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톨레도 대성당의 모습이다.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용서의 문> <지옥의 문> <심판의 문>을 거쳐야 하는데 어느 문으로 들어왔는지 기억에 없다. <지옥의 문>과 <심판의 문>으로 갔다면 되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스페인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톨레도(Toledo)에 갔다. 안동의 하회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처럼 톨레도를 타호강이 휘돌고 있었다. 물빛은 탁했고 거칠었다. 겨울철 건기인데도 며칠간 계속 비가 내렸다고 한다. 저 강이 마드리드까지 유유히 흘러간다.
톨레도 시가지의 모습과 거친 타호강.
바로 이곳에 중세의 손길이 젖어있는 톨레도 대성당이 있었다. 톨레도는 요새(要塞)라는 뜻이다. 이슬람, 유대인, 가톨릭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대성당이 큰 궁전 같았다. 거대하고 화려한 모습에 압도되었다. 주눅이 들어 고개가 숙여졌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용서의 문> <지옥의 문> <심판의 문>이 있다는데 어느 문으로 들어왔는지 기억에 없다. <지옥의 문>과 <심판의 문>으로 갔다면 되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아주 작은 부분에서 엄청난 기둥, 긴 주랑까지 중세 장인(匠人), 예술가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예수와 마리아, 동방박사, 천사와 성인, 성녀의 조각, 그림들이 곳곳에서 성당을 수놓고 있었다.
예수의 수난(受難) 과정을 상징하는 장식들이 차례차례 조각되어 있었는데, 신자들이 어려운 문자는 몰라도 성당의 돋을새김만 봐도 감복할 것만 같았다.
천장 일부를 뜯어 자연 채광(採光)을 끌어들인 장인의 솜씨가 놀라웠다.
‘정교하다’는 단어 이상의 표현을 찾기 어려웠다. 천장 일부를 뜯어 자연 채광(採光)을 끌어들인 솜씨 그 너머에 정신의 신비, 번쩍임이 느껴졌다. 이를 엘 트란스파렌테(El Transparete)라고 부른다고 한다. 직접 햇빛을 성당 안으로 불어넣기 위해 천장을 뜯는 방식의 실험은, 스테인드글라스와 다른 놀라움과 아름다움을 주었다.
화려하고 진귀한 작품들로 장식한 스페인 왕들은 이 대성당이 신께서 좋아하시리란 믿음, 기대, 혹은 불안으로 온갖 열정을 다 바쳤으리라.
루카 조르다노가 톨레도 대성당에 그린 천장화
가장 압권은 이탈리아 화가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 1634~1705)가 그린 천장화였다. 이탈리아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있다면 톨레도 대성당의 천장화도 못지않을 것 같았다. 천장화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 위용에 할 말을 잃었다. 위로 올려다보니 아기 천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천사들의 통통한 다리가 보이고, 하늘 저 끝에 희미하게 신과 신을 둘러싼 성인들의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천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힘이 되어 줄 것이란 기대, 믿음, 확신을 말해주는 듯했다.
엘 그레코가 그린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1579)
천장화 바로 아래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가 그린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1579)이 있었다. 군중과 로마 병사들에 둘러싸인 붉은 튜닉(tunic)을 입은 예수가 있고 한 병사가 예수의 손목을 끌어당기고 있다.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있는 예수의 다섯 손가락, 친친 감긴 손목 밧줄, 예수의 빨간 튜닉이 강렬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저 빨간색은 그리스도의 피, 곧 당신의 피조물을 위해 흘린 희생과 사랑을 상징한다.
예수가 가슴에 손을 대는 모습은 ‘언약’ 혹은 ‘맹세’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이 죄 많은 인간을 구원하리라는 약속, 믿음이 느껴졌다.
어느 늙은 여행객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감히 따라 할 수 없었다.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1580)
한 가지 더. 예수의 다섯 손가락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이 붙어 있다. 엘 그레코의 작품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1580)도 가슴에 손을 얹고 있고 역시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이 붙어 있다.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작품 맨 아래 왼쪽에 여인의 손이 나오는데 역시 세네 번째 손가락이 붙어 있다. 이 손가락 표현이야 말로 엘 그레코의 붓이 닿았음을 가리키는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