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군사이버사령부 상징 문양. 사진=조선DB
이명박 정권 시절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工作) 의혹과 관련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11일 새벽 구속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최근 세계 각국이 적극 강화하는 ‘사이버 국방·안보’의 중요성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8일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김 전 장관에게 구속영장(군형법상 정치관여)을 청구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 등에게 당시 여권을 옹호하고 야권을 비판하는 온라인 정치관여 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7일 오전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김 전 장관은 “북한의 기만적인 대남 선전선동에 대비해서 만든 것이 국군사이버사령부 사이버심리전단이고 본연의 임무 수행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이버사령부 활동은 북한의 국내 정치공작에 대처하는 정상적인 작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세계는 지금 사이버전쟁 중
비록 정치적 시빗거리에 휘말리긴 했어도 사이버국방은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안보전략이 아닐 수 없다. 육탄전(肉彈戰)과 백병전(白兵戰), 중장거리 미사일전 못지않게 원거리 내지는 가상공간에서의 심리적·물리적·화학적 공세와 사이버 방어체계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이미 국제사회의 안보기조는 사이버국방 체제로 접어들고 있다. 2009년 이후부터 미국은 백악관이 국가 사이버 안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내 사이버안보국에서 대통령 정책 자문을 맡는다. 사이버안보국 내 사이버안보조정관이 국가 사이버안보정책을 통할한다.
미국은 특히 사이버 공격에 능한 러시아와 북한에 대해 경계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미국 상원의회 사이버보안 소위원회 간사인 빌 넬슨 민주당 의원은 “중국, 러시아,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북한의 사이버 공세는 핵·미사일과 함께 한미 양국에 대한 비대칭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이 대남 여론공작서부터 국내외에 디도스 공격 등 각종 해킹 시도까지 서슴없이 자행하는 이유도 그들 나름대로 사이버 국방체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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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7일 오전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공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출두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그로 인해 최근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책 중의 하나로 사이버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8월 19일 한국계인 존 유 버클리대 교수 또한 《뉴욕 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총알 하나 쏘지 않고 북한을 길들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며 대북 사이버전 전개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국의 경쟁상대 중국도 사이버국방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2017년 10월 18일에 베이징에서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이버국방의 중요성을 빈부격차·테러·전염병·기후변화 문제 등과 함께 강조했다. 시 주석은 회의에서 2050년까지 중화민족을 부흥시킬 기본 요건으로 사이버보안 강화를 거론했다.
중국 인터넷서비스 전문업체 ‘텐센트’의 ‘2017 상반기 인터넷 시큐리티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중국에서 사이버보안을 전공한 학생은 3만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인력 수요의 경우 70만 명에 이르고 오는 2020년까지 140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 교육 당국은 시 주석 지시에 따라 앞으로 10년 내 4~6개의 사이버보안 전문대학을 설립할 방침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테크나비오’ 또한 중국 사이버보안 시장이 매년 두 자릿수 이상 성장, 2014년 21억1000만 달러에서 2019년 36억2000만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단일국가 차원에서만 사이버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8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이틀간의 일정으로 벨기에 브뤼셀에서 국방장관회의를 열어 사이버전 대응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이버작전센터’를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UN(국제연합) 또한 근래 들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사이버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각 나라마다 사이버위협 대응체계를 갖출 것을 촉구했다.
6000명 사이버군단 무장한 北… 우리는 “사이버司 없애라”
한국에 가장 큰 사이버 위협은 역시 북한이다. 10월 15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는 북한 해커 군단의 총 인원이 6000명이 넘을 정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미국·영국 보안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서 크리스 잉글리스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부국장은 “사이버는 북한의 맞춤 국력 도구”라며 “초기 비용이 적게 들고 어느 정도 익명성과 비밀이 보장돼 국가와 민간 인프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기술적으로 정교해서가 아니라, 매우 적은 비용으로 모든 목적을 달성해서 그들은 지구에서 가장 성공적인 사이버 프로그램을 보유했다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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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8일 국방부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기무사령부, 사이버사령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이재수 기무사령관(왼쪽)이 대표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당시 서 차관은 “세계 각국은 사이버 공간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경쟁을 지속적으로 심화하고 있다”며 “우리 군은 국방 전반에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 공격에 더욱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국방부는 대적 우위의 사이버 전력 지속 보강, 사이버 작전 수행체계 발전, 정예·전문화된 사이버 전사 양성 등 대응책을 논의했다.
사이버국방 강화 정책에 있어 미국과의 협력 및 공조도 진행될 전망이다. 이달 8일 한미 양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한 공동언론발표문에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악의적인 사이버 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한미 사이버 대화 등을 통한 사이버 분야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9일에는 마이클 로저스 미국 사이버사령관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만나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한 공동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도 로저스 사령관과 같이 국방부를 찾았다. 로저스 사령관은 작년 11월에도 비공개로 방한, 국군 관계자들과 만나 북한의 사이버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을 의논했다.
한 나라의 사이버국방 완비는 군부만 나서서 구축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민간에서도 사이버국방 강화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국방 워게임(War-game) 및 사이버전 모의훈련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회사 ‘두두아이티’의 박영선 연구소장은 2016년 8월 16일 자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사이버 테러가 벌어져도 소프트 타깃(군이나 테러리스트 공격에 취약한 민간 기관, 기업)이 가진 인프라가 튼튼해야 군과 국가 단위의 사이버 안전도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군뿐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사이버안보체계 정립은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나라 사이버국방을 지탱하는 사이버사령부가 최근 해킹사건·댓글공작 등 여러 불미스러운 의혹으로 점철된 가운데, 여권 일각에서는 사이버사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1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2017년도 국정감사에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군 사이버사령부의 법원 해킹 의혹 관련 기사가 보도됐고 상당히 구체적”이라며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며 사령관이 사령부의 존폐를 걸고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이 의원은 “우리나라 법원을 해킹했다면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없애야 한다”며 “그런 의지를 갖고 (조사)해달라”고 국방부에 주문했다.
“사이버국방은 적폐가 아니다”
최근 사이버사령부에 제기된 각종 추문과 의혹에 대해서는 당연히 수사당국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같은 의혹들로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는 사이버국방, 사이버안보의 시의성과 중요성 자체가 훼손돼서는 안 되지 않을까.
올봄 랜섬웨어 사태가 벌어질 당시 북한의 사이버테러 방지를 위해 국가 사이버안보체계의 재구축을 촉구한 글이 있었다. 5월 24일 자 《머니투데이》에 기고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비례대표 출신)의 칼럼이다. ‘국가 사이버안보체계의 재구축이 시급하다’라는 제목의 해당 칼럼에서 김 의원은 “사이버테러 대응 및 정보보호 업무를 총괄할 거버넌스 개편이 시급하다”며 “사이버테러 위협이 있을 때마다 컨트롤타워의 중요성을 외쳐 왔지만, 정작 우리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이버안보 컨트롤타워는 청와대와 대통령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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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2일 오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조선DB |
이어 그는 “사이버테러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북한의 경우 사이버전력의 핵심인 기존 정찰총국 외에 전략사이버사령부를 추가로 조직해 사이버전 인력을 6800명까지 늘렸다”며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10년에서야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지만 사이버 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김 의원은 “사이버테러는 이제 물리적 도발에 못지않은 국가안위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라며 “새 정부는 철저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현 정권의 적폐청산 기조가 사이버국방체계 자체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칼럼도 최근 게재됐다. 2017년 11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홍승일 수석논설위원은 ‘사이버 국방은 적폐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 홍 위원은 칼럼에서 “댓글 여론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장관에게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검찰은 2010년 사이버사령부를 만든 MB에게까지 칼끝을 겨눈다”면서 “그렇다고 ‘사이버사령부를 차라리 없애라’는 여권의 주문은 어불성설”라고 지적했다.
또 홍 위원은 “사이버 전쟁이 국가 명운을 좌우하게 된 건 상식에 속한다. (중략) 해킹은 이제 정보 빼가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 기간시설과 미사일 같은 첨단무기에 침투해 기능을 무력화하는 데 쓰인다”며 “우리 국군에 사이버 병과는커녕 주특기조차 없다. 사이버사령부 인원 600여 명은 북한의 ‘해커 전사’ 숫자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이도 모자란다고 ‘1만 명으로 늘리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이 챙긴 사이버 국방이라고 적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밝혔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