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우)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사진=뉴시스
정경두 국방장관이 20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서해 수호의 날’에 대해 “천안함 피격을 비롯, 서해상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남북 간의 충돌을 다 합쳐서 추모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도발이냐 충돌이냐”고 묻자 정 장관은 “북한 도발로 인한 충돌”이라고 정정했다.
정정하긴 했지만, “불미스러운 충돌”이란 표현이 ‘서해 수호의 날’을 얘기할 적절한 말일까. “불미스럽다”의 사전적 정의는 “아름답지 못하고 추잡한 데가 있다”이다. ‘충돌’의 경우엔 “서로 맞부딪치거나 맞섬”이다. 해당 사건의 양 당사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을 때 쓰는 표현이다.
결국 정경두 장관의 처음 표현에 따르면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등 우리 군인들이 목숨을 바쳐 북한의 도발을 막은 일들은 “추잡하게 서로 맞부딪친 사건”이 된다. 대한민국의 군정과 군령 및 그 밖에 군사 사무를 관장하는 ‘국방부 장관’의 이 같은 표현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북한의 계획적 도발에 따라 발생했다. ‘2002 한일월드컵’ 막바지에 이른 시점, 북한은 의도적으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이날 오전 9시 54분부터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들은 10시 25분, ‘근접차단’을 실시하던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에 참수리 357호와 358호는 대응사격, 인근의 제천함과 진해함 등이 격파사격(목표물 파괴 목적)을 했다. 약 30분가량 이어진 ‘교전’ 결과, 북한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 북한 해역으로 퇴각했지만, 우리 해군의 피해도 심각했다. 정장 윤영하 소령(추서 계급)을 비롯한 승조원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수리 357호는 침몰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 역시 북한의 계획적인 도발이었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 서해 백령도 남방 2.5km 지점에서 북방한계선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 2함대 소속 초계함 ‘천안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이에 따라 이창기 준위(추서 계급)를 비롯한 46명이 전사하고, 이후 구조 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도발에 따라 우리 해군 47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다.
‘연평도 포격’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북한군이 남한 실효지배 지역을 직접적으로 타격해 민간인을 죽인 초유의 사건이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 북한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대연평도에 포격(170여발)을 가했다. 우리 해병대 병사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당했다. 민간인 피해도 컸다.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각종 시설과 가옥이 파괴돼 재산피해도 막대했다.
이처럼 ‘서해 수호의 날’과 관련된 사건들은 모두 북한의 계획적인 도발이 따른 것이다. ‘도발’은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충돌’이라고 표현했다. ▲공군참모총장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을 역임한 ‘4성 장군’ 출신이 '국어'를 몰라서 그랬을까.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한다"는 뜻의 '추모'란 단어를 쓰면서 "충돌을 추모한다"고 얘기한 걸 보면, 정 장관의 어휘력이 뛰어나다고 하긴 쉽지 않을듯 하다.
정경두 장관이 지난 1월, 방송에 출연해 북한 김정은의 서울 방문 시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사과 요구에 대해 “미래를 보면서 (비핵화가) 잘될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일부 우리가 이해하며 미래를 위해 나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던 점을 감안하면, 국어 실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저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의 '장관'답다는 표현 외에는 할 말이 없다.
글=박희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