉전에서 이겼는가를 회고하면서 한국전이 그 첫 전투였고, 여기서 우리는 자유를 지켜냈고, 자유민들이 굴복하지 않았음을 기록하게 될 것이니 한국전은 승리였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2000년 6월 25일 한국전 발발 50주년 기념식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냉전 승리, 즉 소련 및 동구 공산 정권 붕괴는 자유 진영이 남침에 맞서 싸운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포성(砲聲)이 멈추었을 때 상당수 사람은 한국에 간 우리 군대가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인가라고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38도선에서 시작되어 38도선에서 끝났으니까요. 나는 오늘 감히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역사라는 긴 렌즈를 통하여 뒤돌아보면, 미국이 한국에서 버티어낸 덕분에 냉전에서 우리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50년 전 한국의 능선을 지켜낸 용감한 병사들 덕분에 10년 전 멋지고 행복한 젊은이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가 (공산권의 붕괴를) 자축(自祝)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역사를 과대 해석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2017년 가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에 대한 감사는커녕 비열한 언사(言辭)로 침략자 편을 들었다. 은인(恩人)의 얼굴에 침을 뱉은 배은망덕(背恩忘德)의 극치였지만 친북(親北) 분위기를 탔는지 비판받지 않고 넘어갔다. 그는 유엔이 공인한 침략전쟁을 “내전(內戰)이면서 국제전”이라고 왜곡하고 “그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다”면서도 전쟁범죄자를 특정하지 않고 “세계적 냉전 구조의 산물이었던 전쟁”이라고 엉뚱한 데 책임을 넘기며 김일성을 비호했었다.
 
 
  세계시민 정신
 
  윤석열 대통령은, 70년 만에 찾아온, 그리고 다시없을 이 역사적 연설의 기회를 어떻게 살려 세계를 감동시킬 것인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 등 유엔 회원국들과 손잡고,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세 악당(惡黨)의 침략에 맞서 싸운 한국전은 1953년 7월 27일 포성이 멈추었을 때는 무승부로 보였지만 그날부터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기고 있다.
 
  세계의 자유민들이 유엔군의 기치하에, 한미(韓美) 양국의 최고사령관 이승만(李承晩), 트루먼 대통령의 영도하에 세계시민으로서 싸운 덕분에 자유세계가 냉전에서 최종 승리했다. 우리의 정의로운 항전(抗戰)으로 대만이 살았고, 일본이 경제 부흥했으며, 서독은 재무장하고, NATO는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다. 미국은 군사비를 4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 군비경쟁을 시작했고, 한국은 폐허 위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남침 40년 뒤 소련(동구) 공산제국은 군비경쟁으로 경제적 기반이 주저앉고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니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핵무기를 껴안은 채 무너졌다. 이런 변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우리가 주최한 88서울올림픽이었다. ‘벽을 넘어서’란 올림픽 구호는 예언이 되었고, 그 정신을 담은 불멸의 주제가 ‘손에 손잡고’는 그 이듬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에서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세계를 지킨 위대한 항전의 정신을 어떤 용어로 연설에 담을 것인가? 그 답은 그가 취임사에서 소개한 ‘세계시민’ 정신이 아닐까?
 
 
  이승만과 트루먼
 
다부동 전적지에 세워질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조감도). 민간 모금으로 만들어졌다.
  계급투쟁론으로 ‘사람’을 해석, ‘사람이 먼저다’고 해놓고 ‘우리 편 사람만 먼저’인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였던 문재인 정부하에서 ‘국민’은 형해화(形骸化)되었는데 윤 대통령은 그 ‘국민’을 ‘세계시민’으로 승격, 복권시킨 것이다. 그런데 ‘세계시민’이란 말을 정치적으로 처음 쓴 대통령은 이승만이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한”(워싱턴 한국전 기념물) 미국의 젊은이들, 아무런 영토적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을 사지(死地)로 보낸 트루먼 대통령, 그 결단을 지지한 당시 미국인들과 유엔 참전국들, 괴물 같은 공산당과 생존투쟁하면서도 괴물을 닮지 않고 인권과 법치를 발전시킨 한국인들은 ‘전후(戰後) 70년’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The greatest story ever told)’ 속 주인공들인데, 이런 성취가 ‘가장 위대한 정신’ 없이는 이뤄질 리 없을 것이고, 그 정신은 국적과 국익(國益)을 뛰어넘는 ‘세계시민 정신’이란 말로써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7월 27일 경북 칠곡 다부동(多富洞) 전적지에선 민간인들이 만든 이승만·트루먼 동상 제막식이 있을 예정인데 동상 설명문에도 ‘세계시민 정신’이 명기(銘記)되어 있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自由 세계를 지켜냈다(We Defended the Free World Right Here).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 싸워서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과 미국인으로 살았지만 세계시민으로서 각자의 생명을 바쳤다. 우리는, 여기서 다 함께 흘린 피로 세계의 자유를 지켜낸 李承晩·트루먼 대통령에게 敬意를 표한다. 은혜를 잊지 못하는 우리는 이제 ‘自由의 파도’가 되어 기필코 북한 동포를 해방, 統一조국을 이룩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휴전 및 韓美동맹 70주년이 되는 2023년을 맞아 두 최고사령관의 동상을 여기 세워 자유세계 수호의 표상으로 삼고자 한다.〉
 
 
  이승만·트루먼 동상 앞에서 연설을 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7·27 연설이 ‘세계시민 정신’을 중심으로 구성되면 보편적 설득력으로 세계가 기억할 명문(名文)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연설을 만들어내는 데는 필수적인 타이밍과 함께 연설의 무대도 중요하다.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수만 명의 남북군(南北軍)이 죽은 결전장을 국립묘지로 봉헌하는 행사에서 있었기에 관심을 모았고 유명해졌다. 한국의 현직 최고사령관이, 전후 70년의 세계사적 의미를 선포하는 연설을, 한국전의 결전장 다부동에 그날 제막(除幕)되는 한미 두 나라 최고사령관 동상 앞에서 한다면 멋진 그림이 되지 않을까? 윤석열·트루먼·이승만을 이어주는 ‘세계시민 정신’은 그 사진 하나로 압축 표현될 것이다. 다부동은 ‘부자동네’란 뜻인데 1950년 8월 한미군이 최초의 연합작전으로 여기서 북한군 주력을 물리쳐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고, 인천상륙작전과 북진을 가능하게 했다. 한국전이 20세기 세계 3대 전쟁으로 평가받고 있으니 다부동은 앞으로 홍보를 잘하면 나폴레옹 전쟁의 워털루와 같은 명소가 될 것이다. 두 나라 군인들이 여기서 함께 흘린 피 덕분에 대한민국 전체가 다부동, 즉 부자나라가 되었다.
 
  이런 연설은, 아직도 ‘동족상잔(同族相殘)’ 운운하는 한국인들에게 “우리의 용감한 항전이 세계를 구했다”는 자부심을 주어 한국 현대사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교재가 될 것이다. 대통령은 역사교육의 가장 큰 교사가 아니겠는가?
 
 
  절망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연설
 
윈스턴 처칠. 사진=퍼블릭 도메인
  위대한 정치인의 위대한 연설이나 문장은 절망적 상황에서 나온 경우가 더러 있다. 이승만, 처칠, 드골, 링컨이 그런 경우이다.
 
  *1940년 5월 나치 독일의 전격전에 걸려 프랑스가 기울고 케르크에서 포위된 수십 만의 영국군이 철수하고 있던 6월 4일 윈스턴 처칠 수상은 하원연설에서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의지를 가슴 뛰는 명문으로 밝힌다.
 
  “우리는 끝까지 갈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강력해지는 힘과 자신감으로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섬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 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에서,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순간도 믿고 싶지 않지만 만약 이 섬의 많은 지역이 점령당하고 굶주리게 된다고 해도 바다 너머에 있는 우리의 제국은 영국 함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무장하여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신(新)세계가 가진 모든 힘으로써 구(舊)세계를 해방시키고 구출에 나설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1940년 5월 28일 전체 각료회의 연설에서 처칠은 무솔리니의 중재 제안을 거부하자면서 이렇게 호소한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타협이나 항복을 원한다면 여러분 모두가 궐기하여 나를 이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섬나라의 오랜 역사가 종말을 맞는다면 모두가 흘린 피에 젖어서 우리가 땅에 누워 있을 때 그렇게 되도록 합시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을 제안한 6월 16일 연설에선 “대영제국(大英帝國)이 천년을 더 이어간다면 사람들은 ‘그때가 그들에게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버티어냅시다”고 했다.
 
  1940년 6월,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프랑스 육군은 전투기와 전차를 결합시킨 독일군의 전격전에 직면, 6주 만에 붕괴되니 정부는 1차 세계대전의 영웅 패탕 원수를 지도자로 불러내 항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갑사단장 출신의 국방차관 드골 장군은 영국으로 탈출, 망명정부를 준비한다. 처칠은 그가 영국방송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6월 18일 드골의 BBC 방송 연설은 절망적 상황에서 투지와 희망의 불꽃을 살려냈다. 이 연설은, 15세기 백년전쟁 때 잉글랜드군 앞에서 망국(亡國) 직전까지 갔던 프랑스를 살려낸 잔다르크처럼 프랑스를 다시 일으켜 세워 노르망디 상륙작전 뒤엔 전승국(戰勝國)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오늘 우리는 기계화 부대의 거대한 중량(重量)에 붕괴되었지만, 더 강력한 기계화 부대가 우리를 승리로 인도할 미래를 내다봅니다. 세계의 운명이 여기에 달렸습니다. 나 드골 장군은 런던에서, 영국 영토에 있거나 있게 될 모든 프랑스 장교와 남자들, 무기를 가졌거나 갖지 않았거나를 불문하고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나와 연락합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프랑스 저항운동의 불꽃은 죽지 않아야 하며 죽지 않을 것입니다.”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
 
  1950년 6월 25일 남침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존 J. 무초 주한(駐韓) 미국 대사를 불러 무기를 달라면서 이렇게 말했다(무초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고한 電文).
 
  “우리는 남자·여자·아이들까지 다 나와서 필요하다면 몽둥이와 돌멩이를 들고서라도 싸울 것입니다.”
 
  그때 기습 남침 당한 한국군은 한미동맹도, 주한미군도 없는 상태에서 1대 3으로 싸우고 있었다. 김일성의 북한군은 세계 최강의 육군국 소련과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중공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미국 시각으로 같은 날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딘 애치슨 국무장관의 전황(戰況) 보고를 받자 이렇게 말했다.
 
  “Dean, we've got to stop thos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딘,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개자식들을 막아야 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자유세계를 살리고 그 40년 뒤 소련과 동구(東歐)공산권이 무너지도록 만든, 역사를 움직인 위대한 분노였다.
 
  지금부터 소개하려고 하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이승만 대통령의 1950년 7월 19일 자 영문 친서(親書)는, 한국 역사상 가장 고매한 정신을 담은 가장 힘 있는 문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가 수년 전 찾아내 번역 소개한 문장을 이번에 다시 다듬으면서 새삼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능가하는 문학적·역사적·사상적 깊이가 있는, 그러면서도 예언적인 글이라고 믿게 되었다. 고급 영문(英文)으로 쓰여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기도 좋게 되어 있다. 이 편지는 일본에서 파견된 미8군 산하 24사단이 대전에서 북한군 주력(主力)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고 있던 가장 어두운 순간의 임시수도 대구에서 75세의 이승만 대통령이 (아마도) 직접 타자기를 두드려 작성하였을 것이다. 먼저 번역문과 원문(原文)을 동시에 싣고 해설을 붙인다(미국인들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을 공부하듯이 한국인들이 두고두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으므로).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이승만 대통령 친서
  (대구, 1950년 7월 19일)

 
  친애하는 대통령께: 절망적인 위기를 맞은 나날들 속에서 한국에 신속하고 지속적인 원조를 제공해주신 귀하께, 본인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와 모든 국민은 깊은 감사의 뜻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대의(大義), 즉 자유의 대의를 위하여 많은 자유 우방국이 국제연합을 통하여 보내준 도움에 깊이 감사드리면서, 귀하의 용감한 영도력이 이 혼돈의 위기 속에서 발휘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지원이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한국 전선에서 미군의 전사상자(戰死傷者)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고국(故國)을 떠나 머나먼 이곳에서 자유를 위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들의 생명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우리 군대는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싸우고 있으니 우리 군의 사상자 보고를 받는 것이 아무리 참혹하다고 해도 그나마 낫습니다. 이곳 한국 땅에서 죽고 다친 미국 병사들의 모든 부모, 처자(妻子), 형제, 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약자(弱者)를 지켜주려고 이 땅에 와서 잔인한 침략자를 상대로 해방과 자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싸우면서 생명의 피를 바친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님, 위대한 귀국(貴國)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 심지어는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애국심을 뛰어넘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아시다시피 한국인들은 그 누구도 참여하지 않은, ‘38도선에 관한 1945년의 군사 결정’의 결과로 자신들의 의사에 반(反)하여 분단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분단은 북한에서 소련의 지령과 통제 아래 한국인의 전통이나 정서와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공산 정권의 등장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북한 지역에서 군사, 경찰, 재정의 권력을 절대적으로 장악한 공산분자들은 소련의 지령하에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대다수 국제연합 회원국에 대하여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을 키울 수가 있었습니다. 소련의 후원을 받은 북한 정권이 6월 25일 새벽, 한국군을 일제히 공격하였을 때 그들은 38선을, 자유대한과 노예북한 사이의 정치적·군사적 분계선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근거도 모두 없애버렸습니다.
 
  원상회복(status quo ante)을 시도함으로써 적(敵)이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멋대로 다시 공격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입니다.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가슴속에 심어서 키워온 제국주의적 침략의 모든 악성(惡性) 암세포를 이번 기회에 영구적으로 확실히 도려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외부 세력이 훈련시키고 조종하는 소수의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은 그들의 조국에 충성합니다. 이 전쟁은 남(南)과 북(北)의 대결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반을 어쩌다 점거하게 된 소수의 공산주의자와 압도적 다수의 한국인(그들이 어디에 살든) 사이의 대결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제 한반도를 통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강력한 우방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께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셨을 것으로 본인은 확신하는 바이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을 귀하께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한국에 관하여 장차 다른 나라나 국가 그룹에서 결정하는 그 어떠한 협정이나 양해사항도 이를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본인은, 각하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성명서를 통하여 이것이 또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믿습니다.
 
  본인은 매일 기도합니다. 본인은, 우리의 무기가 함께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날씨가 맑아져 미 공군 전투기가 적(敵)을 발견하고 파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충분한 병력과 물자가 최대한 빨리 도착하여 공세로 전환, 강고한 적군(敵軍) 진지를 돌파, 승리의 북진(北進)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합니다. 본인은 옳음(right)과 힘(might)이 우리 편이므로 우리의 대의(大義)가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리라는 데 대하여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계속될 친애(親愛)의 마음을 담아서. 이승만(李承晩).
 

  영어 원문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Rhee) to President Truman. Taegu, July 19, 1950.
 
  Dear Mr. President: I can not find words to express, for myself and for all the people and Government of Korea, our profound gratitude for your prompt and continued actions in bringing aid to Korea in these desperate days. While we deeply appreciate the support of so many free nations, through the United Nations, to the cause of Korea, which also is the cause of freedom, we know full well that without your courageous leadership in a time of bewildering crisis there would have been no support and no aid.
 
  I am deeply moved as I learn of increasing American battle casualties here. It is a tragic thing that so many men should have had to give their lives for liberty in this land so far from their own. It is easier for me to accept word of our own battle casualties than of yours, cruel as ours have been, since our forces are fighting in and for their native land. I wish I could convey to every mother and father and wife and child, and sister and brother of an American soldier killed or wounded here in Korea even some slight comfort through the knowledge that no Korean can ever forget the courage and sacrifice of these men who in the great tradition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ave come to the defense of the weak against the cruel aggressor, and have fought and given their life’s blood that liberty and freedom should not perish from the earth.
 
  These soldiers of your great country, Mr. President, have lived and died as Americans, but they have given their lives even beyond love of country as citizens of the world, knowing that to permit the further destruction of the independence of free nations by the Comminazis is to clear the way to assault upon every nation, even the United States itself.
 
  As you know, the Korean people were divided against their will: as a result of military decisions in 1945 regarding the 38th Parallel, to which no Korean was a party. This division permitted the development in the north, under Soviet direction and leadership, of a communist regime wholly alien to Korean traditions and feelings. With absolute control of the military, police and fiscal powers in that region of Korea, the communists, with Soviet direction, were able to create the formidable force which has caused such cruel damage not only to Korea but also to the United States and most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When the Soviet sponsored regime in North Korea simultaneously attacked the defense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 in the early morning of June 25, they ended any possible claim to the maintenance of the 38th Parallel as a political or military dividing line between free and slave Korea.
 
  It would be utter folly to attempt to restore the status quo ante, and then to await the enemy’s pleasure for further attack when he had had time to regroup, retrain and reequip. The time has come to cut out once and for all the cancer of imperialist aggression, the malignant growth artificially grown within the bosom of our country by the world communists.
 
  The people of North Korea are the same as the people of South Korea. All are loyal to the land of their birth with the very few minor exceptions of foreign trained and foreign directed communists. This war is not a conflict between North and South it is a conflict between the few who are communists, who by an accident got control of half of our country, and the overwhelming mass of the citizens of Korea, wherever they may live.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consider this is the time to unify Korea, and for anything less than unification to come out of these great sacrifices of Koreans and their powerful allies would be unthinkable. I am sure, Mr. President, that you have come to the same conclusion yourself, but I wish to make clear to you the position of this Government. The Korean Government would consider as without binding effect any future agreement or understanding made regarding Korea by other states or groups of states without the consent and approval of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From statements which you have made recently I believe that this also is the position of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Daily I pray for the joint success of our arms, for clear skies so that the planes of the United States Airforce may search out and destroy the enemy, and for the earliest possible arrival of sufficient men and material so that we can turn to the offensive, break through the hard crust of enemy forces and start the victorious march north. I have no slightest doubt in the ultimate victory of our cause I know that both right and might are on our side.
 
  With ever continued warm personal regards, Sincerely yours, Syngman Rhee
 
  세계시민 정신으로 마적단 습격 사건 진압!
 
  이 편지는 최고 수준의, 동서양의 교양을 두루 체득한 이승만이란 거대한 인격체의 집약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75세의 노인이 국가 존망의 순간들 속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격조가 높으며, 넓고 깊고 단호한 생각을, 혼신(渾身)의 힘을 다해, 또한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사실이다. ‘세계정세를 가장 높은 수준에서 내려다본 사람’이란 무초 대사의 평대로 이승만은, 이 전쟁의 대의를, ‘세계시민(citizens of the world)’이란 키워드에 담아 문학적으로 풀어간다.
 
  “대통령님, 위대한 귀국(貴國)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 심지어는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애국심을 뛰어넘어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는 이 편지의 핵심적 메시지이다.
 
  “These soldiers of your great country, Mr. President, have lived and died as Americans, but they have given their lives even beyond love of country as citizens of the world”는 게티즈버그 연설의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이 나라는 하느님 아래서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인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절대로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처럼 사람들 입에서 회자(膾炙)될 만하다.
 
  ‘세계시민’이란 말의 족보를 찾아 올라가면 그리스의 디오게네스, 소크라테스, 네덜란드의 그로티우스, 아인슈타인과 만나게 되는데 구호성이 아니라 이승만처럼 현실 속에서, 그것도 세계적 전쟁의 현장에서 이렇게 적절하게 정치적으로 표현한 사람을 나는 알지 못한다. ‘세계시민 정신’이란 공허할 수 있는 용어에 피가 통하게 하고 영혼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승만, 트루먼, 유엔은 ‘세계시민 정신’을 피비린내 나는 전장(戰場)에서 구현하여 자유세계를 구하고 ‘악의 제국’을 무너뜨리는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세계시민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배경에 이런 정신이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트루먼 대통령은, 남침 소식을 접하자 김일성 집단을 ‘개자식(sons of bitches)’이라 욕하고는 유엔군의 기치하에 참전을 결단한다. 세계시민 정신으로 처음 조직된 국제기구인 유엔이 그런 정신으로 군대를 보내게 되었다는 점을, 트루먼은 남침 나흘 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은 유엔의 도움으로 세워졌습니다. 유엔 회원국들이 공인(公認)한 정부인데 마적단(bunch of bandits)으로부터 불법적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유엔 회원국들은 한국에 대한 마적단 습격 사건(bandit raid)을 진압하기 위하여 한국을 구원하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전에 대한 가장 완벽한 국제법적 정의(正義)이다. 트루먼은 김일성 세력을 ‘개자식’, 북한군을 ‘마적단’으로 경멸할 뿐 아니라 ‘불법행위’임을 분명히 했다. 2017년 문재인이 유엔총회에서 한국전을 설명하면서 남침을 ‘내전이자 국제전’이라고 왜곡한 데 생각이 미치면 치가 떨리지 않는가?
 
 
  Comminazis
 
  이승만은 이 편지에서 자유를 중심가치로 하는 ‘세계정신’을 기둥으로 하여 여기에 애국심과 반공정신을 연결시킨다. “(미국 병사들은)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후략)”에 나오는 생소한 용어 ‘Comminazis’는 이승만의 수준 높은 지적사고(知的思考)를 보여준다. 이 무렵 공산주의와 나치즘을 똑같은 전제주의적 악(惡)으로 본 학자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 문학가로는 조지 오웰, 외교관은 조지 케넌, 정치인은 처칠, 드골, 트루먼, 아데나워 정도였고, 이런 생각을 ‘Comminazis’란 경멸적 단어로 공문서에 넣은 지도자는 이승만이 처음일 것이다. 그의 반공신념은 20세기의 위대한 사상적 각성을 반영하는 것인데 이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신선하다.
 
  이승만은 1920년대 이미 한국인으로선 처음으로 공산주의를 체계적으로 비판한 인물이었다. 그는 1945년 12월 19일 저녁 7시30분 서울중앙방송국(KBS) 연설을 통하여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였다. 하지 사령관의 미군정(美軍政) 당국은 공산당을 건국 과정에 참여시키려 하였고, 트루먼 행정부도 아직은 대소(對蘇) 봉쇄 정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이승만은 이 역사적 연설을 통하여 공산당 극렬분자들을 반역자, 매국노, 사대주의자, 거짓 선동가, 분열주의자, 소련 간첩단, 사리사욕(私利私慾)주의자, 문명파괴자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이 연설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 지도자가 선언한, 공산당에 대한 최초의 정면 대결일 것이다.
 
  “양의 무리에 이리가 섞여서 공산명목을 빙자하고 국권(國權)을 없이 하야 나라와 동족을 팔아 사리(私利)와 영광을 위하여 부언낭설로 인민을 속이며, 도당(徒黨)을 지어 동족을 위협하며 군기(軍器)를 사용하야 재산을 약탈하며, 요즈음은 민중이 차차 깨어나서 공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매 간계(奸計)를 써서 각처에 선전하기를 저희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민주주의자라 하야 민심을 현혹시키나니, 이 극렬분자들의 목적은 우리 독립국을 없이 해서 남의 노예로 만들고 저희 사욕(私慾)을 채우려는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본성이 민족반역자임을 강조한다.
 
  “이 분자들이 러시아를 저희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희 조국에 들어가서 저희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다.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형용(形容)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 가 저희 조국에 갖다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는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다.”
 
  이승만은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는 원리와 방법도 제시하였다.
 
  “먼저 그 사람들을 회유해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오…”
 
  그는 회개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은 “친부형(親父兄) 친자질(親子姪)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 대의를 위해서는 애증(愛憎)과 친소(親疎)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다”면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 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 된다”고 좌우합작 노선을 거부했었다.
 
 
  김일성 세력과 전체 한민족의 대결
 
유엔은 북한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유엔군 결성을 결의했다. 1950년 7월 14일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유엔 깃발을 전달받고 있는 맥아더 원수(오른쪽).
  이승만은, 트루먼에게 보낸 친서에서 공산주의를, “한국인의 전통이나 정서와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존재로서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가슴속에 심어서 키워온 제국주의적 침략의 악성(惡性) 암세포”라고 단정한 뒤 획기적인 대전략을 제시한다. “소수의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은 그들의 조국에 충성”하므로 “이 전쟁은 남과 북의 대결”이 아니며, “우리나라의 반을 어쩌다 점거하게 된 소수의 공산주의자와 압도적 다수의 한국인(그들이 어디에 살든) 사이의 대결”이란 것이다. 이 전략을 오늘에 적용한다면 김정은과 종북 세력은 민족반역 집단이므로 한민족(韓民族) 가운데서 고립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즉 ‘김정은 대(對) 한민족’의 대결구도, 즉 ‘1 vs 8000만’으로 만들면 백전백승! 이는 가짜 민족주의 노선으로 한국인들을 속이는 김일성 세력으로부터 ‘민족’이란 무기를 빼앗아 그들을 찌르는 차도살(借刀殺)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를 오히려 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미국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그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38도선이 무의미해졌으므로 실지 회복이 아니라 북진 통일을 전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자료를 찾았다.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난중일기(亂中日記)》다.
 
  〈7월 18일: 대통령과 무초 미국 대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언쟁을 벌였다. 대통령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 내용 가운데 “우리 한국 국민은 공산군을 우리의 본래의 국경선인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으로 몰아낼 때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고 있다”고 되어 있는 대목을 대사가 빼자고 하여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편지 초안을 보여주고 의견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대사는 당시 유엔군과 미국의 전쟁 목표가 38도선 이북으로 북한군을 몰아내는 데 있는데 이승만이 확대된 목표를 제안하자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원문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직설적 표현을 누그러뜨렸지만 ‘북진 통일’을 밀어붙였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전쟁 목표를 북진 통일로 수정했다가 중공군 개입 이후 사실상 ‘원상회복’으로 돌아갔고, 이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반발을 불러 반공포로 석방, 미국의 이승만 제거 계획 등을 거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정리된다.
 
 
  세계정신과 자주정신
 
  이승만 대통령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구절절 감사의 뜻을 전하지만 주권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선 양보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한국에 관하여 장차 다른 나라나 국가 그룹에서 결정하는 그 어떠한 협정이나 양해사항도 이를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고 최후통첩 하듯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휴전 협상을 두고 미국과 충돌하게 되는데 그의 무례하게 보일 정도의 고집이 결국 한미동맹을 만들어냈으니 이승만 제거 계획까지 검토했던 미국으로서도 다행이었다.
 
  자신을 도와준 강대국과 맞서 주권과 자존심을 지킨 사례로는, 신라의 삼국통일 때 당(唐)에 대한 경우가 있다.
 
  서기 660년 신라 태종무열왕 시절, 황산벌 싸움에서 백제 결사대를 무찌른 김유신(金庾信)의 신라군은 먼저 온 당군(唐軍)과 합류하기 위하여 당의 진영에 이르렀다.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은 신라군이 늦게 왔다고 신라 장수 김문영을 목 베려 했다. 김유신이 격분,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한다(《삼국사기》 신라본기).
 
  “대장군이 황산의 싸움을 보지 못하고 늦게 왔다고 죄를 주려는 것인데, 나는 결코 죄 없이 욕을 당할 순 없다. 반드시 먼저 당군과 싸워 결판을 지은 다음 백제를 부수겠다.”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편은, 당시 김유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유신이 군문(軍門)에서 도끼를 집자 성난 머리털은 꼿꼿이 서고 허리에 찬 보검은 저절로 칼집에서 빠져나왔다.”
 
  이를 본 소정방의 부장(副將) 동보량이 겁을 먹고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신라 군사가 장차 변하려 합니다”고 하니 소정방은 김문영의 죄를 사하였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傳)은 그 뒤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당나라 사람이 백제를 멸한 뒤 사비의 언덕에 군영(軍營)을 만들어 신라 침략을 음모하였다. 우리 왕이 알고 여러 신하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다미공이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백성을 거짓 백제의 사람으로 만들어 그 의복을 입히고 도둑질을 하려는 것처럼 하면 당의 사람들이 반드시 공격할 것이니 그때 더불어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니 유신이 말하기를 “그 말도 취할 만하니 따르십시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당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주었는데 도리어 맞서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나”고 했다. 유신이 말하기를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여주십시오”라고 했다.
 
  당의 첩자는 우리가 대비하고 있음을 알고 백제의 왕, 신료 93명, 군사 2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소정방이 포로를 바치니 당의 고종은 위로한 뒤 “어찌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은 이렇게 말했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戰後 70년, 이젠 자유통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5일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공원을 방문,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했다. 사진=뉴시스
  전성기의 세계 최대 강국을 대표하는 장수가 신라에 바친 찬사이다.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라는 대목은 근대적이다. 신하가 섬기는 대상은 임금보다 상위 개념인 나라(國)로 기록되어 있다. 요사이 문법으로 말한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국가를 임금 위에 놓은 점에서 7세기 신라 지도층이 가졌던 국민국가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김유신과 이승만이 보여준, 당대 최강국에 대한 당당하면서도 유연한 자세는 정신 면에서 우리 민족사의 두 정점(頂點)이고 서로 이어져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3세기에 걸친 동북아의 평화 시대를 만들었고 한민족은 처음으로 일류국가를 건설, 고대사의 황금기를 누렸다. 7~9세기 경주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장안, 바그다드, 교토(나라)와 함께 세계 5대 도시였다. 일류국가는 과거에 일류국가였던 경험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대한민국은 물질적 부문에선 조건을 갖추었으나 한미동맹에 너무 의존, 자주국방 의지가 퇴색하고, 지식인층은 조선조적 명분론과 사대주의 근성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여 전도(前途)를 낙관할 수 없다.
 
  이승만은 나당(羅唐)동맹을 만든 신라의 김춘추(金春秋)처럼 세계적 관점에 서서 한반도 문제를 내려다보면서 한미동맹으로 활로를 찾았다. 그 과정에서 김유신처럼 초인적인 자주정신을 보였다. 이승만과 신라 지도부는, 세계시민 정신과 자주정신을 유연하게 통합시켜 자유와 번영의 세상을 만들어낸 민족사 최고의 인물들인데 속 좁은 지식인들에 의하여 푸대접받고 있다. 하인에게 영웅이 없다는 말은 영웅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인이 하인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7·27 연설이 이런 문제들을 다 포괄하여 “전후 70년, 이젠 자유통일이다”라는 역사적 명제에 속 시원한 전망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피 묻은 자유!
 
  이승만이 친서를 보낸 1950년 7월 19일 트루먼은 라디오·텔레비전 연설에서 마치 화답하듯이 말했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미국인에게도 중요합니다. 공산군의 침략 행위는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자유국가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입니다. 정면으로 그런 도발을 하였으므로 우리도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유엔과 회원국들의 행동은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유세계는 불법적인 침략을 무력(武力)으로 응징할 것임을 명백히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군, 해군, 공군을 보냈습니다. 지금 이 전쟁에 걸려 있는 것은 세계의 평화와 미국의 안전이기 때문입니다. 공산군이 한국을 침략하였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 대하여도 그렇게 할 것임을 보여줍니다.
 
  나는 자유의 대가(代價)가 매우 비싸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구애받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자유를 지켜낼 작정입니다. 우리를 위해서일 뿐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창조주(創造主)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대로 살기 위하여는 자유와 평화가 필수적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우리를 인도한 신념이었고 다가오는 어려운 시기에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줄 신념이기도 합니다.”
 
  이승만과 트루먼이 공유하였던 “자유수호의 세계시민 정신”은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전시(戰時)에도 실천되었다. 이승만은 “공산당과 싸워서 자유를 되찾겠다는데 언론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면서 검열제도를 폐지, 한국 언론은 전시 중에도 군대와 대통령을 비판하는 자유를 누렸다. 전시 중에도 면장까지 뽑는 최대 규모의 선거를 가졌다. 트루먼 대통령은 휴전협상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포로 문제에서 인도주의적 원칙을 견지, ‘본인 의사에 따른 송환원칙’을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협상이 지연되어 미군 전사자가 늘었지만 그는 이미 자유의 대가는 비쌀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한국인들이 지금 공짜로 누리는 이 자유엔 피가 묻어 있다. 수많은 세계(한국) 젊은이의 피가! 세계시민 정신엔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1950년의 한국처럼 싸우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대주고 있는가?⊙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1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정표    (2023-07-09) 찬성 : 1   반대 : 0
대한민국을 해치는 주사파 종북세력 집단소굴 민주당이 거짓과 선동과 날조로 대힌민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며 국력향상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는 반국가적 부류들을 선도하는 문재인 이재명을 하루빨리 법정심판대에 세워 최고형으로 다스려야 한다. 또한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박살내여 국가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