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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시인 김영랑 유택,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재안장

지난 8월 19일... 국가보훈부의 애국선열묘역 지정 후 첫 이장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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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망우리 묘지에 안장했다가 이장한 시인 김영랑의 유택이 지난 8월 19일 오전 서울 중랑구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재안장됐다. 사진=정종배

<모란이 피기까지는>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을 쓴 민족시인 영랑(永郎) 김윤식(金允植·1903~1950)의 유택이 망우역사문화공원(서울시 중랑구 망우본동 산57-1번지)으로 재이장되었다.

 

김영랑은 일제강점기 시절, 시문학파로 활동했으며 우리 민족정서와 자연의 순수미를 세련된 현대시로 끌어올린 뛰어난 시인이었다.


영랑의 유택은 1954년 망우리에 안장됐으나 미망인 안귀련 여사가 1989년 사망하자 이듬해 3월 용인천주교공원묘지로 이장해 함께 묻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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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영랑. 1950년 2월 안석영 선생 장례식 때 망우리 장지에서 찍은 모습이다.

 

그러다 국가보훈부에서 망우역사문화공원을 애국선열묘역으로 지정한 뒤 첫 번째로 지난 819일 오전 10시 영랑의 유택을 재이장했다.

 

망우리공원 인물열전의 저자인 정종배(鄭鍾培) 시인에 따르면 영랑의 유택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화장하여 땅속에 안장했다고 한다.

그 위에 묘비와 시비 둘을 세웠는데 이 세 개의 빗돌은 하늘··사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를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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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재이장한 김영랑 시인의 묘역. 사진=정종배

 

정종배 시인은 "빗돌의 중심인 묘비의 시 <> 마지막 두 행인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를 여태명 서예가의 글씨로 새기고, 시인이 즐긴 판소리 고수의 조각상의 중심에 영랑 김윤식 안귀련 묘비라고 새긴 묘비가 우뚝 섰다. 뒷면에는 시인 영랑의 가족의 이름을 새겼다"고 설명했다.

 

또 오른쪽 시비에는 대표작으로 알려진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마지막 두 행인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을 새겼다.

왼쪽 시비 앞면에는 항일 시 중 가장 강하다는 <독을 차고>의 마지막 두 행인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를 새겼다.

이 좌우 시비는 김준태 시인과 이근배 시인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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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시인은 1950년 9월 29일 신당동 집에서 운명했다. 6.25 전쟁 기간 중이라 남산 자락 한남동 가매장했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11월 14일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했었다. 사진=정종배

 

김영랑 시인은 전남 강진읍 남성리에서 태어나 강진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휘문고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 후 강진 장날 독립 만세운동 준비 중 구속,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 복역했다.

1930년대 시문학파 시인이며 북의 소월 남의 영랑이라 일컫는 전통 서정시의 민족시인이었다.

일제 말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 1941년부터 광복 때까지 절필했다.

영랑시집》 《영랑시선시집을 남겼으며 2008년 정부는 시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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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종배

 

시인은 6.25 전쟁 중 서울 신당동 친척집에 은신 중 양방 군 포탄 교전 때 파편에 맞아 1950929일 운명했다. 2018년 국가보훈부는 건국포장을 시인에게 추서했다.

 

정종배 시인의 말이다.

 

시인 영랑 유택 묘비와 시비의 의미와 시인의 시와 삶을 통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는 정서를 함양하였습니다. 이번 재이장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박물관인 망우역사문화공원이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보훈부에서 합동묘역 망우역사문화공원 애국선열묘역이라 지정한 뒤 첫 번째로 재이장한 시인 영랑 김윤식의 묘비와 시비를 둘러보며 그의 시 <묘비명>이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묘비명(墓碑銘)>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전에 이다지 외로운 사람

어이해 묘 아래 빗돌 세우오

초조론 길손의 한숨이라도

헤어진 고총(古塚)에 자주 떠오리

날마다 외롭다 가고말 사람

그래도 뫼 아래 빗돌 세우리

'외롭건 내 곁에 쉬시다 가라'

() 되는 한마디 삭이실란가


- <묘비명> 전문

입력 :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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