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에보 다리에서 바라본 론다의 협곡. 자연침식에 의해 기암절벽이 생겼다.
안달루시아의 꽃, 해발 723m인 론다와의 만남은 ‘푸엔테 누에보(Puente Nuevo)’에서 이뤄졌다. 푸엔테는 다리[교(橋)]란 뜻이다.
누에보 다리 위에서 입이 떡 벌어졌다. 기괴한 성채 같은 공간, 주렁주렁 구전하는 전설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상상력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밤이면 유성(流星)이 저 절벽 아래로 넘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자연의 침식이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內戰)을 다룬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쓸 당시 이곳에 머물렀고 작품 속 암반과 절벽, 다리가 묘사될 만큼 누에보에 매료됐다. 다음은 소설 속 한 장면.
<늙은이가 툭 튀어나온 암반을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늙은이는 오르는 것이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더듬어 찾는 일도 없이 손으로 잡을 곳을 쉽게 찾았다. 젊은이는 그 늙은이가 여러 차례 이곳을 기어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누가 올라가든 그들은 매우 조심성이 있어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중략)
그는 손에 쥔 와이어와 하나가 되었고 다리와도 하나였으며 잉글레스가 설치한 폭약과도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는 다리 아래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는 잉글레스와도 하나였고 모든 전투와 공화국과도 하나가 되어 있었다.>
누에보 다리.
기암절벽, 아치형의 굽이치는 높은 다리, 그 옆으로 창문을 내어 만든 파라도르(고급호텔), 위태롭게 선 하얀 집들, 절벽 외부에 설치된 전망대가 오금을 저리는 관광객을 사로잡았다.(이 누에보 다리와 론다 전망대까지 이어진 작은 오솔길은 ‘헤밍웨이 산책로’로 명명되었다.)
푸엔테 누에보는 ‘새[新] 다리’라는 뜻이다. 그 밑으로 ‘푸엔테 비에호’ 말하자면 ‘헌[舊] 다리’도 있고 더 아래로 ‘푸엔테 아라베(아라비아 다리)’도 있었다. 까마득한 로마 시대를 거쳐 아랍 시대에도 론다가 군사 도시의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계곡 바위들이 겹겹이 쌓인 편지처럼 긴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외부 침략에서 지키기 위한 천연 요새. 지킬 수 없다면 아래로 몸을 던졌으리라.(반대로 포로들을 골짜기 아래로 내던져 사형시키는 잔혹한 장소였다고 한다) 그 피가 저 아래 계곡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론다는 스페인에서 가장 먼저 투우가 시작되었다는 명성과 더불어 붉은 천을 흔들며 투우를 하는 현대 스페인 투우의 전형을 세운 곳이기도 하다. 론다 사람들은 기질과 의협심, 죽음과 맞설 수 있는 모험심을 가진 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