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국전쟁' 포스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업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The Birth of Korea)’의 시사회가 오는 1월 12일 오후 2시 30분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다. 영화는 2월1일 개봉할 예정이다.
‘건국전쟁’은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30년 경력의 김덕영 감독이 만들었다.김 감독은 리버티국제영화제(LIMF‧Liberty International Movie Festival)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지난 2020년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내고 6‧25전쟁 이후 북한 고아들의 동유럽 이주 역사를 다뤘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이 작품은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영구보존 작품에 선정돼 현재 국가기록원 수장고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 작품은 전 세계 17개국 주요 영화제에 출품해 이탈리아 로마국제무비어워즈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 동유럽국제무비어워즈 은상 등을 수상했다.
북한은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해 ‘이승만 지우기'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런(run)승만’이라는 멸칭부터 4‧19 이후 하와이로 막대한 비자금을 갖고 망명을 했다는 가짜 뉴스가 아직도 나돌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은 이를 바로잡고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 객관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
2011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다룬 저서 《대한민국 만들기 1945-1987(Nation Building in South Korea)》를 낸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의 그렉 브라진스키(Gregg Brazinsky)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자신의 역사를 정직하게 점검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문서와 기록 자료에 기초한 평가입니다. 한국은 1950년대 자료에 대한 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저서 《슬픈 중국》을 내고 《조선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는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학 교수는 “수천년 동안 함께 살아왔던 한 나라가 분단된 지 70여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인 두 나라로 나아갈 수가 있었는지를 놓고 전 세계 학자들이 큰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전 주한외신기자클럽 회장은 “한반도의 분단은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이 오늘날처럼 발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며 “만약 한반도가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아마 미얀마 같은 나라, 혹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갈림길의 시작은 남북의 각자 다른 ‘토지개혁’이었다. 전 세계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토대로 ‘이승만의 토지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지주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뤄낸 1949년 토지개혁은 오늘날 대기업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949년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70년 동안 평화를 지탱해 온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이승만의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탈북자 구출에 힘쓰고 있는 시민단체 ‘거룩한 대한민국 네트워크’의 이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전 한반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였죠. 그런데 한미동맹을 맺고 나서 지난 70년 동안 100명 이상이 죽는 전투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장기간의 평화가 가능해졌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가능케 한 사람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미국의 젊은 ‘이승만 연구가’ 데이비드 P. 필즈(David P. Fields) 위스콘신대학교 동아시아센터 부소장은 “이승만은 미국과 대한민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필즈 박사는 “아무도 그 당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다”며 “오직 이승만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반도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부여된 것도 1948년이었다. 서구의 여성들도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 긴 시간을 투쟁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여성의 투표권은 마치 선물처럼 부여됐다. 그로부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양반과 상놈이 겸상을 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게다가 ‘조선에서 가장 불쌍한 것은 계집아이들’이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러한 시대상을 고려하면,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들도 이승만의 이러한 정책을 무시해선 안 될 일이다.
좌파 진영에서 ‘보수는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때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독도다. 하지만 이들은 이승만이 1952년 선포한 ‘이승만 라인’에 대해선 애써 모른 체한다. 지금까지도 일본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억지’라고 주장하는 ‘리쇼우반(李承晩의 일본어 발음) 라인’은 우리 해양 주권 선언이었다. 무엇보다 실효적 지배가 이뤄져 우리 영토를 수호할 수 있었다.
글=김광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