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한승원. 사진=조선DB
아버지는 유형(流刑)을 운명처럼 삼았고 딸은 구원(救援)을 노래했다. 아버지의 글은 바윗돌을 굴리는 필업(筆業)에 분투했고, 딸의 글은 세상의 비참에서 한 줄기 희망을 응시했다. 그들의 공통 감각은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다. 장르의 변주와 형식의 변신으로 깨달음을 찾았던 그들의 구도자적 작품은 베스트셀러 소설이 돼 한국문단을 놀라게 했다.
아버지는 순수문학의 거목으로 자라났고 딸은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소설가 한승원(78)과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47)의 이야기다.
한승원은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내년에 출간될 신작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었다. 그의 집필실 ‘해산토굴(海山土窟)’이
있는 율산마을은 앞에 바다가 펼쳐졌고 뒤에 산자락이 드넓어 경치가 좋다. 해산토굴 아래 득량만 해안(海岸)에는 한승원 문학 산책길도 조성돼 있다.
― 본인의 문학세계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생명력이에요. 나는 작품을 쓸 때 생명력이 발산되는, 일종의 ‘신명’이 나지
않으면 줄거리가 만들어져도 집필을 못 하고 끙끙 앓습니다. 신명이라는 건 작품의 향기로 발산될 수 있는
그윽한 신화적 의미를 말해요. 제 작품이 ‘신화적 리얼리즘’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에요. 나와 이호철, 선우휘 소설가 등이 활동했던 60~70년대, 그리고 80년대까지도 리얼리즘, 즉
사실주의에 입각한 고발소설이 주류였어요. 평론가들이 리얼리즘 소설에 신화가 가미되면 ‘리얼리즘 소설의 죽음’이라고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나도 물론 리얼리즘 서사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 리얼리즘에 신화적 감수성을 더 보태서 창작했습니다. 지금
30~40대 신세대 작가들에게서는 리얼리즘 소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우리 딸이 쓴
《채식주의자》나 《소년이 온다》 역시 리얼리즘 소설이 아니에요. 특히 《소년이 온다》가 5·18을 소재로 했지만 그 소재를 다룬 대부분의 다른 작품은 전부 고발소설이에요. 그렇지만 《소년이 온다》는 고발소설이 아니라는 차별성이 있는 것이죠.”
한승원
소설가의 집안은 문인(文人) 가족이다. 딸 한강 작가부터 소설가와 동화작가로 활동 중인 아들 한규호씨, 둘째 아들 한강인씨 또한 만화작가로 일한다. 특히 한규호씨는 다섯
살 전후의 유아를 상대로 한 ‘한글 교육 동화’로 유명하다. 스테디셀러 《받침 없는 동화》 《받침 있는 동화》 작가이자 동명(同名)의 출판사 대표로 있는 한씨는 작품성과 상업성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다.
2016년 6월 1일 오후 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흥군민회관 3층에서 한국 최초 세계 3대 문학상 맨부커상 인터내셔녈 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를 축하하기 위한 마을잔치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한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와 어머니 임감오씨가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승원은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게 가장 무서운 문학적 후배는 자식들”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문학적 명맥을 이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 문인의 길을 걷는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클 듯합니다.
“모든
아들과 딸은 아버지를 극복하고 승어부(勝於父-아버지보다 낫다, 아버지보다 잘한다는 뜻)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지금 자기 이름을 갖고 사는 부모들은 인류의 평균치를 약간 넘은 거예요. 대개의 사람은 평균치를 넘지도 못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잘 살아낸다’는 건 평균치를 약간 웃도는 사람들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산다는 것이죠. 근데 이 세상에서 그 평균치를 뛰어넘기도 힘든데, 이미 평균치를 뛰어넘은 부모를 또 뛰어넘으려면 자식들은 얼마만큼 힘이 들겠어요. 그런데도 우리 딸과 아들은 이 아버지를 뛰어넘었어요. 모든 자식
가운데 승어부한 자식이 가장 훌륭한 효자 아니겠어요.”
― 예전에
한 작가는 딸 한강씨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것과 멀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강이
소설을 읽어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천착하고 있어요. 새로운 세계를 그려내죠. 표현 방법이나 문학적 감수성 면에서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섬세한 상상력을 갖고 있어요. 신화적이고 환상적이면서도 현실을 벗어나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인간의 폭력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고발하는 차원이 아니에요. 폭력으로
야기된 슬픈 인간의 구제(救濟), 일종의 구원(救援)을 담고 있다고 할까. 그
아이가 결국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가장 평화로운 세계예요. 나는 그걸 구원의 세계로 느끼고 있어요.”
― 이번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좋은 번역가를 만나야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외국에서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해야 겨우 그 책을 찾아서
읽는 정도니까 아쉬워요. 우리나라에서도 종이책이 좀 활발하게 나와줘야 해요. 독자들도 책을 많이 사서 읽어주면 한국소설이 더 발전할 거예요. 문체부
측에서도 지원을 해야 합니다. 옛날 문예진흥원처럼 출판사와 잡지사를 도와줘야 해요. 물론 도종환 장관이 잘할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