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변화된 시대상을 적극 반영하고 미래지향적이며 진정한 국민의 군으로 거듭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헌병(憲兵), 정훈(政訓) 등 병과의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병의 경우, 그 명칭이 일본군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게 명칭 변경의 주된 이유. 국방부 당국자는 “헌병 병과의 명칭이 일제시대 악명 높은 ‘헌병’에서 유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이번에 개칭하기 위해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헌병의 대안으로 군경(軍警), 군사경찰, 군경찰, 경무 등이 검토되고 있는데, 군사경찰이 유력하다고 한다.
정훈병과도 공보, 혹은 소통으로의 개칭이 검토되고 있다. “정훈은 정치훈련을 줄인 말로, 업무 분야인 군의 공보·홍보, 정신교육 등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이번 병과 명칭 변경은 단순히 이들 병과의 명칭 변경에 그치지 않고 다른 병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병과의 기능과 임무를 전반적으로 개선-개편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병과 명칭 변경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육군 부관(副官) 병과는 2014년 인사행정병과로, 경리(經理) 병과는 2012년 재정병과로, 통신(通信) 병과는 2005년 정보통신병과로 이름을 바꿨다. 공군도 항공무기정비과 보급수송 등 2개 병과를 2013년 군수병과로 통합한 바 있다. 이들 병과들은 유사한 기능들을 흡수, 업무영역이 확대되면서 병과 명칭을 바꾸었다. 반면에 헌병, 정훈 병과는 이름만 바뀌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병과 명칭을 꼭 바꾸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헌병’이라는 말이 일본군에서 유래한 것이라지만, 이미 대한민국 국군이 그 이름을 써온 지 70년이 지났다. ‘헌병’이 일본군의 잔재라면, 참모총장이라는 말도 일본군 잔재다. 사단(장)-연대(장)-대대(장)-중대(장)-소대(장) 같은 말들도 그렇고....‘정보(情報)’라는 말도 일본군에서 나온 말이다. 소총, 수류탄, 어뢰, 전투기 등등 군대 용어 가운데 일본군에서 유래하지 않은 게 드물 것이다. 군대 밖으로 눈을 돌리면, 헌법, 공화국, 민주주의 같은 말이나, 철학, 경제학, 연골, 갑상선 같은 말들이 죄다 일본인들이 만든 말들이다.
정훈(政訓)이라는 말은 국군 장병들에게 사상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이범석 초대 국방부 장관이, ‘정훈’을 소련식 ‘정치장교’로 오인해 반대하는 미국 군사고문들을 설득해 정훈병과를 창설하면서 만들어낸 말이다. ‘정훈’이라는 말 속에는 건군(建軍)의 고민과 감격이 녹아 있다.
미국에는 아직도 기병사단(Cavalry Division)이 있다. 영화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에 나왔던 제1기병사단(1st Cavalry Division)이 바로 그 부대다. 그렇다고 말을 타는 기병은 아니다. 헬기 등을 이용한 기동부대다.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월남전에서 용명을 떨쳤다. 말에서 장갑차량과 헬기 등으로 수단이 바뀌었지만, 그 명칭이 ‘시대착오적’이라거나 지금 있는 부대의 성격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부대 이름을 바꾸자는 논의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제 군대건, 정부건, 역사나 운영에 오점 좀 있다고 해서 이름을 바꾸는 짓은 그만 좀 했으면 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행정안전부를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서 ‘안전행정부’로 바꾸었지만, 세월호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내실(內實)’이다. 그럼에도 굳이 병과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개칭을 강행하겠다면, 거기에는 국군의 역사와 전통을 지워나가겠다는 속셈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