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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병을 이긴 시인이 궁금하신가요

이도화 시인 『온ㆍ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 발간

백재호  기자 1oo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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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화 시인은 이등항해사, 연구원, 대학교수 등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
◉ 파킨슨 병 투병 간 창작한 시들 『온ㆍ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로 발간
◉ 깊은 사유와 내재된 서사적 기교,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조의 시선이 돋보여
온ㆍ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 / 이도화 / 작가마을 / 1만2000원 출처=교보문고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이도화 시인이 투병 중 일기처럼 써온 신작 시들을 모아 시집 『온ㆍ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을 냈다. 특히 이번 시집은 시인이 2023년 ‘사이펀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집중적으로 창작한 시편들이다. 

이도화 시인은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이등항해사로 일하다 미국 메사추세츠대에서 경영학 석사, 퍼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아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인제대학교와 동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했다. 

퇴직 후에는 학창 시절 이루지 못한 문학도의 길을 걸어 2017년 《부산시인》과 《부산시조》로 활동하며 『출항』이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최근 2023년에는 《사이펀》 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게 되고 이번 시집 『온ㆍ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을 발간한 결정적 배경이 됐다. 

해당 시집은 총 4부로, 각 대주제 아래 자신의 경험해 온 삶을 써냈다. 

특히 이도화 시인은 1부의 대주제인 '공동선'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공동체 햠양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공동선은 '모두의 이익', '모두의 선함'을 의미하는 사전적 의미가 있지만 해당 시에서 개인과 집단의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는 곧 청년이라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한 때 교육인으로서 청년들과 조우하며 그가 느낀 현실에는 어떤 당혹감이 있었을까.
 
소위 재능 있는 자들은 외눈박이의 모습으로 변해갔고, 단순 눈앞에 있는 자극만 받아들인다는 점을 본인 역시 청년으로서 부정할 수 없다. 21세기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정작 흡수되는 것은 눈앞에 있는 단순 재미라는 것에 씁쓸함을 느낀다.

재능 가진 이들이 편협과 열정을 더해 
진영의 편견을 굳히고 증오를 키운다면 죄악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장수가 있다 해도 재앙이다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고도 근시도 흔하다 
과녁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사대에서는 총을 아예 
겨누지 말 일이다
그대 아이의 미래가 내 아이의 미래와 함께 서 있다
 
- 시 <요지경>의 일부

시집 3부 주제인 '파킨슨 병' 부분은 단순 주제가 아닌, 현재의 본인이자, 진행 중인 투병 극복기로도 와닿는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병마를 어떻게 극복할지 고뇌하는 자세와 본인의 평범한 일상이 어울러 깊이 있게 담겼다, 시집의 진수(眞髓)인 부분이다. 본인만의 '병'이 있지만 마음에 따라 크고, 작음이 변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킨슨 병 약을 복용한 뒤 효과가 나타나는 지점은 온(on), 효과가 사라지는 지점을 오프(off)로 비유했다. '오히려 파킨슨 병 증상이 나타나는 지점을 '온'으로 비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자신의 삶은 병과 무관하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약을 복용하는 행위가 단순히 전원을 켜고 닫기 키고 끄는 행위처럼 짧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순간에 오는 감정은 결코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전기(병)가 잠시 차단됐을 뿐, 아예 닫혀에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파킨슨 병은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 그 자체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봇보다 더 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랏!"

그대는 모래시계, 마지막 알갱이들이 줄을 서고 
세 알, 두 알, 한 알, 끊어질 무렵이 오프의 시작, 
정해 둔 시간에 약을 먹어라, 떨어졌던 
스위치가 올라가고 온의 해가 
다시 떠오를 것이다
 
- 시 <온ㆍ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의 일부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어느 아침 불안한 카프카는 꿈을 꾸다 눈을 뜨고 팔다리 
에서 잔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될지 모른다 
침대에 박힌 한 포기 두 포기 포기 
인간을 보게 될지 모른다
.
.
(중략)
.
.
내게도 두 길은 남아 있다 싶어 위안으로 삼을지도 모르
스스로 허브 향내를 피워 해충을 물리치거나 
아기 해맑은 마음이 되어 해충을 몰라보거나
하체 단련 스쿼트, 오랫동안 미루기만 해왔는데 
오늘 아침 비로소 시작했다

- 시 <동결>의 일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 속 주인공은 큰 갑충으로 변한다. 결국 그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도화 시인은 그와는 다르게  삶을 이어나갈 용기와 의지를 봤다. 그 역시 자신의 병을 통해 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활동의 제약을 느끼지 않겠다는 스스로에게 던진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특히 '침대에 박힌 포기'라는 표현을 통해 곧 침대에 묶일지도 모르는 스스로의 미래를 경계한 것으로 절대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직관적 메시지를 느꼈다. 시 <온ㆍ오프는 로봇 명령어가 아니다> 이후 바로 이어지는 시라는 호기심에 더욱 집중한 이유도 있지만, 일상 속 그의 하루가 드러나는 작품이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글=백재호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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