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G 컨템포러리 제공
스테인레스 스틸을 섬세하게 다듬고 두드리고 단련한 금속의 유닛들이 빛에 반사되어 빛과 그림자의 끝없는 변화와 변주를 일으킨다.
자세히 보면 물질의 차가움과 환영의 따뜻함이 교차하고 어우려져 아름다운 불꽃의 감성으로 물들여진 신비로운 이미지의 세계가 느껴진다.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가야랑빌딩 3층)에서 G컨템포러리(대표 이은) 주최로 권용래 작가의 개인전 <백만개의 불꽃(A Million Flame> 전(展)이 열리고 있다. 전시회는 내년 1월 23일까지 이어진다.
권용래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금까지 21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국립 현대미술관, 호암갤러리, 삼성미술문화재단, 현대미술관(울산), 서울 시립미술관, 홍콩 콴훤핀 미술관, 중국 북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등 여러 곳에서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다음은 권용래 작가의 말이다.
"나의 작품은 평면을 바탕으로 한다. 그 위에 다운라이트에 의한 빛과 그림자로 형태를 부여한다. 나에게 있어 작품이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말처럼 어둠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적당히 그늘을 만들고 고즈넉한 음예의 무늬를 드리워서 그 위에 불꽃의 일루전을 연출하는 것이다. 빛의 물리적인 아름다움이 그 신비로운 속살을 드러낼 때 밤과 낮 그사이 내가 있다."
요즘 권 작가는 스테인레스 스틸을 소재로 작품을 생산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차갑고 냉철하며 도시적이며 현대적이다. 그는 "뜨거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차가운 금속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우선 제작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스테인레스 스틸 판재를 미러 가공한다.
미러 가공을 통하여 스테인리스 스틸은 더욱 차가운 평명과 투명함을 지닌 거울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이것들을 오려내어 유닛을 만든다.
만들어진 유닛을 햄머링한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 흐른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표면에 반사되던 단단한 빛들은 햄머링 소리와 함께 깨지고 부서지며 빛을 산란시키기 시작한다.
드디어 빛이 춤을 추는 순간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간이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서야 비로소 수천 개의 유닛들이 준비되어 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테인리스 스틸 유닛들은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안료이자 물감 덩어리인 것이다. 수 천 개의 그것들이 하나하나 캔버스 위에 부착되는 순간 차가운 쇠의 성질은 사라지고 뜨겁고 황홀한 일루젼이 된다.
Yong Rae Kwon, Light in Light - Orange Yellow, 145.4X227.3cm, stainless steel on canvas, 2023
Yong Rae Kwon, Eternal Flame-Forest, 112.1X162.2cm, stainless steel on canvas, 2023
Yong Rae Kwon, Light in Light, 140X140cm, stainless steel on canvas, 2023
타들어가는 석양이 그렇듯, 물질에서 이미지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래서 권용래 작품은 본질적으로 회화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유닛이 하나하나 캔버스에 부착되는 순간, 오랜 시간 잘 갈아진 먹물을 흠뻑 적신 붓으로 화선지 위에 일획을 그어 내리는 희열을 맛본다.
화선지 위의 먹이 발묵하듯 일획의 유닛들은 그어진다. 발묵한다. 그 농염함 속에 빛을, 빛을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