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F-16 전투기의 최초 배치 30주년을 맞아 지난 12월 5일 서울 공군호텔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게리 노스 록히드마틴 부사장(전 미국 태평양 공군사령관)이 'F-16, 50년 글로벌 안보와 파트너십'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록히드마틴
F-16의 최초 비행 50주년과 공군 주력전투기 KF-16 전투기의 최초 배치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가 지난 5일 서울 공군호텔에서 열렸다. 록히드마틴코리아 주관으로 열린 ‘F-16 Day’ 행사엔 쟁쟁한 전직 공군 장성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행사에는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원인철 전 합참의장, 이계훈·박인호·정상화 전 공군참모총장, 이선희·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 전영훈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T-50 개발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행사장엔 F-16과 깊은 인연을 맺은 두 인물이 있었다. 록히드마틴 부사장인 게리 노스(Gary North) 전 미국 태평양공군사령관과 록히드마틴 한국지사장을 지낸 김용호 박사였다. 노스 부사장은 1992년 F-16으로 이라크 공군의 MiG-25 전투기를 격추한 전설적인 조종사다. 그는 F-16의 50년 개발사, F-16과 연관된 한국 공군과의 파트너십을 이야기했다.
F-16 개발사 제너럴다이내믹스에 근무한 김 박사는 F-16 도입과 T-50 탄생의 산증인이다. 김 박사는 “정부가 율곡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도입사업에서 F-16이 아닌 F-18을 선정했다가 미국이 가격을 30%나 올리자 F-16으로 기종을 변경한 것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일이었다”며 “F-16의 성능이 계속 진화하는 걸 보면서 가장 성공적인 국책사업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F-16 제조사이자 행사를 주최한 록히드마틴 코리아 이원익 대표는 “대한민국의 F-16 도입은 가장 성공적인 전투기 도입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K)F-16은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항공방위산업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4500여대 생산된 ‘베스트셀러’
록히드마틴이 생산하는 F-16은 1970년대 개발한 전투기 가운데 지금껏 현역에서 활약하는 전투기의 ‘베스트셀러’다. 4500여 대가 생산돼 전 세계 27국에 배치됐다. 1974년 초도비행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개량을 거듭하며 ‘멀티롤 전투기’로 거듭나는 중이다. 처음엔 ‘하늘의 제왕’이라고 한 F-15의 보조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기로 개발됐다. 그런데 ‘파이팅 팰컨(매)’이란 이름처럼 가볍고 빨랐고 공대공 전투력이 뛰어났다. 크기에 비해 무장 탑재력과 항속 거리가 길어 다양한 작전에 투입할 수 있었다. 단발 엔진이라 가격은 저렴했고, 성능이 뛰어나다 보니 잘 팔리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F-16은 실제 공중전에서 격추된 적이 없다. 그만큼 뛰어난 기동성을 자랑한다. 1982년 레바논 분쟁 때 이스라엘 공군은 시리아와 사흘 동안 벌인 ‘베카 계곡’의 공중전에서 미그-21과 미그-23 등 86대를 격추했다. 시리아는 이스라엘의 F-4 팬텀 한 대만을 격추하는, 공중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배를 맞봤다. 작전에 참여한 이스라엘의 F-15가 격추한 전투기를 제외하고 F-16이 44대의 시리아 전투기를 지상에 떨구었다. 1981년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알키바르 핵 시설을 초저공 비행으로 폭격한 일명 ‘과수원 작전’의 주역도 F-16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도 투입
F-16은 무기 이전(Arms Transfer)을 둘러싸고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도 이용된다. 미국은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총리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격렬하게 반대하자, 달래기 위해 신형 F-16의 판매를 승인했다. 미국은 러시아와 밀착 관계를 유지하는 튀르키예에 신형 F-16을 판매하지 않았고, 구식 F-16뿐이던 튀르키예는 몸이 달아있었다. 한편으로 튀르키예와 그리스가 국경 분쟁 때 동시에 발진시킨 전투기도 F-16이었다.
F-16이 전쟁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F-16을 지원할 거란 소식이 나오자 러시아 외무장관은 “핵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발끈했다. 러시아의 미그형의 웬만한 전투기로는 F-16을 당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29개월 이상 기다려온 F-16을 지난 8월초 실전에 배치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의 날 기념식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F-16이 우크라이나에 있다. 우리가 해냈다”며 “이 제트기를 숙달하고, 이미 조국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한 우리 장병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노후화된 옛 소련 구형 전투기에 의존해와 러시아의 전투기에 비해 월등히 열세였다. 우크라이나는 F-16이 고갈된 공군력을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5월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수백 차례 회의와 외교적 노력을 통해 F-16을 확보했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제공권 균형을 이루려면 F-16 전투기 약 130대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승인 이후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조종법을 훈련받고 서방 동맹국들은 현재까지 100대 미만을 약속한 상태다.
‘피스브릿지 사업’으로 대한민국과 인연
대한민국과 F-16의 인연은 1986년에 시작됐다. ‘피스브릿지’로 명명된 사업을 통해 F-16PB 40대가 공군에 최초로 도입됐다. 기종은 F-16C/D Block 32 전투기다. 이후 F-X 사업 직전에 KFP(한국형전투기사업) 1, 2차 사업으로 140대의 F-16C/D Block 52D를 전력화해 총 180대의 F-16C/D 도입국으로 기록된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 네덜란드에 이은 세계 6번째 도입 규모다.
‘피스 브릿지’ 사업으로 F-16C/D Block32 전투기 40대가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도입됐으며, KFP 1차 사업으로 F-16C/D Block 52D 120대를 1994년부터 2000년까지 도입했다. F-16 직도입 12기, 단순조립 생산 36기, 라이선스 생산 72기 등 총 2002년까지 120기가 납품됐다.
그런데 1998년 당시 F-16 라이선스를 맡던 삼성항공이 “KTX-2 사업(T-50 제작 사업)도 미뤄졌는데 KT-1과 KF-16 라이선스 생산을 동시에 종료하면 곤란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김대중 정부는 항공산업의 육성을 위해 국내 항공기업을 통폐합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설립했고, KFP 2차 사업으로 F-16C/D Block 52D 20대를 생산하도록 했다. KFP 2차 사업으로 도입된 F-16C/D Block 52D 20대는 2003년 말부터 2005년까지 2년에 걸쳐서 전력화됐고, KFP 사업은 2006년까지 총 140대를 공군에 공급하면서 종료됐다.
(K)F-16은 30년 넘게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2021년 기준 공군은 134대의 KF-16과 34대의 F-16PBU를 운용 중이다. KF-16은 총 7개 대대(RF-16 1개 대대), F-16PB는 총 2개 대대다.
F-16을 도입하는 차세대전투기사업(KFP)의 뒤를 이어 2차례의 차기전투기(FX) 사업으로 60대의 F-15K가 도입됐고, 3차 FX 사업 대상 기종으로 40대의 F-35A 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최신예 전투기 도입이 오랫동안 뜨거운 이슈였기에 F-16의 중요성이 간과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당분간 160여 대의 F-16이 F-15K와 함께 우리 공군의 가장 강력한 항공세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F-16은 공군의 핵심 항공세력

F-35A의 2차 전력화가 완료되는 시점은 2027년 이후다. KF-21의 경우 현재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돼도 2026년이 돼야 초도기를 받을 수 있다. 또한 KF-21의 우선 교체 대상은 F-5E/F이어서 2026년 이후에도 160여 대의 F-16은 여전히 공군의 핵심 항공세력으로 남게 된다.
이 때문에 KF-16이 근미래의 항공 작전 환경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능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최신형 위상 배열(AESA) 레이더와 전자전 장비를 달고 외부 부착형 연료 탱크를 통해 항속 거리도 늘렸다. 전술핵도 탑재가 가능하다. 최신형인 F-16V는 F-15를 능가한다고 한다. 134대의 KF-16은 매년 10여대씩 레이더와 임무 컴퓨터, 데이터 링크 등을 교체하는 업그레이드를 받고 있다.
F-16이 소속된 제20전투비행단은 서해 공역 방어를 담당한다. 서해 방면에서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것 또한 제20전투비행단의 역할이다. 연평해전 직후 제20전투비행단의 KF-16이 AGM-84 공대함 하푼과 AGM-65G를 탑재하고 출격하여 북한 해군을 압박했다. KF-16 전투기는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에도 F-15K와 함께 출격했다.
당시 출격한 KF-16은 공대공 임무와 공대지 공격 임무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제20 전투비행단의 공대공 임무를 위해 출격하는 대대는 스크램블을 준비했고, 다른 대대는 JDAM(합동정밀직격탄) 등 공대지 무장과 자위 목적의 공대공 미사일 2기를 탑재하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이 공대지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RF-16 정찰기가 출격해 TAC-EO/IR 포드를 활용해 타격할 표적을 획득한다. 타격 후에는 역시 RF-16이 BDA(폭격피해평가)를 위한 영상 정보를 획득해 이를 바탕으로 폭격 효과를 분석한 후 추가공격 여부를 결정한다.
충주 기지의 제19 전투비행단은 주로 한반도 중부 공역과 동해 공역 방어 임무 등을 담당한다. 제19전투비행단과 제20전투비행단 모두 F-15K가 도입되기 전에는 북한에 대한 AI(항공차단, Air Interdiction), BAI(전장항공차단, Battlefield Air Interdiction)를 담당했다. 지금도 KF-16은 여전히 AI 등 공격적인 임무도 담당한다. 제19전투비행단에서 동해 공역 방어를 위해 공대공 임무 때는 주로 미디엄 엔드(medium-end) 전투기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이는 F-15K 전투기가 주력이 되는 공대공 작전을 KF-16이 백업할 수 있다는 의미다.
F-16 덕분에 T-50 훈련기까지 개발
F-15K와 KF-16은 서로 기동 특성이 비슷하면서도 장단점이 거의 대치되기 때문에, 양자를 상호 보완적으로 운용할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크다. KF-16과 F-15K 모두 5,000피트 정도 고도에서 최적의 선회 성능을 갖는다. KF-16은 이 고도에서 F-15K 못지않은 높은 지속 선회율과 F-15K보다 더욱 높은 반응성과 횡전율(roll rate) 덕분에 중고도 이하의 근접전에서 우세를 보인다.
F-15K는 고고도에서 공대공 전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면, 중고도와 그 이하에서 기동성이 우수한 KF-16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를 담당하는 식으로 공대공 전투 임무에서 손발을 맞춘다. F-15K가 고고도에서, KF-16이 중고도 이하에서 ‘환상의 궁합’으로 공대공 임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운용하는 3개 대대의 F-15K 중에서 2개 대대만을 동해 방면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을 이용한 연속적인 공대공 작전 운용은 쉽지 않다.
따라서 F-15K가 1개 대대씩 공대공 작전을 이어 받으며 작전할 때, KF-16이 중간에 잠시라도 2~3개 대대가 공대공 임무를 담당한다. 따라서 KF-16이 여전히 중요한 공대공 작전 세력이다. F-16으로 우리 영공을 수호하고, 그 오프셋으로 받은 T-50 고등훈련기를 제작한 우리가 전투기 수출국의 반열에 올랐으니, F-16은 우리 항공역사의 기념비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