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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⑫] 론다와 누에보 다리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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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에 갔습니다. 1월 18일부터 29일까지 프랑스 파리와 노르망디, 스웨덴 마드리드, 톨레도, 꼬르도바,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등지를 주마간산으로 돌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자연과 사람, 예술 작품을 만났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여행의 몇 장면을 공유합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누에보 다리에서 바라본 론다의 협곡. 자연침식에 의해 기암절벽이 생겼다.

안달루시아의 꽃, 해발 723m인 론다와의 만남은 ‘푸엔테 누에보(Puente Nuevo)’에서 이뤄졌다. 푸엔테는 다리[교(橋)]란 뜻이다.

 

누에보 다리 위에서 입이 떡 벌어졌다. 기괴한 성채 같은 공간, 주렁주렁 구전하는 전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상상력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밤이면 유성(流星)이 저 절벽 아래로 넘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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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자연의 침식이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內戰)을 다룬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쓸 당시 이곳에 머물렀고 작품 속 암반과 절벽, 다리가 묘사될 만큼 누에보에 매료됐다. 다음은 소설 속 한 장면.


<늙은이가 툭 튀어나온 암반을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늙은이는 오르는 것이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더듬어 찾는 일도 없이 손으로 잡을 곳을 쉽게 찾았다. 젊은이는 그 늙은이가 여러 차례 이곳을 기어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누가 올라가든 그들은 매우 조심성이 있어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중략)

그는 손에 쥔 와이어와 하나가 되었고 다리와도 하나였으며 잉글레스가 설치한 폭약과도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다리 아래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는 잉글레스와도 하나였고 모든 전투와 공화국과도 하나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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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보 다리.

 

기암절벽, 아치형의 굽이치는 높은 다리, 그 옆으로 창문을 내어 만든 파라도르(고급호텔), 위태롭게 선 하얀 집들, 절벽 외부에 설치된 전망대가 오금을 저리는 관광객을 사로잡았다.(이 누에보 다리와 론다 전망대까지 이어진 작은 오솔길은 ‘헤밍웨이 산책로’로 명명되었다.)

 

푸엔테 누에보는 ‘새[新] 다리’라는 뜻이다. 그 밑으로 ‘푸엔테 비에호’ 말하자면 ‘헌[舊] 다리’도 있고 더 아래로 ‘푸엔테 아라베(아라비아 다리)’도 있었다. 까마득한 로마 시대를 거쳐 아랍 시대에도 론다가 군사 도시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계곡 바위들이 겹겹이 쌓인 편지처럼 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외부 침략에서 지키기 위한 천연 요새. 지킬 수 없다면 아래로 몸을 던졌으리라.(반대로 포로들을 골짜기 아래로 내던져 사형시키는 잔혹한 장소였다고 한다) 그 피가 저 아래 계곡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론다는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투우가 시작되었다는 명성과 더불어 붉은 천을 흔들며 투우를 하는 현대 스페인 투우의 전형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론다 사람들은 기질과 의협심, 죽음과 맞설 수 있는 모험심을 가진 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입력 : 2024.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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