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통령의 삼성 자금수수 혐의와 관련해 검찰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스 미국 소송을 맡은 현지 로펌 에이킨검프에 대한 사실조회를 위해 미국과의 국제사법 공조 방침을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23일 열린 공판에서 “공소사실 변경 이전의 검찰 주장과 변경 이후의 검찰 주장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국제사법 공조를 통해서 (이 전 대통령의 삼성 자금수수 혐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검찰이 권익위 제출 인보이스를 근거로 삼성 뇌물수수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그 사실을 누구로부터 보고를 받고 승인했는지 그 부분에 대해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증인신문 없이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검찰에 김 전 기획관에 대한 증인신청을 요구했다.
당초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이 작성한 이라는 문건 및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을 근거로, 삼성전자 본사가 200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에이킨검프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자금지원 용도로 매월 12만 5000달러를 정액(整額)으로 지급했고, 이 전 대통령은 이 돈을 다스 소송비 등으로 사용한 후 남은 돈을 돌려받으려고 했다며 기소했다.
김 전 기획관이 김석한 전 에이킨검프 변호사를 만난 후 2009년 10월 경 작성한 에는 에이킨검프가 수임한 다스 미국 소송과 관련해, 변호사 비용이 연 40~100만 달러가 소요되며, 비용은 삼성전자 미국법인으로부터의 받는 ‘Retainer’로 월 125,000 달러로 조달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김 전 기획관도 검찰 조사에서 “쓰고 남은 돈을 돌려받는 ‘캐쉬백’ 개념으로 삼성으로부터 월 12만 5000달러씩 총 67억원을 받아 다스 소송비로 사용한 후 남은 돈을 돌려받으려했다”며 “이 같은 내용을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요지의 진술을 하면서 검찰 주장을 뒷받침했다.
재판이 진행되던 중 검찰은 국민권익위로부터 에이킨검프가 삼성전자 미국법인(SEA)에 보낸 인보이스 사본 38건을 이첩 받았다며, 지난 6월 기존 공소사실 외에 51억여 원의 뇌물을 추가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추가된 내용은 다스 미국소송비 전액을 실비로 청구한 내역이다. 검찰은 인보이스 사본의 증거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최근 삼성전자로부터 해당 인보이스 내역 일부를 입수해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이킨검프가 '소송비 전액을 실비로 청구했다'는 요지의 새로운 공소사실은, ‘월 125,000달러 정액으로 다스 소송비를 충당하고 남은 돈을 돌려받으려 했다’는 기존 공소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근본적이 문제점을 안고 있다. 기존 공소사실을 이 전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는 김 전 기획관의 진술도 사실상 허위로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재판부는 지난 기일 이에 대한 검찰의 석명(釋明)을 요구했지만,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추가된 공소사실이 기존 공소사실과 부합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12만 5000달러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이 김석한 변호사가 삼성으로부터 받은 자문료이며, 이를 김 전 기획관에게 언급한 것은 청와대로부터 별도의 PI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미국과의 국제사법공조를 통해 12만 5000달러의 용처(用處)를 규명하고, ▲검찰이 추가로 제출한 인보이스의 증거능력도 확인하며, ▲김 전 기획관의 증인신문을 통해 뇌물 수수 의사 합치 여부도 검토할 계획이다.
9월 4일로 예정된 다음 재판에는 검찰이 최근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 검토 및 미국과의 국제사법공조를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논의될 예정이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