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숙씨는 몸에 이로운 음식을 사람들과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
된장 안 먹던 사람이 직접 담그게 된 사연
여기인가? 싶으면 거기가 맞다. 동네 끝자락, 아래로는 항아리들이 위로는 단층짜리 집과 가공공장이 있는 곳, 건강선생이종숙의 대표 이종숙(66)씨와 자칭 콩소년에서 콩대장으로 성장 중인 아들 전영선(36)씨의 삶터다.
뚜껑을 열지 않았는데도 항아리 사이에 서니 장 익는 냄새가 고소하게 올라온다. 장 담근 날짜를 적어둔 250여 개 항아리 속에서 된장, 간장, 고추장이 맛있게 익어간다. 몇몇 항아리에는 날짜 옆으로 이름까지 적혀 있다. 장 담그기 체험을 통해 자기만의 장을 영월에 담가놓고 간 사람들의 항아리다. 나만의 장이 영월의 청정 자연 속에서 맛있게 숙성 중이라니. 땅도, 집도 아닌 항아리를 분양받은 사람들이 갑자기 부러웠다.
이종숙씨가 해발 1,027.5m 태화산 자락, 브이(V)자 형태의 골짜기 옆을 항아리 터로 정한 것은 가히 본능에 가까웠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종숙씨는 20대 중후반 유아용 인형을 주문받아 해외로 수출하는 회사를 창업했다. 바삐 살아온 세월, 마냥 건강할 줄만 알았던 몸이 하루가 다르게 약해짐을 느꼈다. 40대에 암 선고를 받았지만 다행히 조기 발견했고, 자연치유로 다시금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겠더라고요. 저는 마흔 살 전까지 된장을 아예 안 먹었어요. 된장 특유의 향이 저랑 맞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플 때 유일하게 재래된장과 재래간장이 입에 잘 받았고 간을 맞출 수 있는 조미료였어요.”
음식을 가려먹지 않으면 병이 또 도질 것 같았다는 이씨는 2년 정도 사찰 음식을 공부했고 좋은 된장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문제는 좋은 된장은 값이 너무 비쌌고, 값이 괜찮다 싶으면 믿고 먹기가 힘들었다. 비구니스님께 배운대로 ‘직접 장을 담가 보자’ 마음먹었다.
된장 항아리 하나로 시작된 역사
먹기 좋게 한팩씩 포장되어 나오는 생식청국장 ‘바로’.
이종숙씨를 영월로 이끈 것은 먼저 영월로 귀농한 친오빠였다.
“어느 날 오빠가 전화로 영월에 땅을 샀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요새 누가 시골 땅을 사느냐, 나 같으면 안 산다 의기양양 큰소리를 쳤죠. 며칠 있다 오빠가 또 전화해서는 자기 집 앞쪽으로 땅이 나왔다는 거예요.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한 번도 와보지 않은 땅을 전화로 덥석 사겠다고 했어요. 12년 전쯤이었는데 11~12월에 지금의 땅을 사고, 다음해 3월에 처음 와봤어요. 웃기죠?”
이종숙씨는 오빠네 움막에서 잠을 청하며 “내가 단단히 미쳤구나” 혼잣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분명 밭이라고 해서 산 땅이었는데 전 주인이 두충나무를 심었다가 인건비가 나오지 않으니 20년은 묵힌 얕은 산 같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다음 날 해 뜰 무렵, 움막 밖으로 나온 이씨는 지금의 항아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저기다 된장 항아리를 놓으면 너무 맛있게 익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해 5월, 다시 영월에 와서 포클레인으로 땅을 평평하게 밀고, 그곳에 달랑 된장 항아리 하나를 놨다. 된장 맛있게 담가서 주변 암 환자들, 친구들과 나눠 먹겠다는 것이 건강선생이종숙의 시작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된장이 너무 맛있게 담가져서 1년이 채 되기 전에 동이 났어요. 잘 아는 비구니스님께서 3년 이상 묵힌 된장이 몸에 더 이롭다며, 시간을 두고 만들어보라고 권하셔서 7~8년 전부터 각종 장류와 직접 개발한 생식청국장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종숙씨 모자에게 겹경사가 있었다.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식음료품평회에 출품한 국간장이 최고등급을 받은 것이다. 2022 영월군의 10개 식음료 브랜드 중 ‘국제우수미각상’도 수상하며 불철주야 애썼던 시간을 인정받았다.
장 익듯 삶이 맛있게 익어가는 곳
동병상련과 약식동원의 정신을 브랜드 안에 담아낸 건강선생이종숙의 대표 제품들.
이씨는 장 담그는 법을 공부한 뒤 지금의 자리가 된장이 잘 익는 7가지 조건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발 450m 높이에, 하루 종일 해가 들고, 밤낮의 기온 차가 있으며, 바람이 잘 통하는 곳. 거기에 산벚과 같은 꽃나무와 소나무가 주변에 있고, 실개천이 가까이 흐르는 그야말로 된장이 맛있게 익는 최적의 장소였다.
장 만드는 법은 비슷하겠지만 어떤 재료를 쓰고, 어떤 곳에서, 어떻게 발효시키느냐가 장맛을 좌우한다고 이종숙씨는 설명한다. 이씨는 100% 영월산 국산콩으로 메주를 쑤고, 10년 이상 직접 간수를 뺀 천일염을 사용한다.
“11~12월에 메주를 써서 겉 말림을 해요. 메주 위로 하얗게 고초균이 올라와 발효되는 시간이 대략 3주, 이후 건조하는 시간이 한 달 반 정도 걸려요. 메주 하나의 무게가 3.8kg 정도인데 하루 동안 짚 위에 올려 둔 메주를 건조실로 옮겨 다시 말리는 일의 반복이죠. 메주가 항아리로 들어간 다음부터는 자연의 몫이에요.”
2~3년 전 엄마를 돕겠다며 본업을 접고 영월로 내려온 아들 전영선씨는 이 대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아들이 합류한 뒤로 장류를 활용한 다양한 식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 곡류를 특수기술로 쪄내 만든 냉동간편식 ‘콩끼니’는 식물성 고단백 식품으로 다이어트식으로도 인기다. 끓여 먹으면 사멸하는 청국장균을 생으로 먹을 수 있게 만든 ‘생식청국장 바로’, 영월잣을 통째로 넣어 만든 ‘통잣고추장’, 스파게티 소스로 활용하기 좋은 ‘잣된장페스토’ 등이다.
이종숙씨는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으로 생으로 바로 먹는 다섯 가지 곡류청국장 ‘오복(54g*24개, 5만 포인트)’과 생식청국장 ‘바로(54g*22개, 3만 포인트)’, 한식된장(1만5000포인트)을 준비했다.
자신이 아팠던 경험 속에서 느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과, 약과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뜻의 ‘약식동원(藥食同源)’ 이 두 가지 정신을 브랜드 안에서 실현하겠다는 이종숙씨. “나이 먹는 걸 잊어버릴 만큼 장 만들며 사는 순간순간이 행복하다”는 이씨는 건강선생으로서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하고 있다. 문의 010-7567-2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