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말한다] 청년이 생각하는 청년 정치 : 월간조선

2021년 6월 11일, 국민의힘에서 ‘30대 당대표’가 탄생하면서 한국 정치권 최대의 화두(話頭)는 ‘세대교체(世代交替)’가 되었다. 한국 정치에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물론 이전부터 계속 있었다. 2020년 총선과 그 결과로 구성된 21대 국회에서는, 50대가 59%를, 60대가 23%를 차지하면서 무려 82%를 5060 세대가 차지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50대와 60대는 기존 사회 시스템의 중추를 담당하면서도, 아직 노화(老化)로 인한 신체 및 정신 기능의 약화가 나타나지도 않기 때문에 어느 사회에서나 지도적 위치를 맡을 수밖에 없는 연령대이다. 하지만 이제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다음 바통을 넘겨받을 40대의 비중이 12.7%밖에 되지 않은 것은 한국 정치가 세대 ‘적체(積滯)’를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유통되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40대를 건너뛰고, 30대의 이준석 전 대표가 주로 20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돌풍을 일으켰으니, ‘이제는 세대교체를 이룰 때’라는 합의가 더더욱 광범위하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준석 당대표’의 등장 이후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하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兩黨)에서는 모두 청년을 어떻게 새롭게 대변할지를 앞 다투어 제시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대선 당시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결과에 근거한 ‘세대포위론’을 내세우면서 앞서 나갔다. 보수적 가치를 변함없이 지지하는 노년층과 새롭게 보수에 합류할 청년층의 동맹을 통해 진보·좌파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중년층에 대한 수적(數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에 나서고자 했지만, 1980년대 운동권 경력을 중심으로 결집한 당내의 주요 인적 구성 때문에 쉽사리 반격하기는 어려웠다. 민주당은 청년층이 남녀 성별(性別)에 따라서 극심한 정치적 대립을 겪은 덕택에, 청년 여성 유권자의 지지를 동원하여 20대를 간신히 수성(守城)해냈을 따름이다. 청년층이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었음을 생각하면, 동률을 만들어낸 것만으로도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석 체제’의 몰락

진짜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 승리 이후에 나타났다. 이준석 전 대표는 자신이 개최한 토론대회 ‘나는 국대다’ 등을 통하여 자신을 중심으로 뭉친 청년 정치인 집단을 육성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국민의힘 내부에서 세대교체를 이루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선거 기간 내내 이 전 대표가 당 및 윤 대통령과 불화하였음을 잊지 않았다. 이후 이 전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치열한 정치 투쟁이 벌어졌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을 몰아내려는 국민의힘 주류(主流)의 의견이 결국에는 ‘옛 방식’대로 정치를 하고 새로운 세대의 진출을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면서, 세대교체의 수사(修辭)를 구사하며 위기를 돌파하려고 했다. 8월 13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반공(反共)이나 종교적 근본주의가 아니라 청년층이 요구하는 새로운 의제를 올리고자 자신이 분투했으며, 자신마저 당에서 사라진다면 국민의힘은 다시 답답한 ‘자유한국당’ 때처럼 돌아가 버릴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이 전 대표는 대중적인 차원에서 지지를 끌어내어 상황을 반전(反轉)시키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측근으로 육성하고자 했던 다른 청년 정치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준석 대표’ 체제는 대선 승리 직후 빠르게 무너졌다. 그럼 그의 말마따나 국민의힘에서도 세대교체가 실패했고, 다시 정치권에서는 과거 지향적인 중년층과 노년층이 주도하는 세대 적체와 경색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인가?

물론 기본적인 구도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하지만 그의 호소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다. 세대교체가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국민의힘의 인상을 쇄신하면서 민주당보다 더 새로운 느낌을 대선 국면에서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호조건(好條件)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여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 것은 결국에는 본인의 정치적 역량과 직결되는 문제다.

세대교체는 ‘非常時’의 방법론

세대교체는 사실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단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몰아내고, 젊은 세대가 그 공백을 차지하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것은 그런 전투에서 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패인(敗因)을 분석할 때에는 수성자의 견고함도 이야기해야 하지만 동시에 공격자의 취약점도 짚고 넘어가야 마땅하다.

이준석은 기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세대교체나 ‘젊은 피 수혈’이라는 말과 함께 부상(浮上)한 여러 청년 정치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사람이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숱하게 세대교체의 문을 두드렸던 정치인 집단의 일부이기도 하다. 청년 정치의 실패를 진단하기 위해서라면 청년 정치가 그동안 보여준 문제점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현재 한국 정치가 당면한 세대교체 문제를 더 공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과연 ‘세대교체’란 무엇이며, 어떤 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더욱 넓은 시각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대교체는 기본적으로 ‘비상시(非常時)’의 방법론이다. 모든 조직은 그 나름의 관례와 관성을 지니고, 여기에는 특정 연차에 따른 직무의 배분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조직이 관성(慣性)대로 작동한다면, 내부 질서에 따라서 훈련을 받은 이들이 차츰차츰 상부로 진입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상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기존의 지도부는 은퇴한다. 기업이나 관료 조직은 이런 절차를 엄격하게 지키는 대표적 조직이다.

중국 공산당에도 시진핑(習近平) 이전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67세 이하는 유임이 가능하고, 68세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칠상팔하(七上八下)의 불문율이 있었다. 이런 점진적 과정을 통해서 인적 구성이 바뀌는 것도 물론 세대교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절차에 따라서 진행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직의 규칙에 따라 시간에 맞춰 올라온 이들은 단순히 나이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의 운영 방식과 방향성을 급격히 바꾸지 않으며, 자신들이 승진하기까지 따랐던 관례를 존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세대교체의 조건

따라서 대개의 사람이 주목하는 세대교체는 이런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는 급진적인 세대교체다. 순서상 다음에 이어받을 중간 세대가 아니라 그보다 더 젊은 세대를 파격적으로 승진시키거나, 조직 외부에서 성장한 젊은 세대 집단이 판도(版圖)를 아예 바꾸어버리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적으로 기업이나 관료 조직과 달리 정해진 승진이나 은퇴 규칙이 없고, 변동성도 강한 정치권에서 이런 급진적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사례를 찾기가 더 쉽다. 물론 기존의 관례와 상충하는 만큼 기존의 주류 집단과 갈등을 일으킬 공산도 훨씬 더 높다.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세대교체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시대가 그것을 요구했기 때문에’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기존 주류 세대의 세계관과 방법론이 바뀐 세상에서 더는 작동하지 않을 때, 새로운 세계관과 방법론을 장착한 이들이 더 설득력 있는 대안(代案)을 내세워야 세대교체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세대교체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방법론이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기능부전에 빠져야 하고, 신세대가 새로운 문제를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과 해결책을 갖고 와야만 한다. 기능부전이 없다면 굳이 세대를 바꿀 필요가 없고, 대안이 없다면 구체제를 몰아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성공적인 세대교체 사례를 보면 급진적 세대교체가 무엇인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한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논할 때는 흔히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40대 기수론’이나 2000년에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386’ 운동권 정치인을 기용한 것을 얘기하고는 한다.

가장 성공적인 세대교체 5·16

5·16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세대교체였다. 사진=조선DB

하지만 진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이고 성공적이었던 세대교체는 45세였던 육군 소장 박정희(朴正熙)와 36세의 예비역 육군 중령이었던 김종필(金鍾泌)이 주축이 되어서 일으킨 5·16 군사혁명이다. 5·16은 앞서 언급한 급진적 세대교체의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사건이다.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의 제1공화국은 6·25전쟁 승리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해 대한민국 생존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전후의 폐허 위에서 고질적인 빈곤 문제나 측근들의 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4·19 혁명을 통해 무너졌다. 제1공화국이 한국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던 시절에 이미 80대 중반이었던 이승만은 물론이고 64세였던 이기붕(李起鵬) 부통령 후보마저도 기능부전에 걸린 구체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과 자유당 정부를 상당히 불신하였던 미국은 냉전(冷戰) 시대 극동(極東) 안보의 최전선이었던 한국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물밑에서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미국은 한국의 시민사회, 언론, 관료들 중 주요 인사를 선발하여 교육하면서 그들이 자유당 이후 시대를 만들 수 있는 주역으로 성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은 의도치 않게 전혀 다른 영역에서 가장 급진적인 대안적 세력을 육성하고 있었다. 바로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국과 전 방위적인 협력의 경험을 쌓았던 국군이었다. 국군은 과거 일제의 통치 기구들을 통해 근대적 조직을 일찍부터 경험했고, 미군의 막대한 지원 속에서 전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진적인 집단으로 거듭나 있는 상태였다. 이는 냉전기 자유 진영에 속한 신생 독립국들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했다. 국가 운영을 위한 다른 영역에서의 발전이 아직 미비한 상태에서, 공산권과의 대치를 위해서 미국은 집중적으로 각국 군대를 빠르게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미국의 이런 정책들은 민간 영역과 군사 영역의 역량이 비대칭적으로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결과 민간 정치인들을 불신했던 의욕적인 청년 장교단들에 의한 쿠데타나 혁명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새로운 방법론 제시

4·19 혁명 직후 들어선 제2공화국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제1공화국의 기능부전으로 인하여 시민혁명이 발생했고, 장면 내각이 출범했지만, 이들은 당시 한국이 처한 과제들을 해결할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는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에서 《사상계》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 집단이 5·16 군사혁명 전야부터 새롭고 급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합의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사상계》의 열혈 독자들 중에는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청년 장교들도 있었고, 그들은 강력한 지도자의 지휘하에서 이루어지는 국가적 동원을 통해 한국을 도약시켜야만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군사혁명 이후 등장한 국가재건최고회의와 제3공화국 정부는 그 결과 확실한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40대의 박정희와 그를 따르는 30대 장교들은 60대의 윤보선(尹潽善) 대통령과 장면(張勉) 총리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젊은 피’였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단순히 나이가 젊다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1960년대 대한민국이 직면했던 도전들을 돌파할 새로운 방법론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혁명 세력은 낭만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통일 정서 대신에, 반공을 확실한 국시(國是)로 삼았고, 이를 위해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일본 및 만주국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신세대 장교들은 강력한 중앙집권 권력을 확보하고, 그를 바탕으로 자본과 사회를 모두 동원하여 기존 세력들은 추진할 수 없었던 정책들을 빠르게 추진해나갔다. 물론 기존의 정치인들도 여타 자유 진영 선진국이나 세계은행(IBRD)이 권고한 정책들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안보와 경제라는 우선순위하에서 가장 시급한 정책을 강력한 추진력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역량은 없었다. 이미 기존의 각종 이해관계에 의하여 포획(捕獲)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5개년 계획으로 상징되는 경제 개발 프로그램은 재계에서도 세대교체를 만들어냈다. 박태준(朴泰俊) 포항제철 초대(初代) 회장이 채 40세가 되지 않는 젊은 나이로 영일만의 기적을 일으킨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절차를 통한 집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군사혁명이 수용되고 제3공화국이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당시 한국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안목을 지닌 이들’이라는 국민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도 30대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은 30~40세의 젊은이들이었다. 왼쪽부터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사카모토 료마.

군사혁명 세력이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다고 느낀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한일협정이 진행 중이던 1962년에, 당시 일본 총리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는 김종필이 36세라는 이야기를 듣자 그가 마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지사(志士)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 메이지 유신도 정확히 같은 구도 속에서 전개된 세대교체였다. 메이지 유신의 가장 유명한 주역들은 거의 다 30대의 나이로 활약했다. 1868년 유신이 선포될 당시 유신삼걸(維新三傑)이라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는 38세,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는 35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40세였다. 막말의 기린아(麒麟兒)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유신 1년 전에 31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들은 모두 에도의 막부(幕府)가 각지의 번을 이끄는 막번체제(幕藩體制)로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대처할 수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서구 열강들의 막강한 힘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국민이 뭉치고, 근대적 군대와 산업을 갖춰야 했고, 그 과업을 수행할 사람을 기르기 위해 근대적 교육 기관을 만들어야만 했다. 에도의 막부는 당연히 자신들도 서구 열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니, 국가를 흔들지 말고 각 번은 막부의 지도를 따라야만 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유신 지사들은 끝내 무진전쟁(戊辰戰爭)을 통해 승리하여 대체로 한 세대 정도 나이가 많았던 막부 지도자들을 자신들로 교체하고, 일본의 역사를 바꿀 정력적인 근대화 프로젝트에 돌입하였다.

박근혜·문재인의 실패

그렇다면 작금의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1987년에 등장한 제6공화국이 이제는 ‘구체제(Ancien régime)’가 되어 일종의 기능부전을 겪고 있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2017년과 2022년에 각각 이루어진 정권교체는 기존의 좌우파 양대 정당이 시대적 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의 방법론과 관성으로 국가를 운영한 데서 발생한 정치적 결과였다. 각각 산업화(産業化)와 민주화(民主化)의 서사(敍事)를 통해 집권한 박근혜(朴槿惠) 정부와 문재인(文在寅) 정부는 1990년대 이후 변화된 세계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지 못했다. 두 정부는 세계화(世界化)로 인한 불평등의 확대, 정보화로 초래된 새로운 실존(實存)의 위기와 정체성 갈등, 중국의 부상이 만들어낸 지정학적 격변 같은 새로운 종류의 도전을 과거의 방법론을 통해 해결하려 하거나, 혹은 어떤 문제가 새롭게 생겨났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위기를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다른 각도로 파악하여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대안적 세력, 특히 변화된 세계 속에서 성장하여 새로운 관점을 지닌 청년 세대의 부상과 그들이 주축이 된 세대교체를 열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서두(序頭)에서 언급한 대로,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한 청년 정치인들은 바뀐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종합적 서사와 대안을 제공하지 못했고, 세대교체는 그저 정치인 연령대의 교체만을 뜻하는 구호(口號)로만 남게 되었다.

세대교체 실패는 전 세계적 현상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34세인 그는 밤새 격렬한 춤 파티를 벌였다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사진=AP/뉴시스

그런데 세대교체를 향한 염원과 계속되는 실패가 한국만의 일이 아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서방 세계의 민주국가들에서는 모두 기성 정치인들의 강력한 지배력과 세대 적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고, 20세기에 확립된 정치·경제 모델이 21세기 정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대적 개혁을 이야기하는 급진적 정치 세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당연하게도 세대교체를 외치는 목소리도 동반하여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집권한 ‘젊은 피’들이 두드러진 성과를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40세에,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44세에 집권하였고 두 나라를 엄청나게 바꿀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 성과는 초라하다. 핀란드는 34세 여성 총리 산나 마린(Sanna Marin)이 집권하게 되어 세대교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찬사를 받았으나, 총리가 밤새 격렬한 춤 파티를 벌였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미국은 세대 적체 문제가 가장 심각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2020년의 제59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74세의 도널드 트럼프와 78세의 조 바이든이 부딪히면서 ‘노인정치(gerontocracy)’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풍요 속에 성장한 세대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두 후보가 경선을 통과했다는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젊은 정치인들이 결국에는 유권자들의 시험에서 낙방했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47세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세대교체를 이룰 수 있는 역량 있는 청년 정치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적으로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이토록 난항(難航)을 겪고 있는 것일까?

먼저 최근 서구 세계 청년층들의 특성을 들 수가 있다. 선진국으로 한정했을 때 지금의 청년층들은 대체로 풍요 속에서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사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서구 선진국에서도 물자는 부족하기 일쑤였고, 사회를 지배하는 보수적 가치는 청년 시절부터 독립과 자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었다.

하지만 풍요가 당연시되고, 부모가 자녀를 돌보는 기간이 길어지고, 자녀를 향한 위협 요소를 철저히 차단하는 양육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청년층의 심리나 문화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최근의 청년층은 앞선 세대보다 훨씬 더 늦게 결혼하고, 자녀를 대체로 갖지 않으며, 부모에 의존하는 비율과 기간이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는 세대교체를 위한 투쟁을 굳이 감수할 동기가 생길 수가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저서 《나쁜 교육》에서 인터넷의 확산과 양육 문화의 변화로 미국의 청소년들이 점점 위협을 꺼리게 되고, 인생의 작은 사건도 회복하기 힘든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유약한 존재로 성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위 ‘꼰대’ 같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 주장이지만, 탄탄한 근거로 전개되는 하이트 교수의 주장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그다음으로는 세대교체를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는 논리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세계화, 정보화, 기후변화, 지정학적 대립 등으로 지금의 세계가 1961년의 한국이나 1853년의 일본만큼이나 심각한 전환기를 겪고 있음은 이미 명확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며 탄생한 탈(脫)냉전 시대가 종료되었음을 선언하는 사건이었다. 2016년의 브렉시트나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정체성(正體性) 갈등이 사회의 핵심적 의제로 떠올랐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어떤 맥락에서 왜 발생하여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설명해주는 이야기는 몹시 빈약하다. 물론 서점가에는 무수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들은 대체로 과거의 경험과 관점을 통하여 현재를 미루어보는 기성세대들의 저작들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성장하여 기성세대 최고의 지식인도 보지 못하는 점을 짚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청년 지도자들이 안타깝게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바뀐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관점의 부재(不在)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서구 사회 전역이 겪고 있는 문제다.

새 세대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자격

그러니 단순히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세대교체가 정당하다는 이야기는, 자격도 없이 권력을 달라고 조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누군가의 말대로, 청년이 젊음이라는 걸 성취한 것도 아니고, 노인이 늙음이라는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청년들이 성장하고, 과거의 청년은 노인이 될 뿐이다.

그러니 새로운 세대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마땅한 자격이 있어야 하며, 청년들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자격은 그들이 과거의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신선한 관점이다. 그리고 그 신선한 관점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국가와 공동체가 처한 위기이다. 그리고 사실 무엇이 위기인지 알기 위해서라도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치와 미덕(美德), 역사에 관한 기본을 더욱 열심히 궁구(窮究)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마주한 본원적 문제가 무엇인지, 변화하는 시대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철학을 지녀야 한다. 그것이 세대교체를 이루어낸 과거의 청년들이 해낸 일이었다.

오늘의 청년이 과거의 청년과 같은 자격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과거에 사로잡힌 기성세대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공동체는 변화의 격랑 속에서 표류(漂流)할 수밖에 없다. 사실 세대교체를 이룬 사례만큼이나 그런 표류 끝에 파국(破局)을 맞이한 사례도 많다. 지금의 청년 정치인이라면 기성세대가 세대교체를 가로막는다고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반드시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