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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이념과 정치

共和政과 公德

公的 美德이 붕괴하면 ‘善惡의 저편’의 지옥이 열린다!

글 :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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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과 德은 공화국의 양대 기둥
⊙ “정치적 번영으로 이끄는 모든 자질과 관습 중에서 종교와 도덕은 없어서는 안 되는 支柱”(조지 워싱턴)
⊙ ‘대깨문’ ‘대깨명’의 등장은 단순한 病理현상이 아니라 共和의 위기
⊙ 한국, 좌익의 횡행, 시민적 양식과 공적 미덕 붕괴, 탈선·해체의 위기 함께 겹쳐

이강호
1963년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 대통령비서실 공보행정관, 《미래한국》 편집위원 역임 / 現 한국자유회의 간사,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 저서 《박정희가 옳았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이들은 古代로마를 본받아 공화정을 수립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의 언명(言明)이다. 한국에선 민주(民主)에 대한 얘기는 늘 있어 왔다. 우리 현대사 내내 지배적인 정치적 주제였다. 하지만 공화(共和)는 사실상 거의 말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다르겠지만 대중적으로는 그렇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헌법 1조 1항에 있을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전혀 없어서일까? 그렇게 여겨질 수는 있다. 공화국은 형태로 보면 무엇보다도 왕(王)이 없는 정치체제다. 이 점에서 보면 한국은 새삼 공화가 정치적 주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공화는 왕이 없음이 일단은 기본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늘날 특히 한국에선 민주가 일종의 신성(神聖)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는 본질적으로 가치가 아니라 정체(政體)의 한 형태다. 공화도 왕정(王政)에 대비되는 정치체제라는 형태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공화는 단순히 정체의 형태가 아니라 이념적 가치가 본질적이다. 왕의 존재 유무는 단순한 형태의 차이가 아닌 이념적 가치의 차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왕정체제에서 법적·윤리적 권위는 왕으로부터 나온다. 왕정에도 법과 제도가 있다. 하지만 그 권위와 권력은 원천은 물론 발현(發現)도 ‘왕이라는 인격화(人格化)된 존재’다. 중국의 전제(專制)군주제나 서구의 절대왕정은 그 전형이다.
 
  공화정에는 그러한 ‘인격화된 권력과 권위’가 없다. 이 차이는 단순한 형태상의 차이가 아니다. 공화정에선 권력과 권위는 원천부터가 ‘비(非)인격적 가치’, 즉 이념적 가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화는 단순히 정치 형태가 아니라 이념적 가치를 담은 공화주의다.
 
 
  플라톤의 《국가》와 로마의 共和政
 
  플라톤의 《국가》의 그리스어 원제목 《폴리테이아(Politeia)》는 정체(政體), 즉 정치체제다. 이 ‘폴리테이아(Politeia)’가 라틴어로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로 번역되면서 서구(西歐)에서는 통상적으로 ‘리퍼블릭(Republic)’으로 번역되었다. 라틴어 ‘Res publica’의 ‘res’는 ‘thing’을 뜻하고, ‘publica’는 ‘public’을 뜻한다. 즉 ‘republic’은 ‘public thing’이다. 이는 곧 국가란 ‘공공(公共)의 것’ ‘공동(共同)의 일’이라는 뜻이다. 국가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共同體)의 것이란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리퍼블릭’은 공화제이며 공화국이다. 공화정의 나라 로마는 플라톤의 《국가(Politeia)》를 ‘공화국’에 대한 것으로 읽었다. 나중에 로마가 사실상의 제정(帝政)으로 접어든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로마는 여전히 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이었다. ‘로마의 원로원과 대중’이라는 뜻인데 고대(古代) 로마 공화정의 정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제정·제국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고 로마는 여전히 공화국이었다. 나중에 제정을 뜻하게 된 임페리움(Imperium)은 최고사령관을 뜻하는 임페라토르(Imperator)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뿐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의하면 국가는 계급적 지배를 위한 폭력적 도구다. 그러나 로마인이 이해한 ‘국가’, 즉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라는 공화국의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는 ‘지배-피(被)지배’가 아니라 ‘공존(共存)을 위한 질서의 제도화’다. 인간의 무리에는 불가피하게 각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갈등과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성패(成敗)가 있고 강자(强者)와 약자(弱者)가 있게 된다. 그 같은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모두의 공멸(共滅)을 가져올 수도 있다. 국가는 갈등이 공멸로 귀결되는 것을 막고 공존을 위한 조건을 갖기 위한 제도화된 질서이다.
 
  그러한 공존을 위한 정치체로서의 공화국(Res publica)은 그답게 지켜지기 위해선 그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법(法)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법만이 아니라 그 구성원은 공적인 미덕(public virtue)이라는 시민적 양식(良識)도 갖추어야 한다. 법과 덕(德)은 공화국의 양대 기둥이 된다.
 
 
  공화정과 법치주의
 
국회 의사당을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부부와 찰스 왕세자 부부. 영국은 형식적으로는 군주정이지만 실질은 법치주의 체제이다. 사진=AP/뉴시스
  왕정은 법이 있어도 법치주의(法治主義)일 수 없다. 왕정에서의 법은 왕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법치주의 체제는 법 자체에 의한 ‘법의 지배(rule of law)’다. 그러나 왕정은 왕의 명령으로서의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다. 만약 왕정도 법치주의적 법의 지배가 되려면 왕도 그 법 아래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본질적으로는 왕정체제가 아니다.
 
  현대 영국의 입헌(立憲)군주제와 같은 게 그런 경우다. 영국은 엄연히 왕이 있다. 그러나 영국을 왕정체제라고 하지 않는다. 영국은 성문법(成文法)으로서의 헌법과 법률은 없지만 그에 상응한 권위를 갖는 불문법(不文法)이 있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대헌장) 이래 오랜 역사를 거쳐 확립된 전통이다. 영국에선 왕도 그에 따른다. 그래서 영국은 형식적으로는 군주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법치주의 체제다.
 
  하지만 공화정은 법의 지배(rule of law)로서의 법치주의를 본질로 할 수밖에 없다. 명령으로 법을 반포할 수 있는 인격화된 권력의 존재인 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렇기 때문에 공화정에서의 법은 그 권위를 인격적 권력의 존재에서가 아니라 추상적 원칙의 권위에서 구하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자연법(自然法)적 원칙이다.
 
  자연법은 인위적이 아닌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을 말한다. 공화정이 그렇듯 자연법사상도 고대 그리스-로마 이래 오랜 연원이 있다. 중세(中世) 기독교 시대에는 종교적 권위에 의한 신정법(神定法)의 원칙이 기본이기도 했다. 근대에는 종교가 아닌 사회계약론이 기본이 됐다. 그런데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인위적인 인격적 권위가 아닌 본질적·보편적 법칙의 원칙이 법의 바탕이 된다는 생각이 중요했다. 공화주의적 법치주의는 그런 원리에 입각한다. 그렇게 하여 공화정에서의 법의 지배는 ‘권력의 비인격화’를 의미하게 된다.
 
  물론 본질적으로는 그렇다 해도 현실적으로는 권력은 언제나 구체적인 인격적 존재를 통해 행사되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이 치자(治者)일 수는 없으며, 언제나 치자와 피치자(被治者)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공화정에서는 그 관계가 인격적인 지배-피지배의 관계로 간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왕정에서의 지배-피지배는 인격적 지배를 동반한다. 그러나 공화정에선 치자는 왕이 아니다. 역할의 직분(職分)일 뿐이다.
 
 
  公的 美德과 ‘美德의 정치’
 
  공화정은 원리의 차원에선 인격적 지배-피지배가 아니다. 그러나 공화정도 구체적인 현실적 전개는 언제나 다시 인격적인 권력 관계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치자로서의 역할이 본질적으로는 직분(職分)이라 해도 그것은 현실적으로는 다시 지위(地位·status)가 된다. 그 지위를 둘러싼 경쟁은 권력 다툼이 된다. ‘치자-피치자’ 사이는 물론 구성원들 간의 갈등도 늘 있다.
 
  이런 상황이 고삐 없이 증폭되면 결국에는 공화정 자체가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공화정은 법치주의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이념적 원리를 가질 수밖에 없다. 바로 공적 미덕(public virtue)이다. 공화정은 법치주의일 뿐만 아니라 ‘미덕의 정치(politics of virtue)’여야 한다.
 
  미국의 초대(初代)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시민사회의 두 가지 중심축은 종교와 도덕이라고 말했다. 퇴임 고별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적 번영으로 이끄는 모든 자질과 관습 중에서 종교와 도덕은 없어서는 안 되는 지주(支柱)가 된다.… 종교와 도덕이 인간과 시민을 확고하게 떠받치는 지주이며,… 이 지주를 무너뜨리려는 자는 아무리 애국주의를 외쳐도 그 외침은 헛된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한편 워싱턴 대통령 당시의 초대 부통령으로 미국 제2대 대통령이 된 존 애덤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직 종교와 도덕률 위에서만 자유가 든든히 세워질 수 있다. 우리의 헌법은 오로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이는 다른 여타의 정부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미국이 독립전쟁이라는 힘겨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던 당시인 1798년 10월 11일, 매사추세츠주(州) 민병대 제3사단 제1여단 소속 장교들에게 보낸 편지 중의 한 대목이다.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전제한 얘기들은 아니었다. 미국의 헌법은 제1조에서 종교의 자유를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근본적 함의는 특정 종교의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표현되는 본질적 가치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도덕도 그런 차원에서의 얘기였다. 단순히 사적(私的) 차원의 도덕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것을 포함하면서도 더 넓은 차원에서의 ‘공적(公的)인 덕(public virtue)’을 말하는 것이었다. 워싱턴과 애덤스를 비롯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그 같은 도덕성(morality)과 덕(virtue)이 공화국의 기초이며 자유로운 사회의 필수조건이라 보았다.
 
 
  고든 우드, “미국 독립혁명은 공화주의 혁명”
 
  미국의 정치사학자 고든 우드(Gordon S. Wood·1933~)는 《공화국의 창건(The creation of the Republic)》에서 바로 그런 공화주의적 덕의 차원에서 미국의 독립혁명을 설명한다. 우드는 서론에서 “사상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며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국의 독립혁명 역시 그랬다고 지적했다. 독립선언에서부터 헌법을 제정하기까지의 과정 모두가 이념적 혁명이었으며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화주의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혁명을 이끈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이 전례(前例) 없던 세금을 미국 식민지에 부과한 것은 영국의 정치가 미덕(virtue)을 잊어버리고 부패한 탓으로 보았다. 때문에 식민지의 미덕을 수호하기 위해서 부패한 영국 사회에서 독립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 독립에는 당시의 시대적 통념으로는 결정적일 수밖에 없는 장애가 있었다. 바로 왕의 부재(不在)였다. 여전히 모든 권위가 왕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간주되는 시대였다. 그런데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면 무엇이 그런 권위를 대신할 것인가?
 
  이 문제의 답으로 찾아낸 것이 공화정이었다.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정치적 실험이었다. 공화정의 모범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 역사 속의 고대 로마가 있을 뿐이었다. 공화정을 과연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 고든 우드는 ‘미덕의 정치(politics of virtue)’가 그 결론이었다고 강조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연설은 미국 독립혁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연설이다. 독립혁명 주역의 한 명이었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1736~1799년)가 1775년 한 연설이다. 그 연설이 말해주듯 자유는 당연한 전제조건이었다. 하지만 자유는 자유만으로 확보되고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보증할 수 있는 정치체(政治體) 곧 국가가 있어야 한다.
 
  추상적 선언이 아닌 현실적 자유는 그것을 지키는 것을 이념으로 하는 국가 속에서의 자유일 수밖에 없다. 그 현실적 최선이 왕이 없는 공화국이다. 그런데 공화국은 자유의 권리를 가진 그 구성원이 자유와 동시에 공적 책임을 함께 지는 ‘미덕의 정치’ 없이는 지탱되지 못한다. 공화국을 지탱하는 ‘공적인 덕’이 ‘개인의 자유’를 지켜내는 것이다. ‘자유와 책임’은 그래서 분리될 수 없는 양면의 짝이 된다.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
 
1968년 12월 5일 반포한 국민교육헌장은 공화주의적 덕성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사진=조선DB
  현대에 들어서는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196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연설이 그 같은 책임이라는 공화주의적 미덕에 대한 대표적인 언명이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으시오.”(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민주는 모든 국민에 권리가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공화는 단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을 담고 있다. 한국에선 민주와 권리에 대한 논의는 넘칠 정도다. 그러나 공화와 그 공화가 담고 있는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전혀 없지는 않았다.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이 반포한 국민교육헌장의 한 대목이다. 이것은 공화주의적인 덕성의 집약적 표현이다. 앞서 케네디의 취임연설의 대목과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의 이 대목은 본질적으로 같은 얘기다.
 
 
  시민사회와 국가
 
  물론 이 ‘책임’ 외에도 많은 덕목이 전통적으로 공화주의적 미덕으로 언급돼왔다. 용기와 절제, 정의감 등과 더불어 관용과 자긍심, 지혜로서의 신중함도 말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케네디가 말하고 박정희가 말한 ‘책임’을 뿌리로 하여 자라고 풍성해져 가게 된다. 국민의 이 같은 덕성의 수준이 그 국가의 수준과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다. 고대로부터의 모든 공화정의 역사가 다 그러하지만 근대 국민국가의 경우는 특히 더 그러하다.
 
  근대 국민국가의 경우 시민사회와 짝을 이룬다. 영국·미국·프랑스의 시민혁명은 모두 그처럼 성장해가는 시민사회에 어울리는 국가 곧 국민국가를 성립시켜가는 정치적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 국민국가의 성패는 그것을 요청한 시민사회의 수준에 달려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공산주의 단계에서의 국가의 소멸이 교리(敎理)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만들어낸 것은 국가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의 소멸’이었다. 그런데 국가는 그들의 주장대로면 지배의 폭력적 도구다. 그렇다면 사회가 소멸되고 국가만 남은 것은 그 같은 지배의 폭력적 도구만 남은 게 된다. 러시아혁명 이래의 모든 공산좌익혁명은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오류(誤謬)요 실패일 뿐이다. 국가는 그냥 폭력적 지배기구인 게 아니다. 국가는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조건의 구축을 위한 노력의 정치적 결과다. 이상적 국가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더 나은 국가인가’이다. 거기에는 국가 구성원의 공적 덕목의 수준이 중요하다. 국민국가는 더욱이 그렇다.
 
  국민국가의 국민적 덕성의 수준은 시민사회의 시민적 양식의 수준을 바탕으로 한다. 물론 국민국가의 법적·제도적 틀이 먼저 도입되기도 한다. 사실 시민혁명을 치른 서구 선진 몇 개국을 제외하면 모든 후발국(後發國)의 경우는 다 그렇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질적 측면에서 보면 결국에는 시민사회의 수준이 그 국가의 수준이 됐다.
 
 
  朴正熙의 近代化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은 당연히 전형적인 후발국 유형이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는 근대 국민국가의 법적·제도적 틀이 사실상 강림(降臨)하듯이 주어졌다. 물론 일정한 정도의 근대적 요소의 씨앗과 싹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1948년 건국 당시 한국은 시민사회를 의미 있게 논할 만큼은 전혀 아니었다. 한국은 시민사회의 성장이 국민국가를 성립시킨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정치적 틀을 품으로 하여 시민사회가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은 냉철하게 인식되지 못했다. 물론 농지개혁(農地改革)으로 봉건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의 물적(物的) 토대가 제거돼 있기는 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농경사회였다. 하지만 지식층의 관념적 원망(願望)의 시선은 처지와 실력과는 상관없이 늘 서구 선진사회의 수준을 향해 있었다. 우리 현대사의 많은 정치적 진통(陣痛)은 이 같은 불균형과 무관치 않았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의 성공이 이룩한 경제성장은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한국은 박정희 시대의 성장 발전으로 드디어 물질적으로는 확실히 근대 시민사회와 국민국가의 조건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가 기치로 했던 ‘근대화(近代化)’에 어울리는 성취였다.
 
  이후 1980년과 1987년의 정치적 진통을 거쳐 이른바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드문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게 되었다. 1987년 민주화의 넥타이부대는 성장한 중산층(中産層) 시민이 본격적으로 면모를 드러낸 것으로 간주됐다. 그리고 1987년 체제 성립 이후부터 이른바 시민·시민단체라는 지칭이 널리 회자(膾炙)됐다. 시민사회의 존재가 확인되는 듯했다.
 
 
  미성숙 상태에서 퇴행과 타락이 오고 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만 그러했다. 시민적 양식의 성숙이라는 내용적 측면에서 보자면 전혀 아니었다. 몸은 성장하고 근육도 붙어 외형적으로는 확실히 성인(成人)으로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전혀 어른이 되지 않은 것 같은 상태였다. 몸만 웃자랐고 정신적으로는 중2병적 사춘기에 머물러 있는 꼴이었다. 그런데 그런 미성숙 상태에서 퇴행(退行)과 타락(墮落)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성찰(省察) 없는 착오’에 ‘불순한 정치적 선동’이 더해진 결과였다. 민주팔이들이 날뛰고 드디어는 좌익(左翼)분자들이 권력을 잡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타난 것은 조선조적 양반특권층화를 노리는 전근대적(前近代的) ‘퇴행’이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시민단체라는 게 등장해 설쳐댔다. 하지만 그 행태는 전혀 시민적이지 않았다. 그저 정부보조금에 빨대를 꽂은 기생충(寄生蟲)일 뿐이었다. 시민적 양식이 성숙은커녕 횡행하는 몰염치들로 인해 망가져 가는 양상이었다. ‘타락’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정치권이 별다른 수준일 까닭이 없다. 현 정권 패거리들의 면모가 특히 그렇다. 전혀 시민적이지 않은 민간의 그들 패거리의 면모와 완전히 하나의 짝이다. 그렇게 짝을 이룬 무리가 드디어는 범죄적 인물을 대선(大選) 후보로 내세웠다. ‘그분’에게 모이는 인물들도 가관이다. 별의별 기괴한 사연들이 연일 오르내린다. 품격(品格)의 최소한도 없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다. 애초에 시민적 양식의 추락은 그 같은 악적 정치 패거리들 자체의 탓이 크다. 그런데 그 패거리들이 다시 그 추락의 무리와 동반하고 그러면서 시민적 양식도 더한층 시궁창으로 처박혀가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다.
 
  지금 계속 드러나고 있는 ‘그분’의 행각은 쇼킹의 연속이다. 대장동 범죄 행각만으로도 이미 아수라 급인데 엽기적(獵奇的) 살인범죄자에 대한 기록이 연거푸 나온다. 그 살인범 중 하나는 그의 조카라는 것도 놀랍지만 범죄단체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더 놀랍다. 그런데 그 범죄단체의 또 다른 조직원 두 명의 변호를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 모든 이력도 기가 찰 노릇인데, 이 사람은 난폭한 언사도 물론이려니와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그들 지지층은 아랑곳없이 결집이다. ‘대깨문’에 이어 가히 ‘대깨명’이다. 이 같은 ‘대깨’는 단순한 병리(病理)가 아니다. 아예 시민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병적인 무리가 만만찮은 수를 이루고 있다. 시민적 양식과 공적 미덕의 차원에서 보자면 공화 자체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물론 양식 있는 시민도 많으며 현 정권과 그 패거리의 후보를 거부하는 기류도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그 패거리들의 문제점에 비해선 야당의 공세가 너무 약하다. 국힘당의 결기 없는 허약함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니 새삼 얘기할 것도 없다. 그런데 지금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다시 도처에서 너저분한 꼴들이 나타나는 건 혀를 차게 한다. 똑같이 하향평준화의 추락을 보이는 것인가? 악적 상대와 맞서 싸우는 데 가장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는 자들이 계속 이런 식이면 공화는 지탱되지 못한다.
 
 
  포스트모더니즘적 탈선까지
 
  그런데 한국의 시민적 양식과 공적 미덕의 위기에는 퇴행과 타락만이 아니라 야릇하게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적 탈선(脫線)도 겹쳐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종의 ‘허무주의(虛無主義)’를 내포한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은 ‘허무주의’라는 프레임을 거절한다. 그러나 탈근대는 어쨌든 근대에 대해선 허무주의다.
 
  포스트모더니즘 조류(潮流)의 사상가들은 일반적으로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특히 그 구조주의적 접근을 반대한다. 그들에게는 마르크스 등도 말하자면 낡은 근대주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모든 성취와 가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조류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비판이론을 필두로 한 네오마르크스주의와 열렬히 동반(同伴)했다. 1960년대 서구를 휩쓴 ‘1968혁명’의 경우는 전형적인 경우였다.
 
  “실존(實存)은 존재에 앞선다”고 한 사르트르, 독일의 비판이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당시를 휩쓴 ‘반(反)문화’라는 반항적 문화운동에서 한 덩어리가 됐다. 프랑스 68혁명 당시 그 소동에 나선 학생들은 스스로를 마오쩌둥(毛澤東)주의자로 자처했다. 그런데 그 구호는 매우 포스트모더니즘적이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방해 없이 즐기자.” “배고픈 건 참아도 지루한 건 못 참는다.” 이게 당시의 구호였다.
 
  애시당초 68혁명은 대학가에서 남학생들을 여학생 기숙사에 방문하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성(性)담론 규칙에 대한 반항이었다. 68운동의 주축은 철저히 대학생이었다. 시민혁명을 이끈 부르주아도 사회주의혁명의 주역이라는 노동자도 아니었다. 마르크스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전혀 사회·경제적 계급모순에 의한 게 아니었다. “배고픈 게 아니라 지루함을 못 참아서”였던 배부른 운동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재현된 낭만주의적 폭발이었다. 이전의 낭만주의는 결국에는 니힐리즘으로 치달아갔다. 그렇듯 68의 낭만적 폭발도 포스트모더니즘적 ‘해체’라는 니힐리즘을 동반하고 있었다.
 
  한국의 586 이래의 갖은 운동들은 어떠할까? 1980년대, 좌익사상과 낭만적 민족주의가 한 덩어리가 되어 질풍노도의 질주를 했다. 그들은 지금 괴물적 권력집단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페미니즘과 동성애(同性愛)의 성담론 등을 앞세운 무리가 가치 붕괴를 도발하며 그 꽁무니를 따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탈선이 겹쳐가고 있는 것이다.
 
 
  낭만주의와 니힐리즘
 
‘超人의 철학’을 강조한 니체.
  포스트모더니즘 문제와 관련해선 니체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사상은 니힐리즘의 완결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예견적 선구로 간주된다. 니체의 초인(超人·위버멘쉬, Übermensch)론은 생(生)에 대한 긍정의 철학으로 해석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전의 모든 가치를 부정한다는 점에선 니힐리즘이다. ‘안티크리스트’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는 《우상의 황혼》(1988)은 기독교적 가치의 정면부정이다.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권력의지)라는 개념에는 가치판단이 없다. 도덕적 상대주의(相對主義)요 허무주의다.
 
  도덕과 이별한 권력의지와 낭만적 민족주의의 결합이 어떤 것인지는 히틀러와 나치즘이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좌익사상에 남은 것도 야릇하게도 결국 ‘권력의지’였다. 러시아혁명은 마르크스의 고전적인 사회・경제적 발전단계론과 아무런 관계없이 이루어졌다. 레닌은 사회・경제적 조건의 성숙을 기다려야 한다는 멘셰비키를 경제주의(經濟主義)라고 비판하고 “혁명이론으로 무장한 전위(前衛)집단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각성시키고 이끎으로써 혁명을 성취해야 한다”고 했다.
 
  레닌의 언설은 사회·경제적 조건과는 무관한 ‘권력의지’의 천명에 다름 아니다. 한편 레닌 이래의 모든 좌익혁명당의 절대 지침이 된 ‘전위’라는 개념은 어떤 점에선 일종의 니체적인 정치적 ‘위버멘쉬’다. 아이러니한 만남이다.
 
 
  공적 가치가 무너지면 ‘선악의 저편’으로 향하게 된다
 
  물론 니체 자신은 전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사회주의를 혐오했을 뿐만 아니라 귀족주의를 이상적(理想的)으로 여겼다. 그런데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다. 러시아혁명 이후의 공산당 지배층은 노멘클라투라라는 신판 귀족이 되었다. 중국공산당 지배층도 그랬다. 김일성 일족 삼대 지배의 북한도 물론이다. 권력의지만 남은 초인적 존재는 그렇게 위선적 결말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도덕을 떠나 《선악의 저편》(1886)으로 가버리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68혁명의 소동도 마찬가지였다. 68혁명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미국과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문화적 운동이자 현상으로 퍼져갔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서는 프리섹스와 마약에 빠진 히피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적군파(赤軍派)와 같은 극좌 테러운동으로 나타났다. ‘선악의 저편’이었다.
 
  한국은 어떨까? 지금 한국도 좌익의 횡행과 함께 시민적 양식과 공적 미덕이 무너지는 가운데 탈선・해체의 위기도 함께 겹쳐서 엄습해오고 있다. 이 난장판은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그분’은 이미 ‘선악의 저편’으로 가 있다. 그를 제압하지 못하면 한국 전체가 거기로 끌려갈 것이다. 그런데 ‘선악의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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