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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필리핀 가사도우미 임금 논란.... 대통령실-정부-여당, 해법 고심

'후진국 노동자' 차별 논란 없도록 유의해야...파독 광부-간호사들은 임금-근로조건-복지 등에서 차별 안 받아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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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6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입국했다. 사진=조선DB

정부-여당이 저출산 대책으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시범 사업이 생각지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된 제도이지만,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월(月) 238만 원에 달하는 높은 비용 탓에 서울 강남 사는 사람들이나 이용할 수 있는 ‘부자 돌봄’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제'의 문제 및 국내 일자리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러자 대통령실, 정부, 여당에서도 대응 방안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유혜미 대통령실 저출생대응수석비서관은 8월 21일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정부 시범사업으로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에 대해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가사관리사 비용이 낮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며 “어떻게 비용을 더 낮출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경원·안철수 의원 등 중진 의원들도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구분 적용’ 관련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며 근로기준법 개정 등 입법화에 나서는 등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가세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8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의 저출생·고령화의 진정한 구원투수가 되도록 하려면 비용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근로기준법,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등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최저임금 결정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시 역시 법무부에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월급을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한 상태다. 

언론에서는 가사관리사들의 임금이 “2022년 필리핀 근로자 월 평균 임금 1만8423페소(약 44만 원)의 5배를 웃도는 고임금”이라느니,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홍콩·싱가포르에 비해 3~4배 높다느니 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반면에 좌파 매체들은 필리핀 가사도우미 문제를 외국 노동인력의 유입에 따른 국내 일자리 및 최저임금 감소를 우려하는 한편 ‘강남 사람들이나 혜택을 보는 정책’이라는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런 논의는 잘만하면 현재의 획일적인 최저임금제를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혹여라도 ‘후진국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덜 주고 부려 먹어도 된다’는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식의 접근법은 생각지도 않은 문제들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고용노동부나 인권위원회, 국제노동기구나 관련 국제재판소에 자기들이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고 진정하고 소송을 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에게도 최저임금을 차별 없이 적용하라는 결정이나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법규로 미리 차별적인 최저임금 기준을 정한다고 해도, 필리핀이나 동남아 국가들에서 ‘한국에서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제도적으로 차별한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고 외국 언론에 보도가 되면, 외교적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지금도 불법입국 가능성 때문에 태국인 입국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것 때문에 태국에서는 반한(反韓)정서가 확산되어 가고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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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 일은 고되었지만 임금-근로조건-복지 등에서 독일인들과 차별받지는 않았다. 사진=조선DB

 

1960년대에 독일(서독)에 나갔던 광부, 간호사들이 한결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일이 고되기는 했지만, 임금, 근로조건, 복지 혜택 등에서는 독일인들과 차별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파독 광부 월급이 우리나라 국회의원, 장관 월급의 몇 배였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타향살이의 고달픔을 감수하면서 광부로, 간호사로 나갔던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덩치 큰 독일인들의 체형에 맞게 만들어진 채탄 도구들을 다루고, 덩치 큰 독일인 환자들을 돌보느라 고생고생 하면서도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동생들 학비를 마련하고, 시집 장가 밑천을 마련했다. 그들 중에는 후일 학계나 의료계에서 대성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독일 송출이 중단되는 것은 대략 1976년 전후로 대한민국이 먹고 살 만해지는 시점이었다. 얼마 전부터 국내에 들어오기 시작한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급여의 1/3을 본국으로 송금하겠다고 당차게 다짐하는 모습에서 개발연대의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의 임금을 어느 수준에서 결정하는 게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보다 먼저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하기 시작한 홍콩, 싱가포르 등의 경우를 보면, 자국인 가사도우미보다는 낮지만 합리적인 수준에서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 경우 어떤 식으로든 ‘후진국 노동자’에 대한 차별 의식을 바탕에 깔고 정책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어떤 정책을 펼 때,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만 대증(對症)요법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그런 정책을 펼 경우 벌어질 수 있는 다른 문제들까지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종합적인 통찰도 있어야 할 것이다.


입력 :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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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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