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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기술

요동치는 세계 자동차 산업과 한국 자동차 산업의 나아갈 길

테슬라 對 토요타, 세기의 대결

글 : 박정규  한양대 기계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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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 차량으로 진화, 발전하면서 이제 ‘통신, 에너지 시스템’이 자동차 내에 통합
⊙ ‘미친 천재’ 일론 머스크 對 ‘오너가의 모범생’ 도요다 아키오
⊙ ‘기가 팩토리’(테슬라) 對 ‘콤팩트 팩토리’(토요타)
⊙ “일주일에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100시간 일해야 한다”(일론 머스크)
⊙ 한 사람의 천재가 이끄는 테슬라 對 전 직원이 改善에 참여하는 토요타
⊙ 토요타, 차량용 OS 개발 위해 구글 자율주행팀 이끌었던 제임스 커프너 영입… 도요다 아키오의 아들 다이스케도 근무
⊙ 한국의 성공 체험, 차량용 반도체·배터리·소프트웨어에서는 안 먹힐 수도

朴正圭
1968년생. 한양대 기계공학과 졸업,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석사, 일본 교토대 정밀공학과 박사 / 기아자동차 중앙기술연구소 연구원, 日 교토대 정밀공학과 조교수, LG전자 생산기술원, 현대자동차 자동차산업연구소·해외공장지원실 근무. 現 한양대 기계공학과 겸임교수, 글렌데일 홀딩스 부대표 / 번역서 《실천 모듈러 설계》 《도요타 제품개발의 비밀》 《모노즈쿠리》
사진=뉴시스/AP, 뉴스1/로이터
  지난 10여 년 사이 자동차 산업은 숨 가쁜 변화를 겪었다. 대표적인 사건을 보면, 2009년 제너럴 모터스(GM)가 파산했고, 이듬해 토요타는 약 1000만 대의 차량을 리콜했다. 2015년 폴크스바겐(VW)은 미국 배기가스 법규 통과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다가 5조원의 벌금을 미국 정부에 납부해야 했다. 연간 100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자동차 빅3가 저마다의 문제점을 노출하며 위기에 빠졌다.
 
  그러는 사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테슬라’라는 기업이 기존 자동차 메이커들이 만들어놓은 철옹성 같은 진입장벽의 일각을 허물고 들어왔다. 그리고 무너진 옹벽 사이로 BYD, 소니, 애플과 같은 회사가 자동차 산업에 진입하고 있다. 한편 손톱만 한 크기의 반도체가 없어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서며 공급망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도대체 지금 자동차 산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자동차 산업 대전환기에 한국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를 위해 파괴적 혁신을 선도하는 테슬라, 그리고 기존 자동차 왕좌를 지켜온 토요타의 대응방식을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다
 
〈표1〉 자동차 산업의 메가 트렌드
  자동차 산업이 현재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확히 파악하려면, 먼저 역사적 관점에서 산업 근간의 본질적인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현대인의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야기한 3대 발명품은 무엇일까. 바로 19세기에 만들어진 ‘자동차, 전구, 전화’다. 이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이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도로망, 전력망, 통신망’이 구축되면서 보급이 확대됐다. 여기서 망(網)이란 네트워크, 즉 연결을 의미한다. 초기 단계에선 도로망, 통신망, 전력망이 각각 독립적으로 기능하다가, 이 망들도 점차 연결되기 시작했다. 가령 전기를 만들기 위해 발전소가 건설되었고, 발전을 위해 석탄을 공급하는 도로망이 만들어졌다. 자동차의 대중화로 광부가 차를 구입하고 차에 설치된 라디오를 들으며 출퇴근을 했다.
 
  그리고 교통망에 다른 이동 수단, 즉 선박, 항공 등이 더해지면서 교통 시스템으로 진화, 발전했다. 에너지, 통신 또한 시스템화되었다. 한편 지금 자동차는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 차량으로 진화, 발전하면서 이제 ‘통신, 에너지 시스템’이 통합되고 있다. 즉 이제 자동차는 시스템(전기, 통신, 교통)의 시스템, 즉 메타(meta) 시스템이며 현대 문명의 총화(總和)이다. 그렇기 때문에 IT전자회사, 통신회사가 모두 자동차 산업에 관련되기 시작했다. 마치 자동차 산업이 모든 산업을 삼켜버릴 듯한 기세다. 앞으로 진행될 자동차 산업의 본질은 이동이라는 자동차의 본질적 기능에 더해 에너지 시스템, 통신 시스템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가속시킨 이는 바로 일론 머스크라는 괴물이다. 그는 자동차 산업의 게임 규칙을 바꾸어버렸다.
 
 
  차원이 다른 경쟁
 
  지금 자동차 산업의 경쟁 구도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다.
 
  첫째, 전통의 자동차 기업과 신생 기업과의 경쟁이다. 기존에는 1위와 2위의 경쟁이었다. 1950년대에는 포드와 GM의 경쟁 구도였고, 이후 GM과 토요타, 그리고 토요타와 VW(폴크스바겐)의 경쟁 구도로 바뀌었을 뿐이다. 현대차가 경쟁에 뛰어들어 기존 업계를 긴장시키는 경쟁 구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한국 메이커가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하는 스토리에 그쳤다. 하지만 지금 경쟁은 겨우 100만 대의 차량을 만드는 회사(테슬라)가 2030년까지 2000만 대를 만들 것이라는 야심을 드러내며 1000만 대를 만드는 회사(토요타)에 도전장을 내미는 구도다.
 

  둘째, 차원이 다른 경쟁이다. 이전의 경쟁은 자동차 산업 내에서의 경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차와 IT기업 간의 경쟁 구도 양상이다.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 본인이 실리콘밸리에서 페이팔(Paypal)이라는 전자 결제 시스템을 만든 주인공이며 페이팔을 매각한 금액으로 테슬라에 투자하면서 CEO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테슬라의 경영층은 다채롭다. 차량 개발(Vehicle Engineering) 담당은 혼다, 디자인 담당(Chief Designer)은 마쓰다 출신이지만,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은 애플 출신, CIO(Chief Information Officer)는 HP 출신이다. 한편 국가별 대표 공업도시인 울산, 디트로이트, 나고야와 실리콘밸리와의 대결이기도 하다. 경쟁이 이차원(異次元)적이다.
 
  셋째, 신규 진입자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싶어 한다. 테슬라는 배터리와 모터를 이용해, 기존의 석유와 엔진이라는 자동차 산업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기존 메이커가 여러 개의 철판을 정성껏 용접하여 차체를 만들었다면 테슬라는 한 방에 차를 찍어낼 방법을 강구한다. 테슬라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바탕으로 하드웨어 중심의 기존 자동차 메이커를 위협한다.
 
  여기에 국가 간에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간섭이 더해지면서, 상황이 복잡다단해졌기에 앞으로 자동차 산업의 향배를 예측하기 무척 힘들어졌다.
 
 
  테슬라 對 토요타
 
〈표2〉 테슬라와 토요타의 전략 비교
  자동차 산업의 경쟁 양상이 바뀌면서 자동차 산업을 평론하는 사람들 간에도 극심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 미래차의 모습에 대해서 EV(전기차)만이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파(派)가 있다. 간단히 ‘오직 EV(EV Only)파’라고 표현하겠다. 언론 방송인, 증권사 애널리스트 중에 많으며, 상당히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이들은 대체로 테슬라를 열렬히 옹호한다.
 
  반면 EV도 좋지만, HEV(하이브리드), FCV(수소연료차),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ICE(기존 내연기관)도 만들어서 고객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파가 있다. EV도 포함된 다양한 동력원 간의 경쟁이 소비자에게도 지구에도 이롭다고 주장하는 파이다. EV도 포함된다는 의미에서 간단히 ‘EV 포함(EV Included)파’라고 표현하겠다. 토요타가 대표 주자다.
 
  ‘EV 포함파’는 주로 자동차 업계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사람과 일본 학자가 많다. 후지모토 다카히로 교수(와세다대)가 대표적이다. 그는 2022년 2월 발표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자동차 산업의 총력전에 대해서〉라는 논문에서 ‘오직 EV’론은 오판(誤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많은 기존 메이커가 정확하게 어디로 갈지 공언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토요타는 EV도 좋지만, EV는 다양한 동력원의 옵션에 불과하다는 말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래서 ‘오직 EV파’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렇게 상반되는 주장의 대표 주자인 테슬라와 토요타는 〈표2〉에서 나타낸 것처럼 CEO의 카리스마, 자동차에 대한 설계 사상 등이 판이하게 다르다. 테슬라와 토요타의 대결 구도를 잘 살펴보는 것은 지금 자동차 산업 경쟁 구도를 이해하고 한국 기업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세기의 미친 천재’ 테슬라

 
〈그림〉 일론 머스크가 상상하는 인류의 모습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와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SF소설과 SF영화에 심취한 괴짜 천재다. 실제로 인류를 화성으로 이주시켜야 한다는 담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2010년 미국 시사주간지 《디 애틀랜틱(The Atlantic)》은 일론 머스크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차, 우주 개발, 태양열 사업을 동시에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그는 “대학 시절부터 일관되게 ① 인터넷 ② 지속가능 에너지(sustainable energy) ③ 우주 개발(space exploration)이 인류의 영속적인 번영을 만들어낼 것으로 생각해왔다”라고 답했다. 이 3가지 키워드는 일론 머스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실제 그가 벌인 사업을 살펴보자. 태양열을 전기에너지로 만드는 솔라시티(SolarCity), 배기가스 없이 달리는 전기차 메이커 테슬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20분 만에 갈 정도의 속도를 내는 초고속 진공 열차 하이퍼루프, 재사용 가능한 로켓과 저궤도 인공 위성망인 스타링크를 만든 스페이스X, 최근에 매수한 트위터가 있다.
 
  그가 벌인 사업이 중구난방(衆口難防)처럼 보이지만 인류 번영을 위한 ‘3가지 키워드’라는 입장에서 보면 나름 일맥상통(一脈相通)하다. 그가 벌여온 사업을 토대로 그의 머리가 상상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려보면 〈그림〉처럼 표현되지 않을까?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우주적 스케일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스마트폰을 만들 것이라는 추측 또한 인터넷상에 난무한다. 스마트폰은 이 그림에서 화룡점정(畫龍點睛)처럼 보인다. 놀라운 점은 그는 앞에서 열거한 기업을 통해 꿈을 실제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다.(〈그림〉은 2022년 8월 《닛케이 비즈니스》에 나온 이케마스(池松由香)의 기사를 기초로 필자가 나름 재구성한 것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일에 삶을 올인한 일 중독자다. 그는 “일주일에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주당 10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8년 모델3의 생산이 각종 공정상 문제로 차질을 빚었던 ‘생산지옥’에 빠졌을 때는 주 120시간을 일하고 잠은 수면제에 의존해 공장에서 잘 정도였다. 일에 몰입하는 열정 덕분에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존재할 수 있었다.
 
 
  ‘오너家의 모범생’ 도요다 아키오
 
  1956년생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66)의 경영 스타일은 일론 머스크와는 많이 다르다. 일론 머스크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학교에서는 놀림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아키오는 토요타 창업주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郎·1894~1952년)의 손자다. 대학에서 경제, 물리학,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일론 머스크와 달리, 아키오는 게이오(慶應)대학에서 법학, 미국 뱁슨칼리지에서 MBA를 수료했다.
 
  일론 머스크는 미국에서 창업으로 떼돈을 벌어 테슬라를 인수해 CEO의 지위에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지만, 아키오는 1984년 토요타에 입사하여 공장에서 생산 관리 업무를 했고, 뒤이어 영업 부문에서 ‘업무개선’ 활동을 하는 등 바닥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 나갔다. 이후 ‘GAZOO’라는 자동차 정보 제공 사이트를 회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공시키면서, 이를 발판으로 임원에 올랐으며 2005년 부사장을 거쳐 2009년 6월, 창업주 가문 출신으로 14년 만에 회사 대표를 맡았다. 그야말로 오너가의 모범생으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여 회사 중책에 발탁됐다.
 
  두 리더의 공통점은 경영 과정에서 큰 위기를 겪었다는 점이다. 일론 머스크의 경우, 2002년에 창업한 스페이스X의 로켓 발사가 2006년부터 3번 연속 실패하여 부도 위기까지 몰렸다가 4번째의 발사 성공으로 겨우 도산 위기를 극복한다.
 
  아키오도 2009년 취임 직후부터 여러 위기에 직면했다. 2009년은 전 세계 금융위기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던 시기였다. 그해 토요타는 71년 만에 영업적자를 냈다. 2009~2010년에는 설상가상으로 대규모 토요타 리콜 사태가 터지면서 아키오 사장은 전 세계인 앞에서 눈물의 사과를 해야 했다. 2011년은 특히 더 혹독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공장 가동이 장기간 멈췄고, 같은 해 10월에는 태국 홍수 사태로 부품업체 수백 곳이 물에 잠기면서 또 공장 가동을 멈춰야 했다. 2008년 처음 전 세계 판매량 1위에 올라 승승장구하던 토요타는 2011년 판매량이 GM·폴크스바겐에 이은 3위로 떨어졌다. 이에 ‘비운(悲運)의 아키오’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하지만 그는 최악의 위기를 빠르게 극복했다. 이듬해인 2013년, 토요타는 다시 글로벌 판매 1위를 회복했다. 아키오 사장은 위기 당시 현장에 권한을 크게 일임했고,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비상 공급망 운영 체제를 정비했다. 덕분에 2016년 구마모토 지진으로 16개 공장 중 15곳 가동이 중단됐을 당시 2주 만에 전 공장을 재가동시킬 수 있었다.
 
  특히 아키오 사장은 위기 당시 임직원들에게 어려운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더 좋은 차를 만들자’는 토요타의 핵심 정신, 즉 ‘개선(改善)’ 철학을 강조했다. 일론 머스크가 대담하게 미래를 그리고 그 변화를 한발 앞서 선도하는 리더라면, 토요타는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우선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토요타는 지난 2021년 통합보고서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보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적시했다. 이것은 토요타의 철학이고 아키오는 이런 토요타 철학의 충실한 계승자다.
 
 
 
‘사이버 세계’에서 ‘관성의 세계’로

 
  테슬라가 탄생한 실리콘밸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반도체 산업의 본거지이다. 반도체는 질량이 9.1×10-31kg에 불과한 전자의 움직임을 이용, 대규모의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한다. 급속한 반도체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실리콘밸리의 구글, 메타(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기업은 인터넷, 소셜미디어, 스마트폰의 운영체제(OS)와 같은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정보를 저장하는 서버(server)를 가벼워 상공(上空)에 떠 있는 클라우드(구름)라고 부른다. 질량을 무시하는 전자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만들어진 용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자동차는 1t, 2t의 질량을 정지 상태에서 5~10초 만에 시속 100km/h로 가속시키는 관성(慣性)의 법칙이 지배하는 제품이다. 중력, 관성이 지배하는 물리 세계에서의 기술적 진보는 전자 산업과 달리 빠르지 않다. 일본의 제조업을 보통 모노즈쿠리(物作り)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모노란 물건, 즉 실물(實物)을 뜻하며, 결국 질량을 가진다. 이 영역에서의 강자는 역시 토요타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실물을 만든 방법이 바로 토요타 생산 방식이다.
 
  최근 성능 좋고 값싼 센서들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지상에 있는 물건(자동차, 공장의 기계 등)에 센서를 붙여 여러 가지 정보를 취득하기 쉬워졌다. 4차 산업은 각종 센서에서 취득한 정보를 상공에 있는 클라우드에 올려보내, 컴퓨터로 계산을 해서 지상에 있는 실물을 효율적으로 제어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말이다. 실물에 센서를 붙여 정보를 취득하는 기술을 바로 IOT(Internet of Things·사물 인터넷)라고 한다.
 
  보통의 기업은 하나의 영역, 즉 질량이 없는 사이버 세상 또는 질량이 있는 실물의 세상 중 하나에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정말 독특하게도 사이버 세계인 페이팔(전자결제 시스템)에서 성공하자, 관성(질량)의 세계에 도전해 테슬라와 스페이스X라는 사업을 성공시켰다.
 
 
  테슬라의 자동차 설계 사상
 
2015년 9월 29일 머스크는 새로운 개념의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 X를 선보였다. 사진=AP/뉴시스
  그래서인지 자동차에 대한 테슬라의 감각은 남다르다. 기존 자동차 메이커는 5~6년이 지나면 자동차를 풀 모델 체인지(Full Model Change)하여 크기를 조절하고, 디자인을 변경하여 소비자가 새로운 차를 구입하도록 유도한다.
 
  테슬라는 차의 외관은 그대로지만, 2~3년에 한 번씩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풀 모델 체인지한다. 여기서 전기전자 아키텍처란 차량에 사용하는 반도체와 각종 전자 부품을 연결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종래 자동차는 부품을 제어하기 위해 부품마다 반도체가 들어갔다. 이것을 ‘분산형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런데 테슬라는 이런 구조를 개선하여 ‘중앙집중식 전기전자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테슬라는 2014년 9월에 1세대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발표한 이후, 2016년 10월에 2세대, 2017년 8월에 2.5세대, 2019년에 완전한 중앙집중형인 3세대를 발표했다. 그리고 3세대가 되면서 자율주행을 하기 위한 반도체 칩을 자체적으로 설계하여 삼성전자의 14nm 공정에서 위탁 생산하고 있다. 종래 2.5세대 반도체 대비, 계산 성능은 21배로 올렸고, 코스트는 20%를 줄였다.
 
  2023년에는 4세대가 새로 개발되어 보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을 위해 주변을 인식하기 위한 카메라 모듈이 3세대에서는 100만 화소였지만, 4세대에서는 500만 화소(삼성전기 제작)를 사용할 예정이다. 반도체 칩(자율주행용 컴퓨터)도 새로 설계해 TSMC의 4~5nm 공정에 위탁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정의 선폭이 짧아지면 에너지 효율이 좋아진다. 테슬라는 다른 자동차 메이커가 흉내 내지 못할 독보적인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무게가 없는 상공(클라우드)에서 공기를 가로질러, 즉 OTA(Over The Air) 방식으로 차량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시켜주고 있다.
 
 
  토요타의 화혼양재
 
  화혼양재(和魂洋才)는 전통정신을 바탕으로 서구 문물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일본 근대화의 요체(要諦)다. 지금 토요타의 미래차에 대한 대응 방식도 비슷하다. 세계 1위의 자동차 메이커답게 나름의 철학을 유지하면서 테슬라를 배워 경쟁을 해나가겠다는 방식이다.
 
  토요타는 실물 세계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사이버 세상으로까지 변혁을 시도한다. 실물 세계의 핵심은 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하는 것으로 토요타는 이미 자동차 생산 방식의 전형인 토요타 생산 방식(TPS)을 만들어냈다. TPS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생산 방식이다. 미리 많이 만들어놓았다가 팔리지 않아 쪽박을 차는 것도 나쁘지만, 우연히 예측이 잘 맞아 대박이 나는 것도 마냥 반가워하지 않는다.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개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토요타(Toyota)의 T를 토털(Total)의 T로 간주하고 구성원 모두가 개선 작업에 참가하도록 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한다. 한 명의 뛰어난 천재가 이끄는 조직도 위대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합리성을 위해 정진(精進)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테슬라는 전자, 토요타는 후자에 가깝다.
 
  테슬라가 거대한 공장을 추구한다면서 기가 팩토리(Giga Factory)를 만들었다면 토요타는 콤팩트한 공장을 추구한다. 심플(Simple), 슬림(Slim), 콤팩트(Compact)가 토요타 공장이 추구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투자비와 운영비를 가능한 한 줄여, 차를 적게 만들더라도 이익이 날 수 있도록 공장을 설계한다. 좁은 공간에 로봇을 많이 설치하고, 노동 생산성을 올려 작업자의 수를 줄인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2022년 10월 토요타 그룹의 다이하쓰는 교토 공장을 50년 만에 리뉴얼했다. 350억 엔을 투자하여 생산 캐퍼를 13만 대에서 23만 대로 올리고, 생산성을 2배 향상시켰다. 그러면서 다이하쓰는 ‘유행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현장에서의 꾸준한 개선의 축적으로 이룬 성과’라고 자랑했다. 근로자의 두뇌를 컴퓨터보다 더 소중히 생각한다.
 
 
  토요타의 미래차 전략
 
도요다 아키오는 2020년 1월 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토요타의 미래 차량에 대해 설명했다. 사진=AP/뉴시스
  토요타의 미래차에 대한 준비도 만만치 않다. 배터리의 경우 파나소닉과 함께 1996년에 PEVE(Primearth EV Energy, 토요타 지분 80.5%)를 만들어 하이브리드 차량의 배터리를 자체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에 다시 파나소닉과 PPES(Prime Planet Energy & Solution, 토요타 지분 51%)라는 배터리 회사를 만들었다. PPES가 출범할 당시 총 5100명으로 출발하였는데, 토요타 출신 600명, 파나소닉 출신 4500명이었다. 파나소닉에서 넘어온 엔지니어는 리튬이온 전지로 유명한 산요 출신들이었다. 과거 리튬이온 전지의 명가인 산요가 부도가 나서 파나소닉에 인수되었다. 이제 그 인력이 토요타의 계열사에서 배터리를 개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토요타는 이렇게 확보한 배터리 실력으로 독자적인 공장까지 건설 중이다.
 
  미래차에 없어서는 안 될 반도체 분야에서도 토요타는 나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1989년부터 토요타는 자체적으로 하이브리드 차량에 들어가는 전력 반도체를 생산하면서 반도체 공정의 노하우를 학습했다. 이런 능력이 있었기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의 차량용 반도체 메이커인 르네사스 공장이 파괴되었을 때에 토요타의 주도하에 공장 재건을 이루어냈다. 차량용 반도체 3위 메이커인 르네사스의 지분을 보면, 1대 주주는 INCJ라는 관민(官民)펀드이며, 덴소와 토요타가 2대 주주이다. 일본법에 따라 2025년 3월까지 INCJ 지분은 전량 민간에 매각하게 되어 있다. 덴소·토요타가 최대 주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토요타는 적어도 배터리와 반도체 분야에서 나름의 포석을 이미 해놓았다.
 
 
  제임스 커프너
 
토요타가 우븐 플래닛 사장으로 영입한 제임스 커프너. 사진=AP/뉴시스
  남은 것은 테슬라가 자랑하는 소프트웨어 분야이다. 즉 ‘차량용 OS’를 어떻게 따라잡느냐가 관건이다. 모르면 선생님을 모셔와 무릎 꿇고 배우겠다는 것이 토요타의 기본 방침이다. 스탠퍼드대학에서 교수를 했고 구글에서 자율주행팀을 이끈 경험이 있는 제임스 커프너(James Kuffner)를 토요타 자회사인 우븐 플래닛(Woven Planet) 사장으로 모셔왔다. 또한 많은 소프트웨어 인재를 모으기 위해 도쿄의 중심지인 니혼바시(日本橋)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우븐 플래닛은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인 ‘스크럼(Scrum)’을 도입하여 사내 전파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해서 토요타는 2025년까지 차량용 OS인 ‘아린(Arene)’을 만들 계획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키오 사장의 아들인 도요다 다이스케(豊田大輔)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이스케 또한 아버지 아키오와 동일하게 게이오대 법대와 뱁슨칼리지에서 MBA를 했지만, 회사 경험은 전혀 다르다. 다이스케는 토요타에 입사해서 엔진의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에서 근무했고, 이제 자율주행,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조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토요타의 생산 방식에 대한 학습이 과거 토요타 제왕학의 기본이었다면,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새로운 제왕학의 기본 코스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성공 체험 안 통한다
 
  자동차 산업은 지금 혼돈(混沌)의 한가운데에 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변화가 빠르고 다양한 플레이어(player)가 참가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계속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혼돈을 가중시킨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일론 머스크를 주식 사기꾼으로 매도하던 사람이 이젠 테슬라 예찬론자가 되었다. 생각이 바뀌었는지, 분위기에 따라 말을 바꾼 것인지 알 수 없다. 자동차 생산 방식의 전형인 토요타 생산 방식(TPS)도 이젠 별것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나왔다. 이런 상황일수록 변화의 본질을 냉철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먼저 한국 기업의 실력을 냉정하게 파악해보자. 자동차 기술이 전문화되고 다양화되면서 ‘슈퍼슈퍼 엔지니어’가 아니면 다 알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잘 가공된 리포트보다는 실무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 실무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정말 어렵다. 따라서 최고 경영자는 사심(邪心)이 없고 기술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중용하여야 한다.
 

  둘째, 과거 한국 기업의 성공 체험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디스플레이, DRAM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또한 성장 경로가 동일할지는 의문스럽다. 디스플레이와 DRAM 반도체는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전자 제품에 사용되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컴퓨터를 교체하기에 높은 품질의 내구성(耐久性)이 요구되지 않았다.
 
  그런데 차량용 배터리는 다르다. 차량의 평균 사용 수명은 15년이며, 폐차 시 배터리의 처리 등 다양한 이슈가 산재(散在)해 있다. 최근 반도체도 심상치 않다. 과거 반도체는 18개월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개로 되는 ‘무어의 법칙’이 적용되었고 이때 한국 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제 반도체 공정이 10nm 이하로 미세화되면서 ‘무어의 법칙’이 잘 안 맞고 있다. 반도체 공정의 미세화로 보다 고순도의 재료를 사용해야 하고, 설계 파라미터, 설비 간의 상호 영향도가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설비, 재료 분야의 기업과 긴밀한 협조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TSMC가 일본에 공장과 연구소를 짓고 일본 기업과 협조하는 것도 바로 이점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 보다 역동적으로
 
  셋째, 소프트웨어는 쉽지 않은 분야이다. 소프트웨어는 질량이 없는 사이버 세상에서 움직이며 고도의 지식 기반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편 자동차는 질량이 있는 세상이고, 공장에는 거대한 설비가 있고 근로자가 일을 한다. 공장 설비가 다 비슷해 보여도 사용한 이력에 따라 저마다 다른 특성을 보인다.
 
  질량이 없는 사이버 세상의 엔지니어는 이런 점을 좀처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물의 세계를 컨트롤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런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자동차 기업이 소프트웨어 문화를 이해해야 하지만, 반대의 노력도 필요하다. 토요타의 차량용 OS 개발 총책임자인 제임스 커프너의 인터뷰를 보면 토요타에서 몇십 년 근무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리콘밸리 출신이지만 토요타 철학이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과거 일론 머스크도 공장에 문제가 생기자 공장의 야전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분야가 자동차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한국 자본주의가 더욱 성숙되어야 한다. 기업 간에도 신뢰를 기반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해보고 실패도 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를 만들어낸 미국의 자본주의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소니와 혼다가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토요타와 소프트뱅크가 합작사를 만들어내는 일본의 자본주의는 우리보다 활발해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필요에 따라 합종연횡(合從連橫)할 수도 있어야 한다. 새로운 기업이 자동차 산업에 출사표(出師表)를 내밀 수 있도록 한국의 자본주의가 자유로워진다면 역동적인 한국인의 기질상 이 변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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