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페라 〈나부코(Nabucco)〉중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떠올리며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부르고 있다. |
바빌론 유수(여기서 잠깐! 유수는 그윽할 幽, 가둘 囚. 사람을 잡아서 가둔다는 뜻이다.)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보니M의 'Rivers of Babylon’만 있는 게 아니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Nabucco)〉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도 바빌론 유수를 그리고 있다.
이 오페라만큼 아름답고 벅차며 슬프고도 웅장한 곡이 또 있을까. 베르디 하면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등 수 많은 오페라 작품이 떠오르지만 〈나부코〉도 그의 대표작 중에서 빼놓을 수 없다.〈나부코〉는 베르디 최초의 성공작이자 그의 세번째 작품이다.
![]() |
네부카드네자르 왕. 혹은 느부갓네살 왕. |
‘나부코’는 유대인을 강제로 바빌론으로 끌고갔던 바빌로니아 왕인, 그 무시무시한, 네부카드네자르의 이름을 이탈리아 식으로 줄여 부른 것이다. 가톨릭 성경에는 네부카드네자르라고 하고, 기독교 성경에서는 느부갓네살이라고 쓴다.
바빌론 幽囚
BC 601년 신바빌로니아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다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가차없이 무너뜨렸다. 그리고 5년 뒤 BC 597년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 바빌론으로 끌고가 종살이를 시켰다.
두번째 유수는 BC 586년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예루살렘의 왕 시드키야는 예리고(제리코)에서 붙잡혀 눈 먼 봉사가 되었고 주민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거나 흩어졌다. 세번째 유수는 BC 582년. 이후 유다의 모든 고대도시가 파괴되었고 유대인들은 종의 신분이 되었다. 잡혀간 유대인은 지구라트 건설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예레미야》 52장 30절에는 포로 수가 3회 걸쳐 4600명이라고 전한다. 부녀자를 더하면 4만 5000명이 넘을 것이란 추정도 한다. 당시 유다의 총인구는 약 25만 명. 끌려간 이들과 비교한다면 다수 민중들은 잡혀가지 않았다는 의미가 된다. 역사기록에는 포로들이 귀족·군인·공인(工人) 등이었다고 전한다.
나라를 잃고 땅까지 빼앗긴 채 바빌론에 정착한 유대인 포로들에게 종교적 자유는 허용되었다. 다만 예루살렘 신전에서처럼 종교적 제의(祭儀)는 할 수 없었다. 포로들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의 포고로서 귀환이 허용되었는데 1차 귀환은 BC 537년, 2차 귀환은 458년, 3차 귀환은 444년에 이뤄졌다고 기록돼 있다.
종살이 해방
![]() |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고레스) 2세 석상 |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기독교 성경에서는 고레스 2세라고 부른다.)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 하면 이렇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가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했다. 바빌론을 막상 함락하니 그곳에는 노예처럼 살고 있는 유대인이 있었다. 이들은 바빌론인들의 소유물과 다름 없는 종살이 신분이었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에서 이긴자는 패배자의 모든 것을 지배하기 마련이다. 노예들도 당연히 예외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키루스 2세는 유대인을 해방시켜 주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은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 성경에서 기록된 대로 예언자의 예언이 이뤄진 셈이다. 가톨릭 구약성경 역대기하 36장 22절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키루스 2세의 ‘마음을 움직이고, 오른 손을 잡아 주어서’ 바빌론 유수에서 해방되었다고 성경에 적었다.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소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 |
키루스 2세 시대의 페르시아 영토(BC 559~529) |
기록에 따르면 유대인만이 아니라 유대교 경전, 제구들까지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돌려 보냈다. 유대인의 간절한 기도, 성경에 적힌 예언이 이뤄진 셈이다. 이후 유대신앙은 이후 완전히 뿌리를 내리게 되고, 오늘날까지 ‘유대인=유대교’의 공식이 완성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키루스 2세는 구약성경에 ‘기름부어진자’ 혹은 ‘기름부음받은이’라는 칭호로 기록돼 있다. 다음은 구약 이사야서 45장 1절이다.
1.주님께서 당신의 기름부음받은이에게 당신께서 오른 손을 붙잡아 주신 키루스에게 말씀하시니 민족들을 그 앞에 굴복시키고 임금들의 허리띠를 풀어 버리며 문들을 열어젖히고 성문들이 닫히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다.
2. 내가 네 앞을 걸어가면서 산들을 평지로 만들고 청동 문들을 부수며 쇠 빗장들을 부러뜨리리라.
한편 ‘바빌론 유수’ 당시 끌려간 자들은 백성들이 아니라 소수의 지배층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 ‘제2차 성전 파괴’로 유다왕국의 주민들이 유랑생활을 겪기는커녕 그대로 살다가 일부는 4세기에 기독교로, 대부분은 7세기에 이슬람교로 개종했다는 설도 있다.
![]() |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음반. |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오페라 〈나부코〉 제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제목은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다.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유프라데스 강가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온다. 잠시 쉬는 동안 저 멀리 고향땅을 떠올리며 이렇게 부른다.
내 마음아,
황금의 날개를 타고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 강의 푸르른 언덕과 시온 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빼앗긴 위대한 내 조국, 오- 가슴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가 연주하는 하프소리, 지금은 어찌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지나간 옛일을 말해주오.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시리라.
19세기 중반까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이탈리아 국민으로선 이 곡이 ‘민족의 노래’로 불려질 수밖에 없었다. 베르디 역시 그 많은 곡 중에 이 곡을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부르도록 유언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