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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自由大韓 위해 ‘滅共통일’ 선봉에 서다!” 켈로부대 소속 ‘유격백마부대’ 기념비 제막식 개최

최성룡 유격백마부대 전우회장 겸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北, 미군 유해 450구 비밀 보관... 韓美, 北 노림수에 속아선 안 돼” 

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사진 조현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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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현호 월간조선 기자
“유격 백마부대원들께서는 자유 대한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하였고, 반공 전사가 되었고, 민족의 선봉에 섰으며 그로 인해서 지금의 자유 대한민국이 있게 하신 영웅들이십니다.” (송남수 평안북도 중앙 도민회장)

6·25전쟁 당시 압록강 부근까지 정벌하는 등 무훈(武勳)을 세웠던 켈로(KLO)부대 소속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표지석 제막 및 보수공사 준공식이 지난 10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날 행사에는 최성룡 KLO8240 유격백마부대 전우회장(납북자가족모임 대표 및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 전제현(예비역 소장) 장군, 송남수 평안북도 중앙 도민회장과 참전용사 유족·부대원 및 관련 단체장 등 약 20~30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이날 제막된 표지석은 1953년 10월 25일 촬영한 부대원 단체사진과 소개글이 삽입된 형태로 일전에 건립된 충혼탑 앞에 조성됐다. 양재시민의 숲 공원 안에 세워진 충혼탑은 소총을 든 부대원의 용감한 투혼을 형상화한 동상이 돋보이는 기념물이다. 이하 표지석에 새겨진 유격백마부대 선서와 소개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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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룡 유격백마부대 전우회 회장.
- 우리는 신성 유격전사이다. 죽엄(죽음)으로써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한다.
- 우리는 반공전사이다. 사심사욕을 버리고 멸공통일에 일로돌진한다.
- 우리는 민족의 선봉이다. 혈로를 타개하여 도탄에 든 민족을 구출한다.
- 우리는 자유의 전사이다. 세계평화가 보장될 때까지 분투노력한다.

〈1950년 평북 정주군의 각 면에서 치안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이 미 극동사령부 소속으로 KLO8240 유격백마부대를 창설하고, 정주군 갈산면 번저리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KLO8240 유격백마부대는 6·25전쟁 중 서북도서를 점령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이 사진은 연합군의 철수 지시에 따라 인천 용유도 왕산해수욕장에 사령부를 설치한 후 1953년 10월 25일에 촬영한 것이다. - 2018. 9. 1. KLO8240 유격백마부대 대원 일동〉

켈로부대 소속 유격백마부대는 정확히 어떤 조직인가? <월간조선>은 과거 관련 문건을 입수, 보도한 바 있다. 1971년 9월 16일 자로 작성된 <국방부 장관의 전 유격백마부대에 관한 사실 증명>이라는 문서가 그것이다. 문서번호는 ‘전편 184-228’로 다음은 그 원문이다.

<가. 1950. 11. 17 평안북도에 진격하였던 유엔군이 중공군의 침략으로 전략적인 후퇴를 하게 되자, 정주군의 각 면 치안대가 단합하여 12. 22 유격대로서 백마부대라고 명명하고 발족하였음. 그 후 서해의 여러 섬을 전전하면서 대공 유격전으로 북괴군 3000여 명 사살, 중공군 포로 600여 명, 애국 청년 구출 2800명, 동포 구출 1만 5000명의 전과를 올렸으며, 그외 적의 보급로 파괴(철도·터널·교량)와 중요 시설 기습 등 실로 빛나는 전공을 거두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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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막된 표지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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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이 표지석 제막을 거행하고 있다.
 
나. 유격백마부대는 병력이 2600여 명으로서, 20개 유격부대 중 그 규모가 가장 컸으며, 이들 각 유격부대는 처음에 미8군에서 관장하다가 1952. 11 미 극동사령부 정보처로 이관되었음. 휴전 후 1953. 10 국방부 산하 8250부대로 흡수되어 유격대로 존속하여 오다가 1954. 2 국군으로 정식 편입되었음.

다. 유격백마부대는 유격작전 기간 중 552명의 전사자를 내었고, 이들 전사자는 육군본부 민사감실에 통보되어 그 명단이 기록으로 보관되어 있으나 군적(軍籍)에 오르지 못하고 금일에 이르고 있음.>

"임란 때 義兵이 승전 이끌었듯, 유격백마부대 있었기에 6.25 戰勝 가능했다"

전제현 장군은 이날 행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징병대상자 명단을 보니 수원에만 4만 명의 징병요원이 있었다. 그런데 실전 동원군은 800명이 안 됐다”며 “(백성을 버리고 몽진을 떠난) 선조대왕도 잘못했지만 우리 백성도 나라를 지키려는 생각이 없었다. 낫과 곡괭이를 든 지방 의병들이 도처에서 일어나 일본군 보급로를 끊어서 왜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전 장군의 말이다.

“(왜란 때 의병처럼) 유격백마부대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6·25전쟁 당시 전세를 압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이분들의 공적을 기록해 놓고 기념사업을 계속 이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하다못해 돌아가신 분들 1년에 한 번 제사 지내겠다는데도, 서울의 어떤 곳에서는 강당과 사무실을 해마다 빌려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충혼탑과 표지석을 세운) 이 장소도 공들여 얻었습니다. (장소 마련을 위해) 모금을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많이 모였어요. 유격백마부대를 기억하는 국민들께서 ‘내가 비록 함께 참석해 기념은 못하더라도 모금을 돕자’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여기에 충혼탑을 세울 수 있었던 겁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와서 글씨도 써주시는 등 정부에서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도 젊은 학생들이 전쟁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이분들이 어떤 공적을 세웠는지 알게 해주려고 고등학교에서 많이 강의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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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현 장군이 기념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성룡 회장은 “유격백마부대는 국가를 위해서 평안북도 정주군 청년들과 오산학교(1907년 남강 이승훈 선생이 민족 교육을 위해 평안북도 정주에 세운 4년제 중등 과정의 학교)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부대”라며 “이분들이 한국전쟁 때 맥아더 장군 휘하 켈로부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신의주 아래 서해 5도의 모든 섬을 점령하는 등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총 3만 명의 켈로부대 용사 중 (한국 정부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서른 몇 분 정도인데, 저의 아버님을 포함해 우리 (유격백마) 부대에서만 6명이 받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최 회장의 말이다.

“우리 부대는 실질적인 전투를 제일 많이 한 부대입니다. 그토록 많은 북녘 땅을 점령했지만 정전협정 후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분들은 ‘한미 양국이 다시 (재점령) 하겠지’ 생각하고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북쪽) 고향에 부모형제를 놔두고 지금까지 못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 언론을 보면, 현 미국 대통령이 대여섯 살 지능(*편집자주: 트럼프 대통령이 유화 국면을 펼치는 북한 김정은에게 속고 있다는 의미의 조롱)을 가졌다고 합니다. 김정은은 아직 34살짜리 어린앱니다.

이 두 조그만 어린애들이 (대한민국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북은 미군 유해 보내주고, 미국은 ‘땡큐, 김정은’ 하고 말이죠. 남한에서는 최근 맥아더 동상에 불 지르는 반미집회까지 일어났습니다. 참 이게 있을 수 없는 현실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땡큐입니까? (유격백마부대) 이분들이 얼마나 원통해 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요. 지금 현 정권이 북한인권단체, 각종 보수단체 (지원을) 싹둑싹둑 다 잘랐는데 우리는 당당히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우리 켈로부대는 예산을 줘서 표지석을 세우게 해줬어요. 우리 (호국) 영령들이 대한민국을 지켜줄 겁니다. (반역자는) 절대 용서 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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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이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거행하고 있다.

나아가 최 회장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노림수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에서 미국으로 보낸) 미군 유해가 여태까지 총 443구였다. 미국은 시신 1구당 5만 900달러(약 5733만 원)를 북에 줬으니, 총 2254만 달러(약 254억 원)를 준 셈”이라며 “그런데 최근 제가 아는 대북 정보원 말에 따르면, 북한이 이미 발굴한 미군 유해 450구를 숨기고 있다더라. 그러면서 50 몇 구만 찾았다고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의 주장이다.

“(숨긴) 나머지 유해를 갖고 필요할 때 또 (미국과의 거래용으로) 써먹으려는 속셈이지요. 지금 함경남도 장진읍, 평안북도 운산구 구장읍, 개천시 주민들은 미군 유해 발굴에 안달 난 상태입니다. 달러를 주니까요. 자기(지도부)들은 5만 달러를 받으면서 주민들에게는 (발굴한 1구당) 100달러를 준답니다. 이런 곳이 북한입니다. 한미(韓美)가 절대 속아선 안 됩니다.”

최 회장의 부친 고(故) 최원모씨는 한국전쟁 당시 미국 사령부가 조직한 북파 공작원 첩보부대 ‘켈로부대’의 선박대장으로 활약했다. 최씨는 1967년 6월 5일 연평도 근해에서 조업하다 북한 무장선 10여 척에 포위돼 납북됐다. 북한은 최씨가 전쟁 때 좌익분자를 토벌한 공을 알고 전향을 유도했다. 최씨는 북의 회유를 거부했고 인민재판에 회부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최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최 회장은 지난 5월 10일 ‘제4차 북한 억류자 및 납북자 송환 촉구 집회’에서 “납북자가 516명인데 아직 많이 살아 있다. 생업에 종사하다 끌려간 분도 있고, 학생·목사들도 많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 생사 확인 정도라도 해 줬으면 한다. 돌아가셨으면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무관심한 것 같다”며 “우리 정부가 못한다면 미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김정은에게 납북자 관련 재발 방지와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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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이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에 조성된 유격백마부대 충혼탑과 표지석 앞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오는 10월 24일 양재시민의 숲에서 유격백마부대 호국영령 추도식이 예정돼 있다. 최 회장은 "역대 국회의원들 호국용사 관련 보상 법안 하나 통과도 안 시키면서 무슨 나라를 지키자고 떠드는가"라며 "나는 오직 호국정신으로 공산주의를 무찌르려던 그 혼백이 자랑스럽다. (우리 단체가 그분들을) 영원히 기려 나가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19대 국회 때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6.25 전쟁 비정규군 관련 보상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이러고도 무슨 안보정당, 보수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현재 20대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모쪼록 이번에는 여야가 합심해 북한 김일성이 가장 두려워 했던 켈로부대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좌중에선 "박수 한 번 치자"는 호응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사진=조현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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