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후 박정희 대통령은 공동경비구역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를 잘라버림으로써 대북응징의지를 분명히 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인 김여정이 대한민국과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연일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설을 퍼부으면서 공갈협박을 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 굴종적이라고 할 만큼 유화책으로 일관했던 문재인 정권을 향해 북한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서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유엔의 대북제재로 한계상황에 봉착한 북한이 문재인 정권 출범 후 화끈한 퍼주기를 기대했는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아 몽니를 부린다고 보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당 중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권력실세로 등장한 김여정이 자신의 대내외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김정은은 지난 4월에 20여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은은 5월 초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신상을 둘러싼 억측들을 잠재웠지만, 그 기간 중에 북한 체제 내에 모종의 권력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는 관측들이 있다. 김정은에게 심각한 건강이상이 발생했고, 김정은 유고시에 대비하기 위해 김정은에게 상당 정도로 권력이 이양됐다고 보는 것이다. 김여정이 지난 6월 13일 담화에서 "나는 위원장 동지와 당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하여 대적 사업연관부서들에 다음 단계 행동을 결행할 것을 지시하였다"며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 한다"고 한 것이 그 방증이다.
그동안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는 발언들을 많이 해 온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은 "당과 국가를 지휘하고, (김정은) 위원장을 대리한다는 표현"이라며 "총참모부에 지시했다는 표현을 보면 조선인민군도 그(김여정) 휘하에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 했다. 그는 "김여정이 완전히 2인자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을 당과 국가와 간부들이 전부 인정하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는 표현"이라는 주장도 폈다.
김여정이 과거 김정일·김정은의 경우처럼 명실상부한 후계자가 될지, 아니면 곽길섭 전 국정원 북한분석관의 관측처럼 ‘섭정’에 그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적어도 김정은 단독정권에서 김정은-김여정 공동정권으로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가부장제적 전통이 강한 전체주의·군국주의 사회인 북한에서 사상 초유의 여성집권자로 나서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김여정은 연일 독랄한 언사를 토해내며 대남강경책을 구사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북한에서 ‘당 중앙’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으로 새로운 후계자가 지명될 때마다 큼직한 대남도발이 하나씩 있었다. 김정일이 후계자가 됐을 때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있었고, 김정은이 후계자가 됐을 때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우리 측의 대응은 확연히 달랐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계자로 등장한 무렵인 1976년 8·18도끼만행사건을 저질렀다.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럿 중위가 살해 당하고, 주한 미군 부사관과 병 4명, 국군 장교와 부사관과 병 4명 등이 중경상을 입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친 개는 몽둥이로!"라면서 미군과 협력해 공동경비구역에 제1공수여단을 투입해 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를 잘라버리고 북한군 초소들을 박살냈다. 미국은 동해상에 항모전단을, 하늘에는 B-52폭격기를 띄워 무력시위를 했다. 국군은 여차하면 연백평야까지 북진해 서부전선의 휴전선을 북쪽으로 올려놓을 작정까지 했다.
김일성은 군사정전위원회 소집을 요청, 유감성명을 전달했다.미국은 이를 사실상의 사과로 받아들였다.
2010년 김정은이 후계자가 됐을 때에는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을 저질렀다.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변등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군인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중경상 3명도 발생했다.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포격해 민간인 사상자를 낸 것은 휴전협정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북한의 포격을 당한 연평도 현지의 해병부대는 즉각 대응포격을 했다. 이로 인해 북한측도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군 당국자들에게 공군을 동원한 타격을 요구했지만 군이 망설이고 미국이 만류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건 직후인 11월 말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양국 해군은서해상에서 사상 최대의 연합해군훈련을 실시했다. 그해 12월에는 한미 해군 및 공군의 엄호 아래 대대적인 포격 훈련을 실시했다.
북한은 우리 측의 훈련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는 한편,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요구했다. 아직까지 이 사건에 대해 북한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금년 6월 들어 김여정은 새로운 ‘당 중앙’으로 등장하면서 민간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를 빌미로 연일 쌍욕을 섞은 공갈협박을 해대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평화와 남북협력만을 강조하고 있다. 문정인·정세현씨 등과 민주당 의원들은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북한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 173명은 이 와중에 한반도종전선언촉구결의안을 내겠다고 나섰다.
그럴수록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이 더욱 기고만장해 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不問可知)다. 북이 대남군사도발을 해 올 경우, 문재인 정권과 우리 국군이 어떻게 대응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