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회웅 시인, 최근 제8회 사이펀 문학상(2023년)을 수상
- 『꿈의 방정식』/최휘웅 지음/작가마을/ 149면/1만800원
시인은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수인(囚人)이다.
언어의 수인으로서 어찌하면 존재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는 ‘시의 언어’를 획득할 수 있을까. 시인 모두 각자의 방법이 있을 터지만 최휘웅 시인은 시를 통해 몽상적 세계로 간다고 했다. 순간 머리를 탁 쳤다. ‘시란 실존적 존재가 아니기에 본인만의 세계가 구축(형성)된다면 그것이 곧 시의 언어를 얻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나는 열심히 단어들을 모았는데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어느 순간 늘 빈 그릇이었다
녹아 없어지는 눈처럼
나는 지상에서
차라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시 <이완의 관계> 일부
하지만 같은 묘사도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감정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데 오롯이 완벽한 표현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시집의 제목인, 『꿈의 방정식 』역시 꿈은 방대하니 단수(單數)식으로 표한할 수 없다는 무한함을 표현한 것이라 느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평범한 꿈도 해석에 달렸다는 뜻처럼, 최휘웅 시인은 시집을 통해 일상과 무의식 속 오묘한 경계를 마치 뫼비우스의 띠(안쪽과 바깥쪽의 구분이 없는 형태의 곡면)와 같이 표현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게 비워진다. 본인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없다. 단지 남겨진 사람들의 입 속에서 조금 살아갈 뿐.
마스크로 입을 봉한 채
침묵의 바다는 떠 있다.
인적이 지워진 창밖에는
꽃들이 대신 줄을 서는데
봄은 봄이 아니다.
(중략)
생의 경계가 무너지는 광장
한쪽에서
하얀 방호복들
(중략)
곁을 떠난 스카프가
과거의 얼룩과 오버랩 되는 동안
그녀는 서서히 지상을 떠나고 있었다.
시 <코로나> 일부
요 근래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때는 2019년 말에서 2022년까지 우리 사회의 일상을 빼앗아간 코로나(COVID-19) 시기였다. ‘코로나 이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코로나 블루(우울증)라는 신조어도 생겼었다. 코로나는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주제다. 특히 시인이 표현했듯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거리의 냉랭함은, 따듯했던 온도와 무관했던 그때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당시 모 후진국에서는 사망자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관에 넣지 못하고, 천에 싼 다음 한꺼번에 무더기 화장을 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적 있다. 그저 천 쪼가리 하나를 들고 우는 소녀의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까.
차라리 꿈이라면 깨고 말지 꿈보다 무서운 현실을 경험했던 나날들이 오히려 지금은 희미해진 느낌이 들었다. 다행스러운 부분이지만, 아마 시인은 ‘죽음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은 기술의 발전과는 무관한 자연의 관례인 것’ 임을 느끼지 않았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산 사람마저 말을 못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살았을 시기를 상기하니 삶이란‘ 죽을 예정이거나 이미 죽었거나’ 둘 중에 하나뿐인 비관의 시대였다고 느꼈다.
늙으니까
편견에 사로잡혀 머리가 센 친구들이 있다.
늦게 배운 폰, 유튜브를 드나들며
열심히 퍼 나르는 일에 몰두한다
남이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좌우 어느 한쪽 주장만 고집한다
(중략)
나는 비우고 비워도 다시 채워지는
우물이 아니다
비우면 그릇도 남지 않는 마른 우물이다
시 <시간의 공전> 일부
개인적으로 노년기가 된다는 것은 삶의 경험이 가장 가득할 때라고 믿는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21세기는 정보의 바다인 만큼, 본인의 경험이 결코 인터넷을 넘을 수 없다. 젊은 세대가 봤을 때, 유튜브는 여전히 노년기들에게 정제되지 않는 물과 같다. 노년기의 연륜을 넘어, 허점을 파고드는 ‘거짓정보’들은 윗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자극이다. 그동안의 삶 속 채워온 그들만의 경험을 비우면서까지 유튜브를 채우는 경우도 많다. 결국 ‘머리가 센 사람’은 세대를 막론하고 이미 사고가 굳어버린 자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경고가 아닐까.
삶과 인생이라는 큰 순환에서 최휘웅 시인의 몽상적 세계관은, 단순 오늘이 아닌 과거와 내일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 속 본질적 가치에 대한 소중함과 두려움을 우리 일상 속 사례를 표현했다. 꼭 노년이 되어야 느끼는 감정이 아닌,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들 수 밖에 없는 감정을 진솔하게 썼다는 것이 이 시집만의 호흡임을 느꼈다.
최휘웅 시인은 194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1962년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여 한국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의 대부인 조향 시인 문하에서 현대시에 대한 수업을 받으며 모더니즘 시에 눈뜨기 시작했다. 1974년 「시와의식」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82년 월간 《현대시학》에 전봉건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수상으로는 동아대학교 교내 문학상(1968년 시 부문), 제4회 동아문인상(2008년), 제24회 부산시인협회 본상(2016년). 제8회 사이펀 문학상(2023년)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절대공간』(1975), 『환상도시』(1986), 『하얀 얼음의 도시』(1997), 『사막의 도시』(2001), 『녹색화면』(2009), 『카인의 의심』(2015), 『지하에 갇힌 앵무새의 혀』(2019)가 있으며 평론집 『억압. 꿈. 해방. 자유. 상상력』(2006)이 있다.
글=백재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