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김정은-기자 주) 입을 통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얘기를 직접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정 실장(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기자 주)이 전하는 얘기일 뿐인데, 나중에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잡아떼면 어떡할 것인가. 김 위원장이 정말 비핵화 실행 의지를 갖고 있다면 핵물질 리스트를 내놓는 등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이 그렇게 하겠다는 어떠한 의지도 보여준 적이 없다.”
- 신원식 전 합참차장. 사진=뉴시스
작전·전략 전문가로 꼽히는 신원식(예비역 육군 중장)씨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군(軍) 개혁과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신씨는 육사 37기로 임관하고 육군 3사단장, 합참 작전본부장, 합참차장 등을 역임했다.
7일 자 <문화일보>는 신원식씨와의 인터뷰 기사를 2면을 할애해 자세히 전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신씨는 최근 논란이 되는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과 관련해 “내란 음모 또는 쿠데타 명분을 크게 걸어서 겁을 준 다음 군에서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등 청와대가 정권 입맛에 맞게 군 인사를 하고, 정부의 안보정책에 대해 군에서 반발할 경우 아예 원초적으로 봉쇄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신원식씨는 “기무사에서 계엄을 검토한 8쪽짜리 문건뿐 아니라 67쪽짜리 대비계획 세부자료의 위법성을 두고 법리 다툼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무사 계엄 문건 자체를 내란 예비음모죄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다. 이어지는 신씨의 설명이다.
“내란, 쿠데타는 새 정권을 세우는 행위다. 그렇다면 기존의 입법·사법·행정 등 국가의 기존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권력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전제가 들어가야 쿠데타 주장이 성립된다. 또 새로운 통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5·16 때 국가재건최고회의, 5공 정권 때 신군부가 5·17 계엄 확대 조치를 하면서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그런 건 전혀 없다.”
신씨는 “정말 쿠데타 시도였다면, 계엄 검토 문건에서 보듯, 국회가 계엄 해제할 것을 눈치 보고, 국방부 비상대책회의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라며 “기무사 계엄 문건의 일부 위법성 논란이 제기된 문서 자체는, 내란 음모가 아니라는 확실한 방증”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기무사 계엄 검토 문건은 현행 법질서하에서 ▲경찰력을 초과하는 치안 부족 상태나 ▲무기고가 탈취돼서 총격전까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 ▲북한의 도발이나 대규모 침투가 있을 경우 등 세 가지 조건하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 군이 어떻게 임무를 수행하는지를 검토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문건에는 국회가 계엄을 해제했을 때 여러 가지 혼란을 우려해 국회가 계엄 해제를 못 하도록 직권상정을 방지한다든지 여러 안(案)을 검토한 흔적이 발견된다. 이를 근거로 신씨는 “그 자체가 내란 및 쿠데타의 확실한 증거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내란 및 쿠데타를 시도했다면 국회를 해산하려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원식씨는 “누군가가 기무사 계엄 문건을 통해 정권 입맛에 맞게 군대를 완전히 조정 통제하고 군대 내 안보정책과 국방정책에 대해 반발을 줄이는 데 굉장히 유용한 재료로 보고, 정치적으로 그 효용성을 감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청와대 직보(直報) 행위, 인사 동향 제공, 인사 개입 이런 것을 없애고 정말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해서 기무사가 권력기관이 아니고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개악(改惡)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내란 음모 해프닝을 벌인 것이라면 훗날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기무사령부 해편(解編)과 함께 출범한 국군 안보지원사령부에 대해 그는 “안보지원사가 보안·방첩 전문기관으로 국방·안보에 도움이 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려면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소지, 동향 보고를 통한 인사 개입, 청와대 직접 보고를 통한 군외(軍外) 업무에 대한 과도한 확장부터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안보지원사의 청와대 출입을 원천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남북 간에 대두되는 종전 선언에 대해 신씨는 “4·27 판문점 선언에 의하면 북한이 느끼는 군사적 긴장, 충돌로 갈 수 있는 모든 행위가 적대행위에 해당된다”며 “북한에 대한민국의 정당한 모든 활동을 적대행위로 간주할 수 있는 ‘만능보검’을 쥐여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신씨는 “북한은 종전 선언 요구를 관철한 뒤 그것을 근거로 남한에 원하는 것을 차근차근 요구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단 종전 선언만 해놓으면 문재인 정부 스스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를 이유로 북한이 원하는 분위기를 마련해 갈 것으로 판단된다. 김 위원장(김정은-기자 주) 입을 통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얘기를 직접 들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정 실장(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기자 주)이 전하는 얘기일 뿐인데, 나중에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 잡아떼면 어떡할 것인가. 김 위원장이 정말 비핵화 실행 의지를 갖고 있다면 핵물질 리스트를 내놓는 등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북한이 그렇게 하겠다는 어떠한 의지도 보여준 적이 없다.”
신씨는 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가늠할 몇 가지 기준도 제시했다. ▲북한의 핵시설에 대해 임의로 선정하고 ▲임의 시간에 무조건적인 사찰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하고 ▲핵물질 생산을 동결한 뒤 현재의 핵무기 리스트뿐 아니라 미래의 핵 잠재능력 리스트도 제공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북한이 헌법과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는 것도 비핵화 의지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라고 신씨는 말했다.
오는 12월 발간되는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구가 삭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신원식씨는 “지금 분위기로 봐서 북한이 적(敵)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게 되면 아마 군의 정신 전력을 훼손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삭제될 경우, 장병 정신 교육 체계의 본질을 흔들 수 있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