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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세계 初演과 함께 한 유종 지휘자와 신재민 피아니스트

11월 22일 울산시향 240회 정기연주회 <격동의 사반세기>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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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유종.

 

지난 11월 22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지휘자 유종(兪淙, 전 포항시향 상임지휘자)이 울산시향피아니스트 신재민과 더불어 12년만에 화려한 복귀를 마쳤다. 유종은 초대 법제처장과 고려대 총장을 지낸 유진오(兪鎭午) 박사의 3남이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 중 ‘7개의 베일의 춤’을 관현악으로 재편성해 세계 초연(初演)을 했고 근대 프랑스 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 오느게어의 ‘여름의 전원’도 국내 초연해 큰 박수를 받았다.


울산 출신 피아니스트 신재민은 울산시향과의 협연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했다


음악칼럼니스트 김승열씨가 이날 공연의 벅찬 감동을 《월간조선》에 보내왔다. 김승열은 지휘자 유종에 대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시야를 넓혀도 이런 진귀한 지휘자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신재민을 두고 "그의 타건은 시종일관 뿌리깊고 그윽한 향내를 풍겼으며 라흐마니노프는 전혀 새롭게 들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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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유종의 12년 만의 복귀무대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마에스트로 종 빅토린 유(Djong Victorin Yu, 1957~). 2012년 4월 포항시향 상임지휘자에서 물러난 그가 12년 여 만에 국내 복귀무대를 가졌다. 지난 11월 22일(금)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유종은 울산시립교향악단을 이끌며 20세기 초반에 작곡된 혁명적인 작품들을 지휘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오페라 ‘살로메’ 중 ‘일곱 베일의 춤’을 시작으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 협주곡 3번(신재민 협연), 프랑스 6인조의 한 명인 아르튀르 오네게르(1892~1955)의 ‘퍼시픽 231’과 ‘여름의 전원’, 모리스 라벨(1875~1937)의 ‘볼레로’가 프로그램. 이 중 1920년 작인 ‘여름의 전원’이 한국초연이었고, ‘일곱 베일의 춤’ 또한 1905년 초연 당시의 편성으로 관현악을 복원한 뜻 깊은 무대였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울산시향의 5대 상임지휘자를 지낸 유종의 24년 만의 울산시향 복귀무대이기도 했다.

 

화면 캡처 2024-11-25 23402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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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1998년까지 영국 최고 악단인 런던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Philharmonia Orchestra)를 객원지휘하며 세계적인 지휘자로 발돋움한 시기가 유종의 황금기였다. 당시 유종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14장의 음반을 녹음했고, 그 중 10장이 CD로 출시되어 화제를 뿌렸다. 역사상 동양인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남긴 최고의 실적이었다.


당시부터 유종은 클래식 레퍼토리의 스테디셀러에 매몰되지 않고, 널리 소개되지 않은 관현악 명작을 지휘하는데 주력했다.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녹음/출시한 10장의 CD에 담긴 곡들 중, 러시아 5인조 밀리 발라키레프(1837~1910)의 ‘이슬라메이’와 ‘세 개의 러시아 민요에 의한 서곡’은 진기명기 수준이었고, 라흐마니노프의 ‘죽음의 섬’ 또한 작품의 진가를 되살린 명연이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의 현악 6중주 ‘피렌체의 추억’은 유종이 대편성 현악 버전으로 오케스트레이션한 초유의 녹음이었다. 라흐마니노프의 단악장 ‘청년 교향곡’ 또한 유종이 발굴해 녹음한 가작이었으며, 카미유 생상스(1835~1921)의 ‘편백나무와 월계수’도 유종이 녹음하기 전까지 미지의 작품이었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에른스트 토흐(1887~1964)의 ‘빅 벤 변주곡, 웨스트민스터 종소리에 의한 환상곡’은 세계 최초 녹음이었다. 녹음 22년 만인 2018년 지각출시된 빅터 허버트(1859~1924)의 ‘아일랜드 광시곡’과 라흐마니노프의 칸타타 ‘봄’이 명곡인 줄도 미처 몰랐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시야를 넓혀도 이런 진귀한 지휘자는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12년 만에 들고 온 레퍼토리도 지극히 유종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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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베일의 춤’은 107명 이상의 괴물 교향악단의 편성이 필요한 곡이다. 지휘자 유종은 이 곡의 원본을 바탕으로 최소판의 악기만을 사용하되 잘려나간 부분을 복원하는 작업을 5개월에 걸쳐 완성해 지난 11월 22일 처음으로 초연했다. 사진은 그가 완성한 악보다.

 

<춤곡의 사반세기>였던 <격동의 사반세기>


슈트라우스의 ‘일곱 베일의 춤’의 최초 출판악보가 초연버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한 유종은 1905년의 초연버전에 근접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하는데 5개월을 씨름했다.


그 결과가 이번에 세계초연으로 연주된 유종의 관현악 재편성 버전 ‘일곱 베일의 춤’이었다. 탄력적 명연이자 특유의 리드미컬한 광포함이 부각된 쾌연이었다. 현악기의 점도(粘度)가 좀 더 끈적거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포문을 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어진 라흐마니노프의 악명 높은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별미였다. 신재민은 2010년 유종 지휘 포항시향과의 무대에서 에르뇌 도흐나니(1877-1960)의 ‘동요에 의한 변주곡’을 한국초연한 장본인이다. 2022년에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의 초판과 개정판을 유종이 병합편집한 제3의 버전을 세계초연하기도 했다. 그만큼 유종과의 인연이 각별한 연주자다. 신재민의 타건은 시종일관 뿌리깊고 그윽한 향내를 풍겼다. 선 굵은 호방함으로 일관한 그의 손아귀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전혀 새롭게 들렸다.


특히 1악장 마지막의 카덴차가 압권이었다. 돌처럼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물량감이 전해졌고, 또렷한 음상과 우직한 발걸음으로 질주했다. 유종의 지휘는 웅변적이면서도 디테일에 능했다. 그가 이끌어낸 울산시향의 잿빛 음색이 작품 특유의 기조에 부합했고, 피아노 너머로 은근한 음향의 실루엣을 창출했다. 신재민은 앙코르로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와 유리디스’ 중 ‘정령들의 춤’을 연주했다. 원곡인 플루트 독주의 관현악 버전과는 맛이 다른, 디테일의 극치가 부각됐다.


후반부가 특히 역사적이었다. 아마도 2014년 7월 야마다 가즈키(1979- )가 이끈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서 연주되고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싶은 오네게르의 ‘퍼시픽 231’에서 유종은 기차가 구동하는 물리력을 생생히 포착했다. 증기기관차 퍼시픽 231의 점진적인 운행이 한 폭의 영상이 되어 펼쳐졌다. 음향의 광경화임에 틀림없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작곡 104년 만에 한국무대에 오른 오네게르 최초의 관현악곡 ‘여름의 전원’은 대단히 나른한 음악이다. 제목 그대로 한여름의 나른한 자연풍경을 묘사한 이 곡은 기계의 인위성을 포착한 ‘퍼시픽 231’과는 대비되는 작품이다. 오네게르는 자연과 기계의 본성을 즉물적으로 음악화한 작곡가였다. 이 같은 진리를 유종이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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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유종과 피아니스트 신재민. 신재민이 앙코르로 들려준 ‘정령들의 춤’도 그렇고, 한여름 공기의 정(精)의 부유를 보는 듯한 ‘여름의 전원’ 또한 정적인 춤곡이라 할 만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노가 무용으로 변용된 듯한 광기의 무브먼트 자체였다. 

 

이번 음악회의 표제는 <격동의 사반세기>였다. 1905년 작인 ‘일곱 베일의 춤’으로부터 1909년 작곡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1920년 완성된 ‘여름의 전원’과 1923년의 ‘퍼시픽 231’을 거쳐, 1928년 발표된 ‘볼레로’까지의 사반세기를 포괄한다는 의미였다. 그 대미를 장식한 라벨의 ‘볼레로’가 끗발을 세웠다. 동일한 리듬, 동일한 선율이 고조, 증폭되어 클라이맥스를 구가할 때 돌연 무너져 내리는 물량의 실체란 무엇인가. 그러고 보니 이 날 <격동의 사반세기>는 <춤곡의 사반세기>라 불러도 좋을 공통분모가 있었다. ‘일곱 베일의 춤’과 ‘퍼시픽 231’, ‘볼레로’는 율동을 근간으로 한 춤곡이다.


신재민이 앙코르로 들려준 ‘정령들의 춤’도 그렇고, 한여름 공기의 정(精)의 부유를 보는 듯한 ‘여름의 전원’ 또한 정적인 춤곡이라 할 만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노가 무용으로 변용된 듯한 광기의 무브먼트 자체였다. 그만큼 20세기 격동의 첫 사반세기는 역동적이어야만 했던 춤의 시대였다. 그래서 이 시기를 풍미한 러시아 발레단(Ballets Russes)의 수석 발레리나 이다 루빈스타인(1883~1960)은 라벨에게 ‘볼레로’를 위촉했고,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연극 <살로메>를 안무해 1908년 러시아에서 직접 초연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전라(全裸)의 독무(獨舞)로써.


‘볼레로’가 증폭되어 감에 따라 유종의 지휘는 등 근육이 울퉁불퉁되는 순간이 선명히 보일 만큼 역동적으로 변모했다. 12년의 공백을 무색케 하는 노장의 투혼이 오롯이 느껴졌다. 이날 거장은 귀환의 팡파레를 확실하게 울렸다. 

입력 : 202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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