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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⑪] 세비야 대성당과 콜럼버스의 무덤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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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에 갔습니다. 1월 18일부터 29일까지 프랑스 파리와 노르망디, 스웨덴 마드리드, 톨레도, 꼬르도바,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등지를 주마간산으로 돌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자연과 사람, 예술 작품을 만났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여행의 몇 장면을 공유합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사진=롯데관광

세비야에 도착해 마차를 탔다. 심약한 마부처럼 마차에 올라탔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말발굽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마차 옆으로 과달끼비르(Quadalquivir) 강이 말 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스페인 남부의 중심인 세비야는 저 강을 따라 황금시절을 구가한 시절이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0~1506년)와 그의 아들 무덤이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돼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콜럼버스를 실은 항해선도 저 과달끼비르에서 출발, 아메리카 대륙울 개척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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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앞 오렌지 나무.

 

세비야에 있는 성(城)인 알카사르(Real Alcazar de Sevilla)를 보았다. 이슬람과 스페인 양식이 결합된 무데하르 양식의 건물이다. 요즘으로 치면 하이브리드 양식이다.

단정하면서 화려한 장식, 화려하면서도 정적인 양식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안뜰엔 오렌지 나무가 심겨져 있었다. 나무엔 오렌지가 가득했다. 


여기서 잠깐! 10세기 중반 이후 가톨릭 세력이 남하하면서 이슬람 지역을 재정복했을 때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을 모리스코(morisco), 기독교 문화는 받아들이지만 이슬람교를 견지한 이들을 무데하르(mudejar)라 불렀다. 기독교왕국 아래 이슬람 건축을 계승 발전시킨 다원주의 양식을 뜻한다.


세비야는 서기 1010년에서 1248년까지 아랍인들의 중심 무대였다. 그러던 이곳이 1248년 기독교 세력이 들어오면서 권력 중심부가 교체되었다. 이슬람 사원을 부수고 그 폐허 위에 1401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고딕양식의 건축물을 지었다. 바로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이다. 본관건물은 높이 126m, 폭이 83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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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안에 대항해인 콜럼버스의 무덤이 안치돼 있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Papal Basilica of St. Peter), 런던의 성 바오로 대성당(St. Paul’s Cathedral)과 더불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고 중요한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

 

69개의 궁륭(아치모양으로 지어진 지붕 혹은 천정)과 25개의 성당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짓는 데만 200여 년이 걸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온갖 금은보화로 성당 곳곳을 채웠고 중앙 제단에다 금을 쏟아 부었다고 전해진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 후원을 받아 신대륙을 개척한 때가 1492년. 마지막으로 돌아온 1504년까지 모두 4차 항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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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유스타와 루피나 성상

 

대성당 곳곳에 두 자매, 성 유스타와 루피나(Santa Justa y Santa Rufina)의 성상과 성화가 자주 보였다. 이교도들이 배교를 요구하자 언니 유스타(268~287년)는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지는 고문을 당하다 먼저 순교했다. 동생 루피나(270~287년)는 원형 경기장에 던져져 사자밥이 될 운명이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사자들이 온순해졌다고 한다. 결국 목이 부러진 뒤 화형을 당해 순교했다. 이후 세비야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1504년 세비야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98m에 달하는 히랄라 탑(Torre de la giralda)이 건재하자 두 성녀가 탑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세비야 사람들은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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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랄라 탑(Torre de la giralda).

 

이 탑은 12세기에 아랍인들이 만들어 놓은 성의 탑이었다.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나선형의 회랑이 넓다. 기독교인들의 고딕식 성당이 옆에 들어서면서 종탑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른다. 아랍 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섞인 흔적이다. 탑의 제일 상부는 16세기 기독교 양식의 첨탑을 덧붙인 것이라고 한다.

 

첨탑에 있는 16세기 청동 풍향계 엘히랄딜료(El Giraldlilo)는 진정한 신앙(faith)을 의미하며 세비야의 상징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고: 김창민 편 《스페인 문화 순례》)

입력 : 202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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