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 모습이다. 사진=산아래詩
오늘은 11월 1일 시(詩)의 날이다. 지난 6월 대구에 문을 연 시집 전문 동네 책방이 있어 화제다. ‘산아래 시(詩)’(대구시 남구 현충로7길 6)는 벌써 입소문이 나서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시인들이 우글대는 명물 서점이 되었다.
‘산아래 시’는 시인들의 집에 쌓여 있는 시집을 모아 위탁 판매한다. 오랜 산고 끝에 자비출판한 시집들이 판로를 찾지 못해 포장박스에 갇힌 채 폐지공장으로 실려갈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 이 시집들을 불러내어 독자들을 만나게 한 ‘별난’ 책방이다.
시집전문 독립서점 ‘산아래 詩’에서 열린 이해리 김윤현 시인 초청 미니 북토크 행사 모습이다.
개업하기 앞서 대구경북 시인 100여명이 시집을 보내왔고, 수도권 및 경남, 전남, 강원도 지역 시인들도 동참하겠다며 시집을 보내왔다. 어느덧 시집이 1000권 이상 쌓였단다.
창업자금 마련이 쉽지 않은 일흔의 책방지기 이동림씨는 이렇게 ‘도서 구입비’ 없이 책방을 열게 되었단다. 이동림씨의 말이다.
“저는, 이 책방이 ‘시’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책방처럼 커피나 예쁜 소품은 팔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방에 찾아온 독자님이 ‘좋은 시집’을 추천해 달라고 해도 저는 특정 시집을 절대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곳 책방에 책 표지가 보이도록 비치된 280여종 시집 모두가 ‘좋은 시집’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시집 가운데 일찍 매진된 시집은, 당분간 추가 요청하지 않습니다. 잘 팔리는 시집을 계속 들여놓는 것도 좋겠으나,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시집이 아직 있으니 그분들께 기회가 좀 더 주어지면 좋겠다 싶어서입니다.”
이 책방에선 시집을 정가의 10% 할인가에 팔고, 판매대금의 60%를 저자에게 보낸다. 대구시인협회 회원들이 책방 운영을 걱정하며 50% 이하로 하자고 권해도 60%를 고집하고 있단다. 게다가 일부 시인들이 “판매된 책값은 보내지 말고 책방살림에 보태면 좋겠다”며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그 시인의 시집은 계좌번호를 보내 줄 때까지 책장에 진열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구시인협회 자매 책방인 '산아래詩'의 현판식 모습이다. 왼쪽부터 박상봉 시인, 김연화 시인, 강현국 시인, 김호진 시인(대구시인협회장), 차회분 시인(대구시인협회 사무부국장). 사진=산아래詩
박상봉 시인(대구시인협회 사무국장)의 말이다.
“지난 6월, 서울시인협회 어느 이사가 이 책방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서울 수도권에도 시집 전문책방이 두어 곳 있으나 이곳은 모두 잘 팔리는 유명시집만 취급한다’면서 ‘이런 자비출판 시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파는 책방은 이곳이 처음이다. 기발하다. 기대된다’며 시인이 많은 수도권에도 이런 책방 운영 시스템을 검토해보겠다고 했답니다.”
최근 대구수필가협회에서 “시집 전문책방이 되는데 우리는 ‘에세이 전문책방’도 검토해보자”라고 하고 있다. 대구의 어느 여류시인은 경북 칠곡군 시골마을에서 옛집을 리모델링해서 이 책방처럼 시집전문책방을 차려보겠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동림씨가 펴낸 《일흔에 쓴 창업일기》(산아래詩 간)
책방지기 이동림씨는 자신의 시집 전문 책방 창업기(記)를 연작시로 묶어 책으로 펴냈다. 《일흔에 쓴 창업일기》(산아래詩 간)에서 그는 “은퇴한 뒤 ‘여생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는 이 땅의 6070님들께 ‘일흔’이 출렁이는 기운을 바친다. ‘일흔’이 다시 ‘호기심과 열정의 나이’가 되도록 눈빛을 초롱초롱 밝힐 것”이라고 했다. 그의 창업기는 지역 시인들의 희망이자 6070 세대들의 용기가 되고 있다.